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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북한

북한發 동해 표기 소동… 무지한 일부 언론과, 무관심한 국민의 합작품

김정우 기자 2011.07.15 18:41
추적 | 북한發 東海 표기 소동… 무지한 일부 언론과, 무관심한 국민의 합작품

⊙ 북한發 팩스 한 통에 요동친 국내 여론… “이명박이 병기(倂記) 제의”
⊙ 민노당, 20년 추진해 온 ‘동해 병기’ 정부 정책 두고 “즉시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
⊙ 엉뚱한 지도를 “조선해 표기 日 最古 지도” 보도한 언론들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동해 일본해

동해와 일본해를 대등하게 표시하고 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도 서비스. 2000년까지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 오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민간단체 반크의 항의로 2001년 일본해 뒤 괄호 안에 동해를 넣어 표기해 왔고, 9년 후인 2010년 5월 대등한 표시를 한 것이 확인됐다



지난 4월 27일, 서울 서대문구의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 사무실에 팩스 문서 한 장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북한 조선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소장 조희승)로, “동해 표기와 관련해 남북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내용이었다.
 
  ‘북한발(發) 팩스 한 통’은 이틀 후인 29일 기사화돼 국민에게 알려졌다. 이를 보도한 《연합뉴스》는 다음 날 “정부, 국제기구에 ‘동해·일본해 병기’ 의견”이란 후속 기사를 통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하며 “북한은 단독표기 견해를 밝힐 가능성이 크다”는 ‘외교소식통들’의 말을 함께 인용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도 예전부터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해 왔으며, 이번에도 같은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허위사실 난립한 인터넷 댓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은 ‘동해·일본해 병기’, 북한은 ‘동해 단독표기’”란 구도가 조성되자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해당 기사는 국제수로기구(IHO)의 1929년 이후 3차례 표기규정 과정과 한국 정부가 1992년부터 병기를 추진했다는 내용을 덧붙였지만,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선 “이명박 정부가 동해를 일본에 넘겨주려 한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다음(Daum) 아고라 게시판에선 “이명박이 병기를 제의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교과서에도 일본해를 병기해야 한다”는 글이 큰 호응을 얻었고, “‘동해·일본해 병기’ 취소하고 ‘한국(동)해’로 변경해 달라”는 청원에 35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일부 인터넷 매체는 “인터넷 뒤집어져” “네티즌 반발” “누구 맘대로?” 등을 기사 제목으로 써 논란을 키웠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정부 방침을 비판하는 글들이 빠르게 전파됐다.
 
  한 포털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동해를 ‘한국해’로 부르길 제안했을 때 ‘매국노들’이 매도했었다”는 허위 사실을 쓴 댓글이 1000개가 넘는 추천을 받았다. 노 전(前) 대통령은 2006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평화의 바다’ 같은 제3의 명칭을 제안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제안을 즉석에서 거절했다.
 
  5월 1일 정부는 “동해·일본해 병기는 1차 전략이고, 대다수 국제지도가 일본해를 단독으로 표기하는 상황에서 병행 표기가 많아진 후 단독 표기를 추진할 방침”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민주노동당은 “국제기구에 동해·일본해 병기 요청한 이명박 정부, 제 정신인가”란 제목의 대변인 논평을 통해 “지구상에 자기 나라 영토와 영해를 다른 나라와 병기해 달라고 국제기구에 의견을 제출하는 정부가 또 있는지 묻고 싶다”며 “사실상 독도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본해 병기 의견을 즉시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기 바란다”고 비난했다.
 
  민노당 학생위원회는 서울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열고 “우리의 바다를 당당히 우리의 것이라고도 주장하지 못하는 정부는 도대체 어느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인지 모르겠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이를 보도한 인터넷 매체는 “정부가 동해와 일본해 표기를 병행하자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권리를 정부가 앞장서서 포기하는 심각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G8 지도 중 절반 이상이 동해 병기
 
국제수로기구(IHO)가 1953년 발간한 《해양과 바다의 한계》 제3판.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했다.
  ‘동해·일본해 병기’는 1992년부터 추진해 온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당시 대다수 외국 지도가 일본해로 표기하는 상황에서 동해를 되찾기 위해 선택한 ‘현실적 대안’이었다. 2000년 일본 외무성이 60개국 지도를 조사한 결과 2.8%만이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 국립해양조사원, 국토지리정보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동해 표기 관련 기관 모두 동해 단독 표기가 아닌 동해 병기 확산을 위해 주력해 왔다.
 
  학계와 언론계 인사가 주축이 돼 학제적 연구를 진행해 온 사단법인 동해연구회도 일본 학자들의 ‘일본해 단독 표기’ 주장에 연구 논문으로 맞서 왔다. IHO 및 UN지명전문가회의 워킹그룹(실무협의) 회의와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역사, 지리, 해양사, 국제법 등 전문분야에서 동해 병기의 정당성을 학문적으로 이끌어 냈다.
 
  독도와 동해를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민간단체인 반크(VANK) 역시 동해 단독 표기보다는 동해·일본해 병기를 꾸준히 추진해 많은 성과를 이뤄 냈다. “두 국가 이상 공유하는 지역에서 명칭 단일화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관련국 간 합의 전까지 각 명칭을 병기토록 한다”는 UN지명회의의 권고가 병기를 추진하게 된 이유다.
 
  정부와 민간단체의 노력 덕분에 2005년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민간 지도는 2.8%에서 18.1%까지 늘었고(일본 외무성 조사), 2007년 한국 외교부의 조사 결과 23.8%의 지도가 동해·일본해를 병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엔 28%까지 늘었다.
 
  특히 2007년 조사 당시 G8(주요 8개국) 중 일본을 제외한 7개국의 민간 지도를 조사한 결과 50.4%가 동해·일본해를 병기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장동희(張東熙) 국제표기명칭대사는 “한·일 양국의 정부기관과 민간단체들이 세계 각국의 지도 중 하나라도 더 동해를 표기(한국) 또는 삭제(일본)하기 위해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다”며 “전 세계 지도 제작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G8 국가의 지도 중 과반수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것은 큰 성과”라고 밝혔다.
 
  독도와 달리 동해는 국제법과 관련이 없다. IHO도 세계 각국에서 발행하는 해도(海圖) 등의 통일성과 회원국 간 수로 정보를 신속하게 교환하기 위해 출범한 기구다. 82개 회원국의 의결을 통해 해양과 바다의 이름을 명명하지만, 회원국에 대해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명 표기 문제를 다루는 UN 지명회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향력이 큰 지도제작사와 언론 대부분이 IHO와 UN 지명회의의 결의안을 따른다. 한국이 IHO 사무국과 회원국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IHO가 발간하는 《해양과 바다의 한계》(S-23)가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라고 80여 년 전부터 명기해 일본해가 ‘사실상 국제 표준 수로명’일 수밖에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항해 안전을 위해 개최된 국제수로회의를 전신으로 하는 IHO는 1929년 《해양과 바다의 한계》 초판을 펴냈다. 두 차례 개정판 모두 ‘일본해’ 표기는 그대로 유지됐다. 초판과 제2판(1937년)이 발간됐을 때 한국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상태였고, 제3판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에 발간됐다.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주장할 기회 자체가 없던 상황이었다. 한국이 IHO에 가입한 시기는 1957년, 북한은 1987년이다.
 
 
  조선해 표기 일본 ‘最古’ 지도 소동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평화의 바다’같은 제3의 명칭을 제안했다 거절당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1977년 제11차 IHO 총회에서 제3판을 개정해 제4판을 발간하기로 의결하고 30년이 흘렀지만, 회원국의 이해가 달라 성공하지 못했다. 2002년 8월 《해양과 바다의 경계와 명칭》으로 제목을 바꾼 제4판 개정안이 배포되면서 IHO는 동해해역을 백지상태로 바꿨다. 회람 후 찬반 여부를 투표해 확정할 계획이었다. ‘일본해’가 삭제되자 한국은 동해 병기 목표에 한 단계 진전했다며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일본이 IHO에 강하게 항의하면서 IHO는 회람 한 달 만에 투표 자체를 철회해 버렸다. 동해 부분을 백지로 남겨 둔 것과 함께 말라카 해협의 인도양 편입요구 미반영, 동시베리아해 구역 조정반대 의견 등 부결 가능성이 우려돼 철회했다고 IHO는 밝혔다. 한국은 IHO 사무국이 당사국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철회한 것에 강력히 항의했다.
 
  IHO는 5년마다 IHO 본부가 있는 모나코에서 총회를 개최한다. 2007년 5월 17차 총회에서 동해 표기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의 논쟁이 확대되자 윈포드 윌리엄스 IHO 의장은 제4판을 동해 부분을 빼고 발간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2년 4월 개최되는 18차 총회에서 동해 표기 문제가 또다시 쟁점이 될 예정이다. 현재 한국은 외교통상부,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 동북아역사재단, 동해연구회 등 관계기관이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발(發) 팩스와 동해·일본해 병기 문제로 떠들썩했던 지난 5월 3일, 《연합뉴스》는 “동해 ‘조선해 표기’ 1800년대 日 고지도 발굴”이란 기사를 통해 부산의 모 교수가 일본 고서점에서 입수했다는 지도를 공개했다. 1835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는 동해를 조선해(朝鮮海)로 표기했다. 이를 공개한 교수는 “그동안 공개된 조선해 표기 고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 날 《한국일보》 《문화일보》 《매일경제》 《세계일보》 등이 이 보도 내용을 그대로 받아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한 일본 최고(最古) 지도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1794년 가쓰라가와 호슈(桂川甫周)가 제작한 ‘아세아전도(亞細亞全圖)’, 1809년 다카하시 가케야스(高橋景保)의 ‘일본변계략도(日本邊界略圖)’ 등 1835년보다 앞서 조선해를 표기한 일본 고지도가 이미 공개된 바 있다. 이는 외교통상부와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나 위키피디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다.
 
  ‘최고 지도’를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는 지난해 7월 이미 국가기록원이 1807년 제작한 조선해 표기 일본 고지도인 ‘신정만국전도(新訂萬國全圖)’를 복원했다고 알린 바 있다. 1년 사이 보도한 기사가 서로 다른 내용을 전한 셈이다.
 
 
  “성공해도 욕먹을 상황”
 
  동해 표기 실무를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는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된 보도는 외교상 도움도 안될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조선해로 표기한 일본 정부 공식 지도가 무더기로 발굴되지 않는 이상 일본 고지도 존재는 현재 IHO 논의에서도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동해 표기와 관련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기관에서 동해 병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본의 정책 규모와 예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태(李相泰) 동해연구회 부회장(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은 “독도의 경우 국무총리실과 외교부가 앞다퉈 TF(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이뤄졌지만, 동해는 외교부 내 전담부서도 없는 상황”이라며 “동해 표기는 독도와 달리 영토문제가 아닌 데다, 일본해 표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권영진(權泳臻) 의원이 2009년 10월 공개한 ‘국책기관의 역사 왜곡 시정실적’에 따르면, 국책기관이 2년 동안 동해와 독도 오기 사례를 836건 찾아내 4건을 바로잡은 것에 그쳤지만, 민간단체 반크는 연평균 30건이 넘는 307건을 잡아냈다.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이 편찬, 배포하고 교육과학부가 인정한 독일어 작문 교과서에 동해 대신 ‘일본해’를 표기한 것이 발견돼 논란이 됐다. 2009년 3월엔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발행한 고교 1학년 사회과목 교과서 표지에 ‘일본해’로 표기된 지구본 그림이 실렸다.
 
  2007년 초 논란이 된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평화의 바다’ 발언은 동해에 대한 정부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다. 실무진의 협의 없이 튀어나온 ‘평화의 바다’나 ‘우의(友誼)의 바다’는 물론 최근까지 꾸준히 제기된 ‘한국해’도 동해·일본해 병기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제3의 명칭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나왔어야 할 이야기”라며 “일본 측이 그러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도록 우선 동해 병기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한국은 “한국, 일본, 러시아 등 3개국(북한을 포함할 경우 4개국)이 접한 해역을 특정 국가 명칭으로 단독 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근거로 병기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해’ 표기 주장은 모순된다.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IHO 총회가 열리는 내년 4월이 되면 또다시 부정확한 정보와 주장이 난립할 수 있다. IHO 총회 관련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동해 병기를 관철하는 데 성공해도 욕먹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며 “정부와 언론 모두 동해 표기에 대해선 각성해야 한다”고 했다.⊙

월간조선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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