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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북한

[단독 입수] 황장엽이 박근혜에게 보낸 비공개 육성녹음 "총리 등 前職 내세운 인물 상대 말라"

김정우 기자 2012.08.30 13:20
[단독 입수] 황장엽이 박근혜에게 보낸 비공개 육성녹음
"총리 등 前職 내세운 인물 상대 말라"

⊙ 황장엽, 생전에 박근혜 최소 두 차례 이상 개별면담… 남북관계, 정치현안 등 논의
⊙ “심판자는 상대 후보가 아니라 국민이다”
⊙ “이승만·박정희가 이뤄낸 경제발전과 韓美동맹이 우리나라의 원칙이자 정체성”


박근혜 황장엽

2010년 10월 타계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를 찾은 박근혜 의원.


“경선 원칙을 세웠는데 ‘그런 조건에서 나는 참가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게 무슨 원칙입니까. 국민에게 충실한 것이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당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황장엽(黃長燁) 전(前)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生前)에 박근혜(朴槿惠)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육성 녹음 내용 중 일부다. 2007년 여름에 녹음한 것으로, 당시 박 전 위원장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상대 이명박(李明博) 후보와 경선룰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5년 전 녹음한 내용이지만, ‘경선 보이콧’까지 치달았던 최근 대선 정국과도 묘하게 맞물린다.
 
  약 10분 분량의 녹음 파일에서 황 전 비서는 ‘원칙’이란 단어를 총 12차례 언급하며 “상대해야 할 대상은 경쟁 후보(이명박)가 아니라 심판자인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정권의 주인은 대선 후보가 아니라 국민”이라며 “경선 원칙을 두고 흥정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꼽았다. “우리나라가 기적적 성과를 달성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소련 대신 미국을 따랐고, 박정희 대통령이 폐허 위에서 경제 발전을 이끄는 가운데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한 덕분”이라며 “이게 바로 원칙이자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은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발악하는 사람보다 국민 앞에 겸손하고 법 앞에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며 “동문서답을 해도 좋으니 ‘난 아는 게 없지만, 모든 것을 국민 위해 바치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반복하라”고 권고했다.
 
  언론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깊은 지식이 없는 신문기자들이나 신문 자체와 상대하지 말고, 제대로 된 이론가를 만나 얘기를 듣는 게 낫다”며 “총리나 부총리를 했다는 쓸데없는 사람들은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 대신 만날 만한 ‘제대로 된 이론가’로 이동복(李東馥)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류근일(柳根一) 전 《조선일보》 주필 등 세 사람을 꼽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꼽은 3명은 모두 기자 출신이다.
 
 
 
“황장엽이 하늘에서 보낸 육성”
 
  당시 녹음은 서울 강남의 황 전 비서 개인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육성을 직접 녹음한 이는 김성민(金聖珉) 자유북한방송 대표다. 그는 “황장엽, 박근혜 두 사람은 최소 두 차례에서 다섯 차례 개별 면담을 가졌으며, 그중 두 번은 내가 직접 황 선생을 모셨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당시 황 전 비서가 박 후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고 했다. 박근혜 캠프가 내세운 정책이나 신조가 마음에 들었을 뿐 아니라, 박정희(朴正熙)에 대한 존경심이 그의 딸에게 이어진 영향도 있었다. 김 대표는 “황 선생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겐 적극적으로 조언하려 했지만, 이명박 후보 측과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황 전 비서와 박 전 위원장은 과거 여러 행사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지만, 따로 개별 면담을 여러 번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민 대표는 “황 전 비서가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내세울 순 없었다”고 했다.
 
  한편 황 전 비서는 2006년 11월 한나라당 당직자 모임에 연사로 참석해 “자기 부모 양친을 다 희생시키고 나라를 위하겠다는 게 기특하지 않으냐”며 “우리에게 중요한 건 원칙을 지키는 사람, 김정일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발언해 “사실상 지지 선언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 바 있다.
 
  황 전 비서가 직접 면담 대신 녹음을 선택한 이유는 양측의 일정 문제와 주변의 시선 때문이었다. 대선 경선 주자의 일정이 워낙 빡빡한 데다 경호 문제도 걸렸다. 특정 정치인과 공개적인 만남을 꺼렸던 황 전 비서가 한 후보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도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당시 이 녹음 파일을 박근혜 경선 캠프에 전달하려 했으나, 직접 접촉할 경로를 찾지 못했고 결국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2007년 박근혜 후보의 경선 낙선과 2010년 황 전 비서의 타계 후 잊혔던 녹음 파일은 우연한 기회로 세상에 공개됐다. 최근 기자와 ‘동까모’(김일성 동상을 까는 모임)에 대한 인터뷰를 하던 김성민 대표가 자신의 PC로 황장엽 전 비서의 생전 메모를 검색하다 파일을 다시 발견해 낸 것이다. 김 대표는 “고인(故人)의 육성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큰 부담”이라며 공개를 반대했지만, 기자의 계속된 설득에 결국 파일을 내놓았다.
 
  김 대표는 “배경 없이 그냥 듣는다면 ‘황장엽이 하늘에서 보낸 육성’이라 해도 될 정도로 5년 전과 현재의 대선 경선 과정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이 섬뜩하고 놀랍다”며 “5년 전에 했던 충고가 지금 다시 되풀이돼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황 전 비서가 생존해 있다면 같은 내용을 다시 녹음했을지는 의문이다.황 전 비서는 현재 박근혜 후보와 경선 경쟁을 벌이는 김문수(金文洙) 경기도지사와도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는 반복된다. 박근혜 후보에게 보내려 했던 메시지이지만, 주어는 없다. 당파와 이념을 떠나 대권에 도전할 사람이라면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아래는 육성 녹취 전문(全文)이며, 녹음파일 원본은 《월간조선》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에 남긴 자필 메모들.
 
  황장엽이 박근혜에게 보낸 육성 녹음 전문
 
  “대통령 뭐 했다, 총리 했다는 사람 찾아다니지 말라”
 
  요즘 후보 경선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여론이 분분합니다. 후보자들이 계속 경선에서 승리할 것만 자꾸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민주주의적인 태도입니까. 정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정권의 주인은 국민이고 인민이 아닙니까. 그런데 마치 후보자들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처럼 논의가 진행돼요. “나는 몇 번 양보했다, 너는 몇 번 양보했다.” 원칙에서 양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원칙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국민의 이익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옳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번에 경선 원칙을 세웠는데 “그런 조건에서 나는 참가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게 무슨 원칙입니까. 국민에게 충실한 것이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당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국민 앞에서 일단 당의 원칙을 선포했으면, 지키지 않을 경우 국민을 속이는 겁니다. 그런 당은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논의를 세워서야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국민에게 충실한 입장의 표현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경선에서 이기는 건 물론 필요하지요. 상대방이 심판자가 아닙니다. 심판자는 국민입니다. 왜 자꾸 상대방을 납득시키려는 논의를 생각합니까. 상대방은 얘기를 해도 듣지 않을 게 뻔한데, 뭣 때문에 그걸 상대합니까. 상대는 이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국민입니다. 국민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아주 실망하게 돼요. 왜 자꾸 그런 흥정을 합니까. 왜 그런 논의를 해서 마치 무슨 불리해져서 발악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게 합니까. 그런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보다도 국민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충실하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상대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경쟁자는 경쟁자로서 자기의 논리를 자꾸 펴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호소해야 할 대상은 국민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원칙’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기적적인 성과를 달성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소련을 따르지 않고 미국을 따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전후 폐허 위에서 경제 발전을 이렇게 끌고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이게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거기에 충실하면 거저 승리합니다.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국민은 뭘 좋아합니까.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겸손한 걸 좋아한다 그래요. 발악하거나 상대방을 잘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국민 앞에 겸손하고 법 앞에 겸손한 걸 좋아합니다. 자기를 낮출수록, 겸손할수록 국민은 그런 지도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난 아는 건 없다, 그러나 난 모든 걸 국민 위해 바치겠다,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겠다.” 동문서답해도 좋으니까 자꾸 이걸 반복해야 하는데, 왜 자꾸 흥정에 대해 이야기합니까.
 
  원칙을 배반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겁니다. 당이 국민에게 충실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습니다. 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만약 그런 국민을 속이는 데다 찬성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논의가 전개돼야 해요.
 
  ‘여론’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론 중요합니다. 지금 중요한 역할 하는 것들이 신문입니다. 그런데 이 신문기자들이나 신문 자체와 그렇게 상대할 필요가 없어요. 될 수 있는 한 상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문기자들이 참고로 하는 게 무엇입니까. 이론가들입니다. 기자들이 다 아는 것같이 떠들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론가들이 무슨 소리 하는지를 잘 살핍니다. 쓸데없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쓸데없는 사람들하고 만나서 자꾸 얘기하는 것보다도, 이론가들을 만나 듣는 게 낫습니다. 쓸데없는 이론가들이 아니라, 예를 들어 이동복, 조갑제, 류근일 같은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잘 관계를 가져서 그들이 옳은 방향으로 이론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 기자 100명을 만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총리를 했다” “부총리를 했다” “대통령 뭐 했다”는 쓸데없는 사람들은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개별적으로 보면 이런 이론가들이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 같지만, 그들이 역시 기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기자들은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언제도 그런 말 한 일이 있는데, 자꾸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기자들과 자꾸 만날 필요도 없고, 만나게 되면 그저 원칙적인 얘기만 해요. “국민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 요전에 그런 얘기 하지 않았나요. 깜짝쇼를 해선 우리나라를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 원칙적인 문제를 자꾸 강조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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