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드래곤볼, 그리고 스카우터
'스카우터'라는 게 있다.
2030 세대 중 상당수는 이 단어를 들으면 '정찰'(scout)이란 뜻 대신 만화 '드래곤볼'을 떠올릴 것이다. 외계인들이 한쪽 눈에 끼고 나와 상대방의 전투력을 측정하는 기기로, 이런저런 기능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래곤볼'을 연재한 한 만화잡지가 부록으로 '실물 모형'을 준 적이 있어 동네 꼬마들이 '스카우터'를 장착하고 뛰어다니곤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조악한 모조품이었다.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진 '스카우터'를 다시 떠올린 건 2010년 초였다. 아이폰(iPhone)을 처음 손에 쥔 후 경험한 '증강현실'이란 '신세계'는 상상보다 한 발 더 앞서가 있었다. 아이폰을 이리저리 돌리면 커피숍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별자리도 쉽게 보였고, 게임을 켜면 우주선이 방안에서 미사일을 쏴댔다. 가상이 현실이 됐고, 현실이 가상이 됐다.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스카우터'. 상대방의 전투력과 위치 등 여러 정보를 표시해준다.
증강현실에 갖가지 '코드' 기능들을 보면서, 이를 응용하면 '스카우터' 비슷한 것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원하는 만큼 공개정보를 입력해놓고, 상대의 것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놓고 걸으면, 마주보며 다가오는 복사기 영업사원의 이름, 이메일, SNS 계정, 연락처, 주력 판매 상품 등이 얼굴 위에 표시되는 식이다.
대로변 대형 스크린은 그냥 보면 공백이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를 대면 광고가 뜨게 할 수도 있다. 시스템만 잘 구축하고, 적극적인 가입자가 많아진다면 불가능해보이진 않았다. 그땐 이미 초보적인 버전으로 폰을 서로 부딪히면 자동으로 명함이 전송되는 앱(app)까지 나온 상태였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상상은 대부분 현실이 됐다.
지금은 터무니 없지만, 언젠가 스마트폰에 인식된 정보가 칩 형태로 몸속에 심어지면 어떻게 될까. 원거리 열감지 혹은 동공 인식 등 SF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과학기술이 현실화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굳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자신의 공개 정보를 무차별 혹은 선택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화면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안경 형태로 바꾼다면, 말그대로 '스카우터'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기술이 발달한다면, 전투력이라고 측정 못할까.
구글이 공개한 스마트 안경(프로젝트 글래스). 일명 '스카우터'로 불린다. ⓒ구글.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 것 같다. 최근 구글이 공개한 '스마트 안경'(프로젝트 글래스) 소개 영상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든다. 안경 위로 내비게이션이 펼쳐지고, 검색과 영상 통화도 가능하다. 하늘을 보면 날씨정보가, 지하철역에선 운행정보가 나온다. 구글 개발진들을 두고 "미쳤다"고 표현할 정도로 놀라운 아이디어다. 물론, 상당히 초보적인 단계라 보완할 점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메시지 보다가 전봇대에 부딪히는 패러디 영상까지 이미 나올 정도다.
'상상'보다 '현실'이 더 빠른 시대다. 10년 후의 '스마트폰 천국'을 2002년에 예측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수년 내에 동네 꼬마 녀석들이 '진짜에 상당히 근접한' 스카우터를 가지고 놀 거라 예상한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점점 '외계인'이 돼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