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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신병교육대 풍경

정치·북한

by 김정우 기자 2009. 1. 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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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생활하고 강하게 훈련 받는다”

인터넷 카페로 부모는 위문편지, 훈련병은 영상 편지 보내
모포 각잡기, 폭언, 구타는 이제 옛말…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인터넷 카페로 도착한 편지를 받고 즐거워하는 훈련병들.
 “훈련병 전원, 앞으로… 갓!”
 
  빡빡 깎은 머리가 유난히 서글프다. 먼발치서 발을 동동 구르지만 아들은 뒤 한번 돌아보지 않는다. 연병장 옆 스탠드엔 가족들의 눈물이 전염되기 시작했다. 흐느낌과 깊은 한숨이 여기저기서 교차한다. ‘아들들’과 ‘애인들’은 이미 건물 뒤로 사라진 지 오래다. 가족들은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30개월간의 ‘생이별’을 방금 시작한 한 여인은 뒤에서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었다. 1988년 가을, 논산 ‘육군 제2훈련소’(현 육군훈련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1주일 후, 소포 하나가 집으로 배달됐다. 걱정과 근심으로 밤잠을 설치던 어머니는 ‘육군’이라는 발신자에 긴장한 마음으로 박스를 열었다. 아들이 입었던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와 양말이 곱게 개져 있었다. 박스 한편엔 아들이 급하게 날려 쓴 편지가 보인다.
 
  “어머니, 저는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앞으로 효도할게요. 훈련병 ○○ 올림.”
 
  어머니는 옷가지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린다.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율곡부대 훈련병의 자세를 조교가 바로잡아 주고 있다. ‘피나고 알배고 이 갈리는 PRI’는 이제 옛말이 됐다.

  그 후 20년. 2008년 8월 19일, 강원도 춘천 102 보충대에 아들을 보낸 金淑子(김숙자)씨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육군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병 부대배치’를 확인한다. 입대 4일 후 확인된 부대는 육군 22사단 신병교육대. 김씨는 곧바로 ‘율곡 신병교육대’ 인터넷 카페에 접속했다.
 
  카페 첫 화면 중앙엔 신병교육대 대대장의 인사말이 영상으로 올라와 있다. 간단한 부대 안내와 훈련 일정에 대한 소개였다. 화면 왼쪽 메뉴엔 중대별 게시판이 있었다. 아들이 소속된 18기 3소대 게시판을 클릭했다. 훈련병에게 직접 위문편지를 쓸 수 있었다. 김씨는 그날부터 아들에게 매일매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답장 대신 영상편지가 올라왔다. 마냥 어린애 같았던 아들이 늠름하게 변한 모습에 한층 마음이 놓였다. 20여일 만에 듣는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2008년 육군 신병교육대 인터넷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은 가야 하는 곳, 훈련소 풍경은 20년 세월 동안 변화를 거듭했다. 가족과 애인들은 눈물 젖은 편지지 대신 컴퓨터 키보드를 잡았고, 훈련병들은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바깥소식을 접하고 있다.
 
 
  가족 UCC, 5개월 동안 200편 제작
 
열쇠부대 신병교육대 인터넷 카페 화면.

  육군은 현재 4726개의 공식 인터넷 카페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과 공군은 각각 54개와 43개다. 육군은 2005년 11월 7개 사단을 지정해 2개월 동안 인터넷 카페 시험 운영을 거친 후, 전국 부대로 확대해 운영 중이다. 대대급 부대 대부분이 카페를 보유하고 있는데, 특히 신병교육대 카페가 크게 활성화되어 있다.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곳은 21사단 신병교육대 카페다. 9월 10일 현재 6만4864명을 기록하고 있다. 육군 열쇠부대 신병교육대 카페는 지난 7월 육군으로부터 ‘우수 카페’로 선정됐다. 회원 수는 4만1714명으로, 21사단에 이어 2위다. 열쇠부대의 경우, ‘열쇠가족 UCC’라는 코너를 만들어 가족과 친구들의 영상을 모집하고 있다. 훈련병 가족과 지인들은 입대 전 사진과 훈련 모습 등 다양한 영상을 엮어 UCC를 제작해 게재한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아 우수 작품으로 선정될 경우, 훈련 마지막 날 진행되는 ‘열쇠인의 밤’ 행사 때 상영된다. 운이 좋으면 가족과 전화를 할 수 있는 ‘전화 포상’이 수여된다. 지난 4월 첫 영상이 올라온 이후 지금까지 200여 편의 작품들이 탄생했다.
 
  경기도 연천 열쇠부대 신병교육대에서 만난 김누리(중위겳㈀?2기) 정훈장교는 “신뢰할 수 있는 훈련소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카페 활성화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중위의 말이다.
 
열쇠부대 신병교육대 김누리 정훈장교.

  “저희 열쇠부대 구호가 ‘천년 전우 명품사단’입니다. 현재 카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 ‘천년 전우’이고요. 영원히 기억에 남을 ‘명품 전우’가 이 카페를 통해 더 많이 육성되길 바랍니다.”
 
  훈련병 대부분은 입대 전 예상하지 못했던 신교대의 ‘서비스’에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수료를 앞둔 沈亨俊(심형준?1) 훈련병은 지난 해 5월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가족들의 편지가 특히 그리웠다. 야간훈련이나 행군을 할 땐 더욱 간절했다.
 
  심 훈련병은 “인터넷 카페가 없었다면 일주일에 한 번쯤이나 받아 봤을 편지를 매일 받을 수 있어 훈련을 무사히 마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훈련 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신병교육대 조교로 뽑혔다.
 
  崔載熙(최재희?1) 훈련병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대학을 다니다 입대했다. 가족이 모두 중국에 있어 편지는 아예 포기하고 입대했다고 한다. 훈련소에선 중국으로 국제우편 발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위문편지 月 1만 통 올라와
 
도승남씨가 군에 간 아들 박경륜 훈련병에게 ‘인터넷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아들의 손 한번 제대로 잡아 보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와야 했던 그의 어머니는 인터넷 카페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본국에 홀로 남겨진 아들이 걱정돼 지금까지 시원한 물도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일반 우편이었더라면 꿈도 못 꿨을 편지를 인터넷으로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어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너무 더울 때 널 보내고 와서 한시도 맘을 놓을 수가 없네. 이곳은 다들 올림픽 축제에 푹 빠져 있지만 연일 폭염으로 고생하고 있을 아들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아파. 비록 몸은 엄마 아빠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너의 곁에 같이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힘든 가운데서도 옆에 있는 전우들도 돌아보면서 큰 가슴으로 키워 나갔으면 한다.”(최재희 훈련병 어머니가 보낸 편지 중)
 
  서울 신당동의 都承男(도승남)씨는 매일 밤 10시가 되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쓰기 위해서다. 다른 훈련병들의 편지도 읽고 훈련 사진과 동영상을 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1시를 훌쩍 넘겼다.
 
  도씨의 아들 박경륜(21) 훈련병은 미대 출신이다.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에 올 봄 여자친구와도 헤어져 걱정이 많이 됐다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훈련 과정이었다. 도씨는 저 멀리 최전방 사단으로 배치를 받은 아들이 혹여 위험한 훈련을 받다 다치지 않을까 항상 고민이었다.
 
  “처음 5사단으로 배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왜 하필이면 내 아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많고 많은 부대 중에 최전방인가 했죠. 첫째 아들도 지금 군대에 있거든요.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아들의 훈련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확인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도씨는 이제 걱정보다는 “이왕 하는 훈련 제대로 받고 나와 대한민국의 진정한 군인이 됐으면 한다”며 “2년 동안 아들이 새롭게 ‘업그레이드’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인터넷 위문편지를 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각 중대, 소대별로 마련된 게시판에 훈련병 소속과 번호를 제목으로 쓴 후 편지를 올리면, 신병교육대에서 직접 출력해 훈련병에게 전달한다. 음란한 내용이나, 욕설 협박 비방 등의 내용만 없으면 사진도 함께 올릴 수 있다. 수료를 앞둔 12중대 게시판의 경우 5주 동안 3500여 통의 편지가 올라왔다. 신병교육대 전체로 따지면 매월 약 1만 통의 편지가 온다.
 
 
  인터넷 위문편지 때문에 퇴짜맞은 사연
 
소대원들의 편지를 한 장씩 촬영하고 있는 권백철 소대장.

  “이제 우리 아들 추울까 걱정되네. 너 훈련 받으러 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엄마는 1년도 더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아들, 빨리 보고 싶구나. - ○○엄마”
 
  “오늘 사진 5장 올라왔는데 오빠가 안 보여. 오늘 훈련 다치는데 없이 힘내서 잘 받구!! 화이팅이요 ^^ 사랑해♥ - ○○애인♡”
 
  남자 친구를 군대 보낸 여성들을 일명 ‘곰신’(고무신의 줄임)이라 부른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
 
  신병교육대 카페 문화도 ‘곰신’들이 주도한다. ‘초보 곰신’이란 타이틀을 건 이들은 매일 카페를 방문해 ‘출석체크’를 하고 남자친구를 담당하고 있는 소대장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낸다.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구축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사랑과 이별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엄마’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예전부터 카페 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인터넷 카페 자체를 처음 접해 본 사람도 있다.
 
  훈련병들은 규정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 인쇄된 편지를 조교로부터 받으면 그 뒷면이나 다른 종이에 답장을 적어 보낸다. 처음엔 소대장과 기간병들이 이 편지를 모두 타이핑해서 보냈다. 지금은 답장 자체를 사진으로 찍어 그 파일을 게시판에 올린다.
 
  이 모든 과정을 소대장이 직접 진행해야 한다. 10중대 1소대장 權伯哲(권백철곀閨?46기) 소위는 매일 새벽 1시까지 편지 출력과 촬영을 반복한다. 하루 평균 100개의 편지를 보내고 받는다. 휴일엔 최대 130통까지 작업해야 한다.
 
  권 소대장은 “힘들다기보다는 소대원의 심리 상태나 훈련 느낌 등을 잘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대장에겐 말 못하는 고민을 친구나 가족들에겐 모두 털어놓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도구로 위문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뜻밖의 사건들이 종종 벌어진다. 한 훈련병은 입대 전 여자친구를 제대로 정리를 못 해 세 명에게 동시에 편지를 받았다. 남자친구의 이름으로 편지 검색을 하던 세 여인은 이 사실을 곧바로 알았고, 그 훈련병은 셋 모두에게 퇴짜를 맞았다.
 
  한 훈련병은 여자친구에게만 매일 답장을 보내다 가족들에게 ‘적발’됐다. 그는 여자친구가 보낸 편지를 모두 잘 간직하고 있다며, 꼬박꼬박 답장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 답장에 2개의 댓글이 달렸다. 첫 댓글은 여자친구의 격려 메시지였고, 두 번째는 어머니의 웃지 못할 댓글이다.
 
  “어이 아들,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한테도 제발 편지 좀 써라…. 할머니 매시간마다 불공 드린다. 알았습니까!” (훈련병 답장에 달린 댓글 중)
 
  ‘엄마’들과 ‘곰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동이 적은 아버지들은 장교와 조교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다.
 
  “○소대 ○○○ 아빠입니다. 철부지를 대한민국 사내로 훈련시켜 주신 중대장님을 비롯한 5사단 대원들께 감사 드립니다. … 훈련병 ○○○ 父 드림.”
 
 
  “국민과 軍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열쇠부대 신병교육대 이방현 대대장.

  한 훈련병 어머니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표현했다. 9중대 김은교 훈련병의 어머니가 소대장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2소대장님 덕분에 저희 부모들은 아들들에 대한 궁금증을 다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306보충대에 두고 올 때부터 눈물로 나날을 지샜는데, 5사단 신교대에 오고는 매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편지에 이어 훈련 모습을 찍은 사진이 올라오면 가족과 친구들의 호응이 뜨거워진다. 서로 아들과 애인을 찾아 기쁨의 댓글을 이어놓는다. 9중대는 행군 때 중대장이 군장 두 개를 메고 가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많은 어머니들이 감동을 받아 편지를 남겼다.
 
  인터넷 카페 때문에 가족이 서로 다툰 사례도 있다. 12중대 김인경 훈련병의 어머니는 지난 해 12월, 군에 간 손자에게 편지 좀 쓰라며 할머니를 타박했다. 할머니는 “절대 못 쓴다”며 역정을 냈다. 그날 이후 모녀는 서로 연락도 잘 하지 않았다.
 
  며칠 후 ‘할머니가 손주에게’란 제목으로 맞춤법이 다 틀린 한 통의 편지가 카페에 올라왔다. 김 훈련병의 할머니가 마을 청년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보낸 것이다. 훈련병과 어머니 모두 눈물지을 수밖에 없었다.
 
  육군은 신병교육대 중심의 부대 인터넷 카페를 일반 대대급 부대까지 활성화할 예정이다. 장병 사고예방과 군 홍보에 카페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쇠부대 신병교육대 대대장 李芳鉉(이방현ㆍ육사46기) 중령은 인터넷 카페를 “국민과 군을 연결해 주는 대국민 창구이자 연결고리”라고 강조했다.
 
  “가족과 훈련병의 소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훈련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교대 카페의 가장 큰 고객은 훈련병의 부모와 친구들입니다. 이들이 카페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가지게 되니 훈련병은 더욱 훈련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편지가 오가고 그 내용들이 모두 공개되는데, 보안상의 문제는 없습니까.
 
  “우선 훈련병들이 취급하는 군 정보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데다 각 중대 장교들이 보안 검토를 매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편지를 주고받던 때보다 오히려 더 보안상 안전하다고 볼 수 있죠.”
 
  ―제대로 된 훈련을 하려면 어느 정도 사회와의 격리가 필요한데, 인터넷 카페 때문에 훈련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부모와 친구들이 매일 보내는 짧은 편지들이 훈련병들에겐 사회를 ‘잊을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전투력이 올랐으면 올랐지, 기강이 해이해지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이 대대장은 “인터넷 카페는 우리 군의 획기적인 발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 여러 이벤트와 철저한 관리를 통해 진정한 ‘명품 카페’를 만들겠다”고 했다.
 
 
  ‘피 나고 알 배고 이 갈리는 PRI’는 옛말
 
  서울 테헤란로에서 5년 만의 軍(군) 시가행진이 진행되던 지난 10월 1일, 필자는 강원도 고성의 육군 율곡부대 신병교육대대를 찾았다. 마침 부대 앞 사격훈련장에선 사격훈련이 한창이었다.
 
  입사호에 들어선 훈련병들이 250m 앞에 있는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었고, 바로 옆 사격술예비훈련(PRI) 교장에는 대기 중인 훈련병들이 자세 교정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바로 ‘피 나고 알 배고 이 갈린다’는 PRI 훈련이다.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고 있던 劉主鉉(유주현?2) 훈련병의 자세를 훈련조교 李卿瓠(이경호?2) 상병이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예전 훈련소 같았으면 발로 툭툭 차면서 고함을 쳤을 텐데, 이 조교는 훈련병들의 몸을 직접 손으로 바로잡아 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무릎과 발뒤꿈치를 정확하게 땅에 붙이고, 허리는 이렇게, 오른쪽 어깨는 이쪽으로 옮기고, 그렇지, 호흡은 천천히 내쉬어야….”
 
  훈련병 시절 PRI로 고생했던 이들에겐 너무나 낯선 장면이다. ‘전진무의탁’ 자세를 몇 시간 하다 보면 온 몸이 감각을 잃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자세 자체가 아예 바뀌었다고 한다.
 
  “안 하던 걸 하다 보니 생각대로 잘 안 됩니다. 하지만 조교님이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한결 수월합니다.”
 
  조교에게 자세를 교정 받은 유주현 훈련병은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사격 연습을 시작했다.
 
  “재미있습니다. 이제 2주 지났는데, 군대 오기 전에 괜히 걱정했나 싶습니다. PRI도 직접 해보니, 알은 좀 밸지 모르지만 이가 갈리거나 피가 날 일은 없습니다.”
 
  20발 중 10발을 못 맞혀 ‘불합격’돼 추가 PRI 교육을 받던 李元台(이원태?1) 훈련병의 말이다. 20년 전이었으면 말도 제대로 못할 만큼 고생했겠지만, 이 훈련병은 그저 “재미있다”고 한다. 너무 풀어 주는 게 아닌지 이경호 조교에게 물었다.
 
  “예전엔 사격하기 전에 혼을 거의 뺀 것으로 압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보다는 ‘사격의 원리’를 정확하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얼차려를 주기보다는 자신감을 주는 게 우선이죠. 조교가 강압적인 자세로 지시만 하던 훈련은 이미 옛날 이야기입니다.”
 
  ―다른 훈련도 아닌 사격훈련인데, 사고 위험이 뒤따르지 않을까요.
 
  “입소 첫날부터 교관들이 인성검사와 면담을 통해 훈련병의 ‘모든 것’을 파악합니다. 사고 가능성이 있는 훈련병들은 이미 자료가 있죠. 게다가 수많은 훈련병들을 봐 왔고, 대화를 직접 했기 때문에 이젠 훈련병 눈만 봐도 대충 알 정도죠.”
 
 
  20년 동안 공 한 번 못 던져본 훈련병
 
율곡부대 신병교육대 박상준 대대장.

  율곡부대 신병교육대 대대장 박상준(3사 25기) 중령은 “훈련병을 괴롭히기만 하는 훈련이 아니라 전술적 목표를 위한 훈련을 실시한다”고 했다.
 
  “17년 전인 1991년 논산에서 교관을 했었습니다. 그땐 PRI 하면 무조건 피나고 알배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무턱대고 고생하기보단 ‘사격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간 사격의 경우, 예전엔 허공에 대고 ‘대충’ 쏘는 ‘체험적’인 면이 강했다면, 지금은 ‘레이저 포인트’를 설치해 정확한 사격을 실시하는 ‘성과적’인 면이 강조됩니다.”
 
  군에 다녀온 사람에게 행군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10분간 휴식’이란 구령과 함께 털썩 주저앉아 밤 하늘 별을 보며 오이 한 조각을 씹으면 그곳이 곧 천국이었다.
 
  50~60km를 죽을 각오로 걸어야 했던 행군은 단계적인 전술 행군으로 바뀌었다. 3주에 걸쳐 매주 15km에서 30km를 걷는다. 과거에 비해 운동량이 적은 훈련병들을 위해 행군 시간도 30분에서 50분으로 점차 늘려 나가는 방식이다.
 
  행군의 가장 큰 敵(적)은 ‘물집’이다. 전투화에 익숙하지 않은 훈련병들은 조금만 걸어도 동전 크기만한 물집이 생기기 일쑤였다. 장거리 행군을 할 땐 물집이 생겨도 무감각하게 그냥 걷고 또 걸었다. 물집이 마치 행군의 훈장처럼 인식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물집이 용납되지 않는다. 행군만 하고 훈련이 끝난다면 물집이 자랑스런 추억으로 남겠지만, 실제 훈련에선 당장 다음날 훈련 일정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박 대대장의 말이다.
 
  “과거 훈련병들은 ‘걷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훈련 장소까지 가는 데 몇 km를 걸어야 했죠. 저희는 멀어야 800m 정도입니다. 불필요한 전력 낭비를 제거하는 거죠. 행군도 마찬가지입니다. 행군이 끝나면 다음날 바로 다음 훈련이 진행됩니다. 물집이 생기면 고통 속에 훈련을 해야 하고, 정상적인 치료가 어렵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율곡부대 훈련병들.

  ‘신세대 장병’들에게 수류탄 투척은 큰 부담이 되는 훈련이다. 지금 한창 입대 중인 1988년생 훈련병들은 청소년 시절 여가 시간을 주로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 이전 세대보다 체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한 훈련병은 학창시절 던지기 운동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박 대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 수류탄을 던지는 것이 목표”라며 강한 훈련을 강조했다.
 
  “공 한 번 못 던져 봤다고 해서 직접 시켜 보니, 진짜 어설픈 폼으로 5m 정도 던지더군요. 그런 훈련병들이 종종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바로 열외시켰겠지만, 지금은 체력단련 시간에 공 던지기 놀이를 시킵니다. 체격 자체는 좋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지죠.”
 
  ‘짬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훈련병 식당을 찾아가 봤다. 식판을 직접 들고 줄지어 배식을 받는 모습은 예전과 비슷했다. 저녁 메뉴는 두부조림과 생선튀김, 김치, 찌개였다. 마침 국군의 날을 맞아 과자 간식이 함께 나왔다. 직접 먹어 보니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맛이다.
 
  박 대대장은 한 달에 한 번 취사병 전원을 데리고 부대 주변의 유명 식당을 찾는다. ‘취사병의 날’을 맞아 취사병을 격려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유명 식당의 맛을 직접 보고 배우라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다.
 
  “취사병은 제가 매달 한 명씩 포상휴가를 보내 줍니다. 총 9명이니까 군생활 중 세 번은 가는 셈이죠.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죠. ‘휴가 세 배 주는 만큼 음식 맛을 세 배 맛있게 하라고.’ 맛 없는 식사는 어떤 논리에서 보더라도 훈련병의 전투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 훈련병들이 먹는 식사는 원가로 따졌을 때, 하루 평균 5210원 수준이다. 사회에서 먹는 수준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식사와 더불어 빵, 과자, 과일,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부식이 제공된다.
 
  훈련병 ‘내무반’을 찾았다. 지금은 ‘내무반’ 대신 ‘생활관’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아직 ‘침상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2012년까지 모두 침대형으로 바뀔 예정이다.
 
  ‘전투복 각 잡기’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예전 훈련병들은 ‘벽돌모양’의 관물 정리를 위해 종이를 끼워 넣거나 침을 묻혀 가면서 ‘칼각’을 잡으려 애썼다. 모포나 전투복이 조금이라도 삐뚤면, 조교가 군홧발로 침상 위에 올라와 관물을 뒤엎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한다.
 
 
  가장 힘든 얼차려는 팔굽혀펴기
 
율곡부대 신병교육대 4중대 1소대가 확인형 점호를 실시하고 있다.

  전투복은 옷걸이에 걸어 걸면 되고, 모포는 너무 어지럽지만 않게 개어 놓으면 된다. 양말과 속옷은 서랍 속에 정리한다.
 
  저녁 8시, 점호가 시작됐다. 9시 점호가 원칙이지만, 다음날 새벽 산악행군 일정으로 인해 일정이 당겨졌다. 속옷 바람으로 일렬로 정렬해 ‘내무사열’을 받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눈 앞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점호 보고를 마친 후 자유로운 복장으로 앉아서 편안하게 다음날 일정을 듣는다. 수첩에 메모하는 훈련병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로 웃는 모습도 눈에 띈다. 무조건 엄숙하고 강압적이었던 점호에서 조교와 훈련병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확인형 점호’로 바뀐 것이다.
 
  다음날 일정과 전달사항을 마친 훈육조교 崔斗星(최두성?2) 병장이 질문 있냐고 물었다. 온갖 질문들이 쏟아진다.
 
  “산악행군 하면 내일 점심은 어디에서 먹습니까”, “50분 걷고 10분 쉽니까”, “물집 잡혔는데 어떡합니까”, “오늘 받은 라면 부식은 언제 어떻게 먹습니까”….
 
  아파도 아프다고 말도 못하던 시절 점호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니다. 훈련병들은 자유롭게 훈련에 대한 질문이나 질환에 대한 보고를 하고 그에 맞는 답변과 조치를 받는다.
 
  한 훈련병에게 ‘미싱’(내무반 바닥 청소 방법의 일종)을 아냐고 물으니 전혀 모른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던 얼차려는 팔굽혀펴기 20회 정도라고 한다. 조교의 욕설은 들어본 적이 없다. 구타, 가혹행위, 폭언은 신병교육대에서 사라진 듯하다.
 
  ‘그래도 군대인데’라는 생각에 한 훈련병에게 지금 훈련 받으면서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었다. 익명 보장을 약속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대답했다.
 
  “정수기가 지금 두 생활관마다 하나밖에 없어, 물 마시는 데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그는 한여름에도 주전자에 물을 끓여 마셔야 했던 예전 군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필자와 동행한 한 장교는 그의 어깨를 그저 툭툭 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신병교육대가 크게 바뀐 것은 2005년 1월에 발생한 ‘육군훈련소 인분사건’의 영향이 컸다. 당시 중대장이 화장실 청소가 불량하다며 190여명의 훈련병에게 인분을 손가락에 찍게 한 다음 이를 입에 넣을 것을 강요해 상당수 훈련병들이 실행에 옮긴 사건이다. 사건 이후 파장이 일어 결국 국방부장관이 對(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훈련병의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전투력’에 대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전역을 앞둔 한 현역장교는 “육군의 슬로건이 ‘강한 친구’인데, 군에서 사고가 터지며 자꾸 이슈화되다 보니 ‘강한’보다는 ‘친구’가 강조된 면이 있었다”면서 “지나친 보호는 오히려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얼마 전 신병교육을 마치고 전입 온 신병을 예로 들었다.
 
  “한 병사가 전입을 왔어요. 외아들인데, 갑자기 부대를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하더군요. 상담하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예요. 집에 연락을 하자, 부모님과 친척들이 찾아왔어요. 문제는 그분들이 담당 지휘관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부대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꼬투리 잡을 것이 없는지 살펴본다는 겁니다. 자기 아들이 무조건 옳다는 거죠.”
 
  그는 인터뷰에서 “최근 군 수뇌부가 바뀐 후 ‘강한 戰士(전사)’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는데,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약해진 군의 기상이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쌍둥이 훈련병’
 
같은 날 입대해 함께 생활하고 있는 池政龜(지정구), 池政龍(지정용) ‘쌍둥이’ 훈련병.

  다음날 아침, 산악행군을 시작한 훈련병들을 만났다. 행군에 전념하고 있던 姜敏俊(강민준?2) 훈련병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솔직히 군대 오기 전에 친구들과 선배들이 ‘나 같으면 죽는다’, ‘절대 가지 마라’며 말렸는데, 막상 와 보니 그렇게까지 힘든 것 같진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듭니다.”
 
  ―군에 와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군에 오기 전엔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혼자 고민했는데, 여기서 훈련 받다 보니 다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池政龜(지정구) 池政龍(지정용) 훈련병은 쌍둥이다. 올해 21세로, 지난 9월 9일에 함께 입대했다. 쌍둥이의 경우, 보충대에서 신청을 하면 같은 교육대대와 자대로 배치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현재 같은 소대 같은 분대에 배치돼 기상부터 취침까지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하게 된다.
 
  “가끔 집 생각 나거나 어려운 일 있을 때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남들에겐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형제니까 서로 나눌 수 있잖아요.”
 
  ―집에선 두 아들을 한꺼번에 군에 보내 힘들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복무 기간도 상당히 짧아졌고요. 군대가 아니라 ‘수련원’에 보낸 느낌이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형제가 함께 있으니 많이 안심이 되시나 봅니다.”
 
  현재 이들의 복무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2006년 1월 입대자부터 일정 기간별로 하루씩 복무기간을 단축해 2014년 7월 13일 입대자부터는 6개월 단축이 적용된다. 육군 복무기간은 1953년에 33개월로 줄었다가, 1968년 1·21 사태로 인해 36개월로 다시 연장됐다. 1970년 산업인력 지원을 위해 다시 33개월로 줄어들었고, 1993년 26개월, 2003년 24개월로 꾸준히 단축됐다.
 
  단축된 복무기간만큼 훈련소 풍경도 확 바뀐 모습이었다. 옷차림부터 시작해, 먹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 빠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바뀌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내무반(생활관)에 들어서면 맡을 수 있는 ‘냄새’다. 강한 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훈련병들의 ‘땀냄새’는 10년, 20년이 지나도 항상 같았다. 필자와 취재를 동행했던 신병교육대 정훈장교 梁性喆(양성철곀閨?5기) 중위의 말이다.
 
  “훈련병들의 냄새가 그대로듯 대한민국 육군의 국방에 대한 열정도 그대로입니다. 아니, 오히려 강해지고 있습니다. 국민이 군에 바라는 것은 간단합니다. 바로 ‘이기는 군대’입니다. 시설이 좋아지고 환경이 좋아지는 것만큼 우리는 더욱 강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李陽九 율곡부대 사단장
 
  “국민이 원하는 군대는 ‘강한 군대’”
 
 
  율곡부대 사단장 李陽九(이양구ㆍ육사 35기) 소장은 지난해 부임하자마자 신병교육대 훈련과 교육여건 개선을 지시했고, 사단장 강의는 훈련 기수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본인의 휴가를 조정해 가면서까지 매주 참석했다는 그는 “신병교육 기간은 군생활 중 가장 중요한 5주”라면서 “첫 단추를 잘 꿰야 진정한 장병과 군대를 육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병교육 여건이 너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인권 면에선 강화됐지만, 교육훈련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9년 전인 1979년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그때 자주 들었던 말이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였습니다. 수십년째 군대는 항상 ‘좋아지고’ 있고, 병사들은 항상 ‘나약한 신세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군대 좋아진 거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나약해지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해당 지휘관에 따라 약해질 수도, 강해질 수도 있죠.”
 
  ―율곡부대가 신병교육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사항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한 장병’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사단장은 신병을 잘 교육시켜서 예하부대로 보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강하게 훈련 받은 신병들이 자대에 가서도 잘 적응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적용됩니까.
 
  “‘맞춤형 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단에 신병교육대가 있는 이유는 그 사단에 적합한 훈련을 미리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사단의 경우 해안과 산악지역을 동시에 방어해야 하는 부대입니다. 산악에 강한 장병 육성을 위해 산악행군 코스를 추가하고, 야전종합훈련(숙영)을 2박3일로 늘렸습니다. 해안 경계에 필요한 여러 훈련도 함께 병행하고 있고요.”
 
  이 사단장은 북한과 함께 ‘지형’과 ‘기상’을 3대 적으로 규정했다. 눈이 수백mm 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태풍과 강풍, 산불이 매년 이곳을 덮치기 때문이다.
 
  “기상변화와 지형을 이겨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입니다. 산악행군과 함께 산악구보를 매일 실시합니다. 전투체육 시간에도 단순히 공 차고 노는 게 아니라, 타이어 끌기, 참호전투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병사 위한 최상의 복지는 ‘교육훈련’
 
  이 사단장은 무엇보다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 모든 시발점은 신병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훈련을 배제하고 적과 싸워 이기는 전투 능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야간 사격의 경우, 예전엔 한 번씩 쏴 보고 오는 ‘체험식 교육’이었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측정식입니다. 합격 못 하면 내려올 수가 없으니, 교육에 임하는 자세부터 다릅니다. 또 실무부대와 신병교육대의 인력을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신병교육대에 소대장이 임관하면 거기서 전역했습니다. 실무부대의 사정을 전혀 모른 채 이론만 가지고 교육을 한 셈이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력 교류입니다. 사회로 따지면 ‘産學(산학)협력’쯤으로 보면 되겠네요.”
 
  ―신병교육대에서는 무엇보다 군기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군인 복지가 향상되고 민주군대가 되면 군기가 약해진다고 생각하죠. 미군의 경우 가장 민주적 군대로 손꼽히면서도 세계 최강의 전력과 군기를 자랑하고 있죠. 군기를 세우는 으뜸은 ‘자발적인 복종’입니다.”
 
  ―‘자발적인 복종’은 어떤 훈련 방식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병사를 위한 최상의 복지는 ‘교육훈련’입니다. 군대의 1차적 목표는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고,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 전장에 투입돼 승리해야 합니다. 이때 병사의 生死(생사)는 교육훈련이 결정합니다.
 
  과거엔 ‘통제’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경쟁’을 시킵니다. 철저한 신상필벌을 통해 동기를 유발시키죠. 잘하는 훈련병은 포상을 주고, 불합격자는 남들 쉬는 주말에 보충교육을 시킵니다. 성과위주의 교육을 실시 중이죠.”
 
  ―신병교육대 현장에 가 보니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간부들이 많더군요. 신병들이 부담했던 스트레스와 고통을 결국 간부들이 부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간부들이 많이 힘듭니다. 그리고 힘들어야 합니다. 한 가지 지시를 하기 전에 10번 생각해야 하는 게 군 간부입니다. 1시간짜리 신병교육이 있다면 적어도 10시간을 투자해야 하고요.
 
  우리 군은 60년 전 맨주먹으로 시작해 놀라운 업적을 이뤘습니다. 선배 군인들의 그 역사를 잘 이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군대는 결국 ‘강한 군대’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신병교육대입니다.”



월간조선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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