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
상어 나라, 물고기 나라
김정우 기자
2017. 8. 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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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족'이란 노래가 있다. 유튜브 조회수 5억회를 기록해 '국민동요'로 꼽힌다. 국악과 일렉트로닉(EDM) 버전까지 나왔고, 윤종신과 에디킴 등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했다.
가사는 간단하다. 귀여운 아기상어를 시작으로 어여쁜 엄마, 힘이 센 아빠, 자상한 할머니, 멋있는 할아버지 상어가 반복 후렴구와 함께 순서대로 등장한다.
문제는 2절이다. 시점이 피식자(被食者)인 물고기로 바뀌는데, 이들은 포식자(捕食者) 상어가족에 놀라 도망치기 바쁘다. 산호초로 추정되는 구조물에 숨고 나서야 '휴' 한숨을 내쉬며 "오늘도 살았다"며 "신난다"고 춤을 추라 한다.
불쌍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태지만, 자연의 섭리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묘사한 새드엔딩으로 읽힌다.
최근 많은 이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전쟁 나냐"는 질문이다. 대략 20일 동안 100번 가까이 들은 것 같다. 북한 취재를 많이 했던 전력 때문에 한반도 안보 위기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분이 많았다.
그들의 질문이 비슷했고, 내 대답도 똑같았다. "모른다"였다. 미국과 북한에서 역대 가장 예측불가능한(unpredictable) 지도자가 정면 충돌했는데, 감히 "전쟁은 절대 없다"란 답을 내긴 어려웠다.
TV나 라디오 토론에 출연한 다수 북한 전문가란 분들이 "절대 전쟁은 없다"고 확언하는 걸 보면 대단했다. 김정은을 직접 인터뷰한 것도 아닌데, 미·일·중·러 4강국 외교 구도 상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고들 한다.
1930년대 프랑스 지도자들은 "절대 전쟁은 없고 평화를 지키겠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독(對獨) 경계를 풀고 육군 휴가를 허용한지 사흘 만에 히틀러 군대의 침공을 당했고, 한 달도 안 돼 파리를 점령당했다. 6·25도 선전포고 없는 새벽 기습 남침이었다. 전쟁은 '동의'를 전제하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으로 안보위기설을 조장하는 건 '청산돼야 할 적폐'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무책임한 '안보 불감증 조장' 또한 국가적 위험 요소다.
국민 불안을 키우고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지만 '전쟁설'이 전쟁 그 자체보다는 낫다. 라면과 골드바를 사재기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건 바람직하진 않지만, 전쟁이 날 가능성은 줄인다는 역설이다.
로마제국의 전략가 베게티우스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금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전쟁에 대비하는 건 평화가 주는 특혜란 말도 있다. 호전광과 평화구걸자는 사회악이지만, 전쟁 유발 측면에선 결국 한 끗 차이다.
광복절 전날, "미국놈의 행태를 지켜보겠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전해졌다. "전쟁 나냐"는 질문 빈도도 눈에 띄게 줄었다. 트럼프가 "현명한 결정"이란 화답을 하자 전쟁설은 금새 수그러들었다.
북한을 오랫동안 취재하면서 터득한 사실은, 저들은 지도자와 관련된 성명(statement)은 반드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종교에서 신(神)이 경전을 통해 내린 예언은 반드시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 김정은의 이름을 걸고 '괌 타격'을 명시한 만큼, 그 시기가 한 달 뒤가 됐든 10년 후가 됐든 언젠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란 표현을 쓴 건 1994년 판문점에서 북한 박영수가 내지른 '서울 불바다'란 발언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다. 백악관의 수석전략가의 입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공개적으로 거론됐고, '평화협정'이란 용어가 서방 언론에 공공연하게 오르내린다. 위기는 가랑비처럼 스며들고 있다.
시간은 철저하게 북한 편이다. 20여년 전 예방타격을 했다면 북한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에겐 핵이 있다. ICBM도 있고, IRBM도 있다. SLBM까지 완성하거나, 핵탄두 ICBM 장착에 성공한다면 '레드라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데드라인'이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 인질'(nuclear hostages)이 되는 순간, 힘의 균형은 김정은에게 급격히 쏠리게 된다. 한민족 최악의 악몽이다.
외교안보에서 핵 완성과 보유 여부는 포식자와 피식자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물고기들이 최첨단 재래식 무기를 갖춰봐야 핵무기를 가진 새끼 상어 한 마리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핵이 비대칭전력의 핵심인 이유다.
한 고비 위기를 넘길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할 건지, 상어에 쫓기는 물고기처럼 "오늘도 살았다" "신난다"며 춤을 출 건지, 글로벌 상어가족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입지가 처량하다. 지금은 '아기상어' 수준에 불과한 적이지만, 힘이 센 성인상어로 크는 건 시간문제다.
UFG 한미훈련이 시작됐다. 한꺼번에 방한한 미군 핵심 수뇌부 3명은 "모든 자산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은은 최근 최전방 지역을 암행시찰했다고 한다. 북한의 성동격서(聲東擊西) 기습도발 행태는 여전하고, 우리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있다. 미국과 북한의 예측불가능한 지도자 중 한 명이라도 비이성적(irrationality)으로 돌변할 경우 비극은 시작된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 언제 다시 "전쟁 나냐"는 질문을 시작하게 될지 모른다. 스스로 상어가 되진 못할지언정 "오늘도 살았다"며 "신난다"고 춤을 추는 한심한 약소국 신세는 벗어나야 할테다.
가사는 간단하다. 귀여운 아기상어를 시작으로 어여쁜 엄마, 힘이 센 아빠, 자상한 할머니, 멋있는 할아버지 상어가 반복 후렴구와 함께 순서대로 등장한다.
문제는 2절이다. 시점이 피식자(被食者)인 물고기로 바뀌는데, 이들은 포식자(捕食者) 상어가족에 놀라 도망치기 바쁘다. 산호초로 추정되는 구조물에 숨고 나서야 '휴' 한숨을 내쉬며 "오늘도 살았다"며 "신난다"고 춤을 추라 한다.
불쌍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태지만, 자연의 섭리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묘사한 새드엔딩으로 읽힌다.
최근 많은 이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전쟁 나냐"는 질문이다. 대략 20일 동안 100번 가까이 들은 것 같다. 북한 취재를 많이 했던 전력 때문에 한반도 안보 위기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분이 많았다.
그들의 질문이 비슷했고, 내 대답도 똑같았다. "모른다"였다. 미국과 북한에서 역대 가장 예측불가능한(unpredictable) 지도자가 정면 충돌했는데, 감히 "전쟁은 절대 없다"란 답을 내긴 어려웠다.
TV나 라디오 토론에 출연한 다수 북한 전문가란 분들이 "절대 전쟁은 없다"고 확언하는 걸 보면 대단했다. 김정은을 직접 인터뷰한 것도 아닌데, 미·일·중·러 4강국 외교 구도 상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고들 한다.
1930년대 프랑스 지도자들은 "절대 전쟁은 없고 평화를 지키겠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독(對獨) 경계를 풀고 육군 휴가를 허용한지 사흘 만에 히틀러 군대의 침공을 당했고, 한 달도 안 돼 파리를 점령당했다. 6·25도 선전포고 없는 새벽 기습 남침이었다. 전쟁은 '동의'를 전제하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으로 안보위기설을 조장하는 건 '청산돼야 할 적폐'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무책임한 '안보 불감증 조장' 또한 국가적 위험 요소다.
국민 불안을 키우고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지만 '전쟁설'이 전쟁 그 자체보다는 낫다. 라면과 골드바를 사재기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건 바람직하진 않지만, 전쟁이 날 가능성은 줄인다는 역설이다.
로마제국의 전략가 베게티우스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금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전쟁에 대비하는 건 평화가 주는 특혜란 말도 있다. 호전광과 평화구걸자는 사회악이지만, 전쟁 유발 측면에선 결국 한 끗 차이다.
광복절 전날, "미국놈의 행태를 지켜보겠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전해졌다. "전쟁 나냐"는 질문 빈도도 눈에 띄게 줄었다. 트럼프가 "현명한 결정"이란 화답을 하자 전쟁설은 금새 수그러들었다.
북한을 오랫동안 취재하면서 터득한 사실은, 저들은 지도자와 관련된 성명(statement)은 반드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종교에서 신(神)이 경전을 통해 내린 예언은 반드시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 김정은의 이름을 걸고 '괌 타격'을 명시한 만큼, 그 시기가 한 달 뒤가 됐든 10년 후가 됐든 언젠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란 표현을 쓴 건 1994년 판문점에서 북한 박영수가 내지른 '서울 불바다'란 발언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다. 백악관의 수석전략가의 입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공개적으로 거론됐고, '평화협정'이란 용어가 서방 언론에 공공연하게 오르내린다. 위기는 가랑비처럼 스며들고 있다.
시간은 철저하게 북한 편이다. 20여년 전 예방타격을 했다면 북한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에겐 핵이 있다. ICBM도 있고, IRBM도 있다. SLBM까지 완성하거나, 핵탄두 ICBM 장착에 성공한다면 '레드라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데드라인'이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 인질'(nuclear hostages)이 되는 순간, 힘의 균형은 김정은에게 급격히 쏠리게 된다. 한민족 최악의 악몽이다.
외교안보에서 핵 완성과 보유 여부는 포식자와 피식자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물고기들이 최첨단 재래식 무기를 갖춰봐야 핵무기를 가진 새끼 상어 한 마리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핵이 비대칭전력의 핵심인 이유다.
한 고비 위기를 넘길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할 건지, 상어에 쫓기는 물고기처럼 "오늘도 살았다" "신난다"며 춤을 출 건지, 글로벌 상어가족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입지가 처량하다. 지금은 '아기상어' 수준에 불과한 적이지만, 힘이 센 성인상어로 크는 건 시간문제다.
UFG 한미훈련이 시작됐다. 한꺼번에 방한한 미군 핵심 수뇌부 3명은 "모든 자산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은은 최근 최전방 지역을 암행시찰했다고 한다. 북한의 성동격서(聲東擊西) 기습도발 행태는 여전하고, 우리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있다. 미국과 북한의 예측불가능한 지도자 중 한 명이라도 비이성적(irrationality)으로 돌변할 경우 비극은 시작된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 언제 다시 "전쟁 나냐"는 질문을 시작하게 될지 모른다. 스스로 상어가 되진 못할지언정 "오늘도 살았다"며 "신난다"고 춤을 추는 한심한 약소국 신세는 벗어나야 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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