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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 北 억류 미국인의 수상한 메일 - 아이잘론 곰즈, 入北 아니라 拉北 가능성 본문

정치·북한

단독입수 / 北 억류 미국인의 수상한 메일 - 아이잘론 곰즈, 入北 아니라 拉北 가능성

김정우 기자 2010.08.19 14:18
⊙ 入北 전날 北에 있던 로버트 박에게 “중국 투먼에서 만나자”는 메일 보낸 기록
⊙ 北 공작원 또는 제3의 인물에 의한 유인 납치 가능성

Aijalon Gomes

지난 1월 12일 경기도 임진각에서 열린 로버트 박 석방 촉구 행사에 참가한 아이잘론 곰즈 씨. 그는 로버트 박씨와 절친한 친구다.

북한에 7개월째 억류 중인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Gomesㆍ31) 씨가 입북 직전인 지난 1월 24일 로버트 박(Parkㆍ28)씨에게 “(중국) 투먼(圖們) 호텔에서 만나자”란 이메일을 보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로버트 박씨는 지난해 12월 25일 스스로 두만강을 넘어 입북했다 43일 만에 풀려난 대북 인권운동가다.
 
  중국에 있는 사람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사람에게 ‘만나자’고 이메일을 보낸 것은 누가 생각해 봐도 정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곰즈의 북행(北行)에 뭔가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곰즈는 지난 1월 25일 중·북(中北) 국경을 스스로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송자인 야후 메일 계정은 곰즈 씨가 기존에 써 오던 주소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신자인 G메일도 로버트 박씨의 주소다. 박씨는 이 편지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다.
 
  곰즈가 로버트 박에게 보낸 이메일 제목은 “나는 투먼에 있어요(I’m in Tumen)”이다. 내용도 아주 간단하다.
 
 
  곰즈, 在北 로버트 박에게 “중국에서 만나자” 메일
 
  “로버트, 나는 지금 투먼 호텔에 있어요. 우리 (이) 호텔에서 만납시다. 안부를 전하며, 아이잘론 곰즈.”(Hello Robert, I'm at the Tumen Hotel tumeldasha-hotel. Let's meet at the Hotel. Best Regards, Aijalon Gomes)
 
  영문 원본에 적힌 ‘tumeldasha’는 ‘tumen dasha(圖們大廈)’의 오기로 추정된다. 중국 투먼엔 실제로 같은 이름의 호텔 건물이 있다. 발송 시점은 지난 1월 24일 오전 5시32분이다.
 
  한국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당시 로버트 박씨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박씨의 절친한 친구인 곰즈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중국 투먼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맨 처음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정은 북한의 발표대로 곰즈가 자진 입북했을 가능성이다. 곰즈가 북한에 들어간 시점은 1월 25일이고, 북한은 그 사흘 뒤인 1월 2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인 1명 억류 사실만 확인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25일 조·중 국경지역을 통해 비법 입국한 미국인 1명이 억류됐다”면서 “현재 해당 기관에서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그 다음 날인 1월 29일 미 국무부에 미국 시민 억류 사실을 통보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때까지도 억류 미국인의 이름과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은 28세의 남성으로 자본주의 군대에서 총알받이가 되기 싫어 이를 피해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이후 곰즈 씨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나이와 입북 정황이 서로 맞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유인(誘引) 납북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3월 22일, 억류 미국인의 신원이 처음 공개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의 해당 기관에서는 비법입국한 미국 공민 아이잘론 말리 곰즈(남자, 1979년 6월 19일생, 미국 마사츄세쯔주 보스톤 거주)에 대한 범죄자료들이 확정된 데 따라 재판에 기소하기로 하였다”고 보도한 것이다.
 
  소식을 접한 국내외 곰즈의 지인들은 모두 놀랐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 가족 모두 그에게서 입북에 대해 사전에 들은 얘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곰즈의 지인들과 대북단체들은 그와 친분이 깊은 로버트 박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박씨와 비슷한 목적으로 북한에 자진 입북했을 것으로 추정하고는 있다. 하지만 곰즈와 로버트 박의 입북 과정은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
 
  스스로 북한에 들어간 로버트 박의 경우, 입북 5개월 전부터 중국 현지 답사 등 사전 점검을 했고, 그 사실을 지인들에게도 털어놨다. 종교적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로버트 박 같은 경우가 정상이다. 하지만 곰즈로부터는 입북 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이 없다. 곰즈와 가깝게 지냈던 탈북자 J씨는 “열정적인 로버트와 달리 곰즈는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다. 북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그가 직접 북한에 들어가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다.
 
 
  로버트 박 “북에 있는 날 만나자고 할 수 있나”
 
곰즈 씨가 로버트 박씨와 만나기로 했던 투먼호텔.

  정상 입북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또 하나의 근거는 곰즈가 중국 투먼까지 혼자 갈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곰즈는 한국어도 많이 서툴러 대화는 주로 영어로 한다.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중국 투먼에 가서 북한에 억류 중인 친구에게 만나자고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은 전후, 사방 어느 곳을 둘러봐도 정상적인 구석이 없다.
 
  그 때문에 곰즈가 누군가에 이끌려, 또는 누군가의 말만 믿고 중국까지 가서 로버트 박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것이라는 가정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렇게 보면 곰즈는 입북이 아니라 유인 납치됐다는 말이 된다. 곰즈가 납북된 것이 맞다면 1968년 나포된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 미국인 납북은 처음인 셈이다. 지난해 미국인 여기자 2명과 로버트 박씨의 억류는 과실 또는 자의에 의한 입북이었다.
 
  북한이 로버트 박을 석방하기 전 곰즈의 재북(在北) 사실을 발표했고, 이어 로버트 박을 석방한 것도 석연치 않다. 곰즈가 자발적이든 강제든 중·북 국경을 넘은 것은 1월 25일이고, 재북 11일째인 2월 5일 로버트 박의 석방 계획이 발표됐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그 11일 동안 북한이 두 미국인을 두고 어떠한 공작을 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 대북 전문가의 지적대로, “로버트 박씨가 석방 후 지금까지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는 이유가 곰즈 씨의 억류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곰즈가 한국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지인은 바로 로버트 박이다. 박씨는 최근 지인에게 “나는 당시 아이잘론과 만난 사실이 없으며, 그가 굳이 나를 호텔에서 만나자고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북한에 있었단 사실을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北, 곰즈를 對美 협상 카드로 활용?
 
  곰즈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2001년 보스턴 보딘(Bowdoin)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2008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경기도 포천의 신봉초등학교에서 영어 원어민 교사로 근무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데다 북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로버트 박씨가 주최하는 ‘북한동포해방’ 기도회 등 대북인권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4월 6일 북한 당국은 곰즈에게 8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다음 날인 7일 “8년의 노동교화형과 7000만원(북한 화폐 기준)의 벌금형을 언도했다”고 보도했다. 공식 환율로 계산하면 약 72만2300달러(약 8억10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북한이 그에게 적용한 죄목은 ‘조선민족 적대죄’와 ‘비법 국경출입죄’다. 이례적으로 중형과 거액의 벌금형을 내린 것에 대해 북한이 대미(對美) 협상 카드로 이번 억류건을 이용하거나 협상 과정에서 최소한 몸값이라도 챙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당시 북한은 곰즈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도 구체적인 혐의는 물론 입북 경위도 공개하지 않았다.
 
  5월 1일, 북한은 곰즈가 전날 미국의 가족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고, 6월 24일엔 “곰즈에게 전시법을 적용해 추가 조치를 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천안함 대북제재 방침에 대한 대응이었다. 미국은 “정치 문제와 연계시키지 말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곰즈 씨를 석방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7월 9일엔 ‘미국인 곰즈 자살 기도’ 소식이 전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해당 기관의 통보’를 인용, “교화 중에 있는 미국인 곰즈가 심한 죄책감과 구원 대책을 세워주지 않고 있는 미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에 최근 자살을 기도했으며 현재 병원에 옮겨져 구급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7월 31일엔 “단식농성 중”이란 소식도 전해졌다. 곰즈 씨의 지인들은 이 소식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곰즈가 자살이나 단식농성을 할 이유가 없다”며 “아마 금식기도를 한 것이 그렇게 와전됐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왜 곰즈의 ‘옥중 소식’까지 두 번씩이나 중계하는 것일까. 평소 북한 같으면 미국과의 협상 라인을 활용해 은근 슬쩍 풀어주고 대가를 챙기려 했을 것이다. 실제 8월 10일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이 미국 고위급 인사의 방북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가 부인했지만 RFA의 보도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본지는 이메일 내용에 대해 미국 대사관에 문의했지만, “미국 기관은 정보 사안에 대해선 어떤 확인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내 정보기관 관계자는 “그의 납북 가능성은 현재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월간조선 2010년 9월호 - 기사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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