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의 파워블로거 4人 인터뷰
김정우 기자
2009. 1. 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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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블로거들의 세계
한국엔 최소 1300만개 이상의 블로그 존재. 20대 젊은이 중 약 70%,
직장인 3명 중 1명이 블로그를 직접 운영. 이들이 쏟아내는 글 수는
월 50만개에 육박. 그러나 블로거를 직업으로 삼아 밥을 먹고 살 수는 없다.
200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블로그는 이미 메이저 미디어”라고 선포했을 때, 한국인 대다수는 블로그란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블로그는 한국의 대표 온라인 미디어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언론사들이 기자블로그 지원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전문기자들을 육성해 ‘파워블로거’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정책 블로그를 내세워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업은 블로그 기자단을 선정해 블로그마케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엔 최소 1300만개 이상의 블로그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젊은이 중 약 70%가, 직장인 3명 중 1명이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쏟아내는 글 수는 월 50만개에 육박한다.
한국의 블로거들은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표적인 ‘파워블로거’ 4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은 모두 블로그를 새로운 대안적 미디어로 제시했고, 세계를 바꾼 블로그가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것이라 전망했다.
徐明德(떡이떡이)
“서명덕 기자의 人터넷 세상”〈itviewpoint.com〉
▣ 개설일: 2004년 11월 23일
▣ 구독자수: 2만명 이상
▣ 누적 방문자 수: 808만명
▣ 누적 글 수: 4244개
▣ 분야: IT, 웹2.0, 블로그 미디어
최다 구독자 수 확보한 ‘블로거의 지존’
“저 같은 사람한테서 뭐 쓸 만한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파워블로거 인터뷰를 위해 徐明德(서명덕·31)씨를 만났을 때, 그의 첫 인사는 ‘기삿거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씨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가진 블로거다. 최소 2만명 이상이 그의 포스트(기사)를 정기적으로 받아보고 있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5만여 명, 큼직한 이슈가 터지면 하루 10만을 훌쩍 넘는다. 그의 블로그 <서명덕기자의 人터넷 세상>엔 지금까지 총 4300여 개의 글이 올랐고, 국내 최대 메타블로그 사이트인 ‘올블로그(allblog)’가 뽑은 ‘톱100 블로그’에 2년 연속(2006년 1위, 2007년 3위) 이름을 올렸다. 블로고스피어(블로그 세계)에서 서명덕은 ‘지존’으로 통한다.
서씨의 최종 경력은 ‘조선일보 기자’다. 2007년 8월 인터넷뉴스부로 입사해 1년 동안 근무하다 2008년 8월 그만뒀다. 퇴사 이유가 이랬다.
“제 정치적 성향은 딱 중간입니다. 그땐 조선일보의 좋은 사례를 보고 들어왔는데, ‘저쪽’ 분들(안티조선)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나 봐요. 퇴사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社內(사내) 문제도 있었고.”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서씨의 블로그 서버가 갑자기 다운됐다. 이유는 해킹. 촛불시위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그는 1주일 동안 새벽 내내 서버를 들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서씨가 처음 블로그를 만든 것은 2004년 가을이었다. 당시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기자였던 그는 ‘색다른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져주기 위해’ 개인 블로그를 개설했다. 2004년은 ‘올블로그’(메타블로그)와 ‘테터툴즈’(설치형 블로그 서비스)가 시범운영을 막 끝내고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던 때였다.
“대부분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다음 ‘카페’ 서비스를 주로 이용했었죠. 블로그는 원시시대나 다름없었습니다. ‘RSS’나 ‘태그’란 개념 자체가 흔치 않았어요. 정말 이 바닥의 ‘마니아’들만 모인 공간이었습니다.”
초기엔 여느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방문자가 많지 않았다. 그가 처음 유명세를 깨달은 것은 구독자 수가 네 자리를 넘어섰을 때였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정기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서씨는 자신의 블로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을 ‘꾸준함’이라고 말했다.
“블로그를 시작한 후 4년 동안 단 한 번도 손 놔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글을 잘 쓰거나 콘텐츠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꾸준하게 빠지지 않고 쓰니까 신뢰가 쌓인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기 쓰는 것도 귀찮은데, 공개된 블로그는 개인 일기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블로그 파워는 꾸준함에서 갈립니다.”
美, 기자와 블로거의 경계 사라져
서씨는 현재 무직이다. 주 활동이 블로깅이니 ‘專業(전업)블로거’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전업이란 단어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업·프로 블로거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창 방문자가 많을 때 사람들이 제게 그랬어요. ‘블로그로 떼돈 벌겠다’고. 몇 년 전 구글 광고 서비스가 한창 유행했을 당시 제 최대 수익이 한달 100만원 조금 넘었어요. 지금은 10만원도 넘기 힘들고요. 블로그로 먹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씨는 블로그로 얻는 수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광고를 통한 직접수익과 강연 및 기고를 통한 간접수익이다. 전업으로 블로깅을 하기 위해선 수익이 보장돼야 하지만, 현재 한국 인터넷 광고 환경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직·간접의 중간에 걸쳐있는 게 리뷰 수익이에요. 신제품 리뷰를 해주고 그 제품을 받는 시스템이죠. 문제는 종종 객관성을 잃는 블로그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광고와 콘텐츠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블로그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그는 블로그가 온라인상에 보여지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자 평판이라고 했다. 블로그를 전업을 해서 상용화가 될 경우 블로그 본래의 맛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언론사는 기사와 광고가 구분돼 있는데, 1인 미디어인 블로그는 이를 혼자 처리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온 모델이 ‘연합광고 모델’입니다. 유명 블로거들을 모아 공통된 영역에 광고를 게재해주고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죠. 미국의 ‘페더레이티드 미디어(Federated Media)’와 국내의 ‘태터앤미디어(TATTER&MEDIA)’가 좋은 예입니다. 그대로만 되면 큰 문제가 없는데, 만약 광고가 콘텐츠에 영향을 끼친다면 블로그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겠죠.”
서씨는 2008년 8월부터 <떡이일보>란 이름의 이메일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탑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발행자가 인터넷 곳곳에 펼쳐진 정보 중 필요한 정보를 취합해 구독자들의 이메일로 발행하는 형식이다.
“아직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주로 이용하잖아요. RSS가 아무리 이상적인 방식이라 하더라도, 블로거는 철저하게 콘텐츠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易地思之(역지사지)란 개념으로 봤을 때 이번 시도는 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블로거냐, 기자냐”라며 정체를 묻는 질문에, 서씨는 그냥 ‘블로그 저널리스트’로 불러달라고 했다. 저널리즘적 요소가 들어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직장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바빴다. 강연과 기업 행사가 매일 이어지고 있었고, 글로벌 IT 회사 CEO와의 간담회도 일정에 포함돼 있었다.
“미국은 이미 블로거와 기자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졌어요. 해외 콘퍼런스를 나가보면, 프레스룸을 기자와 블로거가 같이 씁니다. 실리콘밸리에선 블로그들의 영향력이 웬만한 기성미디어를 능가하고요.”
서씨의 대학 전공은 영어학이다. 현재 IT 관련 자격증 12개를 갖고 있다. 네트워크 관리사, 무선인터넷 관리사, 리눅스 마스터 등 쉽게 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대단한 블로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면 몇 년째 똑같은 머리말을 볼 수 있다.
“모든 블로거들이 유명해지는 그날까지.”
明承垠 (그만)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ringblog.net〉
▣ 개설일: 2003년 11월 26일
▣ 구독자 수: 2683명 이상
▣ 누적 방문자수: 474만명
▣ 누적 글 수: 1331개
▣ 분야: 언론, 미디어, 웹2.0, IT
미디어 2.0 시대, 시사월간지에 큰 기회
“신문의 미래가 왜 어두울까요. 高(고)비용 低(저)효율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산업은 이미 포화상태인데, 새로운 매체들은 계속 생겨나면서 파이가 줄어들고 있어요. 반면에 블로그는 비용이 제로에 가깝죠.”
블로거 明承垠(명승은)씨는 웹 미디어 전문가다. 무명잡지 기자부터 시작해 IT 전문 칼럼니스트를 거쳐 지금은 1인 미디어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블로그 저널리즘이 미디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확신했다.
“현장취재기자 몇 명과 저명한 칼럼니스트만 언론사에 있으면 됩니다. 보도자료 등에서 나오는 기사들은 더 이상 유니크(unique)한 콘텐츠들이 아니에요. 포털 검색 결과에서 블로그 검색이 왜 뉴스검색보다 위에 있겠습니까. 기사보다 블로그가 더 유니크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예요.”
명씨의 블로그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는 2003년 11월에 개설했다. 현재 구독자 수는 2600명에 육박하고, 지금까지 쓴 글은 1331개에 이른다. ‘미디어 실험’을 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그는 본격적인 운영 1년 만에 2006년 하반기 올블로그 탑100 블로거 시상에서 전체 1위(총결산 3위)를 차지했다.
“2004년, 블로그가 포털의 서비스 중 하나이던 때였습니다. 블로거들 자신도 현실적인 영향력이 없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고요. 전 반대로 무한한 가치를 봤어요. 미국에선 이미 미디어 회사들이 블로그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씨는 처음부터 타 블로거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당시 대다수의 블로그들은 “쉽고 짧게 쓰고,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라”는 흐름을 뒤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블로그는 철저하게 텍스트 중심이었다.
“逆(역) 벤치마킹을 했습니다. 어렵고 길게 썼어요. 그림이나 사진보다는 텍스트 위주로 포스팅을 했습니다. 실험이었죠. 긴 글을 사람들이 과연 읽을까, 사람들이 누적된 브랜드를 처음 각인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블로그의 미디어적 가치 실현을 실험해봤습니다.”
―일종의 심층보도를 한 것이군요.
“한국 미디어의 가장 큰 취약점이 심층보도입니다. 전문기자를 찾기 힘든 나라, 수습기자부터 뽑아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키우는 나라, 규모는 미국을 따르고 구조는 일본을 좇는 나라…. 요즘 포털 뉴스가 전문성 없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죠.
―블로그 저널리즘이 기존 언론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블로그는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대립하는 대체재가 아니라 相生(상생)하는 보완재예요. 블로거가 아무리 뛰어나도 언론사와 직업 커뮤니케이터를 뛰어넘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의혹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습니다. 언론들은 항상 정보원을 찾기 위해 헤맵니다. 그런데 이미 블로그 세계에선 수많은 정보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외치고 있죠.”
명씨는 웹2.0 시대에서 <月刊朝鮮>과 같은 시사월간지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수많은 콘텐츠가 웹상에 존재하지만, 결국 심도 깊은 내용의 고급 정보는 책이나 월간지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그는 잡지매체가 “웹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글, 네이버 등 국내외의 포털들은 기본적으로 콘텐츠가 있어야 먹고 사는 구조입니다. 이들이 최근 책과 전문자료 아카이빙(디지털 콘텐츠 저장·관리)을 시작했어요. 깊이 있는 분석, 전후 사정을 보여주는 이야기,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콘텐츠는 역시 책 속에 들어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왜 미디어 2.0을 주장하면서 책을 냈겠습니까. 같은 이유입니다.”
‘시니어 블로그’ 사업에 기대
―“웹 2.0은 책 팔려고 나온 개념”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 의미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품은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중요한 것은 2.0 자체가 아니라 2.0이 말하는 가치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진화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 진화하고 있어요. 지금 블로그에서 싸우는 내용은 몇 해 전 PC통신에서 다루던 내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예전에 각 지역에서 직접 만나 다투던 내용들이죠.
구텐베르크는 단지 인쇄술을 개발했을 뿐이에요. 단순한 기술이 인쇄, 출판, 언론사업으로 발전했고,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았죠. 2.0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적인 미디어 2.0 모델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명씨는 라디오의 예를 들었다.
“라디오는 애초에 UCC로 출발해 UCC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모델입니다. 사연을 안 보내주면 라디오 구성 자체가 안 돼요. 또 최초의 미디어믹스 시장이 될 겁니다. 라디오는 기존의 전파와 함께 DMB, 인터넷, 팟캐스트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들은 휴대전화 문자,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냅니다. 라디오가 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연구해봐야 해요.”
명씨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대학생 시절이다. 1992년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그는 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악필이었어요. 글은 쓰고 싶은데, 써 놓고 보여주려니 워낙 글씨를 못 써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만난 거죠. 조판시스템에 심취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그래픽과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됐죠.”
명씨는 현재 야후코리아에서 기획자로 근무 중이다. 그는 앞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블로그’ 사업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깊은 통찰과 경험,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블로그로 표출될 때, 기존의 블로그 경향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분들에게 블로그로 역사를 기록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月刊朝鮮>의 팬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金訂均 (라디오키즈)
“라디오키즈@LifeLog” 〈neoearly.net〉
▣ 개설일: 2005년 5월 7일
▣ 구독자 수: 1792명 이상
▣ 누적 방문자 수: 784만명
▣ 누적 글 수: 1895개
▣ 분야: 영화, 리뷰, 음악
블로그로 DJ꿈 이룬 라디오 키즈의 생애
金訂均(김정균)씨의 꿈은 라디오 DJ다. 현재 포털업체 다음에 몸담고 있지만, 그는 음악을 선택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사연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의 방송을 수많은 사람들이 청취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세계에서 이미 ‘라디오 스타’다.
시작은 초라했다. 2001년 군 제대를 한 그는 호기심으로 한 채팅사이트에서 음악방송을 시작했다. 방문자는 20명 내외, 회원 수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졸업 후 취업을 한 그는 어쩔 수 없이 2년 동안 운영했던 커뮤니티 사이트를 닫았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블로그. ‘제로보드’란 툴을 이용해 만든 그의 첫 블로그 <라디오키즈@LifeLog>는 여전히 소박했다. 정보를 교류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공간으로의 목적이 더 컸다.
3년 후, 김씨는 누적 방문자 수 784만명을 거느린 블로거 DJ가 됐다. 오디오로그(AudioLog)란 이름으로 방송되는 그의 목소리가 애청자들을 끌어 모았다. 그의 방송을 MP3에 다운받아 퇴근길에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의 방송을 듣고 대학 방송국 DJ 경험을 되살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엔 한 고등학생이 수능 마쳤다며 댓글을 남겼어요. 알고 보니 6년 전 초등학생 시절 때 이미 제 방송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김씨는 리뷰 전문 블로거다. IT제품을 중심으로 영화, 음악, 희귀제품 등 각종 분야에 대한 수천 개의 리뷰들이 그의 블로그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방문자들이 많다 보니 반응들이 각양각색이다. 제품 사용에 대한 부러움을 표시하는가 하면, 기능에 대해 갑론을박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2007년 여름에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리뷰를 올렸어요. 좌우로 크게 치우쳤다기보단 지극히 일반적인 느낌을 표현했죠. 그런데 문제는 글이 포털 메인 페이지에 떠버린 겁니다. 이틀 동안 20만명이 블로그를 방문했죠. 댓글들로 서로 싸우더군요.”
총 197개의 댓글이 달렸다. 全斗煥(전두환) 前(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부터 ‘알바’와 ‘빨갱이’에 이르기까지 논쟁과 비난이 오갔다.
“가급적이면 정치적이거나 논쟁을 일으키는 글은 안 쓰려고 합니다. 악성 댓글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몰아서 들어와버리면 정말 답이 없더라고요.”
기술은 디지털로, 메시지는 아날로그로
김씨는 2006년 서명덕씨에 이어 ‘2006년 올블로그 탑100 블로거’에서 2위를 차지했다. ‘티스토리’, ‘위자드닷컴’ 등에서 인기블로그, 추천블로그로 선정됐고, 각종 블로그 랭킹사이트에서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는 파워블로거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꾸준함’이라고 말했다.
“파워블로거가 되려면 일단 글 자체가 좋아야 되겠죠. 블로그도 결국엔 텍스트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글이 좋아도 주기적인 업데이트가 반드시 필요해요. 한 달에 한 번 글 올리면 누가 기억하고 찾아오겠습니까. 저는 사실 파워블로거라 할 수 없어요. 그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블로그’ 정도로 해주세요.”
―싫어하는 블로그가 있나요.
“리뷰글을 주로 쓰다 보니 오해가 많이 생겨요. 지나치게 장점만 강조하고 단점을 감추는 경우죠. 또 가끔씩 노골적으로 비난만 퍼붓는 블로거들이 있습니다. 비난이란 게 힘이 있잖아요. 감정적인 글 몇 줄 읽고 이상한 바람이 조성되기도 하죠.”
김씨는 “어떤 사안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무조건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블로거들이 있다”며 “논리도 없이 무조건 싸잡아서 비난해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예전에 삼성에 대해 불만이 많은 분이 있었어요. 제 블로그에 삼성 제품만 등장하면 트랙백을 걸고 댓글을 남깁니다. 모두 제품에 대한 내용은 없이 일방적으로 욕을 해요. 삼성 제품 리뷰에 왜 경상도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까.”
김씨는 지금도 기회가 되면 라디오 DJ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공중파까진 부담스러워도, 소규모 방송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단다.
―‘라디오 키즈’란 블로그 이름 자체가 아날로그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바뀌었다고 해서 콘텐츠 자체가 디지털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팟캐스트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목소리이고, 메시지는 여전히 아날로그입니다. 사회 전반의 속도가 빨라지고 삶은 더 팍팍해져 가니까, 자연스레 소똥 냄새 나는 느긋한 삶을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김씨는 자신의 블로그는 절대 ‘業(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여러 방식을 통해 꾸준히 수익은 들어오지만, 목적은 분명 ‘취미생활’이다.
“분명히 취미인데, 회사에서 ‘투 잡’이라고 자꾸 놀려요. 전 죽기 전까지 블로그를 하고 싶습니다. 일이 되면 불가능하겠죠. 꼭 취미여야 된다고 봐요.”
張頭賢 (Zet)
“블로거팁닷컴” (bloggertip.com)
▣ 2007년 2월 28일
▣ 구독자 수: 2752명
▣ 누적 방문자 수: 184만 명
▣ 누적 글 수: 899개
▣ 분야: 블로그 운영 팁, 리뷰, 시사
‘88만원 세대’에서 블로그 전문가로
張頭賢(장두현)씨는 專業(전업) 블로거다. 장씨가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기간은 1년 반 정도다. 짧은 시간 동안 2700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았고, 정부기관의 블로그 운영 강의를 하고 있다. 컨설팅과 강의를 통한 수입은 월 300만원 내외, 한 국내 英字(영자)신문은 그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전업블로거 가능성을 분석 보도했다.
“한국에서 전업블로거로 산다는 게 힘든 건 사실이에요. 일단 광고와 같은 직접적인 수익이 가장 이상적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수익은 주로 강연과 기고 등 브랜드 가치를 통해 창출되죠.”
장씨는 체계적으로 블로그 준비를 해왔다. 블로고스피어에서 논의되지 않은 주제를 정한 후, 자료를 모으고 공부했다. 그렇게 정해진 주제가 ‘블로그 운영 팁’이다.
“블로그는 많은데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블로그는 생각보다 적더라고요. ‘속담으로 보는 블로그 노하우’, ‘노래 가사로 배우는 블로그 노하우’ 등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리를 했죠.”
반응이 바로 나타났다. 수많은 초보 블로거들이 장씨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블로그를 찾기 시작했다. 평소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제대로 공부할 곳이 없었던 이들에게 장씨의 블로그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블로그의 장점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원하는 주제를 통해 꾸준히만 쓰면 누구나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어요. 블로깅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2008년 3월, 장씨는 블로그 운영 9개월 만에 첫 강연을 따냈다.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주최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한 ‘대한민국 블로거콘퍼런스’에서 ‘블로거의 고령화와 올드 블로거의 탄생’에 관한 스피치를 했다. 이후 강연과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문화관광부의 블로그산업 육성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서울시청, 국방부 등 정부 기관의 뉴미디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지금도 정기 강연과 마케팅 잡지 연재 기고 등 바쁜 일정이 이어지고 있다.
“잘 키운 블로그 하나 수백 장 이력서 안 부럽다”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장씨의 블로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주제가 분명하잖아요. 구독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기대했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강연을 요청하는 입장에선 주제가 확실하니까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2006년 2월에 지방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성에도 안 맞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어요. 다른 취업 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막막한 기분이었어요. 블로그가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누군가 그랬어요. ‘잘 키운 블로그 하나 수백 장 이력서 안 부럽다’고. 블로그는 제 인생을 바꿨어요. 대한민국도 블로그가 바꿀 겁니다.”
장씨는 블로깅의 소재를 주로 해외 웹사이트를 통해 얻는다.
“네이버가 2009년부터 오픈 캐스트란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해요. 지금은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이름 그대로 ‘오픈’만 된다면 수많은 파워블로거들을 네이버에서 만날 수 있겠죠. 2009년 한해는 한국 웹 2.0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장씨는 블로그의 새 트렌드로 ‘올드 블로거’를 꼽았다. ‘링블로그’의 명승은씨가 강조한 ‘시니어 블로그’와 비슷한 개념이다. 장씨는 “삶의 노하우가 풍부하고 필력이 있는 노인세대들이 블로깅에 나설 경우 그 파급력이 굉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엔 80세 이상 노인들의 블로그 활동이 활발합니다. 사회에선 ‘한물갔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에선 20세 청년 못지않은 활동을 할 수 있어요. 한국도 앞으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블로그 마케팅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월간조선 2009년 1월호
직장인 3명 중 1명이 블로그를 직접 운영. 이들이 쏟아내는 글 수는
월 50만개에 육박. 그러나 블로거를 직업으로 삼아 밥을 먹고 살 수는 없다.
200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블로그는 이미 메이저 미디어”라고 선포했을 때, 한국인 대다수는 블로그란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블로그는 한국의 대표 온라인 미디어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언론사들이 기자블로그 지원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전문기자들을 육성해 ‘파워블로거’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정책 블로그를 내세워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업은 블로그 기자단을 선정해 블로그마케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엔 최소 1300만개 이상의 블로그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젊은이 중 약 70%가, 직장인 3명 중 1명이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쏟아내는 글 수는 월 50만개에 육박한다.
한국의 블로거들은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표적인 ‘파워블로거’ 4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은 모두 블로그를 새로운 대안적 미디어로 제시했고, 세계를 바꾼 블로그가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것이라 전망했다.
“서명덕 기자의 人터넷 세상”〈itviewpoint.com〉
▣ 개설일: 2004년 11월 23일
▣ 구독자수: 2만명 이상
▣ 누적 방문자 수: 808만명
▣ 누적 글 수: 4244개
▣ 분야: IT, 웹2.0, 블로그 미디어
최다 구독자 수 확보한 ‘블로거의 지존’
“저 같은 사람한테서 뭐 쓸 만한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파워블로거 인터뷰를 위해 徐明德(서명덕·31)씨를 만났을 때, 그의 첫 인사는 ‘기삿거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씨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가진 블로거다. 최소 2만명 이상이 그의 포스트(기사)를 정기적으로 받아보고 있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5만여 명, 큼직한 이슈가 터지면 하루 10만을 훌쩍 넘는다. 그의 블로그 <서명덕기자의 人터넷 세상>엔 지금까지 총 4300여 개의 글이 올랐고, 국내 최대 메타블로그 사이트인 ‘올블로그(allblog)’가 뽑은 ‘톱100 블로그’에 2년 연속(2006년 1위, 2007년 3위) 이름을 올렸다. 블로고스피어(블로그 세계)에서 서명덕은 ‘지존’으로 통한다.
서씨의 최종 경력은 ‘조선일보 기자’다. 2007년 8월 인터넷뉴스부로 입사해 1년 동안 근무하다 2008년 8월 그만뒀다. 퇴사 이유가 이랬다.
“제 정치적 성향은 딱 중간입니다. 그땐 조선일보의 좋은 사례를 보고 들어왔는데, ‘저쪽’ 분들(안티조선)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나 봐요. 퇴사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社內(사내) 문제도 있었고.”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서씨의 블로그 서버가 갑자기 다운됐다. 이유는 해킹. 촛불시위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그는 1주일 동안 새벽 내내 서버를 들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서씨가 처음 블로그를 만든 것은 2004년 가을이었다. 당시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기자였던 그는 ‘색다른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져주기 위해’ 개인 블로그를 개설했다. 2004년은 ‘올블로그’(메타블로그)와 ‘테터툴즈’(설치형 블로그 서비스)가 시범운영을 막 끝내고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던 때였다.
“대부분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다음 ‘카페’ 서비스를 주로 이용했었죠. 블로그는 원시시대나 다름없었습니다. ‘RSS’나 ‘태그’란 개념 자체가 흔치 않았어요. 정말 이 바닥의 ‘마니아’들만 모인 공간이었습니다.”
초기엔 여느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방문자가 많지 않았다. 그가 처음 유명세를 깨달은 것은 구독자 수가 네 자리를 넘어섰을 때였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정기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서씨는 자신의 블로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을 ‘꾸준함’이라고 말했다.
“블로그를 시작한 후 4년 동안 단 한 번도 손 놔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글을 잘 쓰거나 콘텐츠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꾸준하게 빠지지 않고 쓰니까 신뢰가 쌓인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기 쓰는 것도 귀찮은데, 공개된 블로그는 개인 일기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블로그 파워는 꾸준함에서 갈립니다.”
서명덕씨(右)와 그의 블로그 ‘서명덕 기자의 人터넷 세상’(左). |
美, 기자와 블로거의 경계 사라져
서씨는 현재 무직이다. 주 활동이 블로깅이니 ‘專業(전업)블로거’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전업이란 단어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업·프로 블로거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창 방문자가 많을 때 사람들이 제게 그랬어요. ‘블로그로 떼돈 벌겠다’고. 몇 년 전 구글 광고 서비스가 한창 유행했을 당시 제 최대 수익이 한달 100만원 조금 넘었어요. 지금은 10만원도 넘기 힘들고요. 블로그로 먹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씨는 블로그로 얻는 수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광고를 통한 직접수익과 강연 및 기고를 통한 간접수익이다. 전업으로 블로깅을 하기 위해선 수익이 보장돼야 하지만, 현재 한국 인터넷 광고 환경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직·간접의 중간에 걸쳐있는 게 리뷰 수익이에요. 신제품 리뷰를 해주고 그 제품을 받는 시스템이죠. 문제는 종종 객관성을 잃는 블로그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광고와 콘텐츠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블로그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그는 블로그가 온라인상에 보여지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자 평판이라고 했다. 블로그를 전업을 해서 상용화가 될 경우 블로그 본래의 맛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언론사는 기사와 광고가 구분돼 있는데, 1인 미디어인 블로그는 이를 혼자 처리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온 모델이 ‘연합광고 모델’입니다. 유명 블로거들을 모아 공통된 영역에 광고를 게재해주고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죠. 미국의 ‘페더레이티드 미디어(Federated Media)’와 국내의 ‘태터앤미디어(TATTER&MEDIA)’가 좋은 예입니다. 그대로만 되면 큰 문제가 없는데, 만약 광고가 콘텐츠에 영향을 끼친다면 블로그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겠죠.”
서씨는 2008년 8월부터 <떡이일보>란 이름의 이메일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탑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발행자가 인터넷 곳곳에 펼쳐진 정보 중 필요한 정보를 취합해 구독자들의 이메일로 발행하는 형식이다.
“아직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주로 이용하잖아요. RSS가 아무리 이상적인 방식이라 하더라도, 블로거는 철저하게 콘텐츠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易地思之(역지사지)란 개념으로 봤을 때 이번 시도는 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블로거냐, 기자냐”라며 정체를 묻는 질문에, 서씨는 그냥 ‘블로그 저널리스트’로 불러달라고 했다. 저널리즘적 요소가 들어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직장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바빴다. 강연과 기업 행사가 매일 이어지고 있었고, 글로벌 IT 회사 CEO와의 간담회도 일정에 포함돼 있었다.
“미국은 이미 블로거와 기자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졌어요. 해외 콘퍼런스를 나가보면, 프레스룸을 기자와 블로거가 같이 씁니다. 실리콘밸리에선 블로그들의 영향력이 웬만한 기성미디어를 능가하고요.”
서씨의 대학 전공은 영어학이다. 현재 IT 관련 자격증 12개를 갖고 있다. 네트워크 관리사, 무선인터넷 관리사, 리눅스 마스터 등 쉽게 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대단한 블로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면 몇 년째 똑같은 머리말을 볼 수 있다.
“모든 블로거들이 유명해지는 그날까지.”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ringblog.net〉
▣ 개설일: 2003년 11월 26일
▣ 구독자 수: 2683명 이상
▣ 누적 방문자수: 474만명
▣ 누적 글 수: 1331개
▣ 분야: 언론, 미디어, 웹2.0, IT
미디어 2.0 시대, 시사월간지에 큰 기회
“신문의 미래가 왜 어두울까요. 高(고)비용 低(저)효율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산업은 이미 포화상태인데, 새로운 매체들은 계속 생겨나면서 파이가 줄어들고 있어요. 반면에 블로그는 비용이 제로에 가깝죠.”
블로거 明承垠(명승은)씨는 웹 미디어 전문가다. 무명잡지 기자부터 시작해 IT 전문 칼럼니스트를 거쳐 지금은 1인 미디어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블로그 저널리즘이 미디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확신했다.
“현장취재기자 몇 명과 저명한 칼럼니스트만 언론사에 있으면 됩니다. 보도자료 등에서 나오는 기사들은 더 이상 유니크(unique)한 콘텐츠들이 아니에요. 포털 검색 결과에서 블로그 검색이 왜 뉴스검색보다 위에 있겠습니까. 기사보다 블로그가 더 유니크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예요.”
명씨의 블로그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는 2003년 11월에 개설했다. 현재 구독자 수는 2600명에 육박하고, 지금까지 쓴 글은 1331개에 이른다. ‘미디어 실험’을 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그는 본격적인 운영 1년 만에 2006년 하반기 올블로그 탑100 블로거 시상에서 전체 1위(총결산 3위)를 차지했다.
“2004년, 블로그가 포털의 서비스 중 하나이던 때였습니다. 블로거들 자신도 현실적인 영향력이 없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고요. 전 반대로 무한한 가치를 봤어요. 미국에선 이미 미디어 회사들이 블로그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씨는 처음부터 타 블로거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당시 대다수의 블로그들은 “쉽고 짧게 쓰고,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라”는 흐름을 뒤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블로그는 철저하게 텍스트 중심이었다.
“逆(역) 벤치마킹을 했습니다. 어렵고 길게 썼어요. 그림이나 사진보다는 텍스트 위주로 포스팅을 했습니다. 실험이었죠. 긴 글을 사람들이 과연 읽을까, 사람들이 누적된 브랜드를 처음 각인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블로그의 미디어적 가치 실현을 실험해봤습니다.”
―일종의 심층보도를 한 것이군요.
“한국 미디어의 가장 큰 취약점이 심층보도입니다. 전문기자를 찾기 힘든 나라, 수습기자부터 뽑아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키우는 나라, 규모는 미국을 따르고 구조는 일본을 좇는 나라…. 요즘 포털 뉴스가 전문성 없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죠.
―블로그 저널리즘이 기존 언론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블로그는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대립하는 대체재가 아니라 相生(상생)하는 보완재예요. 블로거가 아무리 뛰어나도 언론사와 직업 커뮤니케이터를 뛰어넘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의혹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습니다. 언론들은 항상 정보원을 찾기 위해 헤맵니다. 그런데 이미 블로그 세계에선 수많은 정보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외치고 있죠.”
명씨는 웹2.0 시대에서 <月刊朝鮮>과 같은 시사월간지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수많은 콘텐츠가 웹상에 존재하지만, 결국 심도 깊은 내용의 고급 정보는 책이나 월간지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그는 잡지매체가 “웹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글, 네이버 등 국내외의 포털들은 기본적으로 콘텐츠가 있어야 먹고 사는 구조입니다. 이들이 최근 책과 전문자료 아카이빙(디지털 콘텐츠 저장·관리)을 시작했어요. 깊이 있는 분석, 전후 사정을 보여주는 이야기,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콘텐츠는 역시 책 속에 들어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왜 미디어 2.0을 주장하면서 책을 냈겠습니까. 같은 이유입니다.”
명승은씨(右)와 그의 블로그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左). |
‘시니어 블로그’ 사업에 기대
―“웹 2.0은 책 팔려고 나온 개념”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 의미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품은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중요한 것은 2.0 자체가 아니라 2.0이 말하는 가치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진화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 진화하고 있어요. 지금 블로그에서 싸우는 내용은 몇 해 전 PC통신에서 다루던 내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예전에 각 지역에서 직접 만나 다투던 내용들이죠.
구텐베르크는 단지 인쇄술을 개발했을 뿐이에요. 단순한 기술이 인쇄, 출판, 언론사업으로 발전했고,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았죠. 2.0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적인 미디어 2.0 모델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명씨는 라디오의 예를 들었다.
“라디오는 애초에 UCC로 출발해 UCC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모델입니다. 사연을 안 보내주면 라디오 구성 자체가 안 돼요. 또 최초의 미디어믹스 시장이 될 겁니다. 라디오는 기존의 전파와 함께 DMB, 인터넷, 팟캐스트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들은 휴대전화 문자,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냅니다. 라디오가 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연구해봐야 해요.”
명씨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대학생 시절이다. 1992년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그는 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악필이었어요. 글은 쓰고 싶은데, 써 놓고 보여주려니 워낙 글씨를 못 써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만난 거죠. 조판시스템에 심취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그래픽과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됐죠.”
명씨는 현재 야후코리아에서 기획자로 근무 중이다. 그는 앞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블로그’ 사업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깊은 통찰과 경험,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블로그로 표출될 때, 기존의 블로그 경향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분들에게 블로그로 역사를 기록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月刊朝鮮>의 팬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라디오키즈@LifeLog” 〈neoearly.net〉
▣ 개설일: 2005년 5월 7일
▣ 구독자 수: 1792명 이상
▣ 누적 방문자 수: 784만명
▣ 누적 글 수: 1895개
▣ 분야: 영화, 리뷰, 음악
블로그로 DJ꿈 이룬 라디오 키즈의 생애
金訂均(김정균)씨의 꿈은 라디오 DJ다. 현재 포털업체 다음에 몸담고 있지만, 그는 음악을 선택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사연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의 방송을 수많은 사람들이 청취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세계에서 이미 ‘라디오 스타’다.
시작은 초라했다. 2001년 군 제대를 한 그는 호기심으로 한 채팅사이트에서 음악방송을 시작했다. 방문자는 20명 내외, 회원 수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졸업 후 취업을 한 그는 어쩔 수 없이 2년 동안 운영했던 커뮤니티 사이트를 닫았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블로그. ‘제로보드’란 툴을 이용해 만든 그의 첫 블로그 <라디오키즈@LifeLog>는 여전히 소박했다. 정보를 교류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공간으로의 목적이 더 컸다.
3년 후, 김씨는 누적 방문자 수 784만명을 거느린 블로거 DJ가 됐다. 오디오로그(AudioLog)란 이름으로 방송되는 그의 목소리가 애청자들을 끌어 모았다. 그의 방송을 MP3에 다운받아 퇴근길에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의 방송을 듣고 대학 방송국 DJ 경험을 되살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엔 한 고등학생이 수능 마쳤다며 댓글을 남겼어요. 알고 보니 6년 전 초등학생 시절 때 이미 제 방송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김씨는 리뷰 전문 블로거다. IT제품을 중심으로 영화, 음악, 희귀제품 등 각종 분야에 대한 수천 개의 리뷰들이 그의 블로그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방문자들이 많다 보니 반응들이 각양각색이다. 제품 사용에 대한 부러움을 표시하는가 하면, 기능에 대해 갑론을박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2007년 여름에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리뷰를 올렸어요. 좌우로 크게 치우쳤다기보단 지극히 일반적인 느낌을 표현했죠. 그런데 문제는 글이 포털 메인 페이지에 떠버린 겁니다. 이틀 동안 20만명이 블로그를 방문했죠. 댓글들로 서로 싸우더군요.”
총 197개의 댓글이 달렸다. 全斗煥(전두환) 前(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부터 ‘알바’와 ‘빨갱이’에 이르기까지 논쟁과 비난이 오갔다.
“가급적이면 정치적이거나 논쟁을 일으키는 글은 안 쓰려고 합니다. 악성 댓글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몰아서 들어와버리면 정말 답이 없더라고요.”
김정균씨(右)와 그의 블로그 ‘라디오키즈@LifeLog’(左). |
기술은 디지털로, 메시지는 아날로그로
김씨는 2006년 서명덕씨에 이어 ‘2006년 올블로그 탑100 블로거’에서 2위를 차지했다. ‘티스토리’, ‘위자드닷컴’ 등에서 인기블로그, 추천블로그로 선정됐고, 각종 블로그 랭킹사이트에서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는 파워블로거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꾸준함’이라고 말했다.
“파워블로거가 되려면 일단 글 자체가 좋아야 되겠죠. 블로그도 결국엔 텍스트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글이 좋아도 주기적인 업데이트가 반드시 필요해요. 한 달에 한 번 글 올리면 누가 기억하고 찾아오겠습니까. 저는 사실 파워블로거라 할 수 없어요. 그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블로그’ 정도로 해주세요.”
―싫어하는 블로그가 있나요.
“리뷰글을 주로 쓰다 보니 오해가 많이 생겨요. 지나치게 장점만 강조하고 단점을 감추는 경우죠. 또 가끔씩 노골적으로 비난만 퍼붓는 블로거들이 있습니다. 비난이란 게 힘이 있잖아요. 감정적인 글 몇 줄 읽고 이상한 바람이 조성되기도 하죠.”
김씨는 “어떤 사안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무조건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블로거들이 있다”며 “논리도 없이 무조건 싸잡아서 비난해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예전에 삼성에 대해 불만이 많은 분이 있었어요. 제 블로그에 삼성 제품만 등장하면 트랙백을 걸고 댓글을 남깁니다. 모두 제품에 대한 내용은 없이 일방적으로 욕을 해요. 삼성 제품 리뷰에 왜 경상도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까.”
김씨는 지금도 기회가 되면 라디오 DJ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공중파까진 부담스러워도, 소규모 방송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단다.
―‘라디오 키즈’란 블로그 이름 자체가 아날로그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바뀌었다고 해서 콘텐츠 자체가 디지털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팟캐스트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목소리이고, 메시지는 여전히 아날로그입니다. 사회 전반의 속도가 빨라지고 삶은 더 팍팍해져 가니까, 자연스레 소똥 냄새 나는 느긋한 삶을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김씨는 자신의 블로그는 절대 ‘業(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여러 방식을 통해 꾸준히 수익은 들어오지만, 목적은 분명 ‘취미생활’이다.
“분명히 취미인데, 회사에서 ‘투 잡’이라고 자꾸 놀려요. 전 죽기 전까지 블로그를 하고 싶습니다. 일이 되면 불가능하겠죠. 꼭 취미여야 된다고 봐요.”
“블로거팁닷컴” (bloggertip.com)
▣ 2007년 2월 28일
▣ 구독자 수: 2752명
▣ 누적 방문자 수: 184만 명
▣ 누적 글 수: 899개
▣ 분야: 블로그 운영 팁, 리뷰, 시사
‘88만원 세대’에서 블로그 전문가로
張頭賢(장두현)씨는 專業(전업) 블로거다. 장씨가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기간은 1년 반 정도다. 짧은 시간 동안 2700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았고, 정부기관의 블로그 운영 강의를 하고 있다. 컨설팅과 강의를 통한 수입은 월 300만원 내외, 한 국내 英字(영자)신문은 그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전업블로거 가능성을 분석 보도했다.
“한국에서 전업블로거로 산다는 게 힘든 건 사실이에요. 일단 광고와 같은 직접적인 수익이 가장 이상적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수익은 주로 강연과 기고 등 브랜드 가치를 통해 창출되죠.”
장씨는 체계적으로 블로그 준비를 해왔다. 블로고스피어에서 논의되지 않은 주제를 정한 후, 자료를 모으고 공부했다. 그렇게 정해진 주제가 ‘블로그 운영 팁’이다.
“블로그는 많은데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블로그는 생각보다 적더라고요. ‘속담으로 보는 블로그 노하우’, ‘노래 가사로 배우는 블로그 노하우’ 등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리를 했죠.”
반응이 바로 나타났다. 수많은 초보 블로거들이 장씨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블로그를 찾기 시작했다. 평소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제대로 공부할 곳이 없었던 이들에게 장씨의 블로그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블로그의 장점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원하는 주제를 통해 꾸준히만 쓰면 누구나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어요. 블로깅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2008년 3월, 장씨는 블로그 운영 9개월 만에 첫 강연을 따냈다.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주최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한 ‘대한민국 블로거콘퍼런스’에서 ‘블로거의 고령화와 올드 블로거의 탄생’에 관한 스피치를 했다. 이후 강연과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문화관광부의 블로그산업 육성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서울시청, 국방부 등 정부 기관의 뉴미디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지금도 정기 강연과 마케팅 잡지 연재 기고 등 바쁜 일정이 이어지고 있다.
장두현씨(右)와 그의 블로그 ‘블로거팁닷컴’(左). |
“잘 키운 블로그 하나 수백 장 이력서 안 부럽다”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장씨의 블로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주제가 분명하잖아요. 구독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기대했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강연을 요청하는 입장에선 주제가 확실하니까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2006년 2월에 지방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성에도 안 맞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어요. 다른 취업 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막막한 기분이었어요. 블로그가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누군가 그랬어요. ‘잘 키운 블로그 하나 수백 장 이력서 안 부럽다’고. 블로그는 제 인생을 바꿨어요. 대한민국도 블로그가 바꿀 겁니다.”
장씨는 블로깅의 소재를 주로 해외 웹사이트를 통해 얻는다.
“네이버가 2009년부터 오픈 캐스트란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해요. 지금은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이름 그대로 ‘오픈’만 된다면 수많은 파워블로거들을 네이버에서 만날 수 있겠죠. 2009년 한해는 한국 웹 2.0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장씨는 블로그의 새 트렌드로 ‘올드 블로거’를 꼽았다. ‘링블로그’의 명승은씨가 강조한 ‘시니어 블로그’와 비슷한 개념이다. 장씨는 “삶의 노하우가 풍부하고 필력이 있는 노인세대들이 블로깅에 나설 경우 그 파급력이 굉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엔 80세 이상 노인들의 블로그 활동이 활발합니다. 사회에선 ‘한물갔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에선 20세 청년 못지않은 활동을 할 수 있어요. 한국도 앞으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블로그 마케팅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월간조선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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