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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가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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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우 기자 2012. 1. 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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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해병대 제대 후 밤무대에서 활동했다. 고교 선배인 개그맨 강석씨의 도움으로 솔로 앨범을 냈다. 강씨 도움으로 MBC 라디오 <이종환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에도 출연했지만, 밤무대 복장으로 이상하게 노래를 불러 공연이 중단됐다.

그 무렵 그룹사운드 선배의 딸이 불치병으로 입원했다. 병문안을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기타를 들고 가 노래를 불러줬다. 아이가 좋아해 자주 찾아갔고, 결국 MBC <인간시대> 제작진에게까지 소문이 전해졌다. 그의 스토리는 불치병 소녀와 무명가수의 일상이란 이름으로 전파를 탔다.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제작진은 불치병 소녀를 위해 '정아'란 곡을 만들어 그에게 부르라 했다. '정아'는 소녀의 이름이었고, 노래는 당시 잘 나가던 혼성듀오 '배따라기'의 멤버 이혜민씨가 만들었다. 그가 병실에서 '정아'를 부르는 장면이 나가자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아이의 고통과 선배의 아픔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 못했다. 출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인간시대>란 인연으로 이혜민씨는 또 다른 곡을 만들어 그에게 줬다. 그는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노래에 끌렸다고 한다. 노래는 '한국의 퀸시 존스'로 불리던 나현구씨 손을 거쳐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맞게 다듬어졌다. 음반 홍보는 KBS 악단장을 지낸 재즈 뮤지션 정성조씨가 맡았다. 정씨는 노래 중간 중간에 추임새를 넣어 훨씬 신나고 재미있는 곡으로 변모시켰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이전에 어느 곡에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이 추임새가 방송 심의위원들의 귀에 거슬리게 한 것이다. 강석씨가 진행 중인 음악 프로에 소개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는데 심의가 나오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했다. 사실상 사장된 노래가 강석씨는 아쉬웠다. 강씨는 '일요일엔 방송국 심의가 없다'며 몰래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노래를 내보냈다. 처음 전파를 탄 노래를 라디오로 들은 그는 어머니와 함께 울었다.

반응은 놀라웠다. 당시 톱스타만 출연하던 유명 TV 토크쇼 <자니윤 쇼>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노래가 방송을 탄 지 1주일 만이다. 이후 각종 쇼 오락 프로에 단골로 출연했고, 연말엔 최고 인기가요 상을 휩쓸었다. 팬클럽이 생기고 팬레터가 오기 시작하자 그는 잠원동에 있는 17평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이사했다. 당시 전세가가 2000만원쯤이었는데, 어머니에게 부탁해 동네에서 빚을 냈다고 한다.

그는 CF 출연 대가로 받은 2000만~3000만원 전액을 투병 중이던 정아에게 줬다. 선배 부부는 '부담스럽다'며 거절했지만, 그는 정아가 누워 있던 침대 시트 밑에 넣어두고 병실을 나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아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선배 부부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돈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자존심 강한 선배는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갚을 길이 없으니 선배는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2009년, 정아의 여동생이 결혼했고, 그는 주례를 섰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신부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덕분에 나이 50에 주례를 섰다. 사회자가 그를 주례로 소개하자 결혼식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

그의 이름은 김흥국, 강석씨가 몰래 내보낸 노래는 '호랑나비'다.

<월간조선> 2012년 2월호 김흥국 인터뷰 기사에서 발췌, 요약함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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