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 / “세종시法 무효” 5년째 법정투쟁 중인 崔大權·全基成 교수

김정우 기자 2010. 5. 2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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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대 사안을 여야가 기록도 없이 협의하는 것은 조선시대만도 못한 처사”

“수도분할 반대 최선봉에 섰던 이재오· 전재희·최경환… 지금은 왜 침묵하는가”

⊙ 행정도시 규모 논의한 국회 소위원회 7회 중 6회는 비공개 회의
⊙ 두 교수, 국회 상대로 2006년 정보공개 청구소송, 1·2심은 기각, 현재 대법원 계류 중
⊙“14일(실 근무일) 걸린 행정도시법, 국회 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통과시킨 법률 중 하나”
    (全基成 교수)
⊙ 대법원에서 ‘공개하라’ 판결할 경우, 기록 없는 행정도시법은 무효 될 수도
⊙ 류근찬 의원: “여·야가 정치적 거래·흥정·야합 통해 합의… 절차적으로 커다란 하자”
    (2005년 2월 국회 속기록)

崔大權
⊙ 1937년 강원도 춘천 출생.
⊙ 춘천고·서울대 법대 졸업. 美 미시간대 대학원 법학 석사, 美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대학원 법학
    박사, 同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 서울대 법대 교수, 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부장, 한국사회이론학회장, 국제인권법학회 부회장,
    한국공법학회 연구이사, 서울대 미국학연구소장, 한국입법학회장, 한국인문사회과학회 부회장,
    대통령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 등 역임.
⊙ 저서: <법사회학> <미국의 통상정책 결정과정> <사례중심 헌법학> <헌법학강의> 등 다수.
⊙ 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한동대 석좌교수

全基成
⊙ 1938년 강원도 원주 출생.
⊙ 춘천고·고려대 법대 졸업. 국민대 행정대학원 석사.
⊙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겸임교수,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강사, 고려대 정책대학원 강사,
    대통령소속지방이양추진위원회 분과위원장, 서울시의회 입법고문, 한국지방자치학회 고문,
    한국입법학회 부회장, 희망제작소 조례연구소 소장 역임.
⊙ 현 고려대 법무대학원 교수(강사),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 연구위원 겸 조례크리닉센터 센터장,
    서울시·경기도의회 입법고문.
⊙ 저서: <자치법규 입법심사 기준표 해설집> <조례는 법률의 씨앗이다>

최대권 교수(왼쪽)와 전기성 교수(오른쪽).

지난 9월 21일 오전, 낯익은 전화번호가 필자의 휴대전화에 찍혔다. 수도이전 논란이 한창이던 5년 전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의 입법고문을 맡았던 全基成(전기성) 교수였다. 전 교수와 그의 동창인 崔大權(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4년 헌법재판소(이하 憲裁·헌재)의 행정수도 이전 違憲(위헌) 결정에 ‘이론적 틀’을 제공해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2007년 말 두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나 그들의 법정투쟁기를 취재했지만, 기사화되지는 못했다. 2년 만에 다시 연락이 된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세종시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네요. 다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혔던 ‘두 元老(원로) 법학자의 세종시 법정투쟁기’ 취재는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2004년 1월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목련실, 崔相哲(최상철), 전기성, 韓甲洙(한갑수), 柳東吉(유동길), 金炯國(김형국), 孫楨睦(손정목) 등 머리가 희끗희끗한 원로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공 분야는 모두 달랐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였다. 바로 ‘수도이전 반대’였다.
 
 이들은 모임 나흘 전인 2003년 12월 29일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여러 방향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후 한국을 몇 차례 들었다 놓았던 헌법소원과 기나긴 법정싸움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최초로 특별법에 대한 ‘위헌’ 개념이 제시됐다. 전기성 당시 한양대 교수는 이후 2개월 반 동안 전 세계 국가의 헌법을 조사한 후 스페인, 러시아, 이탈리아 등 총 85개국이 헌법에 수도를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내용은 2004년 3월 26일에 열린 ‘수도발전자문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 1차 발표됐고, “특별법이 위헌이니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회의에 참석한 李明博(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이에 대해 “서울시가 돕겠다”며 적극 지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전 교수는 같은 해 5월 4일 열린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 창립총회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적법성 평가>란 논문을 발표, 수도가 헌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老교수의 전쟁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가 행정수도 문제에 뛰어든 것도 이즈음이다. 국내 헌법학계에서 최고 권위자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의 관습헌법 논리는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진다.
 
 헌재의 위헌 판결 이후 한국은 다시 대립구도로 돌아섰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수도이전이 아닌 ‘행정복합도시’ 건설을 추진했고, 이듬해인 2005년 3월, 특별법이 통과됐다. 최 교수와 전 교수가 소속된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은 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위헌소송을 각하했다. 당시 언론은 ‘사실상 合憲(합헌)’이라고 보도했고, 이로써 뜨겁게 달아올랐던 논쟁도 수그러들었다.
 
 그 후 2년이 지난 2007년 10월, 최대권 교수와 전기성 교수를 처음 만났다. 충남 연기군 현장은 이미 공사 준비가 한창이었고, 여론은 ‘이미 흘러간 사안’을 잊은 듯 잠잠했지만, 두 老(노)교수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허리 디스크로 걸음이 불편했던 최 교수는 이날 필자에게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놓았다.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정보비공개결정취소 소송 서류였다. 소송 내용은 2005년 1~2월에 비공개로 진행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소위원회’ 회의의 참석자 발언내용과, 결정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한 의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최 교수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행정도시법안을 국회 小委(소위)에서 아무런 기록 없이 여야가 비공개로 합의한 것은 헌법과 법률의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 결정입니다.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우리라도 나서서 이렇게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헌재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 후 구성된 ‘국회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결정후속대책 및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신행정수도후속대책소위원회’란 긴 이름의 소위는 2005년 1월 10일부터 2월 17일까지 총 7회에 걸쳐 회의를 개최했다.
 
 이 중 3차 회의를 제외한 6회에 걸쳐 12시간46분 동안 진행된 회의는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법안 제출 방법 및 후속대책(81분)’ ‘법안대체 토론 및 전문가 의견 청취(189분)’ ‘행정부처 이전규모(97분)’ 등을 논의한 2·4·7차 회의는 기록까지 중지됐다.
 
최대권 교수(가운데)와 전기성 교수(왼쪽), 그리고 사건을 무료 변론하고 있는 정철승 변호사(오른쪽)가 한 자리에 모여, 정보공개청구 소송 대법원 상고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실상 ‘세종시 무효’ 소송
 
 최 교수와 전 교수는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2006년 2월 국회의장을 상대로 소위 참석자 명단과 발언내용, 그리고 각 위원의 찬반 여부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회의별 참석자 명단은 공개됐지만, 발언내용과 위원별 찬반여부는 비공개 결정이 났다.
 
 두 교수는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는 헌법 제50조와 국회법 제75...

계속...

월간조선 2009년 11월호 (기사 全文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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