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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의학, 技術(technique)은 세계 톱… 仁術(medical art)엔 높은 장벽”

김정우 기자 2012.05.24 15:36
[인터뷰] 오재건 美 메이요 클리닉 교수가 체험한 한국 의학 4년
“한국 의학, 技術(technique)은 세계 톱…
仁術(medical art)엔 높은 장벽”


⊙ 2008년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장 부임 후 진료 시스템 개혁 中
⊙ “기계적으로 검진하는 한국과 감각적으로 問珍하는 미국… 둘 중 딱 중간이면 좋아”
⊙ 환자로부터 연간 4억 달러 기부받는 세계적 名門 병원, “한국에서 못 만들 이유 없다”

오재건

ⓒ서경리

“의학은 크게 ‘기술(technique)’과 ‘인술(仁術·medical art)’로 보면 됩니다. 전자(前者)는 기술로 진단해 수술과 약물 등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말하고, 후자(後者)는 의사 개인의 감각과 지식으로 병을 찾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의 경우,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하지만 인술은 아직 후발주자라고 봐야죠.”
 
  미국의 대표 종합병원인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30여년간 근무해 온 오재건(吳載建) 교수는 한국 의학 수준에 대해 “기술로만 보면 이미 세계 톱(top)”이라고 평했다. 그는 2008년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에 파견돼 1년 중 10주는 한국, 40주는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메이요 클리닉이 현직 교수를 외국 의료기관에 장기 파견한 것은 1883년 설립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말은 한미(韓美) 양국의 최고(最高) 의료 시스템을 4년간 있는 그대로 지켜본 결론이었다.
 
 
  문제는 ‘시스템’과 ‘프로세스’
 
  오 교수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땐 ‘뭔가 지식적·기술적인 측면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쪽으론 사실 할 일이 크게 없었다”며 “한국의 앞선 의학 기술에 상당히 놀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미국에 데려갈 생각도 했었지만,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는 “수가(酬價)를 따지면 오히려 미국에서 환자를 데려와야 할 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의학이 실제로 그 정도로 발전했습니까. 쉽게 믿기 어려운데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40~50년 동안 천천히 이뤄 온 기술 수준을 한국은 불과 10~15년 만에 따라잡았어요. 의료분야도 압축성장을 한 셈입니다. 누구도 ‘미국이나 유럽에 뒤떨어진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그러면 굳이 메이요 클리닉에서 한국까지 파견 나올 이유가 있습니까.
 
  “의학을 기술로만 봤다면 제가 올 필요가 없었겠죠. 앞으로 남은 과제는 시스템과 프로세스, 그리고 한국 환자에 대한 연구입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되지만, 무조건 신기술과 약물이 최선이라고 할 순 없죠. 환자 개개인에 대한 적합한 예방과 치료를 해야 합니다. 기초·임상연구가 중요하죠.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프로세스’라고 하면, 넓은 스펙트럼에서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봐도 되나요.
 
  “그렇죠. 의사결정과정(decision making process)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 명의 환자를 두고 여러 의사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환자 교육, 만족도, 치료의 표준화 등 한국에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한국에서는 그러한 프로세스가 왜 어렵습니까.
 
  “의사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단, 정부 시스템의 한계라고 봅니다. 국가 정책적으로 수가가 낮은 현실에서, 의사는 많은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의사’라고 하면 그래도 제일 교육을 많이 받은 그룹 중 하나입니다. 대다수 의사들이 ‘아트’적인 측면에 능력을 투자하고 싶어도 시간의 제약이 너무 크죠.”
 
  ―한국에 처음 와서 가장 놀라웠던 적은 언제입니까.
 
  “환자를 보는 속도입니다. 빨리만 보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잘 보는 것도 놀라웠죠. 미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들이 한국에선 벌어지고 있더군요. 그들은 제가 미국에서 오랫동안 배워 왔던 기술을 이미 다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딱 중간이 좋다”
 
  ―일명 ‘5분 진료’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건강검진 제도입니다. 한국은 기계를 사용해 전신을 살펴 병을 찾아냅니다. 미국에선 가족력과 증상 등을 문진(問診)해 상황에 맞는 검사를 실시하죠. 분명한 사실은 사람보다는 기계가 더 정확하기 때문에 발견 확률은 한국이 높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면에선 건강한 사람들이 불필요한 검사를 그만큼 하게 되죠.”
 
  ―어느 쪽이 바람직합니까.
 
  “솔직히 모르겠어요. 미국식으로 증상이 있는 사람만 검사해서 수술하는 게 좋은 것인지, 한국식으로 검사부터 하고 수술하는 게 옳은 것인지. 보험과 제도 등 복잡한 요소가 있고,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딱 중간이면 가장 바람직하겠죠.”
 
  ―한국에서 직접 환자를 봅니까.
 
  “한국 의사 면허가 없어 직접 진료는 못합니다. 전공의와 레지던트들이 회진할 때 가르치는 정도입니다. 콘퍼런스에서 진단과 치료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치료가 끝난 환자를 상담하는 경우가 있지만, 주요 임무는 ‘어떤 환자를 어떤 방법으로 치료하는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학술적인 부분도 있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분야도 있죠.”
 
  오 교수는 1952년 대전의 의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1950년대에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인재(人才)였다. 1960년대 초 귀국한 후 대전에서 ‘오 내과’를 운영하다 1970년 가족과 함께 이민했다. 오 교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됐다. 현재 아내와 동생 등 가족 중 7명이 의사라고 한다.
 
  오 교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고, 이어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의대를 졸업한 후 메이요 클리닉에 정착했다. 30여년간 심장분야 논문을 200여 편 발표하고 ‘심장초음파 분야의 교과서’로 불리는 《에코 매뉴얼》(The Echo Manual)을 출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국내 심장초음파 분야에 이름이 알려진 교수 상당수가 그에게서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일하는 메이요 클리닉은 미국 내 각종 병원 순위에서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와 1~2위를 다투는 종합병원이다. 1883년 성(聖)프란시스코수녀회와 워렐 메이요(Worrell Mayo)가 세워 그의 두 아들이 발전시킨 결과, 현재 3300여명의 의료진이 매년 50만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으로 성장했다.
 
 
  기부금만 年 4억 달러
  
  “메이요 클리닉 본원(本院)이 자리 잡은 로체스터(Rochester)는 미국 미네소타주(Minnesota州)의 작은 소도시입니다. 현재 인구가 10만명 정도이고, 제가 처음 갈 땐 5만명 정도였어요. 그런 곳에 1년에 100만명이 방문합니다. 대다수가 메이요 클리닉 때문이죠.”
 
  ―‘세계적’이란 명성을 들을 만한 차별성이 있습니까.
 
  “1883년 로체스터에 큰 토네이도가 닥쳐 마을 자체가 거의 소멸했습니다. 지역 의사인 워렐 메이요와 수녀분들이 다친 사람을 돕다가 설립한 외과병원이 메이요 클리닉입니다. 그리고 설립자의 두 아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귀향해 국가적 명성을 떨치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Roosevelt) 대통령까지 찾아오는 유명한 병원이 됐죠. 그런데 두 형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병원 전체를 재단으로 내놨습니다. 모든 수익은 연구개발에 투자됐고, 병원은 ‘환자중심(patient-oriented) 철학’을 계승 발전시켰습니다. 성공 요인은 기술, 연구, 환자 만족을 위한 프로세스 등이라고 봅니다. 참 존경할 만한 사례죠.”
 
  오 교수는 “추울 땐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한적한 소도시에 자리 잡은 병원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비율이 2% 정도”라며 “그만큼 의료진과 직원들의 병원에 대한 명성과 자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1년간 환자에게서 기부받는 금액이 약 4억 달러입니다. 치료비를 제외한 순수 기부금입니다. 하루에 100만 달러 이상이 거둬지는 셈인데, 모두 치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죠.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것은 물론, 기분 좋게 해야 가능한 사례입니다. 두 형제의 헌신과 명성이 100년 넘게 병원을 지탱하고 있어요.”
 
  ―메이요 클리닉 같은 병원이 한국에서도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우선 삼성서울병원에 와 보니, ‘환자중심’이란 가치는 물론, 암센터 빌딩 구조도 비슷할 정도로 생소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뿐 아니라, 수준 높은 병원이 상당히 많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잘 다듬을 수 있는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메이요 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겠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게 뭘까요.
 
  “한국 의료 환경의 최대 장점은 국민 전체에게 기본적(basic)인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만큼 선택적 의술을 펼칠 만한 자유는 없죠. 계속 미국이나 유럽의 의술을 전수받는다면 현재 시스템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창조적 범위까지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먼저 의사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겠죠. 정부의 몫이라고 봅니다.”⊙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월간조선 2012년 6월호

吳載建

⊙ 59세. 美 펜실베이니아대 화학과 졸업,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의학 박사(MD).
⊙ 現 美 메이요 클리닉 내과 교수,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 공동센터장·메이요
    심장혈관이미징센터 공동센터장, 아시아태평양 심장초음파협회 회장.
⊙ 저서: 《에코 매뉴얼》(The Echo Manual)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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