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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북한

MB “박근혜 대표는 참 고마운 분”

김정우 기자 2012.02.20 12:45
박선규 前 청와대 대변인의 회고

⊙ MB “나, 어청수 청장이 일하는 스타일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내가 임명한 사람도 아니잖아”
⊙ “2008년 8월 국민과의 대화 때 KBS가 청와대와 한 약속 전혀 안 지켜 실망”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이명박과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가 2009년 9월 16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날 독대로까지 이어진 유럽 순방 보고 후 이명박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 대해 “참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2009년 9월 16일,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박근혜(朴槿惠) 전(前) 한나라당 대표(現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가 만났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4개국을 순방한 후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일정이 빡빡했지만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며 “대통령께서 당선자 시절부터 유럽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것을 알아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고, 이 대통령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주신 것으로 안다”며 “중요한 시기에 특사단이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줘 향후 국정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100분 넘게 계속된 이날 회동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당시 여론은 대선 전부터 시작된 친이(親李)-친박(親朴) 갈등이 어느 정도 회복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40여 분간 단독회동을 가졌고, 이때 남북관계, 4대강, 세종시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만남 후 이 대통령은 접견실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박 전 대표를 배웅했다.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본 후 돌아선 이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
 
  “참 고마운 분이에요.”
 
 
 
“李-朴 관계,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선규(朴先圭) 전(前)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최근 펴낸 저서 《희망과 맞팔하다》에서 밝힌 내용이다. 박 전 차관은 “소문과 기사를 통해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며 “전혀 문제가 없다곤 말할 수 없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결국 ‘갈 데까지 간’ 친이-친박 갈등과 달리, 막상 당사자들 간 관계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얘기다.
 
  2011년 4월, 박 전 대표는 한 차례 더 유럽특사로 나섰다.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한 것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약속을 어겼다”며 유감 표명과 반대입장을 밝힌 직후였다. 당시 “두 사람 사이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고, 대통령 주변에선 “박 대표가 사사건건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특사를 제안했고, 박 전 대표는 받아들였다.
 
  박 전 차관은 두 사람 사이가 나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정진석(鄭鎭碩) 의원의 경우를 들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패배 후 정 의원을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이 대통령의 정확한 심중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는 것이다. 책 내용 중 일부다.
 
  “정 수석은 박근혜 전 대표가 특별하게 챙길 정도로 가까운, 대표적 친박 의원이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세종시 문제가 지방선거 패배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됐고, 특히 박 전 대표가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힌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런 상황에서 친박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발탁한 것이다. 정무수석이 어떤 자리인가?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의 숨소리까지 다 챙길 정도로 핵심 중의 핵심인 자리다.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일은 물론 의중까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위치다.”
 
  박 전 차관은 “많은 사람이 의심하듯 ‘청와대에서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쁜 일들을 꾸미고 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사”라며 “그런 일들이 있다면 다 박 전 대표의 귀에 들어가고 문제가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MB “총무원장 차라고 안 뒤지면 경찰이 아니다”
 
2008년 여름 조계사 입구에 걸린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요구 플래카드.
  책은 이 대통령이 불교계와 여야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어청수(魚淸秀) 경찰청장을 경질하지 않았던 이유도 밝혔다. 2008년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서 야당과 시민단체의 어 청장 사퇴요구가 시작됐고, 7월 말 경찰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이 탄 차량을 검문검색해 문책 여론은 불교계와 여당으로까지 번졌다. 불교계는 어 청장의 즉각 파면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이어나갔고, 박희태(朴熺太) 대표 등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도 청와대에 어 청장 경질을 요구했다.
 
  박 전 차관은 당시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 사연도 기록했다. 책에 따르면, 어 청장 사퇴요구 분위기가 이어지던 2008년 어느 날 아침 이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어청수 청장을 왜 안 자르는지 아나?”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참모들에게 대통령이 스스로 답했다.
 
  “나, 어청수 청장이 일하는 스타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어 청장은 내가 임명한 사람도 아니잖아.”
 
  박 전 차관은 그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그는 당연히 이 대통령이 어 청장을 임명한 것으로 알았다. 사실 어 청장은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퇴임 한 달여 전 공식 내정한 사람이다. 책에 기록된 대통령의 당시 발언이다.
 
  “어 청장은 자신의 책임을 충실히 했다. 경찰의 수배를 받는 사람들이 총무원장 차를 타고 빠져나가려 한다는 첩보가 있는데 총무원장 차라고 안 뒤지면 그건 경찰이 아니다. 또 총무원장 차를 수색할 경우 안 그래도 반발하는 불교계가 거세게 항의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경찰청장 자격이 없는 것이다. 어 청장은 이리저리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다했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청장을 자르라는 주장은 억지다. 대통령이 억지주장에 밀려 책임을 다한 사람을 자를 수 있겠나. 그러면 내가 어떻게 전국 공무원들에게 각자 위치에서 소신껏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할 수 있겠나.”
 
  박 전 차관은 “못 이기는 척 들어주면 아무런 시비 없이 지난 정권 사람을 내칠 수 있는데다, 종교편향 시비에서 벗어나 야당과 시민단체를 달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등 어 청장 경질 효과는 일석이조였지만,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결국 돌아온 것은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소통을 정말 못한다’는 무거운 비판이었다”고 덧붙였다.
 
 
  “임기 초 빅3 모두 노무현 사람”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선규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최근 펴낸 《희망과 맞팔하다》.
  박 전 차관은 “이른바 ‘빅3’로 불리는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모두 이 대통령 자신의 사람이 아닌 전 정권의 핵심인사를 임명하거나 유임시켰다”며 “이들을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성호(金成浩)씨였고, 임채진(林采珍)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4개월을 남겨놓고 임명한 사람이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MB 정부가 검찰을 동원해 억지수사를 하다 전직 대통령 자살이란 초유의 비극을 불렀다”는 비판을 받은 사람과, 촛불시위 때 ‘강경 진압’이란 명목으로 사퇴 압력을 받은 사람 모두 노 전 대통령이 선택한 인사들이다.
 
  박 전 차관이 대변인 시절 “왜 그분들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이 대통령의 대답은 “법이 정해놓은 임기를 지켜주고 싶었다. 정치적 바람을 타지 않고 국민에게 책임지며, 정권과 관계없이 원칙이 지켜지는 모습을 만들고 싶었다”였다.
 
  KBS 앵커 출신인 박 전 차관은 자신의 ‘친정’과 불편했던 일화도 털어놨다. 2008년 8월, 취임 후 첫 ‘국민과의 대화’ 방송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방송사 선택이었다고 한다. 공영방송인 KBS와 하는 게 당연했지만, 촛불 정국에 정연주(鄭淵珠) 사장을 중심으로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노골적인 적대감까지 보인’ KBS가 부담스러웠다. 고민을 보고하자 대통령은 “왜 그렇게 사고가 경직돼 있느냐”며 그를 질책했다. “KBS가 정부와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공적인 영역으로 연결할 순 없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결국 터졌다. 박 전 차관은 KBS의 전문성을 믿고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했다고 한다. 본인도 과거 기자 시절 ‘위로부터의 간섭’에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합의 과정에서 KBS는 “청와대가 과거와 분명 달라졌다”고 반겼지만, 청와대 내부에선 “방송사에 지나치게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KBS의 생각은 청와대의 기대와 달랐다. 박 전 차관은 “KBS는 정말 독한 방송,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며 “3명의 전문가 패널을 모두 비판 성향이 강한 인사로 선정했고, 일반 패널은 시위 전력자까지 포함되는 등 거의 ‘경악할 수준’이었다”고 했다.
 
 
  믿었던 KBS에 ‘발등 찍힌’ 사연
 
  진행상황을 보고하자 대통령으로부터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느냐”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할 경우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어 그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대통령은 두 가지를 주문했다. “첫 번째 질문부터 독하게 나오면 표정관리가 안 될 수 있으니 첫 질문을 조금 부드럽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과 “(비전문가 패널 중 한 명인) 노조위원장이 질문을 빙자해 자기 회사 문제를 얘기해선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달라”는 요구였다.
 
  이에 대해 KBS도 “그것은 당연하니 아무 걱정 말라”며 청와대 측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첫 질문도 제안해 줬다. 진행자가 대통령을 맞으며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요,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대통령이 “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라 하며 베이징 올림픽에 다녀온 것과 장미란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운 얘기 등으로 풀어가는 식이었다.
 
  방송 당일, 시작부터 박 전 차관은 땀을 흘려야 했다. 첫 질문을 포함해 예상이 모두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사회자는 ‘부드러운 질문’ 없이 바로 패널에게 질문권을 넘겼고, 날카롭고 곤혹스러운 질문이 쏟아졌다. 노조위원장은 질문 대신 2분 이상 회사에 대한 입장을 강변했다. 대학생 패널은 ‘백골단’이란 용어를 써가며 경찰을 비난했다.
 
  다음 날 한 매체는 ‘좌파단체와의 토론회’라고 방송을 평가했고, 박 전 차관은 “결과적으로 허위보고를 한 셈이 됐다”며 대통령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신이 죄송한 일이 아니라 약속을 안 지킨 그 친구들이 문제”라며 “그렇게 노골적으로, 비신사적으로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박 전 차관은 이외에도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표기하자 아프리카 순방 중이던 이 대통령이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강하게 설득했던 사례,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 사상 처음 열린 대통령 주재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대통령이 군복을 입으려다 취소한 사연, 한ㆍ미(韓美) 정상회담 때 “6ㆍ25전쟁 직후 미군 선교사에게 헌 바지 하나 얻어 입으려고 줄 섰던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로 오바마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화 등을 공개했다.

월간조선 2012년 3월호 - 기사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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