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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강원랜드 - 경제 한파속에 더욱 뜨거워지는 ‘도박 공화국’

사회

by 김정우 기자 2009. 1. 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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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을 향한 질주, 그러나…”

“한국인에겐 어쩔 수 없는 ‘갬블링 블러드’가 흐른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 車敏洙)

⊙ 3억 잃은 뒤 카지노 입장 거부당하고 통곡하는 여인
⊙ 두 집 건너 한 집이 전당포. 자동차·귀금속 맡기고 돈 빌려 도박
⊙ 일정 액수만 갖고와 목표액 따거나 잃으면 바로 귀가하는 사람은 ‘神’으로 불려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강원랜드

강원랜드.

 충북 제천에서 38번 국도로 들어섰다. 강원도 산골로 향하는 길인데, 생각보다 훤칠하게 뚫려 있었다. 평일 오전이지만 오가는 자동차가 꽤 많았다. 전국 각지에서 온 듯한 차들이 필자의 차를 앞질러 달려 나갔다. 모두들 뭔가 급해 보였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반 후, 목적지인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도착했다. 사북오거리 앞 쌍굴다리 위로 강원랜드 간판이 보였다. 일명 ‘안경다리’로 불리는 이곳은 28년 전 사북사태 당시 경찰과 노동자들이 대치했던 장소다.
 
  舍北(사북)에는 榮辱(영욕)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 1963년 12월, 사북탄좌가 설립된 이래 작은 산촌마을은 시대의 喜悲(희비)를 대한민국과 함께 삼켜야 했다.
 
  1974년 사북광업소는 연간 생산량 100만t을 넘어섰고, 13년 후엔 200만t을 돌파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발 700m의 산간마을 곳곳에 상가와 건물이 들어섰고, 술집과 숙박업이 호황을 누렸다.
 
  읍내에서 만난 朴鍾洛(박종락·69)씨는 당시 동원탄좌 직원이었다. 그는 지난 세월을 이렇게 회상했다.
 
  “밤이 되면 몰려나오는 광부들로 읍내가 不夜城(불야성)을 이뤘지. 물가가 꽤 비쌌고, 돈도 잘 벌었어. 펄펄 날리는 탄가루 마셔 가며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어.”
 
  1980년 4월 21일 사북광업소 광부와 가족 4000여 명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의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나흘 동안의 대치 과정에서 경찰관 1명이 죽고 160여 명의 경찰과 민간인이 다쳤다. ‘막장인생’들이 현실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양측 모두에게 냉혹했다.
 
  강원랜드는 2008년 6월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2000년 10월 고한읍 스몰카지노 개장과 함께 국내 유일의 내국인 대상 카지노로 성장해온 강원랜드, 그 10년의 성과는 연 매출 1조원, 자산규모 2조원에 연간 방문객 수가 340만명에 이른다. 2005년에 골프장 ‘하이원CC’가, 다음해 겨울엔 하이원스키장이 차례로 개장했다.
 
  2008년 11월엔 2012년 FIS(국제스키연맹) 총회 개최지로 확정됐다. 동계스포츠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총회를 아시아 최초로 개최, 컨벤션 브랜드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이원’이란 이름처럼 강원랜드도 카지노의 한계를 넘어 가족형 종합 리조트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10년 동안 內憂外患(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다. 카지노에 대한 국민들의 냉담한 시선과 정치권의 압박, 직원 구속과 임원진 대량 사임 사태를 불러왔던 검찰의 비리수사 등 기업의 덩치가 커져갈수록 상처와 시련이 드세졌다.
 
 
  카지노 입구서 애원하는 滿醉 여성
 
1980년 4월 사북사태 당시 광산촌 주위로 몰려나온 사북 주민들.

  때 이른 첫눈 소식이 반갑던 2008년 11월 19일, 금융위기 한파로 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뉴스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경기불황으로 한적한 카지노를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입구 바깥부터 길게 주차된 차들이 강원랜드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호텔 3층의 홍보팀 사무실에서 만난 朴恩姬(박은희) 대리는 필자를 만나자마자 ‘발탁인사 30%’, ‘윤리경영’, ‘제2 창업’ 등의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착하기 바로 이틀 전인 11월 17일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강원랜드 비리의혹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고, 18일엔 148명 규모의 대규모 임직원 인사가 단행됐다. 주가는 정부의 ‘매출총량 규제안’이란 악재로 하한가를 기록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그런 ‘혹독한 시기’에 강원랜드 측이 취재협조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월간조선이 직접 강원랜드 내부를 있는 그대로 보고 기사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숨길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사뭇 비장해 보였다.
 
  회사현황을 들은 뒤, 곧바로 카지노로 향했다. 입장하려면 우선 5000원짜리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그리고 입구에서 신분확인 작업을 거친 후 통과할 수 있다. 술을 마셨을 경우 간단한 음주검사에 임해야 하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출입이 금지된다. 전 세계 카지노 중 강원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입장권 뒷면에는 “개별소비세 3500원, 교육세 1050원, 부가가치세 450원”이라는 입장료의 목적과 ARS 입장예약번호,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안내 등이 표시돼 있었다. 모두 “카지노에 가급적이면 오지 말라”는 메시지로 보였다.
 
  마침 필자 앞에서 입장하던 50대 여성이 덜미를 잡혔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滿醉(만취) 상태였다. 음주측정을 한 후 입장이 불허됐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친구들은 다 들어갔는데 왜 나는 못 들어가냐”며 직원에게 매달렸다. 10여 분 동안의 실랑이 끝에 그녀는 입구 앞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 함께 앉아 “얼마 잃었냐”고 물었더니, “얼마 안 돼. 한 3억원”이라고 대답한다. 집이 어디인지, 처음 어떻게 왔는지, 다른 가족들은 어디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 人事不省(인사불성)이 된 그녀를 데리고 사라졌다.
 
  카지노 출입 담당 직원들은 이런 일이 非一非再(비일비재)한 듯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출입구의 한 직원은 “출입 불허 사유는 대부분 음주 문제”라며 “음주로 인한 객장 내 사고가 워낙 빈번해 어쩔 수 없이 제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측은 최근 도박중독 현상과 음주사고 등에 대비해 출입관리규정을 이전보다 더 강화했다고 밝혔다.
 
 
  “거기 자리 있는 거 안 보여!”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는 강원랜드 카지노.

  카지노 내부는 人山人海(인산인해),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 주변에 둘러 모여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의 카지노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만7000㎡ 넓이의 카지노 내부엔 총 132대의 게임 테이블과 960대의 슬롯머신이 있다. 게임 종류는 블랙잭, 바카라, 룰렛, 다이사이, 빅휠, 포커 등 다양하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게임은 블랙잭과 바카라다. 이들 테이블 주변엔 사람들이 두세 겹으로 둘러싼 채 게임을 한다. 의자 뒤에 서서 함께 게임을 하는 일명 ‘사이드 베팅’이 강원랜드에선 가능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색색의 칩들이 테이블 위에 던져지고, 딜러의 손은 정신 없이 카드와 칩 사이를 오간다. 빨갛고 파란 칩들 사이에 유독 많이 보이는 색깔이 있다. 바로 10만원짜리 노란색 칩. 강원랜드 카지노는 30만원 베팅 한계를 정해 놓았기 때문에 대부분 노란 칩 3개를 건다. 하지만 사이드 베팅을 하다 보니 종종 9개가 넘는 노란 칩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지기도 한다.
 
  바카라가 한창인 테이블에 가봤다. 플레이어와 뱅커 중 승자를 고르는 단순한 룰 때문에 한국인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게임이다. 저마다 종이를 들고 메모를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확률적으로 분석해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다. 그들의 눈과 손은 마치 전장에서 적들과 싸우는 듯했다.
 
  객장 바깥 편에 배치된 960대의 슬롯머신도 북적대긴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돈다발을 들고 앉아 버튼을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 가면 딴다’는 말이 생각나 만원짜리 한 장 들고 빈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돈을 넣으려 하자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고함을 지른다.
 
  “거기 자리 있는 거 안 보여! 뭐 하는 짓이야.”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빈 자리는 많은데, 모두 임자 있는 자리였다. 담뱃갑, 물수건 봉투를 머신 위에 올려뒀거나, 동전 구멍에 천원짜리를 접어 끼워놓은 곳은 임자가 있다는 의미다.
 
  한 중년 남자는 3대의 기계를 독차지했다. 왼손에 300만원 정도 되는 돈뭉치를 들고, 오른손으론 3대의 버튼을 차례로 누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잭팟은 곧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이마저도 번거로운 사람들은 작은 핀을 아예 버튼 사이에 끼워 두기도 한다.
 
  카지노 전체가 금연구역이다. 담배를 피우려면 흡연실로 가야 하는데, 안에 들어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연기가 자욱하다. 환풍기가 있지만, 흡연자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말 한마디 없이 초조한 자세로 담배를 태우고 급히 나간다. 담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손님이 잃으면 딜러도 안타까워”
 
김용태 테이블영업팀 과장.

  딜러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짧은 시간에 현금과 칩이 오가기 때문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대부분 잃은 이들이 많아 어디서나 사고는 벌어지는 법. 하지만 딜러들은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
 
  테이블영업팀의 金茸泰(김용태) 과장은 1992년부터 딜러 생활을 해온 카지노 베테랑이다. 그는 예전에 포커 게임을 진행하다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스톱과 마찬가지로 포커도 지역마다 룰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한 손님이 A부터 5까지 뜬 스트레이트를 잡았어요. ‘백 스트레이트’라는 생각에 칩을 걸었죠. 그런데 ‘백 스트레이트’란 원래는 없는 규칙입니다. 스트레이트 중 가장 낮은 등급일 뿐이에요. 그런데 그 손님은 막무가내였죠. 한참을 설명한 후에야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돈이 걸린 게임이라 고객들의 심리상태는 항상 민감하다. 딜러의 작은 반응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미소로 응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블랙잭 게임 중 딜러에게 21(블랙잭)이 들어오면 딜러가 간단하게 목례를 합니다. 국내 카지노에선 의례적인 일이에요. 그런데 돈을 잃은 손님들은 ‘네가 내 돈 따 가니 그렇게 좋냐’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딜러는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일 뿐인데, 일부 손님들은 딜러가 돈을 따간다고 생각하죠.”
 
  전국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이니만큼,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벌어진다. 문화관광부나 지식경제부와 같은 정부부처 고위층을 빙자해 딜러를 협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폭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있다. 드물지만 카드 카운팅(블랙잭 게임에서 몰래 승률을 계산해 베팅하는 기법)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김 과장은 가장 이상적인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 노부부의 예를 들었다. 강원도 태백 출신의 이 부부는 항상 소정의 금액만 들고 와서 게임을 한다. 목표액을 채우거나 판돈을 잃으면 바로 귀가한다고 한다. 이렇게 10년 이상 카지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카지노계 사람들은 ‘神(신)’이라고 부른다. 회사 측에서 보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손님이 아닐까. 이렇게 묻자 김 과장은 손사래를 친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바람직한 손님이에요. 저도 꽤 오랫동안 딜러 생활을 해왔지만, 항상 손님이 돈을 잃으면 함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도박에 중독돼 가정과 직장을 모두 잃고 제 앞에 앉아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현재 강원랜드에 근무 중인 딜러는 1300여 명, 강원랜드 전 직원 및 직계가족은 카지노 게임을 할 수 없다. 김 과장에게 외국에서 카지노 게임을 해 본 적이 있냐고 묻자, “라스베이거스에 갔을 때 한 번 했는데, 잃고 왔다”고 답한다.
 
  현재 강원랜드 직원의 평균 연령은 32세며, 대부분 강원랜드 인근 사원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래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이 ‘社內(사내)커플’. 전체 직원 3200여 명 중 약 198명(99쌍)이 사내 커플로 결혼했다.
 
  결혼 적령기의 미혼남녀들이 많은 데다 남녀 비율도 비슷해 강원랜드 측은 앞으로 사내 커플이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890만 여㎡에 이르는 하이원리조트 부지엔 스키장과 골프장, 스파, 콘도 등 각종 레저시설들이 펼쳐져 있다.
 
  언덕 위에 위치한 마운틴 콘도에 올라갔다. 스키장 이용객들이 주로 머무르는 곳으로, 가족 단위의 스키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언덕 아래 위치한 밸리 콘도를 포함하면 총 객실 수는 403실, 2009년 2월 말까지 全(전)객실 예약이 만료됐다.
 
 
  ‘강원랜드’이미지 벗고 ‘하이원’으로
 
하이원스키장 정상에 자리잡은 ‘마운틴 탑’.

  하이원스키장은 白雲山(백운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콘도에서 곤돌라를 타면 곧바로 지장산 정상(1345m)에 오를 수 있다. 5km가 넘는 거리를 22분 동안 올라간다. 정상에는 ‘마운틴 탑’이라 불리는 원형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건물 3층엔 45분마다 한 바퀴 도는 회전식 레스토랑 ‘탑 오브 더 탑’이 스키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이원스키장은 18면의 슬로프와 리프트 5기, 곤돌라 3기의 대규모 시설을 갖추고 있다. 높은 해발 고도의 장점을 이용해 5개월이란 국내 最長(최장) 개장기간을 자랑하며, 스키열차와 스키 스쿨 등 다각적인 아이템을 통해 대외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강원랜드가 스키장 사업에 힘을 쏟는 이유는, 도박중독이란 역기능과 최근 검찰수사로 인해 악화된 ‘강원랜드’ 이미지를 벗고, ‘하이원’이란 새 이름으로 非(비)카지노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스키장을 둘러본 후 사북읍으로 내려왔다. 비교적 잘 정돈된 거리와 곳곳에 들어선 상가건물들이 폐광지역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상점은 전당포다. 사북읍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전당포는 읍내 삼거리에 이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보일 정도다. 전당포 간판은 ‘대박’ ‘잭팟’ ‘카지노’ ‘백억’ 등 카지노와 관련된 이름을 걸고 있었다.
 
  현재 읍내 전당포 수는 100여 곳에 이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겨나거나 문을 닫는 곳이 많아 정확한 통계는 잡아내기 힘들다고 한다.
 
  한 전당포에 들어서니, 주인으로 보이는 40대 남성과 그의 친구가 때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장사가 잘되냐고 물어보니, “이 집 문을 연지 두 달 됐는데, 1~2주 내에 닫을 계획”이라며 하소연했다. 3~4군데 전당포를 더 방문해 봤지만, 다들 “요즘 경기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한 전당포 사장의 이야기는 달랐다. 그는 “떼돈 모은 전당포들도 전부 쪽박 찼다는 얘기만 하는 것이 이 바닥 법칙”이라며 길 건너편 전당포를 가리켰다.
 
  “저기 ○○전당포 보이죠? 5년 동안 400억 정도 벌었어요. 저 사람들도 겉으론 망했다는 얘기밖에 안 해요. 돈 벌어서 카지노에 다 박았는지 몰라도, 아무튼 저 집 갑부 됐다는 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이원스키장. 최근 강원랜드는 스키·골프 등 레저산업 확장을 통해 ‘하이원’ 브랜드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350만원 딴 뒤 3억5000만원 잃어
 
사북읍 중심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당포들.

  ―언제부터 전당포가 이렇게 많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까.
 
  “많은 게 아니라 많이 줄어든 겁니다. 강원랜드 초창기 때 스몰카지노가 고한읍에 있었잖아요. 그때 고한 읍내에 가보면 훨씬 많은 전당포가 있었죠. 지금 여기보다 두 배는 더 됐을 겁니다.”
 
  ―전당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인가요.
 
  “거의 外地(외지) 사람들입니다. 도박하러 왔다가 돈 잃고 눌러앉은 사람이거나, 돈 냄새 맡고 몰려온 사람들이죠. 저도 처음엔 여기 놀러왔다가 지금까지 전당포 하게 됐네요.”
 
  전당포 앞에서 만난 한 50대 남성은 필자에게 “자기만큼 이곳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뭐든 다 물어보라”고 했다. 경상남도 출신의 吳(오)모씨로, 카지노에 오기 전까지 공무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3년 전이었어요. 부부동반으로 이 주변에 놀러왔다가 온 김에 한 번 당겨 봤죠. 그런데 그날 터졌어요. 한 350만원 벌었습니다. 그땐 운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운이 더럽게 없었던 겁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카지노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세요. 하루 저녁에 350만원을 벌었는데, 일이 손에 잡히겠습니까. 금요일 저녁 되자마자 최고속도로 밟아서 올라왔죠. 그때부터 평생 모은 재산을 갖다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오씨가 지금까지 잃은 돈은 약 3억5000만원, 첫날 딴 돈의 100배를 잃은 셈이다. 그는 1년 전부터 집으로 내려가길 포기하고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직장은 이미 그만둔 지 오래다.
 
  “카지노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많이 딴다고 그러잖아요. 첫날 따는 순간 감을 잡아야 합니다. ‘내 인생이 지금부터 꼬인다’고요. 자기가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여기에 뼈를 묻게 되는 겁니다. 도박의 끝은 죽음입니다. 손목 자르면 義手(의수)로라도 계속하는 게 바로 도박이에요.”
 
  함께 있던 李(이)모씨가 거들었다. 그는 과거 필리핀, 마카오 등 해외 원정도박을 연결해 주며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저는 사람들이 도박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무조건 잃게 돼 있는데 말이죠. 몇 년 전 제주도 출신의 40대 여성이 6억8000만원 잭팟을 터뜨렸습니다. 梁(양)씨 아줌마로 불리던 사람인데, 난리가 났었죠. 그때 강원랜드에서 VIP 회원권과 무료숙박권 같은 각종 혜택을 몰아준 겁니다. VIP 회원들은 판돈 제약이 없잖아요. 결국 석달 만에 딴 돈 다 잃었대요.”
 
  필자는 같은 이야기를 사북 읍내 서로 다른 세 곳에서 들었다. 하지만 강원랜드 측에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역대 최대 금액의 잭팟은 지난 2008년 5월 20일에 터진 5억8999만원이고, 2007년 2월 잭팟의 주인공은 제주도 출신 金(김)모씨로, 금액은 4억5000만원이었다. VIP 회원권이나 무료숙박권을 주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강원랜드 측은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잭팟이 터지면 안전문제로 인해 빨리 귀가하라고 독려한다”면서 “사람과 돈이 많은 곳이라 ‘~카더라’하는 이야기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버려진 승용차들
 
장기 저당 잡힌 차들로 가득 찬 사북읍 외곽의 한 주차장.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어 강 건너편 언덕에 올라가 촬영했다.

  카지노 고객 대부분의 목표는 다름 아닌 ‘본전’이다. 재산을 탕진한 이들은 자신의 자동차나 귀금속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 간다. 빌릴 수 있는 돈은 중고차 시세의 50~60% 수준에 선이자 10%를 뗀다.
 
  사북읍 곳곳에서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지역 번호판을 단 채 먼지가 쌓여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 필자에게 오씨가 대형 주차장 위치를 알려줬다.
 
  “이 길로 쭉 내려가다 보면 강 건너편으로 ○○아파트가 보이고, 우측엔 ○○모텔이 있어요. 거기서 우회전해서 올라가면 큰 주차장이 보일 겁니다. 거기 있는 차들 대부분 장기저당 잡힌 것들이에요. 그런데 쉽게 보여주진 않을 겁니다.”
 
  오씨의 말대로 찾아가니 언덕 위 큰 주차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인지 큰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인기척은 없었다.
 
  결국 강 건너편 언덕에 올라가서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뒤쪽 언덕에 위치한 사찰 입구에 올라서니 멀리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100대 정도의 차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진 촬영을 끝내고 사찰을 한 바퀴 둘러봤다. 마침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住持(주지) 德水(덕수)스님을 만났다. 서울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한 후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멀리서 왔으니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방 안으로 초대했다.
 
  사북고한 달성사는 강원랜드와 가장 가까운 장소에 위치한 사찰로, 매달 강원랜드 불자회가 모임을 갖는 곳이다. 2시간여 동안 북한, 한국 불교, 윤리 문제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강원랜드에 대한 질문을 몇 차례 던져보았지만, 스님은 그저 “저라고 마땅한 답이 있겠습니까”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원랜드는 모두가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다투지만, 그 누구도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곳이다. 강원랜드 카지노 사업을 중심으로 정부·지자체·주민단체 등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만족하지 못한 채 서로의 몫을 잡으려 다투고 있는 모양새다.
 
 
  “강원랜드는 지역의 ‘봉’”
 
  강원랜드는 현재 국세·지방세·관광기금·폐광기금 등 매출액의 33%에 달하는 제세부담금을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가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주된 내용은 관광기금 10%를 폐지하고 개별소비세 20%를 과세한다는 것. 이렇게 되면 강원랜드의 전체 제세부담금은 총매출의 38%로 올라간다.
 
  관련 법안 개정안이 나오자, 강원랜드를 비롯해 폐광지역 4개 시·군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국비 지출 비율이 높아져 강원랜드의 설립취지인 폐광지 경제활성화가 요원해질 것”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국회는 2008년 12월 8일 법안을 수정의결시켰다. 과세율을 사실상 10% 추가에서 4% 추가로, 시행시기는 3년간 유예한다는 내용이었다.
 
  폐광지역 경제회생을 위해 8년 동안 투입된 국비는 총 7616억원에 달한다. 이 중 5512억원이 탄광지역 개발사업비로 정선·영월·태백·삼척 4개 시·군에 지원됐고, 2104억원이 폐광지역개발기금으로 지원됐다. 폐광에서 종합레저관광도시로 전환하기 위한 자금이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게 지역의 주된 여론이다.
 
  2007년 강원랜드가 워터파크-스파 사업을 추진하자 영월군 사회단체들의 항의가 거셌다. 영월군에서 준비하고 있던 ‘동강시스타’와 사업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영월에는 “강원랜드 사장 물러나라”, “38국도를 막겠다”, “강원랜드 폐쇄하라” 등 각종 현수막과 유인물이 뿌려졌다. 결국 강원랜드가 동강시스타에도 투자하여 두 사업을 병행 추진하는 방향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강원랜드와 인접한 고한·사북읍도 불만이 많다. 현재 403실 규모의 하이원리조트 콘도는 애초에 800실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투숙객이 모두 콘도로 가면 지역 상권이 타격을 받는다는 이유로 고한·사북 지역들이 반대해 절반 수준으로 짓게 된 것이다.
 
  최근 투숙객이 많아야 상권이 더 성장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주민들은 다시 객실 수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고, 현재 500실 규모의 추가 콘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읍내에서 만난 인근 지역 주민은 “강원랜드가 솔직히 무슨 죄가 있겠냐”며 “지역들끼리 싸우는 통에 돈 많다고 소문난 강원랜드만 ‘봉’이 된 셈”이라고 했다. 그는 말하는 중에도 “보는 눈이 무섭다”며 사진을 찍거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신신당부했다.
 
  강원랜드 입구인 안경다리 옆엔 “삐끼업체 단속하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최근 타 지역 렌터카 업자들이 카지노에 찾아와 호객영업을 하자 정선군법인택시협의회가 불법영업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정선군의 택시 영업은 호황을 누렸다. 서울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손님들이 늦은 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택시가 유일했다. 서울까지 택시요금은 22만원, 그런데 렌터카를 이용하면 1인당 5만~15만원 선이다. 결국 택시기사들은 삭발 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농성천막 안에서 만난 金相浩(김상호) 조직부장은 “타지역 렌터카와 콜밴이 강원랜드에 오가는 것은 명백한 불법영업인 데다 지역 상권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말이다.
 
  “주말이나 연휴기간엔 불법영업 차량이 100대가 넘습니다. 문앞에서 상주를 하며 불법 호객행위를 하고 있어요. 택시기사뿐 아니라 지역 상권에도 타격이 큽니다. 22만원이 아까워 주변 모텔에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면 차라리 그 돈은 지역으로 오지 않습니까.”
 
 
  앵벌이와 쪽박걸
 
강원랜드 주변 불법여객(삐끼) 대책 촉구를 위해 천막농성 중인 정선군 법인택시협의회의 김상호 조직부장과 나병주 사무국장.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사북 중심가로 나왔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지만, 불을 밝히기 시작한 네온사인들로 낮처럼 환했다. 모텔과 전당포로 뒤섞인 골목 사이사이로 ‘안마’, ‘마사지’ 간판들이 보였다.
 
  취재수첩을 들고 혼자 읍내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필자에게 한 30대 여성이 길을 물었다. ○○은행으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한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어디서 왔냐고 다시 묻는다. 서울에서 왔다는 필자의 대답에, 그녀는 일행이 있냐면서 자신들도 3명이 함께 왔는데 같이 놀지 않겠냐고 한다.
 
  속칭 ‘쪽박걸’로 불리는 여성들이었다.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후 사북을 떠나지 못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남자들은 ‘앵벌이’로 불린다. 계속 따라오던 그녀를 겨우 떼어놓은 후, 정선경찰서 남부지구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구대는 비교적 한산했다. 카지노가 들어선 후 자살, 폭행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었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사고 없이 조용한 분위기였다.
 
  경찰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정선군의 사건 사고 중 80%는 남부지구대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다. 카지노 게임 중 사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한 경찰관은 “예전에 비해선 정말 좋아졌다”며 “오늘 밤엔 눈이 내려 좀 걱정될 뿐이지 큰 사고는 많이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칠판에 적힌 “자살의심자 / 이○○ / 1981년 ○월 ○일 生 / ○○두5○○○(차량번호)”란 메모는 지금도 이곳이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갬블링 블러드
 
대형 숙박업소가 즐비한 사북읍 시가지.

  다음날 오전 9시50분, 강원랜드 호텔 4층 로비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0시 카지노 개장에 맞춰 입장하려는 사람들이다. 둥그렇게 둘러 서서 ‘오늘의 전략’을 토론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리 삽니다”라고 외치며 헤매는 사람도 보였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ARS 추첨 방식을 통해 우선 입장권을 부여한다. 전일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예약접수를 한 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당첨 결과를 발송한다. 당첨이 될 경우 오전 6시 11분부터 10시30분까지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테이블 좌석이 1000여 석인데 하루 평균 5000여 명이 입장하기 때문에, ARS 추첨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그날의 게임은 접어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속칭 ‘앵벌이’들이다. 이들은 ARS를 시도하거나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입장권을 받아낸다. 그리고 약 20만~30만원 가량에 되판다. 또 어떤 이들은 한정된 베팅액을 늘리기 위해 ‘앵벌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칩을 몰래 주고 옆에서 사이드 베팅을 하라고 시킨다. 두명의 ‘앵벌이’가 붙을 경우, 1회 베팅 한도가 최대 90만원까지 올라간다.
 
  최근 강원랜드 측은 자리를 팔거나 편법 베팅을 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단속을 강화한 덕에 ‘자리 판매’는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인 車敏洙(차민수) 한국카지노산업연구소장은 “한국인에겐 어쩔 수 없는 도박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
 
  “서양에 가면 ‘갬블링 블러드’란 말이 있어요. 그리스와 같은 지중해 사람들을 일컬어 하는 말이죠. 동양으로 오면 이게 ‘몽골리안 블러드’로 바뀝니다. 한국과 중국 사람들이 특히 ‘도박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죠.”
 
  차씨는 학력이나 경제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도박에서 크게 잃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헛된 자만심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카지노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카지노 전문가를 발굴·양성해 카지노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2박3일간의 취재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금요일 오후를 맞아 반대편 차선의 차들이 줄지어 강원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 설레는 ‘대박의 꿈’을 안고 질주하는 모습이다.
 
  강원랜드를 3일 동안 돌아본 후 세 단어가 떠올랐다. 明暗(명암), 淸濁(청탁), 榮辱(영욕). 지금 강원랜드는 복잡했던 지난 세월을 딛고 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하이원 글로벌’이란 프로젝트명 아래 게임사업과 해외 카지노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석탄은 1970년대 한국에 있어 救國資源(구국자원)이었다. 21세기 새로운 구국자원은 관광산업이다. 강원랜드는 지금도 구국과 亡國(망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성공과 실패를 오가고 있다. 그들의 새로운 베팅이 주목된다.⊙
 

  [인터뷰] 趙淇松 하이원리조트 대표이사
 
  “카지노, 善惡개념이 아니라 산업으로 봐야”
 
 
조기송 하이원리조트 대표.

  “‘淸濁(청탁)의 세월’이라… 맞는 말입니다. 사연이 참 많은 회사예요. 제대로 임기를 끝낸 경영진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도 순탄치 못한 과거와 어려운 여건 가운데 모두 나름대로 수고한 점이 있습니다.”
 
  강원랜드호텔 2층 집무실에서 만난 趙淇松(조기송) 하이원리조트 대표이사는 강원랜드 10년史(사)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수개월 동안 이어졌던 검찰 수사와 대규모 인사 단행 등으로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말할 때 그 어조는 단호했다.
 
  “강원랜드라는 회사를 볼 때 대부분 부정적 인식부터 떠올립니다. 국민, 지역주민, 정부기관 모두 시각이 다르죠. 처음부터 정체성의 혼란이 있어 왔고, 그것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조 대표는 趙淳(조순) 前(전) 서울시장의 장남이다. 그는 1997년 가을 李會昌(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조순 당시 민주당 총재의 이-조 연대를 이 총재의 동생 會晟(회성)씨와 함께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극적인 회동을 통해 탄생한 것이 현재의 한나라당이다.
 
  조 대표는 강원랜드를 보는 상반된 시각으로 ‘극약처방’과 ‘악의 꽃’을 들었다.
 
  “정부 측의 입장부터 서로 다릅니다. 한 기관은 좋은 경영을 통해 회사를 잘 키우는 동시에 주주의 권익도 보호하라고 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익보다 공익성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국민들의 시각도 마찬가지죠. 혹자는 ‘카지노가 주력사업인 회사니, 그들의 수입은 곧 우리 국민이 잃은 돈’이라며 바람직하지 않은 사업, 즉 ‘악의 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석탄 가루 날리는 폐광지역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극약처방’이라고 하죠.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이 10년째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人的쇄신 통해 불필요한 외부요인 차단
 
  강원랜드는 최근 非(비)카지노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장했다. 스키장을 비롯해 골프장, 드라마 촬영 세트장, 스파, 게임사업, 국제회의 유치 등 다각적인 수익모델 창출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저희는 고객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눕니다. 첫째, 카지노만 하러 온 사람, 둘째, 낮에는 다른 시설을 이용하다 밤에만 카지노를 이용하는 사람, 셋째, 카지노를 전혀 하지 않고 다른 시설만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특히 셋째 그룹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다. 2007년 하이원리조트 총 방문객은 341만명이다. 이중 세 번째 그룹에 속하는 비카지노 이용객이 89만명이었다. 2008년의 경우, 지난 9월 말 비카지노 이용객이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조 대표는 카지노 외 레저산업이 확장되면 정체성의 혼란이 수그러들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 한해는 회사 내부적으로 가장 혹독한 시기였다. 핵심 직원들이 비리혐의로 구속되는 한편, 수사과정에서 조 대표의 자택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창립 이래 최초로 임원진 일괄사표에 이어 상임이사 11명 중 6명이 사표수리 및 계약 해지됐다.
 
  “2008년 초 상임감사 체제에서 감사위원회 체제로 바꿨어요. 기존 감사실도 새로운 감사위원회의 쇄신 대상 중 하나로 들어갔죠. 불행한 일이긴 했지만, 덕분에 예전의 미심쩍었던 부분을 재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온 것이 한 열병합발전기업과의 비리혐의였죠. 우리 회사 측이 먼저 검찰에 고발한 사례입니다.”
 
  ―수사기관 중 인적쇄신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사람들이 절대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가뜩이나 투서·제보·비방이 많은 회사에서 쇄신을 하게 될 경우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규모로 항의하지 않겠느냐는 이유였죠. 하지만 회사가 갈 길이 멉니다. 제2의 창업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수사 기간 중이었지만 과감하게 강행했습니다. 회사 역사상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인사였다고 봅니다.
 
  일부 임직원들이 업무수행과 성과로 자기 자신의 사내 입지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배경에 의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쇄신 과정을 통해 거의 다 차단됐습니다.”
 
  “‘카지노’라는 사업의 특성상 어려운 점이 없느냐”고 묻는 필자의 질문에 조 대표는 “특히 언론과 정치인들 때문에 어렵다”고 답했다.
 
  “어떤 사안을 가지고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공격한다고 봅시다. 원래 공격하는 세력은 반격을 해오는 경우까지 예측하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카지노를 공격할 때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싸우는 중에 ‘누가 자살했다’하면 논리가 끝나버리니까요.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는 곳입니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오지 않습니까.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선 강원랜드를 공격해야 합니다. 얼마나 신랄하게 공격하느냐가 문제죠. 이런 저런 공격은 많이 받아 봤는데, 아직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조 대표는 사람들이 강원랜드를 ‘화수분’과 같은 존재로 본다고 말했다.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로, 아무리 상처를 받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사람들은 강원랜드는 으레 수익을 낼 것으로 믿는다는 의미다.
 
  “카지노를 善惡(선악)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답이 없어요. 카지노를 할지 안 할지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선택할 사안입니다.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대부분의 관광대국은 카지노대국과 일치하죠. 국가가 카지노를 하기로 결정했으면, 그때부터는 카지노를 ‘산업’으로 봐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특정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숙명적으로 형성된 지역적 역학관계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순화되고, 언젠가는 성숙한 관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임산업에 새 베팅
 
  조 대표는 원래 카지노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1980년대 LG전자 LA지사에 근무하던 시절 그곳을 방문한 한국 손님들을 라스베이거스로 안내했던 것을 제외하면, 카지노와는 거의 무관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중국 TCL그룹 총재고문으로 근무할 당시, 중국이 마카오와 홍콩에 관광산업 개발을 추진하는 것을 지켜보며 큰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본사가 광둥성(廣東省) 선전(深?)에 있었어요. 중국인들이 관광개발을 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가로수 한 그루부터 건물 형태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를 체계적으로 바꾸더라고요. 마카오의 경우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직접 방문해 진도 점검을 할 정도였죠.”
 
  부푼 꿈을 안고 취임했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회사 내 회계구조부터 모두 바꿔야 했다.
 
  “회사에는 원래 재무회계시스템과 관리회계시스템이 있어요. 그런데 강원랜드의 경우 제가 처음 왔을 때 CFO(최고재무관리자)도 없었어요.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도 없었고요. 회계도 기업회계가 아니라 예산회계 방식이었습니다. 마치 정부 방식처럼 예산이 남으면 온갖 지혜를 발휘해 다 쓰는 방식이었죠.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바꿔야 했습니다.”
 
  ―강원랜드 이후의 계획이 따로 있습니까. 정치계로 진출할 생각이 있으신지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 저런 말이 나오고 있더군요.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2015년 폐광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만료되기 전까지 제2의 성장동력을 만드는 것이 현재 가장 큰 임무입니다. 지금 한눈을 파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겠죠.”
 
  강원랜드는 제2의 성장동력 중 하나로 ‘게임산업’을 선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200여 가지의 사업기획을 검토한 결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으로 선정됐다.
 
  “혹자는 강원랜드가 폐광지역에서 게임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가장 부적절한 시기에 가장 부적절한 지역에 가장 부적절한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사실 폐광지역에서 할 만한 사업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베팅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월간조선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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