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 ‘연평도 北傀도발 갤러리’ 개설한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김정우 기자
2011. 1. 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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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터넷은 左右 대립이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 종북세력이 과감히 주장 펼치는 공간”
⊙ 2008년 ‘김정일 死後 갤러리’, ‘촛불집회 갤러리’에 이어 최근 ‘연평도 北傀도발 갤러리’ 개설⊙ 국내 10위권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親盧 사이트’에서 右派 사이트로 변신하나
⊙ “미친개에게 준 고깃덩어리, 새끼강아지가 3대째 물고 있다”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
2010년 10월 1일에 만난 김유식(金裕植) 대표는 문득 ‘빨갱이’ 이야기부터 꺼냈다. 국군의날에 로고나 타이틀을 바꾼 포털이 하나도 없다는 이유였다. 그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는 “위대한 우리 국군 만세”란 타이틀을 걸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천안함 폭침, 각종 국가기념일 땐 대다수 포털과 언론사들이 너도나도 로고에 조화도 넣고, 카네이션도 넣으면서 기념했죠. 국군의날 땐 아무도 안 하더군요. 천안함 폭침(爆沈)이 터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모두 안보 불감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이러다 또 북한이 공격을 해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53일 후, 그의 예측은 현실이 됐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해안포 공격으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고, 서해 연평도 주민들이 인천 등지로 대피했다. 6ㆍ25전쟁 이후 처음 당한 본토 포격에 국민은 충격에 휩싸였다. 모든 언론과 여론이 연평도를 주목하고 있을 때, 김 대표가 메일을 보내왔다. 글 제목은 ‘종북주의자들의 어불성설’이었다. 6ㆍ25전쟁과 북한 고난의 행군으로 시작해 북한 정권을 비판한 글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미친개’와 같이 살면서 고깃덩이를 가져다주며 평화 공존을 논하지 말고 몽둥이로 매우 친 다음에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미친개에게 물려서 상처 입을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그 미친개는 미친 강아지를 낳아가며 3대째 계속 (우리를) 물고 있다. 언제까지 고기를 주면서 달래줄 것인가? 후세에 우리의 자손들이 계속 미친개에게 물려가면서 살아가야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누가 봐도 미친개는 김정일(金正日) 정권이고, 고깃덩어리는 대북 퍼주기 자금이다. 인터넷 진보 여론을 주도하며 2002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커뮤니티 기업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네티즌 수사대’의 산실
1999년 디지털카메라 정보를 교류하는 소규모 게시판 사이트로 출발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로 성장한 디시인사이드는 10여 년 동안 한국 인터넷 여론과 문화를 주도해 왔다. ‘본좌’, ‘짤방(짤림 방지)’,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안습(안구에 습기)’ 등 인터넷상에 떠돌던 신조어들은 대부분 디시인사이드에서 나왔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나 “~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되지” 등 시사성 있는 유행어도 같은 출처다.
2000년대 초 언론에서 ‘네티즌의 여론’이라고 인용한 기사의 출처는 대부분 디시인사이드였다. 1000여 개의 주제별 갤러리(게시판)에서 하루 수천 개의 글이 쏟아졌고, 인터넷 활동력이 강한 이용자들이 다른 사이트로 이를 전파하면서 사회적 어젠다를 만들어나갔다.
웹사이트 규모도 커졌다. 2010년 12월 현재 하루 페이지뷰가 약 5000만 회로 국내 인터넷 사이트 중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순 방문자(UV) 수는 130여만 명으로 종합 34위(랭키닷컴 기준)인데, 이는 이용자의 사이트 방문 빈도와 충성도가 높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부작용도 있었다. 일명 ‘악플’이라 불리는 악성댓글이 넘쳐났다. 철저하게 비(非)실명 게시판으로 운영돼 무책임한 비방과 욕설이 난무했다. 욕설이 나온 글을 운영자가 삭제하면, 글자를 일부 수정해 올리는 편법도 동원됐다. 톱스타들의 자살을 불러온 악성 댓글의 원조도, 최근 배우 김부선이 성관계했다고 폭로한 정치인의 신상을 밝혀낸 일명 ‘네티즌 수사대’도 결국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이었다.
디시인사이드엔 한국 인터넷 문화의 긍정적 측면과 부작용이란 두 극단이 한 공간에 담겨 있다. 이들이 주도한 인터넷 여론은 사회적 이슈로 재생산된다. 2004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탄핵 반대 운동과 총선 투표운동을 주도하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5년엔 ‘과학 갤러리’ 이용자들이 생물학 연구 사이트인 ‘브릭(BRIC)’과 함께 황우석(黃禹錫)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에 대해 최초로 의혹을 제기했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엔 ‘김밥부대’, ‘유모차부대’, ‘아고라 좀비’ 등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좌·우파 대립의 장을 만들었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저희 사이트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 싸움은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다. 그러면 차라리 이기는 병신이 돼라’는 겁니다. 10년 동안 치열하게 논리 싸움을 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죠. 아무리 인신공격하고 비난해도 크게 상처를 받지 않는 내성이 길러졌어요. 이는 좌·우파 이용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례입니다.”
김 대표는 ‘김정일 死後 갤러리’, ‘촛불집회 갤러리’에 이어 최근 ‘연평도 북괴도발 갤러리’를 개설했다. |
유언비어 퍼뜨리면 “인증부터 해라”
이용자들은 좌우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지만, 김유식 대표는 자신을 ‘보수우파’라고 밝혔다. ‘김정일 사후 갤러리’를 만들어 북한 정권 비판의 장을 만들었고, 2008년 6월 25일엔 첫 화면 제목으로 ‘반공!멸공!’을 써 논란을 불러왔다. 정치 관련 갤러리 이용자들의 성향도 점점 우파로 바뀌었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개설된 ‘촛불집회 갤러리’엔 MBC
아고라 게시판에 자칭 ‘전문가’나 ‘경험자’들이 나서 근거 없는 논란을 불러오자,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은 그들을 대상으로 일명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벌였다. ‘MB OUT’ 등 현 정부를 비난하는 듯한 제목의 글들을 아고라 게시판에 올려 많은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글 내용은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영어 논문이거나 “일본강점기 때 네이버가 친일 행각을 벌였다”는 ‘낚시성 글’이 대부분이었다. 내용엔 전혀 관심없고, 반(反)정부적 제목만 보고 추천을 누르는 아고라 이용자들을 조롱한 셈이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촛불시위 때 거짓선동의 참모습을 본 이용자들이 2010년 초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원래 반골(反骨) 기질이 강해 남의 말을 잘 믿지 않아요. 그래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일단 ‘인증부터 하라’고 하죠. 그런데 광우병 촛불시위와 천안함 음모론은 그들의 주장에 인증이 잘 안되는 겁니다. 정치 이슈는 주로 ‘정치사회 갤러리’에서 다뤄지는데, ‘친노(親盧)’라던 게시판이 어느새 ‘수구꼴통’이란 비판을 받고 있어요. 현재 대형 커뮤니티 중에 우성향은 디시인사이드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커뮤니티 갤러리가 한쪽으로 편향되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디시인사이드의 기본 원칙이 철저하게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보수적인 이념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갤러리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가끔 댓글은 달지만, 글은 웬만하면 쓰지 않습니다. 굳이 글을 쓰고 싶으면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에만 글을 남기죠.”
―지나친 우경화에 대한 부작용은 없습니까.
“일부 이용자들이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글을 쓸 땐 삭제하기도 했어요. 한 예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탱크를 타고 홍어가 널린 시장바닥을 밟고 지나가는 합성 애니메이션이 올라왔습니다. 호남을 비하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명백하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죠. 운영자는 ‘게시물을 지워야 하는지 지우지 말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면 일단 지우지 말자’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호남 쪽 이용자들은 ‘과메기’를 끌어내 영남을 욕하죠. 두 달 전부터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기로. 디시인사이드는 자체 순화 기능이 있거든요. 이용자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아니다 싶으면 저절로 수위조절이 됩니다.”
인터넷은 종북세력의 勢 확대에 가장 좋은 매체
디시인사이드 김정일 死後 갤러리에 올라온 패러디 합성 게시물들. |
김 대표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광고 영상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하는 등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지나친 욕설이 포함될 경우엔 게시물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좌우 대립에 대해선 “인터넷은 TV 토론 프로그램처럼 공정한 논쟁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자 중 꽤 많은 이가 386세대입니다. 아무래도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선 자신부터 반(反)정부적 성향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겠죠. 포퓰리즘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종북성향을 갖고 운영하게 됩니다. 과거 일부 대형 포털들이 그런 마인드에 기초해 운영을 했고, 실제로 제가 만난 운영자 중 상당수가 그런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일부 포털 뉴스가 종북세력에 유리한 기사를 앞쪽에 배치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블로그를 포털 전면에 내세우는 방법으로 이용자를 호도했다”고 폭로했다.
“한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아주 순수한 시민운동이기 때문에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글을 게시하면 게시물을 삭제하고 강제 탈퇴시키겠다’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또 한 유명 야구 커뮤니티는 새로 가입한 이용자를 상대로 ‘우익 사이트에 가입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강제 탈퇴시키겠다’며 실제로 이행했어요. 여성 포털과 인터넷 카페에선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죠.”
―인터넷 공간의 좌우 대립을 국민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현재 인터넷은 좌우 대립이 이뤄지는 공간이 아닙니다. 어느새 종북세력이 과감히 주장 펼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어요. 가끔 우익보수 이용자들이 ‘그건 아니다’며 반론을 제기하면 수많은 반대 성향의 이용자들이 집단으로 그를 매도해 버립니다. 자신의 의견 그대로를 나타내기가 쉽지 않죠.”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습니까.
“젊은 층이 많은 좌파세력이 일찍부터 인터넷을 이용한 반면, 비교적 연령이 높은 우파세력은 인터넷이 가진 힘을 간과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도 유명 인터넷 논객이라 하면 먼저 좌파부터 떠오르잖아요.”
―북한이 인터넷을 이용해 대남(對南) 선전선동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종북세력은 원래 선전선동에 강합니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선전선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오프라인에선 소수 대 다수가 토론해도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룹니다. 인터넷은 달라요. 승자독식 체제이기 때문에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면 그대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선전선동 효과가 크죠. 우익세력은 종북세력의 텃세와 악플이 두려워 토론 공간을 떠나지만,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논리에 밀려 꼬리를 감춘 것처럼 보이죠. 종북세력은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가장 좋은 매체로 인터넷을 꼽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토론과 설전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구치소에서 다이어트했다”
방문자 수와 페이지뷰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경영 사정은 현재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코스닥 상장사를 통한 우회상장 과정에서 소송에 휘말려 2008년 말 압수수색과 법정구속을 당했다.
―어쩌다 구속까지 당했습니까.
“그런 분야에 너무 무지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죠. 집행유예를 예상하고 항소심을 준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법정구속이 돼버렸어요. 기업 사기꾼들한테 완전히 걸려든 셈이죠. 주범들은 모두 해외로 도주해 잘살고 있습니다.”
―살이 많이 빠졌는데요, 구치소 생활이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19kg 정도 빠졌습니다. 그런데 힘들어서 빠진 게 아니라 기왕 구속된 것 ‘다이어트라도 하자’ 생각해서 뺀 겁니다. 못 먹어서 빠진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구치소에 생각보다 먹을 게 많더라고요. 함께 수감된 한 남자는 두 달 동안 20kg 쪄서 나가더라고요.”
그의 공백으로 인해 회사는 큰 경영상 타격을 입었다. 계속된 적자로 2010년 주 매출원이었던 EC(상품판매) 부문을 접어야 했다. 200억원대를 유지하던 매출은 30억원대로 줄었고,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구조조정도 감행해야 했다. 홈페이지는 번창하지만, 돈벌이는 잘 안되는 셈이다. 어려운 사정을 접한 일부 이용자들은 “디시인사이드와 유식대장(김유식 대표의 별명)을 살리자”며 광고 수익을 높이는 활동까지 추진했다.
―2007~2009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 등 새 분야에 대한 기획과 성장이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진 시기입니다. 디시인사이드는 그 시기를 놓친 감이 있습니다.
“실제로 2006년부터 SNS를 기획하는 등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됐었죠. 그런데 제가 이 꼴이 되면서 발판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여전히 많다고 봐요. 방문자 수는 꾸준히 상승해 최근 역대 최고점을 기록했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곧 출시될 예정입니다.”
―지금이 디시인사이드의 위기인가요, 아니면 기회인가요.
“사람들이 ‘디시인사이드 한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2000년부터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들어왔어요. 재무제표상 조금 힘들 뿐, 사이트 지표는 단 한 번도 하락한 적이 없습니다. 이 정도 잠재력이면 경영상황이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노력해야죠.”
‘김정은 갤러리’도 개설 예정
―트위터는 이용해 봤습니까.
“전혀 안 해봤습니다. 왠지 경쟁사 제품을 쓰는 느낌이 들어서요. 포털 다음과 경쟁한다는 생각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는 한메일(hanmail) 계정도 없습니다. 참 소극적인 마인드죠.”
―시간 날 땐 주로 뭐합니까.
“디씨질(‘디시인사이드 서핑’의 줄임말) 하죠.”
―‘IT 강국’이라는 한국이 최근 인터넷 서비스에선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해외 기업에 많이 밀리는 느낌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두 개의 큰 축이 있습니다. ‘정보’와 ‘재미’죠. 영미권은 애초부터 인터넷 서비스가 ‘정보’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고도의 디지털 아카이브(archive)를 축적, 검색 산업을 발전시켜 활발한 정보 교류의 장을 구축했죠. 그러다 SNS와 온라인게임 시장으로 확대됐죠.
한국은 반대입니다. 영어권이 아니라 애초에 정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정보가 없으니 ‘정보검색사’나 ‘정보 찾기 대회’가 나온 게 아니겠습니까. 유머와 엽기 등 ‘재미’부터 추구했죠. 싸이월드와 같은 SNS 서비스도 먼저 발달했죠. 정보는 포털의 폐쇄 정책 덕에 꽁꽁 묶였고요. 지금은 재미와 정보, 모두 밀리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김정일 사후 갤러리는 있는데, 김정은 갤러리는 아직 없네요.
“곧 만들 계획입니다. 김정은 등장 직후 개설하려고 했는데, 사진이나 정보가 워낙 없어서 못했습니다. 갤러리란 게 기본적으로 사진이 있어야 합성도 하고 패러디도 하거든요. 김정일은 기쁨조도 있고 여러 가지 활용할 만한 자료가 많습니다.”⊙
월간조선 201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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