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외교관' 류현우가 확인한 北과 이집트·시리아의 무기 거래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참사관급)로 근무하다 2019년 9월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류현우(한국명)씨가 TV조선과 국내 최초로 육성 인터뷰를 했다.
류씨는 지난 3일 서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북한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을 최대 무기판매 시장으로 보고 있다"며 "중동 지역에 많은 무기를 팔아 거액을 챙긴 게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특히 한국의 미수교국으로 남아있는 시리아의 경우 북한이 혈맹이라 부르며 방사포(다연장 로켓포)와 반항공(대공) 체계 등 군수 분야 기술자들 수십명을 파견했다고 전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시리아에 근무했던 그는 "북한이 시리아에 방사포를 대규모로 판매했다"며 "반항공 체계와 관련한 북한의 군수공업 부분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와서 현재까지 운영체계를 관리해주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당시 극비리에 진행된 일이라 자신과 같은 외교관들은 구체적인 내막을 몰랐지만, 2011~2012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북한 당국이 파견 인력을 철수시키면서 항공편과 안전 문제를 대사관이 담당하게 돼 이들의 역할과 규모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과 시리아가 무기와 인력을 거래해온 정황은 꾸준히 전해졌지만,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외교관 출신 인사가 이를 공개 증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로켓포 3만발' 억류 선박 석방 작전에도 관여
류씨는 평양 외무성에 근무하던 2016년 이집트에 억류된 북한 '제순호(Jie Shun·지선호)' 선원 23명을 석방시키는 임무도 맡았다.
당시 캄보디아 국기를 내걸고 북한 해주항을 출발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항으로 향하던 제순호는 미국이 수집한 정보를 전달받은 이집트 당국이 억류해 수색한 결과 로켓추진수류탄(RPG) 3만발가량이 적발된 바 있다.
미국 언론 보도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던 '제순호 억류'에 대해 류씨는 "북한이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2500만 달러 상당의 무기와 선박을 모두 떼인 사건"이라고 무기 거래 사실을 확인했다.
외무성에서 이집트를 담당한 경험이 있었던 류씨는 선원 구출(석방) 작전 과정에서 북한과 무기거래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 '딸의 미래' 때문에 탈북
류씨는 평양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군 복무 후 외무성에 들어가 중동 지역 부서와 공관에서 근무한 '엘리트 외교관'이었다.
북한의 경우 군수·경제 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동 지역 국가들을 핵심 외교 대상으로 삼으며, 상당한 실력과 배경을 갖춘 전문 인력들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쿠웨이트 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2017년, 유엔 대북제재결의 여파로 대사가 추방되고 외교관 수도 9명에서 5명으로 축소가 됐다. 차석으로 있던 류씨가 '대사대리'를 맡게 된 계기였다.
류씨가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딸의 미래'다. 그는 "탈북을 결심하는 과정엔 고민도 번뇌도 고충도 많아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결국엔 딸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어서 결심했다"고 했다. 일부 국내 언론의 '대사관에서 사고를 일으켰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류씨는 "딸이 적응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며 "딸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 정말 행복하고 뿌듯하다"고 했다.
딸이 한국에 와서 제일 좋았던 것은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딸은 또 좋은 점이 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프리덤(freedom)"이라고 답을 했는데 '머리를 마음대로 기를 수 있는 자유'라고 한다.
그의 아내도 한국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이른바 '북한 금고지기'의 딸이 한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온수'였다고 한다. 류씨는 자신의 아내가 "24시간 온수가 나와서 목욕도 자유롭게 하고, 설거지도 따뜻하게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며 "북한 집에선 온수란 건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 영화 '국제시장'과 '고지전'으로 본 6·25
그는 탈북 이전에도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봤는데, 드라마는 특히 사극을 좋아했다고 한다. 해외에서 즐겨봤던 드라마로는 '불멸의 이순신' '주몽' '정도전' 등이 있다고 했다.
영화는 '국제시장'과 '고지전'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액션영화 '범죄도시'도 재미있게 봤고, 한국에 와선 '기생충'을 보고 한국 영화 수준에 크게 놀랐다고 했다.
특히 '고지전' 전투장면을 보면서 민족 분단의 아픈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국제시장'의 흥남철수 장면에서 '탈북 1세대'와 마찬가지인 그들이 가족과 헤어져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왜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하느냐'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모두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 6·25전쟁에 대한 관점도 새롭게 가지게 됐다. 북한에선 '북침'으로 배웠던 6·25전쟁이 김일성이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역사관을 다시 설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 '北 핵심 외교관'을 사실상 '방치'한 정부
북한의 주요 외교 대상인 중동에서 참사관급 대사대리를 역임하다 탈북했지만, 한국에선 별다른 과업 없이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다.
'한국 정보당국이나 정부 쪽에서 별다른 요청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류씨와 같이 정보 활용 가치가 높은 고위급·핵심 탈북인사들을 국정원 내부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등에 근무를 주선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다. 전문가들은 류씨와 같은 인물이 특별한 역할 없이 대학원생으로 지내는 현실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류씨는 참사관급 대사대리란 직책은 물론, 북한 '김정은 금고지기'로 불리던 전일춘 39호실장의 사위란 신분 때문에 더욱 상징성이 큰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장인에 대해 "노동당 39호실 실장으로 계속 근무해오다 2017년 9월 심장 쇼크로 한 달 동안 입원했고, 10월부터 39호실 고문으로 지내다 2019년 4월 심장 스텐트 수술을 받고 은퇴했다"고 전했다.
김정일의 남산고급중학교 동창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서도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잊을만하면 나왔던 '전일춘 경질설'에 대해선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 "건강상 이유로 은퇴를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39호실에 대해 "중앙의 경우 산하에 대성·대흥·금강·묘향지도국 등이 있고, 지방엔 '5호관리부'란 조직으로 구성된 독립적 체계를 갖춘 기구"라며 "무역권과 수출입 허가권 특수기관으로 외화벌이를 독점하고, 마식령스키장·대동강과수농장·문수물놀이장과 같은 김정은 치적 사업 건설에 자금을 지출한다"고 증언했다. 김정은 명의로 지급되는 각종 선물을 비롯해 사치품 조달과 구입도 모두 39호실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9호실이 3층 서기실의 9호실이란 의미냐'는 질문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류씨는 북한의 대표적 금융기관으로 유엔 대북제재 대상에도 줄곧 거론되는 '고려은행'이 이미 7년 전 대성은행 산하 '고려자금처'란 이름으로 흡수돼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근까지 국내외 언론들과 정부기관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은행을 보도하거나 제재를 가한 셈이다.
■ 류현우가 본 태영호·조성길 망명
류씨는 쿠웨이트 근무 시절이던 2018~2019년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망명과 한국 입국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외교관이 망명할 경우 해당 기관의 인사 담당자와 책임자가 연대 책임을 지고, 가족들도 연좌제로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조성길 전 대사대리의 한국 입국 소식이 탈북 결정에 영향을 줬느냐'는 물음엔 아니라고 답했고, 2016년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탈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건 아니라고 했다.
먼저 탈북해 정착한 두 외교관 출신 인사를 아직 만나진 못했지만, "여건이 조성되면 꼭 만날 계획"이라고 했다.
처가와 장인은 많이 알려졌지만, 본인 가족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는 류씨에게 가족 배경을 물었으나, 그는 "극히 평범한 집안"이라고만 답했다.
그의 어머니는 현재 83세로 북한에 남아있다. 류씨는 부모가 자신 때문에 피해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라며 "21세기에 봉건적인 연좌제가 작동되는 게 경악스럽다"고 했다.
■ "北 현실 전파…죽음도 각오"
류씨는 앞으로 "북한 현실에 대해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며 "북한 주민 인권 개선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이바지하겠다"고 했다. 대외적인 공개 활동을 많이 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북한의 위협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엔 "탈북을 결심할 땐 이미 죽음을 각오한다"며 "북한이 암살이나 테러를 한다면 오히려 저들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세계 앞에 폭로되는 것"이라고 했다.
세 차례에 걸친 만남을 통해 본 그는 상당히 진솔하고 솔직한 인상이었다. 보안엔 신경을 많이 쓰는 조심성을 보였다. 코로나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한국 의료진에 대한 감사 인사를 방송에 꼭 전해달라고 하는 감성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는 하고픈 말이 많은 듯했고, 말했지만 보도하지 못한 내용도 꽤 있었다. 못다한 말은 다음 인터뷰를 기약하기로 했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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