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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동행취재 / 스리랑카 불교 유적지 순례기

김정우 기자 2010.05.26 15:02
쓰나미와 지옥같은 內戰… 그 너머에서 붓다의 미소와 만나다

『1만5000명 이주노동자 도운 석왕사와 한국 정부에 감사』 (라자파크세 스리랑카 대통령)



내전의 한복판
밤 11시, 열대지역 특유의 짙은 향기가 공항 문을 나선 우리를 반겼다. 한국 시각은 이미 하루를 넘겨 새벽 2시30분. 대여섯 시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16시간 동안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공항에서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시내 곳곳에서 총을 든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동행한 현지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열흘 전 수도 콜롬보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장관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섬 북동부 지역에서는 정부군과 게릴라들의 교전으로 매일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이 작은 섬나라 순례는 시작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리랑카는 태국, 미얀마와 함께 3大 남방불교 국가로 꼽힌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쇼카(BC 273~232) 왕의 아들인 마힌드라 스님이 처음 전파한 「붓다의 가르침」은 2300년 동안 「실론(스리랑카의 옛 이름)」 섬의 興亡盛衰(흥망성쇠)와 함께했다.
 
 지금은 힌두교의 나라가 돼버린 불교 종주국 인도와는 달리, 스리랑카는 현재 인구의 70%가 불교신자다. 한국과 중국·일본 등 북방불교가 大乘佛敎(대승불교)를 중심으로 발전한 반면, 스리랑카와 미얀마·태국 등은 초기불교의 원형을 간직한 小乘佛敎(소승불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스리랑카는 불교의 원형을 어떻게 보전하고 있을까. 경기도 부천의 석왕사(주지 영담 스님) 신도들과 함께 6일 동안 스리랑카 불교 순례를 다녀왔다.
 
 
 서울~대전 거리를 5시간 동안 달려
 
 이른 아침, 스리랑카 최초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지도상의 ①)로 향했다. 전날 밤 억수같이 쏟아지던 폭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갰다.
 
 『하루 종일 햇볕으로 더울 겁니다. 오후 6시쯤 되면 다시 비가 오고요』
 
 현지 안내를 맡은 인도人 로이씨가 자신 있게 일기예보를 했다. 날씨가 매일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
 
 목적지까지는 200여 km, 서울~대전보다 조금 더 먼 거리다. 그 길을 5시간 넘게 달린 후에야 이수루무니야 사원에 도착했다.
 
 스리랑카에는 고속도로가 없다. 왕복 2차선의 비탈진 도로를 시속 30~40km로 달려야 한다. 「작지만 큰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면적이지만, 대륙을 횡단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대유적 도시 아누라다푸라는 기원전 4세기부터 번성한 싱할라왕국의 수도다. 「아누라다」는 사람의 이름이고, 「푸라」는 도시라는 뜻이다. 싱가포르의 「포르」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한국의 경주와 비슷한 이곳은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지던 당시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다.
 
 첫 행선지 이수루무니야 사원은 스리랑카에 불교를 최초로 전파한 마힌드라 스님이 수행했던 곳이다. 그는 불교의 불모지였던 이곳에 5명의 승려와 함께 건너와 불교의 씨앗을 심었다.
 
스리랑카 최초의 불교 사원 이수루무니야.

 사원 입구에서 신발을 벗었다. 햇볕에 달궈진 모래가 뜨거웠다. 스리랑카의 절에선 누구든 맨발이어야 하고 모자를 벗어야 한다.
 
 바위산 아래 놓인 계단을 한 걸음씩 올랐다. 고대의 석굴사원을 맨발로 걷는 것은 불교에 대한 조예와 신앙의 깊이를 떠나 새로운 경험이다.
 
 석굴 안 불상은 유리창으로 보호막을 세웠다. 1983년 한국 조계종에서 선물했다고 한다.
 
왕자와 평민 여성의 사랑을 표현한 연인상.

 계단 아래 옆 동굴은 스님들의 수행 장소다. 동굴 벽면엔 마힌드라 스님의 불교 전파 과정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동굴 한 쪽엔 실제 크기의 좌상을 세워 당시 수행 장면을 그대로 묘사했다.
 
 『이 연인像(상)은 이뤄질 수 없는 러브스토리를 표현했습니다』
 
 일행을 안내하던 현지인 란지트 싱씨가 유창한 한국어로 남녀상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리야 왕자와 낮은 계급의 한 여인의 로맨스죠. 계급의 격차 때문에 연인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 표정을 보세요.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애틋함」을 느껴보기 위해 잠시 연인像 앞에 서있었다. 나란히 걸터앉아 密愛(밀애)를 나누는 둘의 표정엔 슬픔이 가득했다.
 
 
 세계 最古 보리수나무
 
세계 最古 보리수 앞에서 한 여성이 기도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보리수 사원. 마힌드라 스님의 누이동생인 상가미타가 인도의 「부다가야(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곳)」에서 옮겨 심은 보리수가 있는 곳이다. 부다가야의 보리수는 얼마 전 죽었기 때문에 사실상 세계 最古(최고)의 보리수가 됐다. 현재 스리랑카의 국보라고 한다.
 
 군인들의 검문 검색을 받은 후 맨발로 사원에 들어섰다. 마침 새해 연휴 마지막 날(스리랑카 새해 연휴는 4월13일부터 17일)이라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보리수 주변에 앉아 팔리語로 된 경을 읽고 읊조렸다. 사원 뒤편엔 여성 신자들이 보리수를 향해 앉아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나도 함께 반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고요했다. 2300년 전 백지 같은 이 섬에 처음 발을 디딘 인도의 마힌드라 스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인도에서 직접 보리수를 옮겨 심은 상가미타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보리수 너머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보리수 앞에서 世俗(세속)을 잊은 이들의 기도는 경건함을 더했다.
 
 보리수 사원을 떠나 바로 옆 루완벨리세야 대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경 283m에 이르는 이 거대한 탑은 南인도 엘라라 왕의 침범을 물리친 후 지은 승리기념탑이다.

계속  ...

월간조선 2008년 6월호 (기사 全文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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