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

안철수 출마선언 현장 잡설

김정우 기자 2012. 9. 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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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전에야 회견장에 도착했다. 로비와 계단을 가득 채우고 "안철수 대통령"을 외치는 '지지자'들 사이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600석 규모라는 회견장은 이미 발디딜 틈이 없었다.

회견 10분 전 무대 커튼이 젖히고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란 문구가 나타났다. 99.9% 출마가능성이 100%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입장한 안철수 '후보'는 담담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따로 원고가 보이지 않아 통째로 외운 줄 알았는데, 후에 확인해보니 프롬프트가 있었다고 한다.

안 후보가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공식 선언하자 지지자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기억에 남는 멘트는 "안랩 이사회 의장과 서울대 대학원장직 즉시 사임하겠다" "당선 되면 나머지 안랩 지분도 기부하겠다" "박근혜, 문재인 같이 만나자" "각종 의혹은 공개적으로 입증해보라" "구체적 정책비전은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말씀드리겠다" 정도다.

특히 여야 두 후보와 만나자고 한 것은 박근혜를 향한 선방이었다고 본다. 문재인은 단일화 문제가 있어 안철수를 한번은 만나야겠지만, 박근혜는 만날수도, 안 만날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는 '안철수의 꼼수'라기보단 '고단수'에 가깝다.

장애인 단체의 '수화 통역' 요청을 받아들여 무대 위에 직접 서게 한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선택 받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그의 막힘없는 답변은 이번 회견 준비가 상당히 치밀했음을 보여줬다.

회견장 한켠에 자리한 그의 '측근'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이헌재 전 부총리와 '태백산맥' 조정래 작가였다.

"이 연사 이렇게 외칩니다"라며 고함지르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안철수는 현재 한 마디 속삭임만으로도 모든 여론을 집중시키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다. 불과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이 능력의 주인공은 박근혜였다.

그의 다음 속삭임에 온 국민이 좋든싫든 귀를 모은다. 남은 90일간 이 능력을 계속 유지한다면, 그의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닐 것이다.

오늘 선언한 그의 비전은 상당히 컸다. 그대로만 이뤄진다면, 한국 정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바뀔 것이다. 그의 성패를 떠나, 이 모든 과정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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