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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 東京都는 이렇게 노숙자 문제 해결에 성공했다!

김정우 기자 2010.05.26 14:50
[서울]
한국의 관문 서울역 노숙자가 점령… 매일밤 300여 명 진을 쳐


『1평당 1人 기준으로 예산 지원, 노숙인 인권은 생각 밖』
(서울 상담보호센터 사회복지사)

[도쿄]
홈리스 천국 우에노 공원 등 노숙자 사라져… 통제·지원책 병행 결과

『노숙자 주택임대에 970억원 지원(2007년), 자립 후 애프터서비스까지 생각한다』
(야마다 아키히코 자립지원센터 소장)


한국 대표 노숙자 집결지 서울역 대합실.



밤 11시 서울역 대합실
『아저씨, 여기서 술 드시면 안 돼요. 거긴 담배 끄시고요』
 
 지난 3월6일 밤 10시50분 서울역 대합실, 막 술판을 벌이려던 노숙자들에게 철도공안요원이 주의를 준다.
 
 『아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안 됩니다. 어서 치워 주세요. 역내는 금주·금연입니다』
 
 술 한 잔만 하겠다던 이들은 공안들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지만, 큰 소란 없이 곧 흩어졌다.
 
일본 최대 노숙자 집결지였던 도쿄 우에노공원.

 
 「짤짤이」판
 
 5분 후, 자리에 남아 있던 한 남자가 다시 담뱃불을 붙인다. 조금 전 담배 때문에 주의를 받았던 安모(41)씨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담배를 숨겼지만, 곳곳에 배치된 공안요원의 눈을 피하긴 어려웠다. 安씨는 결국 공안요원과 함께 사무실로 동행해야 했다.
 
 서쪽 출구 옆 물레방아 조형물 뒤에선 일명 「짤짤이」판이 벌어졌다. 삼삼오오 모인 그들은 공안이나 공익근무요원이 올까 망을 보며 100원짜리 동전을 흔들고 있었다.
 
 한 60代 노인은 형형색색의 옷과 머리스타일을 뽐내며 그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의 손엔 흰 쌀 한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얼핏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개성이 넘친다.
 
 5분이 지나자 철도공안 사무실로 갔던 安씨가 다시 돌아왔다. 별일 아니었다는 듯 웃으며 소주 한 잔을 몰래 따라 마신다.
 
 바로 옆 의자에는 52세 崔모씨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노숙을 막으려고 만든 팔걸이를 베개 삼아 누운 그의 모습이 나름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합실 한쪽이 삶의 터전이 된 그들과, 그 옆을 무심하게 지나가는 시민들, 이젠 당연한 일상이 된 서울역의 풍경이다.
 
 매일밤 300여 명 노숙자가 「서울의 관문」을 점령하고 있었다.
 
 『11시 정각에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막차 안내방송이 나오자, 공익근무요원들이 노숙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청소 시간입니다. 나갔다가 들어와 주세요. 어서요』
 
 수백 명이 모두 이동해야 하는데 만만치가 않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기차 곧 탈 거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술에 취해 人事不省(인사불성)이 된 한 남자는 의자 위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안 되겠다, 끌어』
 
 
 공익근무요원에 끌려가는 노숙자
 
노숙자들이 점령한 서울역 대합실 전경.

 수차례 큰 소리로 깨우던 직원이 결국 마지막 방법을 택했다. 공익근무요원 두 명이 그의 양팔을 붙잡아 의자에서 들어올린다. 자그마한 체구의 60代 남자는 앉은 자세로 끌려 나갔다.
 
 『저 어른 원래 멀쩡한 사람이었어요. 노숙하기 전엔 완전 엘리트였다는데…』
 
 함께 지켜보던 한 남자가 말을 걸어 왔다. 옷차림은 깨끗한 편이었고, 나이가 꽤 젊어 보였다.
 
 『원래 K대학 법대를 나왔대요. 잘 살다가 사업이 망해서 잠시 노숙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다쳐 버린 겁니다. 그 후론 저렇게 항상 술에 찌들어 잠만 자요』
 
 기자라고 소개한 후 취재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金씨」라고 소개하며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자고 한다.
 
 『저는 이곳에 온 지 4개월쯤 돼 갑니다. 아직 신참이죠』
 
 ─왜 노숙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양말장사를 1년 정도 했어요. 오토바이를 몰면서 했는데 돈도 꽤 벌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여름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팔을 다쳤습니다. 그 후로 일을 제대로 못 하고 돌아다니다 이렇게 된 거죠』
 
 그는 원래 집이 부산이었다. 공업高를 졸업한 후 대학에 갔지만 잘 안 맞아서 백화점 근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양말장사를 시작했다.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주민등록상으론 1970년생(38)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몰라요』
 
 ─왜 그런가요.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곧바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사고로 다친 팔 때문에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한눈에 봐도 왼팔은 완전 마비였다.
 
 『서른 살 때 작은 사고를 당해 보건소에 갔습니다. DNA 검사 할 일이 있어 했는데,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거예요. 30년 동안 믿었는데 충격이었죠. 생모가 따로 있다는데,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복잡합니다』
 
 金씨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지금은 정년퇴임했고,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운 사정은 아니다.
 
 『그런데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좀 생겨 몇 해 전부터 별거 중이에요. 저하고도 안 좋은 일이 있고 해서 부산엔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노숙할 생각입니까.
 
 『곧 들어가야죠. 작년부터 2급장애인으로 등록돼 돈이 좀 나옵니다. 새벽에 일할 사람 구하러 오니까 내일 부지런히 일어나서 가봐야죠. 오늘 오전에도 이삿짐센터 가서 일하고 왔어요』
 
 
 술판에 고성 오가
 
홈리스들이 나간 자리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한다.

 그는 숙식 제공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노숙자와 일반인, 이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 구분하잖아요. 저는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다시 성공해 잘살 수 있습니다』
 
 다음날 밤, 서울역을 다시 찾았다. 분위기는 여전했다.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고성이 여기저기 오갔다. 날씨가 좀 풀려서인지 서울역 광장 주변에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광장 한 곳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술에 취한 노숙자끼리 한 물건을 놓고 서로 시비가 붙은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말리기도 하고, 몇몇은 계속 술을 마신다. 한쪽에선 무심하게 자기의 일을 보고, 추운 바닥에 누워 자는 이들도 있다.
 
 한 아랍계 외국인이 이 장면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사이드」라 소개한 그는 『세계 어느 나라든 「홈리스」는 존재한다』며 『...

계속...

월간조선 2008년 4월호 (기사 全文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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