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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誤報)'가 욕심 나는 새해

김정우 기자 2012.01.31 10:48
월간조선 2월호, "월간조선 기자들의 설 편지"에 썼던 내용입니다.



‘誤報’가 욕심 나는 새해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베를린 장벽 붕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열리자 장벽 위에 올라가 환호하는 동서독 시민들. 독일 통일은 독일인들의 치밀함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뜻밖에 다가왔다.

  “독일 통일은 정말 코미디처럼 이뤄졌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의 《월간조선》 2009년 3월호 기고문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1989년 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동독 서기장 호네커에게 “개혁·개방 원칙이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적용된다”고 말했습니다. 폼 나는 이야기 같지만 “너희끼리 알아서 먹고살라”는 의미였답니다. 이 발언에 동독 주민들이 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이는 가을까지 이어졌습니다.
 
  11월 9일 새벽, 동독 정부가 관련 정책을 수정했는데, 기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땜질처방’이었습니다. 그날 오전 동독 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내용도 잘 모른 채 기자회견을 열어 그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회견 중 한 이탈리아 기자가 “그 정책이 언제부터 유효한지” 물었고 샤보브스키는 별생각 없이 “지금부터!”라고 답했습니다. 독일 기자들은 시큰둥했지만, 독일어에 서툰 이탈리아 기자는 ‘오버’해 본국으로 급전(急電)을 쳤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오보(誤報)는 미국, 서독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고, 흥분한 동서독 주민들이 대책도 없이 베를린 장벽을 부쉈습니다.
 
  김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 있는 근거는 그날 직전까지 전 세계 어떤 전문가도 독일 통일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수십 년 내에 절대 불가능하다”는 학자들이 대다수였습니다.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김정일은 사라졌고, 북한주민들은 휴대전화로 접경에서 진실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달러는 사실상 북한 공식 화폐가 됐고, 평양 시내엔 “어린 놈(김정은)이 뭘 알기나 하겠나”란 말이 공공연히 오갑니다.
 
  북한의 말도 안 되는 ‘강성대국 3대 세습쇼’를 지켜보는 한국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합니다. 한반도에서 ‘통일 임박’을 말하는 전문가나 학자는 여전히 찾기 어렵습니다.
 
  물론 통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올해 남북이 통일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그럼에도 내일 당장 닥칠 통일을 우리는 대비해야 합니다. 폴란드 출신 대북인권운동가 요안나 호사냑 씨는 지난해 12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통일은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대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기자에게 오보는 치욕이지만, 20여 년 전 이탈리아 기자가 저지른 ‘역사적 오보’라면 한번쯤 욕심이 나는 새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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