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직설

장진 감독 "상업영화 하겠다면서 정치 운동하는 건 치사한 전략"

김정우 기자 2014. 1. 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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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한 번 쏘지 않는 전쟁영화’와 ‘손 한 번 잡지 않는 멜로영화’.

장진(張鎭) 감독은 상식 밖 구상을 작품으로 완성하는 능력을 가졌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 그의 손을 거치면 <웰컴 투 동막골>과 <아는 여자>란 흥행영화로 탄생한다. 단편영화 <고마운 사람>은 장 감독이 가장 아끼는 작품 중 하나다. 고문기술자와 운동권 학생이 등장하는 이 인권영화는 엉뚱하게도 ‘비정규직 고문관’의 인권을 다룬다.

연출, 각본, 제작, 연기 등 영화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하지만, 정작 그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1년에 한두 편 볼 정도다. TV로 찾아보는 영화도 끝까지 못 보고 잠들기 일쑤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게 이유다.

‘역설적 존재’를 만나 천재성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부담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은 그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상당수 그의 작품은 단 한 줄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만약 퀴즈쇼의 마지막 정답만 알게 됐다면”이란 물음에서 영화 <퀴즈왕>이 나오는 식이다. 로또에 당첨된 대통령, 수다를 즐기는 킬러들 등 특유의 설정은 ‘장진식(式) 블랙코미디’를 자리 잡게 했다.

이동진 영화 전문기자는 “장진이라는 고유명사는 종종 ‘장진스럽다’는 형용사의 용례를 통해서 설명돼 왔다”며 “그는 ‘장진스러움’에 머물지 않고 최근 몇 년간 멜로(아는 여자), 스릴러(박수칠 때 떠나라), 액션(거룩한 계보) 등 다양한 장르에 연이어 도전하며 자신의 영화적 외연을 넓혀왔다”고 평했다. 서병기 대중문화 전문기자는 장 감독 영화의 특징을 “역설과 아이러니 빚기”로 규정하며 “장진 감독은 재주가 넘친다. 재주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엇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장진 감독. ⓒ조준우


⊙ 연극, 영화, TV쇼 거쳐 뮤지컬과 아시안게임까지… 장르 벽 허문 그의 도전
⊙ “내 재능은 단 하나,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가장 좋은 순간은 좋은 글을 썼을 때”
⊙ “전화로 들려준 이야기에 상대가 웃었다면 그 자체가 한 작품”


“최선을 다하면 상처받는다”

장 감독은 한계가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연극과 영화를 거쳐 뮤지컬과 TV쇼까지 진출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연출까지 맡았다. 시나리오, 연출, 제작, 연기 등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보통 영화감독이나 PD를 하다가 제작사를 차리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뛰어난 예술가가 사업에서 실패하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그런데 장진 감독은 예외인 것 같아요.

“매사 최선을 다하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뭔가 잘 안 돼도 내 재능의 부재(不在)를 탓하며 넘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면 상처받습니다. ‘감독이 회사 하면 망한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슬퍼집니다. 회사경영과 작품활동 사이에서 훌륭하게 잘 해내는 감독도 있다고 얘기해야 합니다. 성공은 개인의 능력 차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가 잘 안 되는 겁니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희곡)로 등단할 때 지금 이 정도 성공을 예상했나요.

“지금 이게 무슨 성공인가요. 폼 잡는 얘기가 아니라, ‘옛날에 뭘 했다’는 건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제조업이나 과학 분야처럼 점차 성과를 이뤄내는 분야와는 다릅니다. 예술은 어느 시점부터 고갈이 시작됩니다. 한 작품 할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체감하게 됩니다.”

―시나리오, 연출, 제작을 거쳐 연기까지 시도했습니다. 본인의 재능은 어디에 가장 걸맞다고 봅니까.

“내 작업을 원초적으로 보면 하나입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야기는 만드는 것과 실현하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죠. 가장 좋은 순간은 좋은 글을 썼을 때입니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유효성을 떠나 단 한 명의 독자가 글을 보고 통쾌해하거나 작가가 원하는 감명을 받은 그 순간입니다.”

―콘텐츠 생성부터 응용까지 전체를 총괄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글 좀 써서 갖다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도 안 주니 내가 다 합니다. 남들은 ‘눈치 안 보고 혼자 책임지고 다 할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답답한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선 팀원 서로가 경계하고 분립이 돼줘야 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받아서 좀 해봐야 하는데….”

장 감독에게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장진 영화’는 무엇인지 물었다. 드센 질문에 놀란 그는 “내 영화?”라며 몇 차례 되묻다 단편영화 <고마운 사람>과 함께 <소나기는 그쳤나요>를 꼽았다. 황순원(黃順元)의 소설 《소나기》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소녀가 떠난 이후 소년은 어린 시절 폭풍처럼 몰아친 사랑의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까’란 물음에서 시작한 스토리다.

“지인의 죽음 자체를 경험하지 못한 이는 그 한참이 지난 후에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알게 됩니다. ‘뭐야, 없잖아, 계속 없네? 끝까지 없는 거야?’ 이런 공포를 안 후에 죽음을 대하면 눈물이 나는 겁니다.”

장진 감독이 쓰거나 연출한 작품들.


장진을 바꾼 영화 <태양의 제국>

―<아는 여자>에 ‘영화 속 영화(액자영화)’가 있었죠. 하나의 메시지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좋아합니다. 만약 내가 전화로 누군가에게 재미난 얘길 들려주고 그가 웃었습니다. 그러면 그게 한 작품입니다. 그가 ‘야, 그거 정말 웃기다. 작품으로 해봐’라고 하면 ‘내가 지금 들려줘서 네가 웃었잖아. 근데 또 뭘 만들어?’라고 답합니다.”

―‘장진 영화’엔 야한 장면이 잘 없습니다. 순애보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키스할 때 가장 설레는 순간은 바로 키스 직전이죠. 물리적으로 보면 그저 입술 피부가 닿는 것뿐입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떨리게 하는 건 키스하기 전, 손 잡기 전, 깍지 끼기 전, 팔짱 끼기 전까지입니다.”

―본인의 인생을 바꾼 모티브가 된 영화가 있나요.

“또렷이 기억합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Spielberg)의 <태양의 제국>입니다.”

―우디 앨런(Allen)과 같은 인물이 등장할 것 같았는데, 의외입니다.

“<태양의 제국>의 활주로 장면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상업영화 감독, 즉 자기가 만든 문화를 소비시켜야 하는 창작자는 바로 저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어느 순간에 피아(彼我)를 뒤집어버립니다. 적국(敵國)인 일제(日帝)의 가미카제 전투기 파일럿을 향해 영국 소년이 거수경례하는 장면을 감독은 노을진 풍광으로 가장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이 역설적 장면이 내 작품 궤도를 바꿔버렸습니다.”

―장진이란 이름엔 역설과 반전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최근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습니까.

“영화를 잘 안 봐서, 최근 3~4년 안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없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타인의 삶>이 기억에 남습니다.”

<타인의 삶>은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비밀요원이 한 극작가를 감청하다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영화다. 독일 통일 후 우체부가 된 요원은 우연히 발견한 작가의 책 첫 장에서 자신의 작전명이 적힌 헌정 문구를 발견한다. 포장이 필요하냐는 점원의 질문에 주인공은 ‘나를 위한 책’이라고 답한다.

“영화가 천천히 점점 다가오더라고요. 지루함과 느슨한 여백이 혼재(混在)하다 마지막에 ‘퍽’하며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20년이 돼가는 작품이지만, <러브레터>도 베스트로 꼽는 영화입니다.”

직접 화법은 소용없는 시대

―정재영, 류승룡, 신하균, 류덕환, 이해영, 장영남 등 이른바 ‘장진 사단’이 요즘 잘나갑니다.

“사단이란 말도 웃깁니다. 다 기자들이 만들어낸 말이죠. 작품 두 개 했다고 사단이 되나요. 정재영과는 이제 서로 작품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자꾸 ‘장진 사단’이라며 둘을 엮으면 불편합니다. 나도 ‘봉준호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와 작업하면 부담이 됩니다. 그에게 나는 봉준호와 비교되고, 나에게 그는 정재영과 비교될 것 아닌가요.”

―정재영은 어떤 배우인가요.

“정말 훌륭한 배우입니다. 다만 세상에 대한 ‘유도리’가 생기고 좀 더 약아빠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드라마도 좀 했으면 좋겠고. 요즘은 경조사 아니면 자주 만나지도 못합니다.”

―인터뷰나 글에선 정치성향이 보이는데, 작품에선 잘 드러나지 않더군요.

“작품에 많이 넣는데?”

―<남영동1985>나 <천안함 프로젝트>와 같은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히 보입니다.

“우선 다루는 장르가 나와는 다릅니다. 나 같은 경우엔 풍자와 은유로 승부를 해야 합니다. 직접 화법은 소용없는 시대 아닌가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피켓 들고 광화문에 가는 게 빠르지요. 상업영화를 하겠다는 사람이 돈 벌겠다고 돈 받아놓고 자신의 정치적 운동을 전개하는 건 치사한 전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괜찮은 시대이긴 해요.”

―<천안함 프로젝트> 논란에 대해 영화인으로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는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천안함에 대해 적지 않은 국민이 ‘우리는 북한이 좋아요’가 아닌 ‘우리는 궁금해요’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그에 대해 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시기나 방식이 국가관을 지킨다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며 반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영화뿐 아니라, 영화에서 나오는 담론에 대한 다양성을 모두 존중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모든 다양성은 반복하는 순간 다양성이 아니게 됩니다. 서로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나 민주당이오’라고 하는 순간 재생반복적으로 바뀝니다. 이는 다양성이 아니라 이분법입니다. 천안함 영화에 대해 ‘그들의 용기와 죽음을 아직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왜 그런 영화를 만들어서 국론을 분열시키느냐’고 말한다고 ‘보수꼴통 우익’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천안함 프로젝트>를 비판한 사람이 영화 <연평해전>도 함께 비판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장진 감독(오른쪽)과 방송인 임재민씨. ⓒ조준우


노무현과 박근혜

―장진 감독 작품 중 가장 ‘정치적’인 영화가 <굿모닝 프레지던트>입니다. 이순재(李順載), 장동건(張東健), 고두심(高斗心)이 연기한 3명의 대통령은 지나치게 완벽한, 이상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습니다. SF, 공상과학에 가깝죠. 사실 그들이 일을 잘하건 못하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대통령이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 나오는 대통령의 공통점은 불과 얼마 전까지 이웃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일 뿐입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장진의 오마주(hommage)라는 해석이 많이 나왔었습니다. 맞는 말인가요.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영화 속 대통령과 안 맞는 부분이 많습니다. 외교나 부동산 등 정책을 빼고 휴머니즘 차원에서만 보면 노 대통령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고두심씨가 연기한 여자 대통령은 사실 한명숙(韓明淑) 전(前) 총리를 모델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한 명이 떠오르면 안 되니 전직을 법무장관으로 만들어 강금실(康錦實) 전 장관과 헷갈리게 했죠.”

―여자 대통령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별로 좋아하지 않나 보죠.

“좋고 싫고가 없습니다. 일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이를 떠나 그녀가 가진 히스토리에 대해 여러 감정이 존재합니다. 일말의 동정, 연민, 존경, 측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딱 떨어지는 단어는 없습니다. 육영수(陸英修) 여사 저격과 10·26을 20대 때 겪은 인물입니다. 누군가는 자처한 일이라고 얘기하지만, 자처고 뭐고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개인사(史)가 그렇게 드라마틱했던 사람이 어디 있나요.”

―우리 정치권에서 훌륭한 중도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군가 개인을 딱 찍지는 못하겠습니다. 지금 민주당 같은 경우가 훌륭한 중도를 잘 만들어주고 있다고 봅니다. 너무 못하니까요. 저 사람들을 믿고 절대적으로 저쪽 편에서만 뭘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당의 경우, 내가 보기엔 이번 정권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합니다.”

TV쇼 〈SNL〉을 연출할 때 모습. 장 감독은 2011년 말 첫 방송부터 2012년 12월 하차할 때까지 연출과 극본 등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다.


〈SNL〉을 그만둔 이유

―‘인간 노무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 안에서 노무현은 그냥 노무현입니다. 한 인간에 대한 ‘팬심(fan心)’으로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반대편에 있는 열 명을 만나보면 별 얘기가 다 나옵니다. 나는 그 얘길 들을 필요도, 싸울 필요도, 추앙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요즘 정치가 그렇더라고요. 좌도 우도 없습니다. 내 오른쪽에 있으면 우파고, 내 왼쪽에 있으면 좌파입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편을 응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잘되길 바라는 것과 반대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다릅니다.”

―상대가 잘못된다고 내가 이기는 건 아니란 의미인가요. 현재 한국 정치판에선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인식이 강합니다.

“〈SNL 코리아〉 때 그런 얘길 했습니다. 정치는 스포츠가 아니라고요.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해서 당신이 승리한 건 아닙니다. 정치는 예술입니다. 문제는 요즘 대한민국이 국민 자신의 가치관보다는 언론에서 나오는 활자와 영상에 따라 옮겨다닌다는 점입니다. 사건의 본질과 달리 해석하려고 합니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기사에 적힌 대로 가치관이 흘러갑니다.”

〈SNL 코리아〉는 케이블 방송사 tvN이 미국 NBC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포맷을 수입한 생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장 감독은 2011년 말 첫 방송부터 2012년 12월 하차할 때까지 연출과 극본 등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다.

―요즘 〈SNL〉은 봅니까. 초기 세팅을 다 한 주인공인데, 최근 코드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코드로 가서….”

―원래 정치풍자를 원했나요.

“정치풍자를 근간에 뒀는데, 다른 것도 있습니다. ‘가지 말라’고 아무도 얘기한 적 없는데 스스로 안 간 방송에서 흔히 다룰 수 없는 성역에 가보자는 게 〈SNL〉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왜 그만뒀습니까.

“다른 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극본과 연출을 다 해야 하니, 영화나 연극은 신경도 쓸 수 없었습니다.”

―하차 당시 〈SNL〉이 망할 것이란 우려가 컸습니다. 최근 〈SNL〉은 이른바 ‘섹시코드’로 편중됐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것도 분명 재미있는 영역입니다. 단, 그게 주력 무기가 되면 안 됩니다. 그 이상의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호스트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선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Jeter)와 같은 스포츠 스타는 물론, 예술가와 정치인도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코드론 김연아(金姸兒)나 손연재(孫延在) 같은 스타가 호스트로 출연할 수 있겠습니까. 37년 동안 생방송 된 쇼 라이선스를 가져와서 1~2년짜리 근시안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장진 감독(가운데)의 첫 뮤지컬 《디셈버》의 쇼케이스 장면. 왼쪽은 아이돌 스타 김준수씨, 오른쪽은 배우 박건형씨다.(NEW 제공)


첫 뮤지컬 도전

영화와 연극에 뻗친 장진 감독의 영역은 어느새 뮤지컬로까지 확대됐다. 2013년 12월 16일 시작한 창작 뮤지컬 <디셈버>의 대본과 연출을 맡았다. 장진의 첫 뮤지컬이다. <디셈버>는 가수 김광석(金光石)의 노래로 엮은 뮤지컬로, 아이돌 스타 김준수(金俊秀)가 출연해 큰 관심을 모았다. 연말에 쏟아지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경쟁해야 하는 그는 “라이선스 뮤지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창작극을 만들 기회가 왔다”고 밝혔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지양하나요.

“지양은 아니죠. 라이선스 뮤지컬도 훌륭한데다 많은 관객이 좋아합니다. 다만 한국 뮤지컬이 15년 정도 붐을 타고 많은 자원을 배출해 냈다는 것입니다. 작곡가, 배우, 디자이너, 연출자 등 훌륭한 사람이 있는데 계속 라이선스만 고집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균형미를 맞추고자 한 것입니다.”

―김광석 세대의 감성을 김준수나 박건형과 같은 젊은 배우가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까요.

“김광석의 음악을 풍미했던 세대, 그 시절은 내게도 성숙기였습니다. 김준수나 박건형에겐 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작품은 김광석 노래를 김광석처럼 소화하길 바라는 작품이 아닙니다. 김광석이란 이름을 지우고 봐도 재미있어야 합니다. 왜 그 시대에 볼품없는 한 사내가 어쿠스틱으로 구구절절한 사랑이야기를 연주하고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그리고 가열하던 시대에 사랑과 낭만도 있었단 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배우로서 김준수의 자질은 어떤가요.

“의외로 ‘시골스러워서’ 놀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활동해서인지 다른 쪽에 둔한 면이 있어 귀여웠고요. 배우로선 어쩔 수 없이 기능적으로 해야 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음악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큰 친구죠.”

―임권택(林權澤) 감독과 함께 2014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연출까지 맡았던데요.

“고민이 많습니다. 경기장이 바닷가 바로 옆 협곡형입니다. 그 지역의 9월 바람은 ‘플라잉’으론 아무것도 못 하게 합니다. 구조물도 못 쓰고, 항공 촬영도 제약이 많습니다. 다른 걸 재미있게 가야 하는데, 인천이란 도시가 가진 독특한 핸디캡이 있습니다. 수도와 인접하다 보니 개성이 없고 서울과 차별하기도 어렵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선 훌륭한 기착지인데, 최근 북한 도발로 인해 ‘긴장의 바다’란 이미지까지 겹쳐 있고요. 이런 환경에서 ‘아시아의 미래’란 콘셉트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이 핸디캡을 역설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임권택 감독을 모시고 함께 작업한다는 게 내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월간조선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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