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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장취재] 연세大와 한동大의 理工系 융합교육

김정우 기자 2008.11.15 14:55
기술교육에 경영·인문학 接木
成長동력 理工系를 바로 세운다!


『사회는 이미 융합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모였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면 결과가 뻔하겠죠. 일단 공용어를 찾아 놓으면 융합이 쉬워지고 결과가 좋을 겁니다』 (이화女大 崔在天 석좌교수)

월간조선 2008년 2월호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칸트를 읽는 理工系 대학생
한동大 이공계 학생들이 인문·사회 서적 독서 후 토론하고 있다.
 한 학생의 발표가 시작됐다.
 
  『제가 읽은 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입니다. 「선험적 종합판단」에 대해 제가 이해한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철학과 수업이 아니다. 理工系(이공계) 학부생의 독서 발표다. 과목명은 「인텐시브 리딩(집중독서)」, 수강생은 대부분 이공계 학생들이다.
 
  포항 한동大 학생들이 속속 강의실로 모인다. 앙드레 베르제즈의 「새로운 철학강의」,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등 인문사회학 전공학생에게도 버거운 제목의 책들이 눈에 띈다. 한 학기 동안 읽어 내는 책 목록은 학생이 스스로 짠다고 한다.
 
  『저는 「철학이 담긴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한동大 산업정보디자인학부 李俊(이준·24)씨는 지난 2주간의 독서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철학자가 수십 년을 공부해도 어려운 책이니 당연한 얘기다. 그는 원래 법학도였다. 2년 전 전공을 디자인으로 바꾼 후 인문학과 예술 사이에서 갈등이 많았다. 그의 갈등을 해결한 것이 「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원장 李在永 교수)의 신설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부는 2006년 말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한동大와 연세大를 지정해 「이공계 융합교육」을 위한 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동大는 「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라는 새로운 학부를 설립, 이공계 학생들이 인문·사회·법·철학·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개발하여 「국제적 기업가 정신」 전공 과정을 개설했다.
 
 
  융합의 힘 체험
 
이미지테크연구소 정연아 소장의 연세大 특강. 400여 명의 이공계 학생들이 자리를 채웠다.

  연세大 공학관 대형 강의실을 찾았다. 이미지컨설턴트 鄭連雅(정연아·이미지테크연구소) 소장의 「면접 이미지」 특강이 있는 날이다. 이공계 학생 400여 명이 대형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여러분의 외모가 상대방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된다. 鄭소장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모·표정·복장·자세 등 면접 당락에 이미지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은 공부만 많이 해서 대부분 발음이 좋지 않아요. 지금부터는 자신이 아나운서 지망생이라고 생각하고 발음 연습을 하세요』
 
  특강이 끝나자 바로 정규수업이 시작된다. 과목명은 「테크노 리더십」, 학생들이 리더십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주제는 「유토피아 경영」의 주인공인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 「미라이(未來)공업」 창업주다. 미라이공업의 연간 휴일은 140일, 잔업과 야근은 금지사항이다. 오후 4시30분 이후 일하는 직원들은 사장이 직접 집으로 보낸다.
 
  발표가 끝날 무렵, 나는 「이 환상적인 회사에 입사하는 방법」이 결론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환상적인 회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는 것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발표했던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전공을 물었다. 대부분이 이공계 학생들이고 경영학과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학과는 모두 다르지만 느낌은 같았다. 바로 「이공계 융합의 힘」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융합은 이미 세계 학문 분야의 새로운 「화두」다. 단순히 기술자로 「고용」되기보다는, 경영학과 인문사회학의 무기를 갖추고 혁신을 주도하는 리더가 양성되고 있다.
 
 
  의대로 편입한 포스텍 수석 졸업생
 

  2007년 포스텍(POSTECH)을 수석 졸업한 여학생이 서울大 의대로 편입했다. 이공계에 「비전이 없다」는 이유였다. 해가 갈수록 감소하는 이공계 대학 입학생 수와 외국으로 떠나는 교수들…. 국가의 성장동력인 이공계 학부가 비전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론만 붙잡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 D대학 컴퓨터공학과 4학년인 梁모(26)씨는 대학 수업부터 잘못됐다고 한다. 기업 현장에선 쓰지 않는 10년 전 이론만 칠판에 쓰고 있는 현실이 한심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 수업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까.
 
  『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았다고 해서 산업현장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문제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그렇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전공수업보다 오히려 사설학원 강의가 취업에 더 도움이 됐다고 한다. 병역특례를 준비하며 6개월 동안 배웠던 프로그래밍 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더 유용했다는 것이다.
 
  『주로 기업전산화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했어요. ERP(전사적자원관리), CRM(고객관계관리) 등이었는데,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 작업하려니 참 힘들었습니다』
 
  그가 말한 「전반적인 이해」는 경영학 개론에서 다루는 수준이다. 하지만 많은 공대생들이 그것조차 몰라 갈팡질팡했다고 한다.
 
 
  전공 못 살리는 이공계 학생들
 
  이론으로만 무장한 강의는 학생들의 이공계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적당한 토익 점수와 보기 좋은 학점을 확보한 학생은 여기저기 원서 넣기에 정신이 없고, 이마저 안 된 학생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너도나도 공무원이 유행이죠. 학원들이 모여 있는 노량진 쪽에 가보면 이공계 학생들이 꽤 많을 겁니다』
 
  吳모(27)씨는 2007년 2월 K대학 환경공학과를 졸업한 후 한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다. 그의 현재 主 업무는 「복사기 영업」이다. 전공과의 연관성은 0%다. 그는 일찌감치 전공공부를 「접었다」고 한다. 자기가 정한 전공이 아니라 수능점수가 정해 줬다는 것이다.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귀국 후엔 통역일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취업할 시기가 되자 가장 걸리는 것은 바로 「전공」. 결국 그는 일본어 부전공을 택한다. 일본계 회사에 취업한 그에게 이공계 전공은 그저 걸림돌일 뿐이었다.
 
  『차라리 전공을 바꾸는 게 낫죠. 저는 2학년 때 바로 옮겼습니다. 제 길이 아니라고 확신했어요』
 
  함께 있던 姜모(27)씨의 말이다. 그는 화학재료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관광경영학과로 전과했다. 졸업반인 그는 현재 몇 개의 관련 기업에서 합격통지를 받은 상태다. 취업을 위해 해외 유명 호텔 아르바이트와 한국관광공사 인턴 등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때 전공을 바꾸지 않았다면… 정말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과는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이공계 리더 양상에 「올인」한 선진국
 
중국의 이공계 출신 리더 주룽지(朱鎔基)와 후진타오(胡錦濤).

  한국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어떤 면에서는 선진국 현상이라고 한다. 획일화된 人材(인재)를 수급하기 위해 양적 팽창만 추진해 왔던 한국의 이공계 교육이 질적 도약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면 틀린 진단은 아닐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라는 진단은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공계를 버리고 선진국에 돌입하겠다는 것은 맨발의 마라토너가 자기부상열차와 경쟁하겠다는 것과 같다. 최근 선진국들은 이러한 추세를 국가적 차원에서 분석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맨발의 낭만」이 국민을 먹여살릴 수 없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가장 돋보이는 국가는 중국이다. 상하이(上海)의 천지개벽을 이끈 주룽지(朱鎔基)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비롯한 現 중국을 이끄는 4세대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다. 이들은 수리공정학부·지질광산과·무선전자학과 등 다양한 이공계 경력을 기초로 중국의 과도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인문계 출신의 5세대 지도자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5년 뒤에나 가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성장은 이공계 리더십의 전략과 함께해 왔다.
 
  미국은 이공계 CEO의 천국이다. CEO의 절반이 이공계 출신이고, 그들이 이끄는 기업은 대부분 선진 그룹에 속해 있다. 기술산업으로 차지한 세계 초강대국 자리를 이공계 리더십을 통해 사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젊은 층 가운데 이공계 기피 현상이 증가하자, 다양한 장려 프로그램을 통해 이공계 人材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기업가 정신」이라는 키워드로 이 문제를 풀어 왔다. MIT의 경우 졸업생의 약 30%만이 엔지니어의 길을 계속 갈 뿐이다. 나머지는 사회 각계로 흩어져 이공계 지식을 응용해 리더십을 발휘한다. MIT를 비롯한 미국의 100개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기업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은 이공계 기피현상의 돌파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자연과학에 강한 러시아는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유럽과 일본은 이공계 진흥 정책을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이공계 리더십」의 不在(부재)를 겪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공학을 외면한 채, 「과거지향적」인 제도권에 집착한다. 먼저 달려간 자기부상열차를 보면서도, 「낭만의 맨발」이 더 아름답다고 自慰(자위)하고 있다.
 
  몇몇 市·道(시·도)는 희망적이다. 정부와 학계가 추진 중인 「이공계 살리기 프로젝트」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이공계 人材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大는 2008년 3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연구원 원장을 맡은 李建雨(이건우·51) 교수는 『21세기 과학기술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며 『융합형 人材 양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2008년 3월 개원 예정인 서울大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과 원장 이건우 교수.

 
  『융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
 
  『한 기술에 대해 뛰어난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는 융합이라는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어요』
 
  장기적인 관점에선 이론이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공학은 산업에 기여해야 한다. 현업과 유리된 이론은 죽은 이론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론 교수의 책임이 옳습니다. 교육환경도 문제예요. 정부 과제나 논문 자체를 위한 연구로 치중되고 있습니다. 참 걱정스럽습니다』
 
  李교수는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융합이 모두 해결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융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라며 세계적 흐름에 뒤처진 한국의 이공계 양성 정책에 우려를 나타냈다.
 
  『얼마 전 李健熙(이건희) 삼성 회장의 「샌드위치 위기論」이 화제가 됐었죠.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데 한국은 그 사이에 끼여 있다는 겁니다. 논란이 꽤 있었지만 기술연구 분야에 그러한 징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요』
 
 
  『학제 간의 벽 뛰어넘는 시대』
 
임춘성 공학기술경영 교육연구센터 센터장.

  그는 「자동차 한 대만 봐도 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과거엔 기계공학·화학공학 전공한 사람들이 모이면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다. 미래형 자동차는 공학 全분야를 요구한다. 유비쿼터스를 비롯해 BT(생명공학), ET(환경공학), IT(정보기술), NT(나노기술) 등 모든 기술이 융합해야 자동차다운 자동차가 나오는 것이다.
 
  『인문학과의 융합이 중요합니다. 애플社의 아이폰(iPhone)을 보세요. 감성적 디자인 없이 기술로만 승부했다면 출시하지 못했을 겁니다. 21세기는 학제 간의 벽을 뛰어넘는 시대예요. 저희는 연구원 내에 「범학문통합연구소」를 두고 인문학과의 융합 모델을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李교수는 21세기엔 MIT 미디어연구소의 네그로폰테 교수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멀티미디어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2005년부터 제3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100달러 노트북」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100달러 노트북」은 세계적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나올 수 있는 발상입니다. 그가 전공인 공학기술만 연구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능력과 경영자로서의 감각이 모두 요구됩니다』
 
  서울大가 본격적인 융합 교육을 준비하는 가운데, 카이스트·연세大 등이 융합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카이스트는 2007년 9월 在美 사업가 朴柄俊(박병준·73)씨로부터 1000만 달러를 기부받아, 융합 연구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또한 최근 20代의 캐서린 톰슨 박사를 영입해 융합기술 연구의 중요성을 보여 줬다.
 
  연세大는 「공학기술경영 교육연구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공계 과정과 경영학을 융합한 프로그램으로 「공학경영 人材」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센터장 林春成(임춘성·45) 교수는 기술의 「횡적 융합」과 함께 「종적 융합」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의 융합이 「횡적 융합」이라면, 기계공학과 경영학의 융합은 「종적 융합」입니다. 기술의 생명주기에 따라 융합하는 개념이죠』
 
  횡적 융합은 연구자·전문가 중심이다. 실무자는 종적 융합을 해야 한다. 만약 유체역학을 전공한 학생이 일류 자동차 회사에 입사해도, 4년 동안 공부한 기술을 써먹을 길이 없다. 연구보다 실무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횡적 융합은 대학원이나 연구소에서 이뤄져야 한다.
 
  『분석은 기업의 입장에서, 실천은 이공계 자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현재 기업이 경영자 소양이 있는 이공계 학생을 요구하고 있어요. 끊임없이 개선해야 살아남는 거죠』
 
  MIT는 20년 전에 기계공학과에서 경영학 박사를 교수로 영입했다. 또한 「LFM」이라는 테크노-MBA 과정을 설립, 관련 제조기업과 긴밀한 협력을 시도한다. 기업이 제공한 과제를 해결하는 인턴십 과정을 실시하고, 경력 엔지니어들이 대학으로 파견된다.
 
 
  틀을 깨고 유연한 사고 가져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몇몇 대학들은 이공계 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기업의 입장은 어떨까. CEO들은 융합형 人材를 요구하는가.
 
  柳在成(유재성·46)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은 융합형 人材양성 시스템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예전에 저희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컴퓨터공학 전공인데, 지금은 미국 컬럼비아大에서 금융공학을 공부한다고 해요. 금융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선 금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거죠』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문 분야까지 융합을 합니까.
 
  『관련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죠. 예를 들면 인문학 전공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것들을 잘 정리합니다. 그리고 잘 전달하죠. 이공계 출신들이 그 분야에서 좀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회의 때 난상토론이 종종 일어납니다. 여러 분야에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잘 설명해요. 보고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소양을 최대한 배양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소양 배양을 위해 어떠한 교육과정이 필요합니까.
 
  『어디서 무엇을 교육받았나 하는 것 보다 받은 교육을 얼마나 자신의 삶에서 발휘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본성의 변화」가 중요해요.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만의 벽을 쌓고 혼자 머무르려는 사람이 있어요』
 
  柳사장은 이공계 학생들이 자신의 틀을 허물고 유연한 사고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죠. 그 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끊임없이 틀을 부수고 새롭게 짤 수 있는 유연성이 그 사람의 경쟁력입니다』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라』
 
이재영 교수의 콜로키움. 이공계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한 학자가 「학문의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융합을 시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화女大의 崔在天(최재천·53) 석좌교수다. 그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지식의 統攝(통섭)」이라는 개념을 소개했고, 최근 「통섭원」이란 연구원을 세워 학문 간 융합·통섭을 시도 중이다.
 
  『모든 학문을 다 섞어 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자신의 학문에 충실하면서, 남의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학문의 공용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사회는 이미 융합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모였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면 결과가 뻔하겠죠. 일단 공용어를 찾아 놓으면 융합이 쉬워지고 결과가 좋을 겁니다』
 
  그는 「무작정 학문의 벽을 깨부수기보다는 일단 낮추고 서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남의 학문을 「건너」보고, 그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자신의 것이 더 명확히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가야금 연주자 黃秉冀(황병기) 선생이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라」고 했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죠』
 
  ─넓고 얕게 팔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럿이 함께 파야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과거엔 가능했죠. 하지만 지식의 총량이 늘어난 현재,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섭렵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공용어」를 이해하는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崔교수가 이끄는 통섭원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벽을 넘나들고 있었다. 이들의 도전을 보니, 철학책을 읽고 토론하던 한동大 이공계생들이 떠올랐다.
 
  포항 한동大의 다른 수업 역시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에 진행되고 있었다. 「콜로키움」이라 부르는 이 세미나의 주제는 「게으른 남편을 위한 기술」이다.
 
  『세상은 「게으른 남편」들이 변화시킬 것입니다』
 
  李在永(이재영·45) 기계제어공학부 교수의 주제가 다소 뜬금없다. 그는 「게으른 남편」이 만들 수 있는 발명품을 하나둘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노유체·초음파·디스플레이·자기장·원자력 등 첨단기술들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사례들이다.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학문들이 다양하다. 기계공학·생명공학·환경공학·핵물리학·경영학·법학·중세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벽을 넘나든다.
 
  『여러분, 태양열로 가동되는 에어컨 만들고 싶지 않나요? 그게 기술입니다』
 
  기발한 아이템으로 학생들을 자극하기도 한다.
 
  『아이가 타고 놀 수 있는 진공청소기나 10만원대의 음식물처리기는 어떤가요? 도전해 보세요. 부자될 겁니다』
 
  수백 가지 개발 모델과 적용 사례들이 쏟아졌다. 결론은 간단하다. 「직접 해 보라」는 것. 아이디어 구상부터 시작해, 관련 기술 연구, 제품 개발, 특허와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벤처 창업자가 된 기분으로 승부해 보라는 것이다.
 
 
  醫大를 그만두고 理工系로 온 학생
 
醫大를 그만두고 이공계로 온 한동大 윤영훈씨.

  콜로키움은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몇몇 학생들은 남아서 토론하기도 하고 몇몇은 교수를 붙잡고 귀찮게 하기도 한다. 신입생 尹永勳(윤영훈·21)씨를 만났다. 그는 생명식품공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조금 낯선 이야기들인데 적응이 잘 됩니까.
 
  『저에겐 상당히 큰 도움이 됩니다. 이론뿐 아니라 실제 사례를 직접 접하고, 현장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잖아요』
 
  ─1학년이라 전공이 없는데, 어렵진 않나요.
 
  『저는 사실 의과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이 학교에 왔습니다. 남들은 전혀 이해 못 했지만, 저는 나름대로 확신이 있습니다. 제 적성은 제가 잘 알잖아요』
 
  그는 어떠한 결과나 사회적 분위기보다는 「가치」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어떤 人材로 키워지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대한민국의 「싱크탱크」라고 답한다.
 
  『연구원이나 학자보다는 직접 기업을 이끄는 창업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국제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함께 있던 1학년 金仁愛(김인애·19)씨에게 「적응이 잘 되느냐」고 물었다.
 
  『적응이 된다기보다는 숨통이 트이는 느낌입니다. 원래 경영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디자인 전공만 하면 답답할 것 같았는데, 관심 있는 분야를 함께 하니 좋습니다』
 
 
  「理工系 리더십」 양성
 
  李在永 교수는 이공계 융합의 핵심이 「理工系 리더십」을 양성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이공계 교육방식이 일종의 「직업교육」이었다면, 이제는 선진화 시대의 리더십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술과 비즈니스와 법의 무기를 갖춰야 하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인접한 분야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합금과 합금을 섞으면 특별히 달라질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합금에 원료를 섞으면 새로운 소재가 나옵니다. 인문·사회·경영·법·예술·철학 등이 원료가 돼서 「공학기업가」를 양성하는 거죠』
 
  ─그러다 맛만 보고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시작단계라 그런 우려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이를 요구하고 있어요. 선진국들은 이미 「理工系 장교」들을 키워 내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理工系 병사」들만 양성하고 있습니다. 융합적 지식을 가르치는 「理工系 사관학교」가 필요합니다』
 
  李교수는 한동大의 융합은 단지 교양인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이다. 이공계 지식으로 기업에서나 사회에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그가 말하는 장교 교육이다.
 
  그는 특히 한국 학생들의 모험심 부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被害(피해)」를 피해가려는 안이한 정신이 결국 이공계 기피와 고시지상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인터넷 활용은 세계 1위를 자랑하지만, 회사 창업 절차 순위는 89위다. 국가 차원에서 창업에 대한 적극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그는 『융합을 위해선 학과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과 출신의 학생·교수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학內에 존재하는 「학과 콤플렉스」는 이를 방해하는 큰 요인이다.
 
  『한동大는 완전 無전공으로 입학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합니다. 「학과간 콤플렉스」가 없어요. 법학·경영학·기계공학 전공 학생들이 모여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여기선 「일상」입니다. 여기만큼 우물을 「넓게」 팔 수 있는 곳도 드물 거예요』●
 
 

  [인터뷰] 이화女大「통섭원」원장 崔在天 석좌교수
 
  『기업은 이미 「통섭적 인재」를 찾고 있다』
 
  통섭은 학문을 합쳐 발효시키는 것
 
  10통이 넘는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崔在天 교수와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요즘 언론과 학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학자 중 한 명이다. 「統攝(통섭)」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화女大 「統攝院(통섭원)」에서 崔교수를 만났다.
 
  ─「통합」·「융합」·「통섭」… 모두 비슷한 말 같은데요.
 
  『통합이 물리적인 합침이라면, 융합은 화학적으로 합치는 겁니다.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이죠』
 
  ─화학까지는 쉽게 와닿는데, 생물학은 이해가 안 됩니다.
 
  『저도 처음엔 그 예로 「비빔밥」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김치나 된장처럼 발효된 학문」이라고 말해 줬어요. 그래서 고맙다고 했죠. 새로운 맛으로 탄생하는 학문이 바로 「통섭」입니다』
 
  ─독립적인 재료로 맛을 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융합과 통섭은 시대의 흐름입니다. 우린 어떻게 보면 참 학문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어요. 20세기 후반까지는 자기 분야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죠.
 
  이젠 「학문의 넘나듦」에 대한 요구가 거칠게 엄습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다기보다는 해야 하는 것이죠』
 
  ─「융합」이라는 게 말은 멋있어 보이는데, 이것도 저것도 안 될 수 있겠습니다.
 
  『「다름」이 있어야 「이음」이 있습니다. 일단 기초학문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외국의 명문대를 보세요. 끈질기게 기초를 강조합니다. 서로 다른 학문의 기초를 하는 가운데 「이음」을 시도하니, 제대로 된 융합이 가능한 거죠』
 
  ─「공용어를 찾는 과정」이라 했는데, 공용어를 찾다가 모국어가 바뀔 수 있겠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래서 더 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자기 분야를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鄭鎭弘(정진홍) 서울大 명예교수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남의 학문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내 학문이 깊이 들어간다」고요. 정말 옳은 말입니다』
 
  ─아직은 학문 사이의 벽이 높아 보입니다.
 
  『여러 학문들 사이의 경계는 필연적인 것이라기보다 역사적인 것입니다. 우연의 결과도 많고 임의로 그어진 선도 많습니다. 거의 모든 학문의 기원인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인문학에서 이공계로 넘어오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상대적으론 그렇겠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쉽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학문의 벽을 넘는다는 것은 「한계」를 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치열하게 연구해야 합니다』
 
  ─시작단계인데,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까.
 
  『산업에선 이미 많은 것들이 나왔지만, 학문 분야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죠.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성균관大 기계공학과 교수들이 「농게로봇」을 만들었어요. 농게는 강화도 갯벌에 사는 게입니다. 수컷이 집게를 움직이면서 암컷을 유혹하는 게 특징이죠.
 
  농게로봇은 기계공학과 생명공학, 환경공학이 함께 융합해 만든 모델입니다. 처음엔 크기가 컸기 때문에, 나노기술까지 들어갔죠.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어떤 식으로 활용됐나요.
 
  『갯벌에 생태체험을 하러 갔을 때 모든 사람이 뛰어들 수는 없잖아요. 로봇 게를 풀어 놓고 원격 조종해서 실제 갯벌생물 체험을 하는 겁니다. 직접 농게가 돼서 다른 생물들과 만나는 것이죠.
 
  영상촬영 기술과 네트워크 기술까지 합쳐진다면 집에서 모니터를 보며 실시간으로 갯벌 체험을 할 수 있겠죠』
 
 
  기업, 「통섭적 人材」를 요구
 
  ─기업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업에서 통섭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몇몇 임원들이 「통섭적인 人材」를 보내 달라고 계속 연락이 와요. 아직은 섣부른 평가가 나올까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정말 준비된 人材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기업이 대학보다 앞서가는 느낌입니다.
 
  『앨빈 토플러가 최근 언급했죠. 기업이 가장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습니다. 이는 21세기의 새로운 시대가 융합적 人材를 찾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기업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대학을 줄 세우지 않았으면 해요. 기업이 채용할 때 성적과 학교를 보고 뽑으니, 학생들이 대학 간판과 학점에만 신경을 씁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야 합니까.
 
  『성적표의 「내용」을 분석해야 합니다. 「몇 점을 받았냐」보다는 「무엇을 배웠냐」를 봐야죠. 영문학과 학생이 양자역학을 듣고 점수 C를 받았다면 그건 대단한 겁니다. 극기훈련 같은 것보다는 성적표부터 제대로 분석해야 해요. 기업이 조금만 변하면 학교는 많이 변합니다』
 
  ─「이공계 위기」 시대의 이공계 학생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봅니다. 그만큼 줄이 짧잖아요(웃음). 10~20년 내에 이공계 시대가 다시 올 겁니다. 정부가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해요. 그렇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죠. 학생 적성에만 맞는다면 끝까지 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월간조선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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