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

'김여정 하명 논란' 이후 180도 뒤바뀐 통일부의 대북전단 법적 논리

김정우 기자 2020. 12. 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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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교류협력법의 규율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2018년 국정감사 당시 통일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 중 일부다.

"대북전단이나 물품 살포를 사전에 등록 또는 승인하게 하고 내용이나 물품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는데 검토를 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법의 입법 취지와 법체계에 비춰 △남북교류협력으로 보기 어렵고 △수령인이 불특정하며 △남북한 간 이동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또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관련 법률(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및 판례(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를 위해 관련 법률로써 제지 가능)를 근거로 제한이 가능하다"며 "민간단체들과 소통하면서 전단살포 중단 협조를 요청하는 등 예방 노력을 지속해 나가는 한편, 경찰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하여 대북전단 살포 주요단체들의 살포 시도를 사전에 방지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남북교류협력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란 결론이다.

이후에도 일부 탈북단체가 전단 살포 과정에서 경찰과 갈등을 빚긴 했지만 정부의 법적 해석은 그대로 유지됐다. '표현의 자유'와 같은 거창한 철학을 대지 않더라도 '교류협력법' 법체계에 '전단'이 들어갈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1부부장 / 조선DB


■ 김여정 담화 후 바뀐 '해석'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6월 4일 북한 노동당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남조선당국의 묵인 하에 《탈북자》 쓰레기들이 반공화국적대행위 감행"이란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면서 정국이 급변했다.

그는 "남조선당국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서의 조항을 결코 모른다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만약 남조선당국이 이번에 자기 동네에서 동족을 향한 악의에 찬 잡음이 나온 데 대하여 응분의 조처를 따라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금강산관광 폐지에 이어 쓸모없이 버림받고 있는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가 될지, 있어야 시끄럽기밖에 더하지 않은 북남공동련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마나한 북남군사합의파기가 될지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남북군사합의와 같은 예시를 구구절절 읊어 '디테일'까지 살린데다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는 '하명'에 가까운 어투로 날린 경고장이었다.

'오비이락'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재자 여동생의 경고 직후 청와대와 정부는 한목소리로 '대북전단 비판'에 가세하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삐라 살포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며 "안보에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에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란 엄중한 태도를 보였고, 통일부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부터 이를 법률을 통해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폭로 아닌 폭로'를 자청했다.

법적 해석도 180도 바뀌었다.

통일부는 그동안 '남북교류협력법' 대상이 아니란 입장을 유지해왔는데, 갑자기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단체 대표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김여정 담화' 6일 만에 '규율 대상'이 아니라던 남북교류협력법 반출승인 규정 위반을 이유로 '대북전단 살포 저지'에 정부가 뛰어든 셈이 됐다.

법 해석이 바뀌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부는 '사정 변경'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4·27 판문점 선언에 '군사분계선 일대 전단살포 등 적대행위 중지'란 내용이 포함됐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안전 위협 시 제지할 수 있다는 2016년 대법원 판단이 있으며 △전단뿐 아니라 쌀과 USB, 지폐 등 살포 물품이 다양해졌다는 등의 이유다. 그리고 "전단을 통한 물품의 방역 실패 우려"라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까지 얹었다.

국회에 제출하는 답변도 바뀌었다.

지난 7월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이 요구한 "대북전단 살포 관련, 물품 반출입에 전단 등을 포함해 통일부장관이 승인하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에 대한 통일부의 입장과 근거 논리"에 대한 질의에 통일부는 "정부는 최근 대북 살포 물품과 전달수단의 다양화 및 남북관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동 행위를 교류협력법상 승인 대상인 물품 반출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답했다.

전달수단 다양화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론 "살포 물품은 쌀, 현금, USB, SD카드, 소형라디오, 책자 등으로 다양화, 전달수단도 풍선·PET병 뿐만 아니라 드론 사용(주장) 등으로 다종화"라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도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경우 제한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 △판문점선언에서 전단 살포중지 합의 △살포 물품·수단 다양화 △코로나19 전파 우려 등 상황 변화가 발생 등 이유도 덧붙였다.

하지만 2016년 대법원 판결이나 USB·쌀·현금 등 살포 물품, 그리고 판문점선언 모두 2018년 국회 답변 이전에도 엄연히 존재해오던 것들이다. 굳이 2년 동안 바뀐 상황이 있다면 코로나19 전파 우려뿐인데, 정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여정의 담화' 이후 입장을 돌변한 모양새가 됐다.


■ 통일부 "김여정 하명법 프레임은 왜곡"

지난 14일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이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까지 무력화시키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2년부터 12차례나 발의됐지만 폐기 또는 계류된 '남북교류협력법'이 아닌 '남북관계발전법'을 개정하는 '입법 신공'을 보이며 법안을 처리해낸 것이다.

개정된 법 조항엔 '살포'를 "선전·증여 등을 목적으로 전단 등을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의 불특정 다수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단순히 제3국을 거치는 전단등의 이동을 포함)시키는 행위"로 규정해 금지행위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에선 전단이 승인의 대상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해당 조항을 근거로 '남북관계발전법'을 개정했으니 '승인 받은 전단'은 애초에 존재가 불가능하다. 결국 사실상 모든 대북전단 활동이 원천봉쇄된 셈이다.

'전단금지법'이 통과되자 통일부는 기다렸다는듯 14쪽짜리 '설명자료'를 냈다.

핵심내용을 요약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제한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의 일부 특정한 '방식'을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했고 △전단살포가 북한인권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없고 북측 주민의 인권을 악화시키는 역효과만 야기하며 △제3국을 통해 물품을 단순 전달하는 행위는 본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 아니고 △2008년 제18대 국회에서부터 전단 규제 입법을 지속 추진해왔다는 주장이다.

통일부는 특히 "2020년 북측 인사의 언급으로 법률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일각에서 개정법률안을 소위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사실과 다른 프레임을 씌워 왜곡해 비난하고 있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여정의 '하명'에 가까운 담화 직후 정부가 법적 해석을 기존과 달리한 건 부정하기 어렵다. '사정 변경'이란 근거도 그리 설득력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 청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규탄 군중집회 / 노동신문


■ 통일부가 인용한 인터뷰 원문 보니

해외에서도 반발이 꽤 거세다.

마이클 맥카울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며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초당적 인권기구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의장인 크리스 스미스 의원은 "국무부 연례 인권·종교 자유 보고서에 한국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할 것을 요구하고 감시 대상에 올리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북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 파운데이션(HRF)은 "북한 주민에겐 재앙이자 비극이고, 김정은 정권에는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고,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47개 국제인권단체는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공동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가 북한의 인권 증진을 위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에서 백악관과 국무부, 상·하원 인사들을 두루 접촉 중인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은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한 의회의 움직임이 간단치가 않은 상황"이라고 현지 조야의 분위기를 전했다.

통일부는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했는지, 반박 설명자료에 미국 대법원의 판례나 주요인사의 주장도 담았다.

특히 '대북전단 무용론'을 나열한 부분에선 칼 거쉬먼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의 지난 6월 미국의소리(VOA) 인터뷰를 인용했는데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기사 원문의 제목이 "NED 회장 '대북전단 금지 유감'"으로 시작한다는 것과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규제에 대해 그가 "북한이 한국을 괴롭힐 수 있도록 한국이 반응했고, 평화를 도모하기는커녕 한국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만을 손상시킬 것"이란 입장은 기록하지 않았다.

거쉬먼 회장은 통일부가 인용한 그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대북전단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라며 "대북전단이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했다. 그가 대북전단이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은 아니라고 한 건 NED가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 속도보다 '적기적시'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대통령 공약'과 '중요 정책'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사안이라도 기초적인 일관성과 논리성은 갖춰야 한다.

정치의 영역에선 여야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거나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으로 갈 수 있지만, 행정부까지 그 장단을 맞출 필요는 없다. 이미 한 정부 부처는 핵심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감사를 받았고,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자료를 삭제한 공무원은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무분별한 대북전단 살포로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공개적으로 전단살포를 사전예고해 불안을 가중하거나 잘못된 풍향 예측으로 엉뚱한 곳에 뿌리는 사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초거대 여당이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안을 강행처리하며 독주할 때 행정부가 세밀한 견제를 하기는커녕 무리한 행보를 이어간다면 더 큰 분란과 역풍을 야기할 수 있다.

입법과 정책은 적절한 때와 방법이 필요하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서두르면 결국 탈이 난다. 통일부는 '김여정 하명법' 주장을 반박하기에 앞서 과연 정부 입장을 바꾼 게 적기적시였는지, 개정된 법률에 허점은 없는지부터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 김정우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48&aid=000031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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