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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북한

김정일 사망에 대한 단상

김정우 기자 2011.12.20 01:15
김정일 사망에 대한 단상

 

김정일

김정은과 김정일. /AP연합뉴스


"金正日 死亡."
이 다섯 글자 소식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곧 죽는다, 죽겠다 하면서 안 죽는 그를 보며 神의 무정함을 고뇌했었다.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많은 의혹이 남아있다. 북한의 공식 발표는 그가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30분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성 쇼크 합병으로 사망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死因과 사실관계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김정일이 죽었다는 것이다.

자연사든 병사든 타살이든 자살이든 그는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발표가 대한민국 대통령 생일이자 당선일에 이뤄졌다는 것도 뜻깊다(혹자는 이것도 '가카의 꼼수'라고 외친다). 한반도 역사가 급변한 하루 동안,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300만 동포를 죽인 살인자를 규탄하기에 앞서 "서거", "애도", "조문"이란 말부터 꺼내는 그네들의 저의는 정말 의심스럽다. 그들의 머릿속엔 2000만 북한 동포는 이미 사라졌는가. 아니면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김정일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고 조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 전에 그의 손에 죽어간 300만 대한민국 국민(헌법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의 죽음부터 애도하는 게 순서아닐까. 조문에 대한 논란은 그 다음이란 게 상식 아닌가. 김정일의 죽음과 함께 하나가 돼야 할 대한민국이 '조문'이란 이슈 가운데 곧바로 대립됐다. 김정일이 지옥에서 기뻐할 일이다.

혹자는 그런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데, 그도 한 생명이 아니었느냐"고. 아니다. 적어도 김정일에겐 다른 적용이 필요하다. 그에겐 생명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 천하보다 귀하다.

1994년 김일성의 죽음은 그리 '귀하게 쓰임받지' 못했다. 분단은 더 고착화했고, 김일성보다 더욱 악한 독재자가 등장했다.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동포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김정일은 전쟁이 없던 평화 시기에 300만 동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김정일의 죽음이 '귀하게 쓰임받을지'는 철저하게 대한민국 국민의 몫이다. 제대로 되지 못한 대처는 결국 더 심각한 악을 불러올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히틀러를 몰아낸 세계는 진정한 평화를 얻은 줄 알았다. 홀로코스트보다 더 악한 존재가 등장하리라곤 예측을 못했다. 악의 공백은 대부분 더 큰 악이 채운다는 공식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짧게는 이번 한 주, 길게는 내년초까지 언론과 SNS 등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유심히 지켜보라. 고상한 척 하는 양비론과 양시론은 잠시 덮어둬도 좋다. 큰 사건은 개인과 조직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만든다. 처음엔 분위기에 눌려 침묵하다가, 기회가 되면 이상한 논리로 괴변을 펼치는 자들이 분명 득세할 터. 북한 해방을 위해 하나가 돼야할 시점에 찬물을 끼얹으며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이 벌써부터 꿈틀대고 있다.

선관위 디도스, 저축은행 게이트, 이상득 보좌관, 김영완 귀국 등 주요 이슈가 모두 묻히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소한 연말까지 언론의 관심은 김정일 사후 북한정세에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잊지는 말아야 한다. 시류와 상관없이 모든 이슈에 대한 추적과 규명은 계속돼야 한다.

내일 청와대의 공식 성명이 기대된다. 정치란 그렇다. 아무리 잘못이 많아도 말 하나로 사람을 바꾸고 국가를 변화시킨다. 이 대통령의 잘못을 묻자는 얘기가 아니다. 외교적 수사를 빼고서라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7000만 대한민국 국민'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겠다. 국가지도자의 역할은 이럴 때 빛을 발해야 한다. 이곳저곳 눈치보는 어설픈 말은 집어치웠으면 한다.

택시를 타다 TV에 낯익은 얼굴들이 계속 나오길래 전화를 돌렸다. 통화내용을 들은 기사가 "뭔가 상황을 잘 아시는 분 같다"며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다. 간단하게 답했다. "일단 잘 된 것"이라고. 일단은 잘 됐지만, 계속 잘 될지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잘 죽은 건 확실한데 그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부여할 몫이다.

지금은 누구를 조롱하고 즐길 때가 아니다. 조금은 진지해지자. 역사는 지금도 우리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 북한 주민이 이렇게 물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김정일이 죽었을 때, 당신은 굶주린 민족을 위해 무얼 했는가."

P.S. 안철수의 반응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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