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 한국 최초의 디자이너가 돌아본'대한민국 패션史'
김정우 기자
2008. 10. 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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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디자이너가 돌아본「대한민국 패션史」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노라 노 著 / 황금나침반 刊)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2부 쇼가 마칠 때쯤, 사회자 영화감독 이봉래씨가 디자이너를 소개했다.
『오늘의 주인공 노라 노!』
노라 노, 대한민국 패션史의 주인공이다.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고, 최초의 기성복을 만들었다.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펄시스터즈」의 판탈롱 패션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들이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여든의 나이에 접어든 그녀가 자신의 평생을 다룬 책을 냈다.
노라 노(본명 盧明子)는 우리나라 초대 방송관리국장이었던 盧昌成(노창성)과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인 李玉慶(이옥경)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던 申應均(신응균) 대위와 결혼, 신혼생활 열흘 만에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내게 된다. 시집과 친정의 갈등 속에 결국 이혼한 그녀는 「노라」라는 새 이름을 갖고 미국으로 떠난다.
6·25 직전에 귀국한 그녀는 「노라 노 꾸뜨리에」(1950년)와 「노라 노의 집」(1952년)이란 양장점을 열어 고급의상실 붐을 일으켰다.
『내가 염색한 미군 군복바지를 입고 다니던 戰後의 그 극빈한 시절에도 어딘가에 패션계가 있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소설가 박완서)
노라 노의 도전은 계속됐다. 연극인 김동원씨의 「햄릿」 의상을 만들었고, 유치진씨의 작품 「은장도」의 사극 의상을 디자인했다.
1956년, 그녀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 도전장을 던졌다. 「아카데미 줄리앙 아르 에콜」 프랑스 패션을 공부한 그녀는 이탈리아·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며 예술적 감성을 키웠다.
1978년엔 뉴욕에 진출해 「7번가의 여왕」이란 찬사를 받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엔 중국에 공장을 세워 1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팔순을 맞이한 그녀의 직함은 여전히 「현직 디자이너」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는 현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마라. 트렌드의 웨이브에 직접 올라타 끝없는 도전을 즐겨라』●
月刊朝鮮 2007년 9월호 中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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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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