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
이석기 공판에서 드러난 내란음모 사건의 전모
김정우 기자
2014. 3. 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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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대한민국 검찰(수원지검·지검장 신경식)은 내란음모·선동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李石基) 의원에 대해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2013년 8월 28일 국정원과 검찰이 이 의원의 사무실과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된 ‘이석기 사태’는 좌파와 진보를 동일시하며 관대하게 대했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준 계기였다.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내란음모 혐의는 지난해 9월 2일 정부가 국회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상당부분 공개됐다. 이 의원 구속 이후 총 45차례 공판이 열리면서 증인 100여 명의 증언과 녹음파일 청취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이석기 의원의 행적과 RO조직의 실체를 정밀 분석했다.
수사당국이 밝힌 이 사건의 정의(定義)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대남(對南)혁명론을 추종하는 지하혁명조직의 조직원들이, 북한과의 전쟁상황이 임박하였다는 정세(情勢)인식하에, 전쟁상황이 오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는 ‘사회주의 혁명’을 결의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사건 수사는 ‘남철민(南鐵民)’이란 조직명을 사용하던 이모씨가 2010년 5월 RO조직의 실체와 활동 전반에 대해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이씨가 제보를 결정한 계기는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후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RO조직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사당국은 “이씨가 ‘자발적 신고’를 했으며, 그가 임의제출한 USB메모리에 저장된 증거물 등을 통해 적법절차에 따라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약 3년에 걸쳐 RO조직 활동을 추적하던 중, 2013년 5월 두 차례 ‘비밀회합’에서 내란음모 혐의가 포착됐고, 수사당국은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김정은 연설문으로 학습
2013년 봄, 남북(南北) 정세는 긴장 일변도(一邊倒)였다. 북한은 2월 12일 3차 핵(核)실험을 자행(恣行)했고, 3월엔 ‘정전협정 무효화’와 ‘전시상황 돌입’ 선언까지 내놓았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고, 북한의 대남무력도발 위협은 더욱 거세졌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당시 한반도 정세를 ‘전쟁상황’으로 인식하고, 각종 지침을 하달했다. ‘RO 지휘부’가 2013년 3월 ‘세포모임’에 하달한 ‘전쟁대비 3대 지침’의 주요 내용은 ▲비상시국에 ‘연대조직’을 빨리 꾸릴 것 ▲대중을 동원해서 광우병 사태처럼 선전전을 실시할 것 ▲전쟁 발발 시 미군기지·주요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 등으로 알려졌다.
지휘부는 이어 전쟁과 같은 이른바 ‘혁명적 상황’에 대비한 ‘세포단위별 결의대회’ 개최 지침을 하달했으며, 더 나아가 ‘김정은의 세포비서대회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실시하라고 세포모임에 지시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이석기의 ‘경호팀’으로 추정되는 조직원 20여 명은 강원도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산악훈련까지 실시했다.
수사당국은 “전쟁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당(黨)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김정은(金正恩)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했다는 것은 RO조직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수사당국은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이 회합을 가질 때, 사전에 미리 ‘비밀회합에서 결의할 내용’과 ‘전쟁에 대비한 군사 행동’ 등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녹취록에서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이 “우리가 조사를 해놨습니다” “우리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리가 검토한 바에 의하면” “검토받은 바에 의하면” 등의 표현을 반복한 것은 토론 내용을 사전에 준비했다는 뜻이다. 이 고문이 토론 중 언급한 총기 개조, 인터넷의 폭탄제조법, 혜화전화국·평택 유조창 등 주요시설 현황, 무기고·화학공장 주소 등은 일반인이 사전에 정보를 수집·분석하기 전엔 알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엔 ▲국군 수도방위사령부의 상황 ▲국가비상대책 행정지침 ▲국가 사이버심리전 상황 ▲인터넷 사제폭탄 사이트 ▲철탑 파괴 사례 등 ‘일반적 정세 강연’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수사당국은 “이 의원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강연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수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의원이 강연 한 달 전후인 2013년 4월과 6월 국방부와 방통위 등에 한미(韓美)군사훈련, 주한미군, 한미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 무기 도입 사업 등 군사기밀 자료와 전력공급 중단 시 방송통신 및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대응 매뉴얼 관련 자료 등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져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
수사당국은 “이 의원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폭동의 구체적인 타격 대상·방법·수단 등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수집·준비했다는 것은 전쟁대비 3대 지침, 세포별 결의대회 등과 함께 비밀회합이 RO조직 지휘부에 의해 사전에 철저히 기획됐음을 반증한다”며 “만약 RO 지휘부가 회합 이전에 별도로 모여 군사적 준비를 결의한 뒤 위와 같은 정보를 수집한 것이라면, 이는 이미 내란음모 수준을 넘어 ‘내란 예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RO 생활을 강화하자”
이 의원과 RO조직의 이념노선에 대한 정황은 회합 녹취록뿐 아니라 수사당국이 압수한 여러 물증에서도 드러난다. 이 의원이 2003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수감됐을 때 작성한 ‘메모노트’와 5개월 뒤 8·15특사로 가석방될 때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수첩들, 그리고 ‘기본강의안’과 2012년 통진당 사태 이후 작성한 수첩 등이 그 증거다. 상당부분이 기존 수사 과정에선 공개되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이 의원이 수감 중 작성한 메모노트엔 북한혁명가요 ‘동지애의 노래’를 자신의 “심장의 노래, 영혼의 노래”라고 표현하며 “어머니 조직이 바라는 길에 한결같이 걸어왔음을 자랑스럽게 총화한다”거나 “‘O’(조직)적 기준에 한 치 양보하거나 타협해 본 적이 없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가석방 전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수첩엔 “향후 통일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선전선동을 강화해야 한다”며 “선군(先軍)정치와 선군영도성을 보장하는 UR(통일혁명) 노선을 점검하고 유일 혁명노선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수첩 내용 중 이른바 ‘KR(한국혁명) 전략전술’과 관련한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조선노동당이 혁명무력을 형성하고, 전위조직과 통일전선이 결합한 당의 반제역량이 결속단계까지 이르러야 수권이 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시기 교훈이다. 현 시기는 민족자립성 측면에서 분열극복이냐 예속지속이냐 전선이 명확하다. 민주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혁명을 기본으로 촉구하고 대중성을 결속하고 여론전을 전개해야 한다.〉
이 의원은 해당 수첩에 “혁명운동 전반에 당적지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건설한다. 정계에 진출하여 상층을 형성한다”는 취지의 ‘영도 보장’ 관련 메모도 했다. 수사당국은 이를 두고 “지하혁명조직의 건설 방법과 운영원칙”이라며 “이와 같은 노선은 RO의 강령, 조직보위수칙, 운영수칙 등에 그대로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가석방 후에 작성한 또 다른 메모수첩엔 “RO 생활을 강화하자”는 식으로 RO에 대해 적시했다. 수첩엔 “조직활동의 기본이 조직의 규율준수임을 강조하고, 총화·분공수행·사상학습·동지애 등을 통해 낡은 착취사회 개조를 위한 임무 수행, 총화 기준을 엄격히 세워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수사당국이 2004년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한 ‘기본강의안’엔 “한국변혁운동은 외세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종국적으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자주권을 확립하는 통일혁명” “남북이 자기의 초소에서 자주위업 달성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완수하는 과정으로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자민통)의 전략적인 이해가 필요” “변혁조직은 낡은 사회를 개조하는 무기이자 자신 운명을 개척하는 기본방도이며 사회정치적 생명을 빛나게 하는 정치생명의 모태”란 표현이 등장한다.
강의안엔 “혁명운동의 준비기 전술에 맞춰 변혁역량을 적의 탄압으로부터 보호·보존하고 끊임없이 축적·장성·강화해 나가야 하고, 한국변혁운동의 전략적 승리를 위한 3대 과제는 지도이념, 통일전선, 혁신정당운동”이란 내용도 담겼다.
압수물에서 발견된 문제적 표현들
이 의원이 가장 최근 작성한 수첩엔 “혁명은 사상의지나 규율만 가지고는 안 되고, ‘관리형 O(조직)활동’에서 ‘R.O 활동’으로 전환해 주체의 기치 아래 총 단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혔다. 당사자들이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 RO조직과 관련한 용어가 이 의원의 수첩에 적힌 셈이다.
이 의원과 함께 구속기소된 인사들의 압수물에서도 다수의 ‘문제적 표현’이 발견됐다. 수사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김근래(金根來)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의 ‘유알오’란 파일엔 ▲주체사상의 의미 ▲남한 혁명조직의 노선·목적 ▲조직원의 가입과 의무 등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교양’이란 파일엔 “김일성 주체사상은 자주시대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지도적 지침” “주체사상을 구현한 주체적이고 혁명적인 조직노선”에 따라 투쟁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의 ‘한국기자협회’ 수첩엔 “1990년 남한혁명(SK R) 지도역량 구축” “정당 선거를 가지고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싸워서 이기는 방식으로 적을 무너뜨려야” 등 내용이 적혔다.
조 대표로부터 압수한 ‘ks0.txt’란 파일은 “조선혁명이야말로 우리 당 사상사업의 주체” “주체형의 혁명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정세.txt’ 파일은 “한국변혁운동세력에 대한 적들의 탄압은 집요하고 강해지지만 이는 역으로 우리의 힘이 장성하였으며 전 조선의 혁명적 정세가 격변의 시기에 이르렀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 대표는 이와 함께 ‘장군님·대표님에 대한 충성’과 ‘조직보위’ 등에 대한 총화서 30여 건도 함께 소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에게서 압수한 문건들에선 “한국은 본질에 있어 미국의 식민지” “우리 변혁운동의 기본임무는 자주화, 민주화, 조국통일이고 그 성격은 민족해방운동” “김대중 정권은 한국을 완전한 경제적 식민지로 재편하기 위한 미국과 결탁한 정권” “현장에서는 미국과 김대중 정권에 맞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 등의 내용이 나왔다.
수사당국이 밝힌 RO조직의 ‘3대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사회의 변혁운동을 전개한다” “남한사회의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한다”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전파 보급한다” 등이다. 조직원의 ‘5대 의무’는 ‘조직보위’ ‘사상학습’ ‘재정방조(돈을 분담해 곁에서 도와줌)’ ‘분공수행(임무를 나눠 수행)’ ‘조직생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은 5대 의무와 관련, 피고인들의 압수물에서 일관성 있는 내용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메모수첩에 적은 “규율준수, 총화, 분공수행, 사상학습, 동지애”란 내용과, 김근래 부위원장의 ‘유알오’ 문건에 적힌 “사상무장, 조직보위, 임무수행, 규율준수, 재정방조” 등, 홍순석(洪珣碩)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2013년 1월 세포모임에서 총화서 작성 방법을 설명하며 “사상무장의 문제, 조직보위의 문제, 규율, 분공수행, 재정문제”를 언급한 것, 조양원 대표가 소지한 총화서가 “가드, 사상학습, 조직임무, 조직규율, 재정” 등에 따라 체계적으로 작성된 점 등이 그 사례다.
RO조직원들은 자신의 실명 대신 별도의 조직명으로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남형’ 또는 ‘남철민’으로 불렸고, 이상호 고문은 ‘유형’, 홍순석 부위원장은 ‘윤기수’, 한동근 전 위원장은 ‘강형’ 등의 조직명을 사용했다.
‘비밀회합’의 실체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지난해 5월 10일과 12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청소년수련원과 서울 마포구 마리스타수사회에서 있었던 비밀회합의 성격과 내용이다.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 측은 처음엔 모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다가 체포동의안이 공개되자 뒤늦게 모임 참석 사실을 시인했다.
이 의원 측의 “강연만 마치고 돌아갔다”는 주장도 후에 “마무리 발언까지 했다”는 것으로 바뀌었고, 총기나 폭탄 파괴 등 발언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 개진 중 농담”이라고 했다가 피고인 신문에선 “예비검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흥분하여 말을 잘못했다” “토론주제를 잘못 이해한 모험주의적 발언”으로 바꿨다.
이 의원 측은 이 회합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RO조직이 아닌 통진당 경기도당의 공식 당 행사 ▲반전·평화 목적의 단순 ‘정세강연회’ ▲이석기는 ‘초청 강사’라고 주장했다.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전쟁대비 3대 지침’이나 ‘세포결의대회’ 등은 “진보연대의 지침이거나 통합진보당 긴급연석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라고 반박했으며, “물질·기술적 준비” “후방 교란” “철탑 폭파” “군사적 해결” 등 발언은 “미국에 의한 전쟁도발을 막고 현 정세에 대한 당원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역설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수사당국의 결론은 전혀 다르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주체사상에 의한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목표로 암약하는 대남 혁명세력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북한의 연이은 대남도발 공세로 촉발한 전쟁상황에서 ‘남북(南北)의 자주역량’이 60여 년간 지속된 미(美)제국주의 지배체제를 끝장내고 통일혁명을 완수할 것과, 이를 위해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물질 기술적·정치 군사적 준비 체계를 갖출 것을 결의하면서, 그 구체적 방법으로 ▲매뉴얼 마련 ▲총기 및 폭탄의 입수·제조 ▲통신·철도·가스·유류·전기시설 등 국가 주요시설 파괴 등을 모의했다”고 밝혔다.
수사당국은 “RO의 비밀회합은 조직원들이 즉각적 무장투쟁을 결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다”고 강조했다. 공판 과정에서 녹취록 등을 통해 밝혀진 회합의 진행 순서와 논리 전개는 다음과 같다.
①현(現) 정세가 왜 ‘전쟁상황’인지, 어떻게 ‘강력한 혁명적 계기’가 도래했는지에 대한 분석 ②‘남녘의 혁명가’는 어떤 관점에서 현 정세를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③‘남쪽 자주역량’의 행동노선(필승의 신념과 물질 기술적·정치 군사적 준비 체계 구축) 제시 ④즉각 전투태세를 갖춘 전쟁조직 정비 결의 ⑤질의응답을 통한 군사적 행동노선의 당위성 설득 및 토론 주제 제시 ⑥권역(圈域)·부문별 토론을 통한 전쟁조직 정비 및 군사 행동 등 구체화 ⑦마무리 발언을 통한 사상 무장, 창조적 발상에 의한 물질 기술적 준비, 총공격 명령에 따른 조직적 투쟁 등 ‘무장투쟁’ 결의 강화.
이석기 의원은 현 시대상황을 “미 제국주의 지배질서가 몰락하고 우리 민중의 자주적 진출에 의해 새로운 질서가 교체되는 대시대 격변기”라고 규정했다. 그는 “북의 총체적 역량이 ‘조·미(朝美)’ 간의 낡은 고리를 끊어내는 대(大)결산을 선포한 것이 ‘정전협정 무효화’이며, ‘강력한 혁명적 계기’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즉각 전투태세’
수사당국과 녹취록 등에 따르면, 이 의원은 회합 당시 “미국의 지배질서는 전 세계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반면, ‘남쪽의 자주역량’은 미 제국주의의 낡은 양당 질서를 무너뜨리며 원내 교두보 확보라는 혁명의 진출을 이뤘다”며 “‘북(北)의 자주역량’은 우주과학의 발달, 핵(核)보유 강국 등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정세를 분석했다.
이 의원은 ▲참여연대의 ‘총보다 꽃’ 퍼포먼스와 같은 미국을 배제한 남북평화 추구 ▲북한이 북·미 대결전에서 승리하기만 기다리는 자세 ▲이정희(李正姬) 통진당 대표처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입장 등을 두고 “정세를 직시하지 못하는 잘못된 3가지 편향”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편향된 정세관’ 대신 “‘조선혁명’이라는 전체적 관점, 남북의 자주역량 관점, ‘조선민족의 자주적 관점’ ‘남쪽의 혁명’을 책임진다는 ‘주체적 입장’ 등에서 정세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제시한 새로운 ‘혁명노선’은 “필승의 신념으로 사상을 무장하여 일치단결하고, 동지애를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정치 군사적·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단단히 구축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자”는 것으로 요약·분석된다.
이 의원은 “‘남녘의 혁명가’에겐 지배세력의 탄압, 선무공작 등 많은 어려움이 예상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며 “‘우리 동지부대’가 선두에서 ‘적’들에게 군사적인 파열음을 내고, 적들의 통치에 파열구(破裂口)를 내는, 전선(戰線)의 허(虛)를 타격하는 선봉이 될 것과 ‘즉각 전투태세’에 들어갈 것”을 선동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발언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경제적 해결 방법, 반전평화, 평화협정체결 대중운동 등의 한계를 지적하며 ‘군사적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토론 주제도 ‘정치 군사적 준비를 위한 전시토론’이라고 제시했다.
이후 실시된 권역·부문별 토론에선 지침·매뉴얼 마련과 연락 체계 및 지휘 체계 구축 등 조직 정비 방안이 다뤄졌다. 특히 ▲총기 폭탄 구입·제조 ▲무기 탈취 ▲철도·통신·가스·유류시설 등 주요시설 타격 ▲주요시설 근무자 포섭 ▲정보전·선전전 등에 대한 구체적 토론이 이뤄졌다. 수사당국이 밝힌 RO 권역별 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부권역은 ▲총기 개조·폭탄제조·파출소 무기 탈취 등 무장 방법 ▲혜화전화국, 분당IDC, 평택 유조창, 미군 유류라인 등 철도·통신·가스·유류시설 파괴 ▲주요시설 근무자 포섭 ▲지침·매뉴얼 마련 ▲비상식량 확보 ▲연락 체계 구축 ▲전시 비상 체계 ▲정보 수집 ▲대중 조직화 등이 모의됐다.
동부권역은 ▲총기 무장 ▲전기·통신 분야 공격 등이, 중서부권역은 ▲총 준비 ▲무기 습득 ▲기술 습득 ▲첨단기술·해킹기술로 레이더기지 마비 ▲지도부 중심 ▲지도부 보위 ▲대중 침투 등이 모의됐다.
북부권역은 ▲후방교란 ▲무장과 파괴 ▲집결지 ▲이동루트 ▲미 군속들 움직임 파악 ▲발전·지하철·철도 등 국가기간산업 침투 ▲행정부서 전산망 파악 ▲정보전 ▲연락 체계 ▲예비역 중심 팀 구성 ▲군사매뉴얼 준비 등이 모의됐다.
이 외에도 청년 부문에선 ▲사상전 준비 ▲선전전 준비 ▲시설 폭파 ▲유인물 대회 등이, 중앙팀에선 ▲총 준비 ▲정보전 ▲적들의 통신·도로망 등이, 기타 팀에선 ▲군사적인 지휘보고 ▲조직력 ▲강력한 조직생활 등이 모의 됐다.
이들의 모의 내용 중엔 “공대 나온 사람이 당사 2층에서 폭약 만드는 방법 공부” “각자의 초소에서 구체적으로 혁명전 준비” “혁명이 부를 때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태세” “대표님 중심 수뇌부 보위” “지도부 중심의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 등도 포함됐다.
‘한 자루 권총사상’
권역·부문별 발표가 끝난 후 이석기 의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물질 기술적 준비 방법이 각자의 초소에 무궁무진하다”며 철탑 파괴와 같은 ‘창조적 발상’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또 ‘한 자루 권총 사상’과 ‘볼셰비키 혁명 사상’ 등으로 무장해 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구축하고, ‘총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일체화된 강력한 집단적 힘을 통해 한순간에 조국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고 선동했다.
이 의원이 ‘한 자루 권총사상’과 함께 언급한 “미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맞서 정의의 전쟁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부분은 1970년 김일성이 5차 당 대회에서 한 말로, 북한 도서인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 리론》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석기 의원 측은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회합의 실체에 대해 “통신·철도·가스·유류시설 파괴 등은 일부 참가자들이 물질 기술적 준비를 다르게 이해한 데서 비롯된 발언”이라며 “다수 참가자가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웃음으로 반응하는 등 농담조의 이야기였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 측은 ‘총, 칼, 폭탄’ 등 내용은 “이 의원이 일부 참석자의 언급에 대해 ‘지배세력의 정보력에 의해서 다 파악될 수 있고 허황된 것이니 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며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무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이자는 것과,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그런 방향성을 제시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수사당국은 이에 대해 “간부들을 질타하며 갑작스레 회합을 해산하거나, ‘군사적 준비 체계를 갖추자’는 이석기의 선동에 따라 새벽 3시경까지 토론·발표를 진행하는 모습 등을 볼 때, 회합이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며 “변호인의 주장은 회합의 의미를 왜곡하고 축소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재반박했다.
이석기 의원 측은 이 비밀회합이 “통진당 경기도당이 주최한 공식적인 정세강연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통진당 경기도당의 회의자료, 홈페이지, 참석자들의 SNS 계정 등에 두 모임에 관한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다 모임 공지, 플래카드, 사진 촬영 등 당 공식행사에서 통상 보이는 외관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며 주장을 일축했다.
이 외에도 ▲차로 몇 시간씩 걸려 늦은 밤 곤지암까지 찾아온 이들을 단지 보안상 이유로 10여 분 만에 해산시킨 점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6명 중 3명이 참석한 행사임에도 의원 소개가 전혀 없었다는 점 ▲이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발언 중 경기도당과 관련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보면 이 의원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金日成에만 극존칭
RO조직의 노선과 목적은 비밀회합 및 세포모임 녹취록과 이 의원의 수첩 등 압수물, 그리고 제보자의 진술 등에 의해 상당부분 밝혀졌다. 수사당국이 파악한 RO조직 노선의 핵심은 “북한은 자주화된 사회, 대한민국은 미제국주의 식민지”란 인식이다.
녹취록과 수사자료에 따르면 이 의원과 RO조직원들은 “미 제국주의와 조선민족의 한판 대결” “조선반도의 자주역량과 미 제국주의 지배세력과의 총결산의 장” “미 제국주의에 의한 낡은 지배질서” “미 제국주의 지배세력의 60년 지배” “미 제국주의 지배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 “미 제국주의의 낡은 양당질서” 등의 용어를 반복한 바 있다.
이들은 한반도 정세의 본질이 “남북 자주역량과 미 제국주의 지배세력 간의 충돌·전쟁”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 대해선 강한 적개심을 표현한 반면, 북한의 ‘자주역량 강화’는 추종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 의원에게 북한 정권은 옹호해야 할 대상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적(敵)’이었다. “조선 백 년의 역사에 우리 민족의 새로운 전환을 새롭게 결의하는 대 전기”란 이 의원의 발언 중 ‘조선 백 년의 역사’란 북한의 연호(年號)인 ‘주체 100년’을 뜻한다. ‘6·25 해방전쟁’ ‘반제(反帝)·반미(反美) 원칙을 가지고 미국과 싸운 나라’ 등 표현도 RO조직의 역사관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은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장준하(張俊河) 전 의원 등 국내 진보 그룹에서 존경을 받는 인물에 대해선 존칭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김일성의 경우엔 ‘주석님’이란 극존칭을 사용했다. 김정은에 대해선 ‘위원장 동지’란 북한식(式) 직함을 붙였다.
이 의원의 미공개 녹취록엔 “이게 다 (김일성) 주석님의 어록에 나온… ”이란 대목이 등장한다.
북한의 ‘자주역량’에 대해선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북한 위성인 ‘광명성 3호’에 대해선 “우주과학 역사에서 엄청난 일”이라며 “인공위성 발사와 3차 핵실험은 자력갱생 ‘간고분투(艱苦奮鬪·고군분투의 북한어)’의 혁명투쟁”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북에서는 모든 행위가 다 애국, 남에서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라고 했다. 남한 정부 등을 ‘쟤들’ ‘저놈들’ ‘남측의 지배세력’ 등으로 부른 것과, 자신들의 국회 진출을 ‘저놈들의 목전까지 침투’라고 표현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이 의원이 ‘조국’을 ‘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이석기 “RO는 상상 속 조직”
수사당국은 이 의원과 RO조직원들이 북한의 대남투쟁 3대 과제인 ‘자주·민주·통일’을 추종하며, ‘자주의 기치를 든 조선혁명’과 이를 위한 ‘남북 자주역량·민족 주체역량’의 강화를 주장한다고 했다. 또한 이들이 주체사상과 계급투쟁론에 입각한 혁명관을 주장하며, 현재를 ‘혁명의 시기’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어느 혁명이 수입할 수도, 수출할 수도 없는 겁니다”라는 표현은 북한 영화 <민족의 태양> 2부에 등장하는 “혁명은 수출할 수도 수입할 수도 없으며 그 나라 혁명의 주인은 그 나라 인민 자신”이란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이석기 녹취록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 군사적 준비’란 표현은 김일성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제24장 ‘거족적인 반일항전’에 나오는 “일제를 타도하자면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인민을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튼튼히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민(全民)항쟁과 관련된 우리의 주장이었습니다”란 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수사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공산주의 혁명이론에 입각한 대남혁명론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오면 이른바 ‘전민항쟁’과 같은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다”며 “노동자 계급의 투쟁으로 자본가 계급과의 이중권력 상황이 됐을 때, 자본가 계급은 필연적으로 물리적 탄압과 반혁명 책동을 할 것이므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무장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게 공산주의 혁명이론”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발언 중 “지배세력이 수십 년간 60여 년 동안 형성했던 이 물적 토대를 무너뜨려야 돼요. 60년 전쟁이란 새로운 전환기에 쟤들은 저절로 물러나지 않을 거다. 온갖 방해 책동, 물리적 탄압, 공작이 들어올 거다. 당연하지 전쟁인데”란 부분이 공산주의 혁명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것이다.
탈북자들도 이석기 의원의 발언 내용에 대해 “북한의 사고방식에 동화돼 노동당의 대남전략 사상에 충실하다”고 설명했다. 김성민(金聖珉)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지난 2월 10일 〈탈북자 대표들이 이석기 재판부에 드리는 공개 청원서〉를 통해 이 의원의 발언 내용 중 북한식 용어가 사용된 부분을 100곳 이상 찾아 공개했다.
김 대표는 “단순히 북한에서 쓰이는 용어뿐 아니라 김일성의 저작에 실린 교시 내용과 상당부분 일맥상통하는 발언이 다수 발견된다”며 “김일성의 교시에 입각해 ‘남조선혁명’을 수행하려는 사상”이라고 했다. 또 “이 의원의 발언 내용은 노동당의 대남전략사상을 확실하게 습득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며 “김일성·김정일의 교시와 김일성 회고록을 제대로 ‘학습’하지 않으면 탈북자인 우리도 구사하기 어려운 문구”라고 강조했다.
이석기 의원은 2월 3일 열린 1심 결심공판에서 “북한과 연계를 맺은 적도 없고 RO 총책도 아니다”라며 “만약 음모가 있었다고 한다면 저의 내란음모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영구집권 음모가 있었다고 하는 게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과 통진당 측은 “녹취록이 700군데 이상 조작됐고, 제보자의 진술이 모두 번복됐다”며 공소제기 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RO’는 국정원과 검찰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조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단독입수] RO ‘세포모임’ 녹취록
“‘장군님’ 지키는 게 ‘조국’ 지키는 것”
이석기 의원이 2013년 5월 두 차례 소집한 비밀회합엔 130여 명의 조직원이 참석했다. 수사당국은 이들이 평소 권역별로 3~4명씩 ‘세포조직’을 이뤄 ‘RO 5대 의무’인 조직보위, 사상학습, 재정방조, 분공수행, 조직생활 등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단선연계(單線連繫) 방식으로 관리된 조직원들이었지만, 이 의원이 2013년 3월 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 등 상황을 전쟁상황 및 결정적 시기로 간주해 ‘평시(平時)’엔 금지된 ‘횡적 연계’를 결정해 한자리에 모았다고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채택된 녹음파일 중 상당수는 제보자가 포함된 ‘3인 세포모임’의 토론 내용이다. 수사당국은 이 모임을 ‘RO조직의 세포모임’이라고 규정했지만, 변호인 측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동문 선후배가 서로 생활을 챙겨주고, 사업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 나아가 진보활동가로서의 자각을 높이기 위해 이따금 학습과 생활평가(총화)를 했던 모임”이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문제의 ‘세포모임’ 녹취록을 단독입수했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를 비롯해 통진당의 한동근(韓同謹) 전(前) 수원시위원장과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이 2012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모여 학습·토론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수원역 인근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에 모여 김정은의 연설문을 학습하거나 상부의 보안지침을 전달하는 등 조직적 활동을 수행해 왔다. 모임은 주로 리더격(지휘성원)인 홍순석 부위원장이 한동근 전 위원장과 제보자에게 지시·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2년 9월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개최한 모임에서 홍씨는 문서 암호화 프로그램인 ‘트루크립트(True Crypt)’ 사용법 등을 지도했다. 수사당국은 이를 RO조직의 ‘조직보위의 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녹취 내용 중 일부다.
“트루크립트라고 PGP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 사용을 앞으로 해야 되거든. 프로그램 깔아주고 해야 되거든. 다음에 한번 가져와. 저번에 내가 그거 가르쳐준 거야. 만약에 이후에라도 뭐 써라 그러면 트루크립트를 띄워놓고 그러면 가상 드라이브가 생기잖아.”
수사당국과 녹취록에 따르면, 홍씨는 조직원들이 2~3개의 비폰(秘phone·일명 대포폰)을 사용한다며 주의사항을 주지시켰다.
“핸드폰 비폰 쓰는 사람들은 이상한 전화도 오고 그래. 예를 들면 ‘어디 경찰선데 누구 폰 아니냐 당신 맞냐’ … 그 사람 명의로 하면 폰이 조사를 하면 2개 3개 나올 거 아니야? … 10월달 들어가면 쟤네가 수사발표도 한다고 그랬으니까.”
2013년 1월 한 커피전문점에서 회합한 이들은 홍씨의 지시에 따라 암호화 프로그램 설치 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북한 ‘혁명영화’와 ‘회고록’ 등을 USB메모리에 담아 전달하며 소감문을 작성 후 암호화해 2012년 ‘총화서’와 함께 제출하기로 했다.
공중전화 활용 ‘秘폰’ 연락法
이날 모임에선 1월 26일부터 이틀간 소백산에서 RO 모임과 이석기 정세강연이 열린다는 고지와 함께 ‘남부’ 및 ‘중서부’와 같은 권역이 언급됐다. 홍씨는 공중전화를 활용한 ‘비폰’의 연락법도 함께 설명했다. 내용 중 일부다.
“남부만 한 70명 되는 거야. 중서부 30명 되고, 100명이 넘잖아. 100명이 … 일찍 갔다가, 산을 갔다가 내려와서, 정세강연을 한번 듣고, 정세강연을 이석기 대표가 한다니까….”
“혹시 나한테 연락할 일 생기면 비폰이 하나 있거든. … 공중전화 번호를 누르면 ‘삑삑삑삑’ 소리가 나잖아. 그럼 이상한 거지. 그러면 내가 연락을 … 비폰이 하나밖에 없잖아. 이거 받으면 번호를 누른다 말이야. 공중전화 번호를.”
2주 후 열린 모임에선 ‘이석기의 애국가 발언’과 함께 북한 영화 <조선의 별> 3부와 김정일의 노작 ‘당의 사상과 령도에 끝없이 충실한 김책형의 일군이 되자’와 같은 사상학습자료 및 ‘총화서’ 작성 등에 대한 내용이 녹음됐다.
“이석기 의원이 두드려 맞으면서 한마디 한 게 이 사람들한테 꽂혔는데. 애국가 발언 있잖아. 이 사람이 색깔이 있는 사람이구먼. 이게.”
“주제2는 라자구 등판에서 하고 그거하고 별. … 주제3이 … 김책 동지고 … 영화가 41년도 바람. 주제4가 영화를 … 군위병 아들들.”
“그 조직생활 총화나 사실 이 단위에서 제기할 것을 여기서 제기하는데, 우리는 사상무장의 문제, 조직보위의 문제, 규율도 있어야 되고, 이번 주에 분공수행 재정문제 … 이게 사실 재정문제나 이런 거는 상당히 구체적이긴 한 건데.”
이른바 ‘소백산 모임’ 후 1월 30일 열린 세포모임에선 “이석기 의원이 자빠지거나 잘못되면 큰일 나는 구조”라는 등 이석기 의원의 ‘조직 내 위상’과 지방선거에서의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저 사람이 도대체 뭔데 뭐 선배들은 이석기 의원 오면 꼼짝도 못하고 설설 기고 아니면 뭐 오면은 완전히 뭐 뛰어 나와가지고 맞으려고 막 그러냐 이런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니깐.”
“민주당과 연대 연합해서 지방선거를 돌파를 해서 뭔가 그것을 타고 자기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뭘 따내든지? 신념의 돌파라든지 이게 민주당과 연대 연합해서 돼야지 진보당과 합친다고 답이 나오지 않아. 그다음 단계가 민주노동당이야. … 실력을 안 쌓은 상태에서 통합되면 우습게 알잖아 사실. 연대 연합 대상은 민주당인데 민주당이 우리를 인정하고 하면 연대 연합이 돼야지. 지방선거에서 안양 이런 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시장들이. 자리 하나 못 받아.”
“광우병처럼 만들 것”
2013년 3월이 되자 ‘현 정세’에 대한 본격적인 지시와 활동지침이 내려졌다. 수원의 한 식당에서 열린 세포모임에서 홍씨는 “현 정세는 일촉즉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그와 관련해 온 세 가지 지침, ▲‘연대조직’을 빨리 꾸릴 것 ▲대중을 동원해서 광우병처럼 만들 것 ▲만일 전쟁 발발 시 주요시설·미군기지 등 정보를 수집할 것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정세와 관련해서 전쟁이 … 오늘은 좀 누그러졌는데 일촉즉발, 전쟁이 날 수도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거와 관련해서 지침이 한 3가지 왔는데. …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는 대중 동원해서, 옛날 광우병처럼 만들어 보면은 … 근데 요즘에는 주요한 시설이 미군기지도 있는데, 부대가 아니라 그냥 레이더기지나 전기시설 이런 것 있잖아.”
2주 후 열린 모임에선 차주에 개최할 ‘세포결의대회’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과 함께 미리 학습해야 할 북한 노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에서의 ‘김정은 연설문’이 언급됐다.
“우리 결의대회 세포별로 다 결의대회 하라고 해가지고 일정을 잡아야 되는데, … ‘통일뉴스’ 들어가면 검색어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을 치든 아니면 북에서 전국 세포대회를 한 적 있어. … 기사 중에 세포대회를 했다 보도가 나오고, 밑에 박스처리가 되어가지고 전문이 실렸어. … 그거를 학습을 해야 되거든.”
홍씨가 지시한 대로 해당 인터넷 매체를 검색하면 김정은의 연설을 요약한 기사와 함께 연설 전문이 그대로 게재돼 있다. 이들은 이 자료로 각자 학습을 진행했다.
2013년 4월 5일 열린 모임에서 홍씨 등 3명은 북한 혁명영화 <월미도>를 시청한 후 소감을 나눴는데, 김일성을 ‘장군님’으로, 북한을 ‘조국’으로 지칭했다. 이들은 또 수원 지역 미군 비행장과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을 언급했는데, 수사당국은 3월에 하달된 ‘전쟁대비 3대 지침’을 수행할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분석했다.
“근데 장군님이 해방시켜 놓은 조국은 인민이 잘살 수 있는, 가족의 행복을 찾는, … 그래서 장군님을 지키는 것이 조국을 지키는 거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수원은, 여기 기지가 전략적인 기지가 수원비행장인가? 그 미군 비행기가 거기로 내리고 뜨고 그러나? …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있다고 여기.”
20일 후인 4월 25일 모임에서 이들은 김정은의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홍씨는 공자(孔子)의 “학이불사칙망, 사이불학칙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를 인용하며 ‘당(북한 노동당)’의 지침과 사상을 학습하면서 사람사업(혁명사업)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찾으라고 교육했다.
2013년 5월 8일엔 김정일 선집 제9권에 수록된 이른바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란 담화를 기초로 ‘학습’이 이뤄졌다. 수사당국은 참석자들이 “소위 ‘젊은 수령’ 김정은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면서 3대 세습을 합리화하고, 수령으로 수용하여 ‘수관’(수령관)을 확립할 것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여기 핵심은 수관이잖아. 그 수관이 지금의 수는 지금 김정은 장군 이렇게 지금 현황으로 보면 있으니깐. 세웠으니깐 지도자를. … 믿고 간다. 저쪽의 판단을 저쪽 집단의 판단을. 그렇게 해결할 수도 있어. 그지. 저쪽 집단이 옳게 결정했겠지 뭐. … 이런 사상을 전 사회적으로 공부하는 집단인데. 그지. 내놓고 공부하는 데인데 옳게 결정했겠지 뭐. 그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가는 경우도 있지.”
“전화 전달 금지”
이날 모임에선 이석기 의원에 대한 위상도 언급됐다. 수사당국은 홍씨가 “한국혁명에 있어서 ‘수(首)’는 한 명”이라며 북한의 수령을 유일한 수령으로 인정하고, “이석기 대표는 남쪽에서의 역할이 있다”며 ‘남한혁명’을 책임지는 지도자로 묘사했다고 밝혔다.
“한국혁명에 있어서 ‘수’는 한 명이잖아요.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잖아. 일부에서는 또 그런 얘기도 하는 사람도 있어. 그러면 이석기 대표는 뭐냐고? 어떤 사람들은 이석기 대표가 남쪽의 대표자다. 이러고 그러는데. ‘수’는 한 사람이죠. 이석기 대표의 역할이 있는 거지. 남쪽에서의 역할이 있는 거지.”
홍씨는 이날 이른바 ‘5·10 곤지암 비밀회합’에 대한 규모와 보안사항 등을 전달했다. 그는 “5월 10일 밤 10시경 이석기의 정세강연이 포함된 150~200명 참석 모임이 개최된다”며 “전화를 통한 장소 전달이 금지됐다”고 알렸다.
수사당국은 “전화 장소 전달을 금지할 정도로 극도로 보안을 지키는 비밀회합은 해당 모임이 단순한 통진당의 공개 행사가 아닌 RO조직의 비밀회합임을 반증한다”며 “‘도당 간부가 회합장소를 잡는다’는 의미는 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 김홍열을 비롯한 대부분 간부가 RO 지휘성원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씨는 다음날 한 골목에서 만난 제보자에게 곤지암 비밀회합 장소를 전하며 “휴대전화 전원을 차단하고, 차량 이용 시 수련원 500m~1km 인근에 주차한 후 도보로 이동하라”는 등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회합 정보를 전할 때도 동일한 지시를 내렸다.
홍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가택 압수수색을 당할 경우 증거를 없애는 방법도 알려줬다. 수사당국과 녹취록에 따르면, 1998년 민혁당 사건 당시 격침된 북한 잠수정에서 발견된 수첩 전화번호 때문에 하영옥이 검거된 사례와 천안함 폭침 당시 바닷속 증거물 인양 사례 등을 예로 들며 “압수수색 당할 때 수사관이 영장을 읽는 틈을 이용하거나 각종 구실을 붙여 시간을 번 다음, USB 등은 ‘이빨로 잘라버리라’라는 등 증거를 완전히 인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교육했다.
“잠수정이 격침당한 거야. 수심에 가라앉았을 거 아냐. 그거를 얘네들이 꺼낸 거라고. 꺼냈는데 수첩이 나온 거지. 수첩에 전화번호가 이렇게 몇 개 있었대. … 두 번호가 조합을 같이했더니 어디 전화번호가 나온 거야. 저기 하영옥씨 있는 저기 고시원 그쪽에 전화가. … 얘네가 그 정도더라고. 천안함 이런 거 다 건지잖아 바다 속에 있는 거.”
“그런 어떤 틈에 USB가 있으면 그런 것을 전달하거나 아니면 잠깐 화장실 갈 거라고. 이런 거는 뽀개기가 어려워. 뽀개서 버려야 되는 거잖아. 손톱만 한 거는 그냥 이렇게 이빨로 이렇게 해도 반 짤라지는 거거든. 이제 몰래 버릴 수가 있는 거지.”
이석기 의원 측은 ‘세포모임’에 대한 수사당국의 분석에 대해 전면 부정했다. 변호인 측은 “‘전쟁대비 3대 지침’이라는 언급 자체가 없는데다 해당 내용도 왜곡됐다”며 영화 <월미도>를 본 후엔 “전쟁 결의를 다진 것이 아니라 반전평화실천의 결의를 다졌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 측은 5월 10일과 12일에 열린 회합에 대해서도 “한동근은 홍순석에게 사회적기업 워크숍 때문에 5월 10일 강연에 참석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홍순석도 달리 참석을 지시하지 않았다”며 “‘3인 모임’은 ‘RO 세포모임’이 아니라 오직 제보자 이씨만이 ‘RO’ 조직원이 되고자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2014년 3월호
[정치·북한] - 이석기와 RO의 '내란음모'가 '성공'했다면?
[정치·북한] - 이석기와 내란음모, 그리고 민혁당
[정치·북한] - 경기동부연합의 정체, 從北의 실체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내란음모 혐의는 지난해 9월 2일 정부가 국회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상당부분 공개됐다. 이 의원 구속 이후 총 45차례 공판이 열리면서 증인 100여 명의 증언과 녹음파일 청취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이석기 의원의 행적과 RO조직의 실체를 정밀 분석했다.
수사당국이 밝힌 이 사건의 정의(定義)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대남(對南)혁명론을 추종하는 지하혁명조직의 조직원들이, 북한과의 전쟁상황이 임박하였다는 정세(情勢)인식하에, 전쟁상황이 오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는 ‘사회주의 혁명’을 결의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사건 수사는 ‘남철민(南鐵民)’이란 조직명을 사용하던 이모씨가 2010년 5월 RO조직의 실체와 활동 전반에 대해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이씨가 제보를 결정한 계기는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후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RO조직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사당국은 “이씨가 ‘자발적 신고’를 했으며, 그가 임의제출한 USB메모리에 저장된 증거물 등을 통해 적법절차에 따라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약 3년에 걸쳐 RO조직 활동을 추적하던 중, 2013년 5월 두 차례 ‘비밀회합’에서 내란음모 혐의가 포착됐고, 수사당국은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단독입수]
RO ‘세포모임’ 녹취록 / 이석기의 합정동 ‘RO조직 비밀회합’ 현장 강연 사진
⊙ 미공개 녹취록 - “이게 다 (김일성) 주석님의 어록에 나온…”
⊙ 이석기 의원에게 대한민국은 敵
⊙ 이석기 최근 수첩, “‘R.O 활동’으로 전환해 주체의 기치 아래 총 단결이 필요하다”
⊙ “KR(한국혁명) 전략전술은 先軍정치·영도성을 보장하는 UR(통일혁명) 노선”
⊙ 검찰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폭력적 전복하려는 ‘사회주의 혁명’ 결의”
⊙ 이석기 “RO는 국정원·검찰의 상상 속 조직… 음모가 있다면 박근혜 정부의 영구집권 음모”
RO ‘세포모임’ 녹취록 / 이석기의 합정동 ‘RO조직 비밀회합’ 현장 강연 사진
⊙ 미공개 녹취록 - “이게 다 (김일성) 주석님의 어록에 나온…”
⊙ 이석기 의원에게 대한민국은 敵
⊙ 이석기 최근 수첩, “‘R.O 활동’으로 전환해 주체의 기치 아래 총 단결이 필요하다”
⊙ “KR(한국혁명) 전략전술은 先軍정치·영도성을 보장하는 UR(통일혁명) 노선”
⊙ 검찰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폭력적 전복하려는 ‘사회주의 혁명’ 결의”
⊙ 이석기 “RO는 국정원·검찰의 상상 속 조직… 음모가 있다면 박근혜 정부의 영구집권 음모”
김정은 연설문으로 학습
2013년 봄, 남북(南北) 정세는 긴장 일변도(一邊倒)였다. 북한은 2월 12일 3차 핵(核)실험을 자행(恣行)했고, 3월엔 ‘정전협정 무효화’와 ‘전시상황 돌입’ 선언까지 내놓았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고, 북한의 대남무력도발 위협은 더욱 거세졌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당시 한반도 정세를 ‘전쟁상황’으로 인식하고, 각종 지침을 하달했다. ‘RO 지휘부’가 2013년 3월 ‘세포모임’에 하달한 ‘전쟁대비 3대 지침’의 주요 내용은 ▲비상시국에 ‘연대조직’을 빨리 꾸릴 것 ▲대중을 동원해서 광우병 사태처럼 선전전을 실시할 것 ▲전쟁 발발 시 미군기지·주요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 등으로 알려졌다.
지휘부는 이어 전쟁과 같은 이른바 ‘혁명적 상황’에 대비한 ‘세포단위별 결의대회’ 개최 지침을 하달했으며, 더 나아가 ‘김정은의 세포비서대회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실시하라고 세포모임에 지시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이석기의 ‘경호팀’으로 추정되는 조직원 20여 명은 강원도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산악훈련까지 실시했다.
수사당국은 “전쟁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당(黨)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김정은(金正恩)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했다는 것은 RO조직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수사당국은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이 회합을 가질 때, 사전에 미리 ‘비밀회합에서 결의할 내용’과 ‘전쟁에 대비한 군사 행동’ 등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녹취록에서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이 “우리가 조사를 해놨습니다” “우리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리가 검토한 바에 의하면” “검토받은 바에 의하면” 등의 표현을 반복한 것은 토론 내용을 사전에 준비했다는 뜻이다. 이 고문이 토론 중 언급한 총기 개조, 인터넷의 폭탄제조법, 혜화전화국·평택 유조창 등 주요시설 현황, 무기고·화학공장 주소 등은 일반인이 사전에 정보를 수집·분석하기 전엔 알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엔 ▲국군 수도방위사령부의 상황 ▲국가비상대책 행정지침 ▲국가 사이버심리전 상황 ▲인터넷 사제폭탄 사이트 ▲철탑 파괴 사례 등 ‘일반적 정세 강연’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수사당국은 “이 의원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강연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수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의원이 강연 한 달 전후인 2013년 4월과 6월 국방부와 방통위 등에 한미(韓美)군사훈련, 주한미군, 한미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 무기 도입 사업 등 군사기밀 자료와 전력공급 중단 시 방송통신 및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대응 매뉴얼 관련 자료 등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져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
수사당국은 “이 의원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폭동의 구체적인 타격 대상·방법·수단 등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수집·준비했다는 것은 전쟁대비 3대 지침, 세포별 결의대회 등과 함께 비밀회합이 RO조직 지휘부에 의해 사전에 철저히 기획됐음을 반증한다”며 “만약 RO 지휘부가 회합 이전에 별도로 모여 군사적 준비를 결의한 뒤 위와 같은 정보를 수집한 것이라면, 이는 이미 내란음모 수준을 넘어 ‘내란 예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RO조직’의 비밀회합 현장 사진. 2013년 5월 12일 밤 10시경 서울 마포구 ‘마리스타수사회’에서 열린 모임으로, 해당 날짜와 시각이 사진에 표기돼 있다. 비밀리에 촬영된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으로 추정되며, 가운데 보이는 이가 ‘강연’을 하는 이석기 의원이다.
“RO 생활을 강화하자”
이 의원과 RO조직의 이념노선에 대한 정황은 회합 녹취록뿐 아니라 수사당국이 압수한 여러 물증에서도 드러난다. 이 의원이 2003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수감됐을 때 작성한 ‘메모노트’와 5개월 뒤 8·15특사로 가석방될 때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수첩들, 그리고 ‘기본강의안’과 2012년 통진당 사태 이후 작성한 수첩 등이 그 증거다. 상당부분이 기존 수사 과정에선 공개되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이 의원이 수감 중 작성한 메모노트엔 북한혁명가요 ‘동지애의 노래’를 자신의 “심장의 노래, 영혼의 노래”라고 표현하며 “어머니 조직이 바라는 길에 한결같이 걸어왔음을 자랑스럽게 총화한다”거나 “‘O’(조직)적 기준에 한 치 양보하거나 타협해 본 적이 없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가석방 전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수첩엔 “향후 통일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선전선동을 강화해야 한다”며 “선군(先軍)정치와 선군영도성을 보장하는 UR(통일혁명) 노선을 점검하고 유일 혁명노선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수첩 내용 중 이른바 ‘KR(한국혁명) 전략전술’과 관련한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조선노동당이 혁명무력을 형성하고, 전위조직과 통일전선이 결합한 당의 반제역량이 결속단계까지 이르러야 수권이 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시기 교훈이다. 현 시기는 민족자립성 측면에서 분열극복이냐 예속지속이냐 전선이 명확하다. 민주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혁명을 기본으로 촉구하고 대중성을 결속하고 여론전을 전개해야 한다.〉
이 의원은 해당 수첩에 “혁명운동 전반에 당적지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건설한다. 정계에 진출하여 상층을 형성한다”는 취지의 ‘영도 보장’ 관련 메모도 했다. 수사당국은 이를 두고 “지하혁명조직의 건설 방법과 운영원칙”이라며 “이와 같은 노선은 RO의 강령, 조직보위수칙, 운영수칙 등에 그대로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가석방 후에 작성한 또 다른 메모수첩엔 “RO 생활을 강화하자”는 식으로 RO에 대해 적시했다. 수첩엔 “조직활동의 기본이 조직의 규율준수임을 강조하고, 총화·분공수행·사상학습·동지애 등을 통해 낡은 착취사회 개조를 위한 임무 수행, 총화 기준을 엄격히 세워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수사당국이 2004년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한 ‘기본강의안’엔 “한국변혁운동은 외세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종국적으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자주권을 확립하는 통일혁명” “남북이 자기의 초소에서 자주위업 달성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완수하는 과정으로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자민통)의 전략적인 이해가 필요” “변혁조직은 낡은 사회를 개조하는 무기이자 자신 운명을 개척하는 기본방도이며 사회정치적 생명을 빛나게 하는 정치생명의 모태”란 표현이 등장한다.
강의안엔 “혁명운동의 준비기 전술에 맞춰 변혁역량을 적의 탄압으로부터 보호·보존하고 끊임없이 축적·장성·강화해 나가야 하고, 한국변혁운동의 전략적 승리를 위한 3대 과제는 지도이념, 통일전선, 혁신정당운동”이란 내용도 담겼다.
압수물에서 발견된 문제적 표현들
이 의원이 가장 최근 작성한 수첩엔 “혁명은 사상의지나 규율만 가지고는 안 되고, ‘관리형 O(조직)활동’에서 ‘R.O 활동’으로 전환해 주체의 기치 아래 총 단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혔다. 당사자들이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 RO조직과 관련한 용어가 이 의원의 수첩에 적힌 셈이다.
이 의원과 함께 구속기소된 인사들의 압수물에서도 다수의 ‘문제적 표현’이 발견됐다. 수사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김근래(金根來)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의 ‘유알오’란 파일엔 ▲주체사상의 의미 ▲남한 혁명조직의 노선·목적 ▲조직원의 가입과 의무 등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교양’이란 파일엔 “김일성 주체사상은 자주시대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지도적 지침” “주체사상을 구현한 주체적이고 혁명적인 조직노선”에 따라 투쟁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의 ‘한국기자협회’ 수첩엔 “1990년 남한혁명(SK R) 지도역량 구축” “정당 선거를 가지고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싸워서 이기는 방식으로 적을 무너뜨려야” 등 내용이 적혔다.
조 대표로부터 압수한 ‘ks0.txt’란 파일은 “조선혁명이야말로 우리 당 사상사업의 주체” “주체형의 혁명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정세.txt’ 파일은 “한국변혁운동세력에 대한 적들의 탄압은 집요하고 강해지지만 이는 역으로 우리의 힘이 장성하였으며 전 조선의 혁명적 정세가 격변의 시기에 이르렀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 대표는 이와 함께 ‘장군님·대표님에 대한 충성’과 ‘조직보위’ 등에 대한 총화서 30여 건도 함께 소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에게서 압수한 문건들에선 “한국은 본질에 있어 미국의 식민지” “우리 변혁운동의 기본임무는 자주화, 민주화, 조국통일이고 그 성격은 민족해방운동” “김대중 정권은 한국을 완전한 경제적 식민지로 재편하기 위한 미국과 결탁한 정권” “현장에서는 미국과 김대중 정권에 맞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 등의 내용이 나왔다.
수사당국이 밝힌 RO조직의 ‘3대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사회의 변혁운동을 전개한다” “남한사회의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한다”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전파 보급한다” 등이다. 조직원의 ‘5대 의무’는 ‘조직보위’ ‘사상학습’ ‘재정방조(돈을 분담해 곁에서 도와줌)’ ‘분공수행(임무를 나눠 수행)’ ‘조직생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은 5대 의무와 관련, 피고인들의 압수물에서 일관성 있는 내용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메모수첩에 적은 “규율준수, 총화, 분공수행, 사상학습, 동지애”란 내용과, 김근래 부위원장의 ‘유알오’ 문건에 적힌 “사상무장, 조직보위, 임무수행, 규율준수, 재정방조” 등, 홍순석(洪珣碩)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2013년 1월 세포모임에서 총화서 작성 방법을 설명하며 “사상무장의 문제, 조직보위의 문제, 규율, 분공수행, 재정문제”를 언급한 것, 조양원 대표가 소지한 총화서가 “가드, 사상학습, 조직임무, 조직규율, 재정” 등에 따라 체계적으로 작성된 점 등이 그 사례다.
RO조직원들은 자신의 실명 대신 별도의 조직명으로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남형’ 또는 ‘남철민’으로 불렸고, 이상호 고문은 ‘유형’, 홍순석 부위원장은 ‘윤기수’, 한동근 전 위원장은 ‘강형’ 등의 조직명을 사용했다.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이념노선에 대한 정황은 회합 녹취록뿐 아니라 이 의원의 수첩 등 수사당국이 압수한 물증을 통해서도 밝혀졌다.
‘비밀회합’의 실체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지난해 5월 10일과 12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청소년수련원과 서울 마포구 마리스타수사회에서 있었던 비밀회합의 성격과 내용이다.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 측은 처음엔 모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다가 체포동의안이 공개되자 뒤늦게 모임 참석 사실을 시인했다.
이 의원 측의 “강연만 마치고 돌아갔다”는 주장도 후에 “마무리 발언까지 했다”는 것으로 바뀌었고, 총기나 폭탄 파괴 등 발언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 개진 중 농담”이라고 했다가 피고인 신문에선 “예비검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흥분하여 말을 잘못했다” “토론주제를 잘못 이해한 모험주의적 발언”으로 바꿨다.
이 의원 측은 이 회합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RO조직이 아닌 통진당 경기도당의 공식 당 행사 ▲반전·평화 목적의 단순 ‘정세강연회’ ▲이석기는 ‘초청 강사’라고 주장했다.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전쟁대비 3대 지침’이나 ‘세포결의대회’ 등은 “진보연대의 지침이거나 통합진보당 긴급연석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라고 반박했으며, “물질·기술적 준비” “후방 교란” “철탑 폭파” “군사적 해결” 등 발언은 “미국에 의한 전쟁도발을 막고 현 정세에 대한 당원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역설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수사당국의 결론은 전혀 다르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주체사상에 의한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목표로 암약하는 대남 혁명세력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북한의 연이은 대남도발 공세로 촉발한 전쟁상황에서 ‘남북(南北)의 자주역량’이 60여 년간 지속된 미(美)제국주의 지배체제를 끝장내고 통일혁명을 완수할 것과, 이를 위해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물질 기술적·정치 군사적 준비 체계를 갖출 것을 결의하면서, 그 구체적 방법으로 ▲매뉴얼 마련 ▲총기 및 폭탄의 입수·제조 ▲통신·철도·가스·유류·전기시설 등 국가 주요시설 파괴 등을 모의했다”고 밝혔다.
수사당국은 “RO의 비밀회합은 조직원들이 즉각적 무장투쟁을 결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다”고 강조했다. 공판 과정에서 녹취록 등을 통해 밝혀진 회합의 진행 순서와 논리 전개는 다음과 같다.
①현(現) 정세가 왜 ‘전쟁상황’인지, 어떻게 ‘강력한 혁명적 계기’가 도래했는지에 대한 분석 ②‘남녘의 혁명가’는 어떤 관점에서 현 정세를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③‘남쪽 자주역량’의 행동노선(필승의 신념과 물질 기술적·정치 군사적 준비 체계 구축) 제시 ④즉각 전투태세를 갖춘 전쟁조직 정비 결의 ⑤질의응답을 통한 군사적 행동노선의 당위성 설득 및 토론 주제 제시 ⑥권역(圈域)·부문별 토론을 통한 전쟁조직 정비 및 군사 행동 등 구체화 ⑦마무리 발언을 통한 사상 무장, 창조적 발상에 의한 물질 기술적 준비, 총공격 명령에 따른 조직적 투쟁 등 ‘무장투쟁’ 결의 강화.
이석기 의원은 현 시대상황을 “미 제국주의 지배질서가 몰락하고 우리 민중의 자주적 진출에 의해 새로운 질서가 교체되는 대시대 격변기”라고 규정했다. 그는 “북의 총체적 역량이 ‘조·미(朝美)’ 간의 낡은 고리를 끊어내는 대(大)결산을 선포한 것이 ‘정전협정 무효화’이며, ‘강력한 혁명적 계기’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한국자유총연맹 회원들이 지난 2월 4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엄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즉각 전투태세’
수사당국과 녹취록 등에 따르면, 이 의원은 회합 당시 “미국의 지배질서는 전 세계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반면, ‘남쪽의 자주역량’은 미 제국주의의 낡은 양당 질서를 무너뜨리며 원내 교두보 확보라는 혁명의 진출을 이뤘다”며 “‘북(北)의 자주역량’은 우주과학의 발달, 핵(核)보유 강국 등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정세를 분석했다.
이 의원은 ▲참여연대의 ‘총보다 꽃’ 퍼포먼스와 같은 미국을 배제한 남북평화 추구 ▲북한이 북·미 대결전에서 승리하기만 기다리는 자세 ▲이정희(李正姬) 통진당 대표처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입장 등을 두고 “정세를 직시하지 못하는 잘못된 3가지 편향”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편향된 정세관’ 대신 “‘조선혁명’이라는 전체적 관점, 남북의 자주역량 관점, ‘조선민족의 자주적 관점’ ‘남쪽의 혁명’을 책임진다는 ‘주체적 입장’ 등에서 정세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제시한 새로운 ‘혁명노선’은 “필승의 신념으로 사상을 무장하여 일치단결하고, 동지애를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정치 군사적·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단단히 구축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자”는 것으로 요약·분석된다.
이 의원은 “‘남녘의 혁명가’에겐 지배세력의 탄압, 선무공작 등 많은 어려움이 예상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며 “‘우리 동지부대’가 선두에서 ‘적’들에게 군사적인 파열음을 내고, 적들의 통치에 파열구(破裂口)를 내는, 전선(戰線)의 허(虛)를 타격하는 선봉이 될 것과 ‘즉각 전투태세’에 들어갈 것”을 선동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발언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경제적 해결 방법, 반전평화, 평화협정체결 대중운동 등의 한계를 지적하며 ‘군사적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토론 주제도 ‘정치 군사적 준비를 위한 전시토론’이라고 제시했다.
이후 실시된 권역·부문별 토론에선 지침·매뉴얼 마련과 연락 체계 및 지휘 체계 구축 등 조직 정비 방안이 다뤄졌다. 특히 ▲총기 폭탄 구입·제조 ▲무기 탈취 ▲철도·통신·가스·유류시설 등 주요시설 타격 ▲주요시설 근무자 포섭 ▲정보전·선전전 등에 대한 구체적 토론이 이뤄졌다. 수사당국이 밝힌 RO 권역별 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부권역은 ▲총기 개조·폭탄제조·파출소 무기 탈취 등 무장 방법 ▲혜화전화국, 분당IDC, 평택 유조창, 미군 유류라인 등 철도·통신·가스·유류시설 파괴 ▲주요시설 근무자 포섭 ▲지침·매뉴얼 마련 ▲비상식량 확보 ▲연락 체계 구축 ▲전시 비상 체계 ▲정보 수집 ▲대중 조직화 등이 모의됐다.
동부권역은 ▲총기 무장 ▲전기·통신 분야 공격 등이, 중서부권역은 ▲총 준비 ▲무기 습득 ▲기술 습득 ▲첨단기술·해킹기술로 레이더기지 마비 ▲지도부 중심 ▲지도부 보위 ▲대중 침투 등이 모의됐다.
북부권역은 ▲후방교란 ▲무장과 파괴 ▲집결지 ▲이동루트 ▲미 군속들 움직임 파악 ▲발전·지하철·철도 등 국가기간산업 침투 ▲행정부서 전산망 파악 ▲정보전 ▲연락 체계 ▲예비역 중심 팀 구성 ▲군사매뉴얼 준비 등이 모의됐다.
이 외에도 청년 부문에선 ▲사상전 준비 ▲선전전 준비 ▲시설 폭파 ▲유인물 대회 등이, 중앙팀에선 ▲총 준비 ▲정보전 ▲적들의 통신·도로망 등이, 기타 팀에선 ▲군사적인 지휘보고 ▲조직력 ▲강력한 조직생활 등이 모의 됐다.
이들의 모의 내용 중엔 “공대 나온 사람이 당사 2층에서 폭약 만드는 방법 공부” “각자의 초소에서 구체적으로 혁명전 준비” “혁명이 부를 때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태세” “대표님 중심 수뇌부 보위” “지도부 중심의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 등도 포함됐다.
지난 2월 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장면.
‘한 자루 권총사상’
권역·부문별 발표가 끝난 후 이석기 의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물질 기술적 준비 방법이 각자의 초소에 무궁무진하다”며 철탑 파괴와 같은 ‘창조적 발상’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또 ‘한 자루 권총 사상’과 ‘볼셰비키 혁명 사상’ 등으로 무장해 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구축하고, ‘총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일체화된 강력한 집단적 힘을 통해 한순간에 조국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고 선동했다.
이 의원이 ‘한 자루 권총사상’과 함께 언급한 “미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맞서 정의의 전쟁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부분은 1970년 김일성이 5차 당 대회에서 한 말로, 북한 도서인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 리론》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석기 의원 측은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회합의 실체에 대해 “통신·철도·가스·유류시설 파괴 등은 일부 참가자들이 물질 기술적 준비를 다르게 이해한 데서 비롯된 발언”이라며 “다수 참가자가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웃음으로 반응하는 등 농담조의 이야기였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 측은 ‘총, 칼, 폭탄’ 등 내용은 “이 의원이 일부 참석자의 언급에 대해 ‘지배세력의 정보력에 의해서 다 파악될 수 있고 허황된 것이니 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며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무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이자는 것과,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그런 방향성을 제시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수사당국은 이에 대해 “간부들을 질타하며 갑작스레 회합을 해산하거나, ‘군사적 준비 체계를 갖추자’는 이석기의 선동에 따라 새벽 3시경까지 토론·발표를 진행하는 모습 등을 볼 때, 회합이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며 “변호인의 주장은 회합의 의미를 왜곡하고 축소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재반박했다.
이석기 의원 측은 이 비밀회합이 “통진당 경기도당이 주최한 공식적인 정세강연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통진당 경기도당의 회의자료, 홈페이지, 참석자들의 SNS 계정 등에 두 모임에 관한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다 모임 공지, 플래카드, 사진 촬영 등 당 공식행사에서 통상 보이는 외관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며 주장을 일축했다.
이 외에도 ▲차로 몇 시간씩 걸려 늦은 밤 곤지암까지 찾아온 이들을 단지 보안상 이유로 10여 분 만에 해산시킨 점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6명 중 3명이 참석한 행사임에도 의원 소개가 전혀 없었다는 점 ▲이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발언 중 경기도당과 관련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보면 이 의원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의원의 무죄와 사건 조작을 주장하며 최근 배포한 홍보물.
金日成에만 극존칭
RO조직의 노선과 목적은 비밀회합 및 세포모임 녹취록과 이 의원의 수첩 등 압수물, 그리고 제보자의 진술 등에 의해 상당부분 밝혀졌다. 수사당국이 파악한 RO조직 노선의 핵심은 “북한은 자주화된 사회, 대한민국은 미제국주의 식민지”란 인식이다.
녹취록과 수사자료에 따르면 이 의원과 RO조직원들은 “미 제국주의와 조선민족의 한판 대결” “조선반도의 자주역량과 미 제국주의 지배세력과의 총결산의 장” “미 제국주의에 의한 낡은 지배질서” “미 제국주의 지배세력의 60년 지배” “미 제국주의 지배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 “미 제국주의의 낡은 양당질서” 등의 용어를 반복한 바 있다.
이들은 한반도 정세의 본질이 “남북 자주역량과 미 제국주의 지배세력 간의 충돌·전쟁”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 대해선 강한 적개심을 표현한 반면, 북한의 ‘자주역량 강화’는 추종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 의원에게 북한 정권은 옹호해야 할 대상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적(敵)’이었다. “조선 백 년의 역사에 우리 민족의 새로운 전환을 새롭게 결의하는 대 전기”란 이 의원의 발언 중 ‘조선 백 년의 역사’란 북한의 연호(年號)인 ‘주체 100년’을 뜻한다. ‘6·25 해방전쟁’ ‘반제(反帝)·반미(反美) 원칙을 가지고 미국과 싸운 나라’ 등 표현도 RO조직의 역사관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은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장준하(張俊河) 전 의원 등 국내 진보 그룹에서 존경을 받는 인물에 대해선 존칭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김일성의 경우엔 ‘주석님’이란 극존칭을 사용했다. 김정은에 대해선 ‘위원장 동지’란 북한식(式) 직함을 붙였다.
이 의원의 미공개 녹취록엔 “이게 다 (김일성) 주석님의 어록에 나온… ”이란 대목이 등장한다.
북한의 ‘자주역량’에 대해선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북한 위성인 ‘광명성 3호’에 대해선 “우주과학 역사에서 엄청난 일”이라며 “인공위성 발사와 3차 핵실험은 자력갱생 ‘간고분투(艱苦奮鬪·고군분투의 북한어)’의 혁명투쟁”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북에서는 모든 행위가 다 애국, 남에서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라고 했다. 남한 정부 등을 ‘쟤들’ ‘저놈들’ ‘남측의 지배세력’ 등으로 부른 것과, 자신들의 국회 진출을 ‘저놈들의 목전까지 침투’라고 표현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이 의원이 ‘조국’을 ‘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수사·재판 일지
2013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10명 압수수색.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8월 29일: 국정원, 이석기 의원 등 4명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신청.
9월 4일: 국회,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 국정원, 이 의원 강제 구인.
9월 5일: 이석기 의원 구속.
9월 25일: 검찰, 홍순석 부위원장 등 3명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
9월 26일: 검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
10월 14일: 1차 공판준비기일, 이석기 의원 측 공소장 기각 주장.
10월 24일: 검찰, 김홍열 위원장 등 3명 구속기소.
11월 12일: 첫 공판기일, 이석기 의원 등 모든 혐의 부인.
2014년
1월 27일: 이석기 의원 피고인 신문. 이 의원 검찰신문 답변 거부.
2월 3일: 검찰, 이석기 의원에 징역 20년·자격정지 10년, 나머지 피고인 6명에 징역 10~15년·자격정지 10년 구형.
2013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10명 압수수색.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8월 29일: 국정원, 이석기 의원 등 4명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신청.
9월 4일: 국회,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 국정원, 이 의원 강제 구인.
9월 5일: 이석기 의원 구속.
9월 25일: 검찰, 홍순석 부위원장 등 3명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
9월 26일: 검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
10월 14일: 1차 공판준비기일, 이석기 의원 측 공소장 기각 주장.
10월 24일: 검찰, 김홍열 위원장 등 3명 구속기소.
11월 12일: 첫 공판기일, 이석기 의원 등 모든 혐의 부인.
2014년
1월 27일: 이석기 의원 피고인 신문. 이 의원 검찰신문 답변 거부.
2월 3일: 검찰, 이석기 의원에 징역 20년·자격정지 10년, 나머지 피고인 6명에 징역 10~15년·자격정지 10년 구형.
이석기 “RO는 상상 속 조직”
수사당국은 이 의원과 RO조직원들이 북한의 대남투쟁 3대 과제인 ‘자주·민주·통일’을 추종하며, ‘자주의 기치를 든 조선혁명’과 이를 위한 ‘남북 자주역량·민족 주체역량’의 강화를 주장한다고 했다. 또한 이들이 주체사상과 계급투쟁론에 입각한 혁명관을 주장하며, 현재를 ‘혁명의 시기’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어느 혁명이 수입할 수도, 수출할 수도 없는 겁니다”라는 표현은 북한 영화 <민족의 태양> 2부에 등장하는 “혁명은 수출할 수도 수입할 수도 없으며 그 나라 혁명의 주인은 그 나라 인민 자신”이란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이석기 녹취록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 군사적 준비’란 표현은 김일성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제24장 ‘거족적인 반일항전’에 나오는 “일제를 타도하자면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인민을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튼튼히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민(全民)항쟁과 관련된 우리의 주장이었습니다”란 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수사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공산주의 혁명이론에 입각한 대남혁명론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오면 이른바 ‘전민항쟁’과 같은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다”며 “노동자 계급의 투쟁으로 자본가 계급과의 이중권력 상황이 됐을 때, 자본가 계급은 필연적으로 물리적 탄압과 반혁명 책동을 할 것이므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무장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게 공산주의 혁명이론”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발언 중 “지배세력이 수십 년간 60여 년 동안 형성했던 이 물적 토대를 무너뜨려야 돼요. 60년 전쟁이란 새로운 전환기에 쟤들은 저절로 물러나지 않을 거다. 온갖 방해 책동, 물리적 탄압, 공작이 들어올 거다. 당연하지 전쟁인데”란 부분이 공산주의 혁명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것이다.
탈북자들도 이석기 의원의 발언 내용에 대해 “북한의 사고방식에 동화돼 노동당의 대남전략 사상에 충실하다”고 설명했다. 김성민(金聖珉)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지난 2월 10일 〈탈북자 대표들이 이석기 재판부에 드리는 공개 청원서〉를 통해 이 의원의 발언 내용 중 북한식 용어가 사용된 부분을 100곳 이상 찾아 공개했다.
김 대표는 “단순히 북한에서 쓰이는 용어뿐 아니라 김일성의 저작에 실린 교시 내용과 상당부분 일맥상통하는 발언이 다수 발견된다”며 “김일성의 교시에 입각해 ‘남조선혁명’을 수행하려는 사상”이라고 했다. 또 “이 의원의 발언 내용은 노동당의 대남전략사상을 확실하게 습득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며 “김일성·김정일의 교시와 김일성 회고록을 제대로 ‘학습’하지 않으면 탈북자인 우리도 구사하기 어려운 문구”라고 강조했다.
이석기 의원은 2월 3일 열린 1심 결심공판에서 “북한과 연계를 맺은 적도 없고 RO 총책도 아니다”라며 “만약 음모가 있었다고 한다면 저의 내란음모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영구집권 음모가 있었다고 하는 게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과 통진당 측은 “녹취록이 700군데 이상 조작됐고, 제보자의 진술이 모두 번복됐다”며 공소제기 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RO’는 국정원과 검찰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조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단독입수] RO ‘세포모임’ 녹취록
“‘장군님’ 지키는 게 ‘조국’ 지키는 것”
이석기 의원이 2013년 5월 두 차례 소집한 비밀회합엔 130여 명의 조직원이 참석했다. 수사당국은 이들이 평소 권역별로 3~4명씩 ‘세포조직’을 이뤄 ‘RO 5대 의무’인 조직보위, 사상학습, 재정방조, 분공수행, 조직생활 등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단선연계(單線連繫) 방식으로 관리된 조직원들이었지만, 이 의원이 2013년 3월 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 등 상황을 전쟁상황 및 결정적 시기로 간주해 ‘평시(平時)’엔 금지된 ‘횡적 연계’를 결정해 한자리에 모았다고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채택된 녹음파일 중 상당수는 제보자가 포함된 ‘3인 세포모임’의 토론 내용이다. 수사당국은 이 모임을 ‘RO조직의 세포모임’이라고 규정했지만, 변호인 측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동문 선후배가 서로 생활을 챙겨주고, 사업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 나아가 진보활동가로서의 자각을 높이기 위해 이따금 학습과 생활평가(총화)를 했던 모임”이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문제의 ‘세포모임’ 녹취록을 단독입수했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를 비롯해 통진당의 한동근(韓同謹) 전(前) 수원시위원장과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이 2012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모여 학습·토론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수원역 인근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에 모여 김정은의 연설문을 학습하거나 상부의 보안지침을 전달하는 등 조직적 활동을 수행해 왔다. 모임은 주로 리더격(지휘성원)인 홍순석 부위원장이 한동근 전 위원장과 제보자에게 지시·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2년 9월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개최한 모임에서 홍씨는 문서 암호화 프로그램인 ‘트루크립트(True Crypt)’ 사용법 등을 지도했다. 수사당국은 이를 RO조직의 ‘조직보위의 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녹취 내용 중 일부다.
“트루크립트라고 PGP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 사용을 앞으로 해야 되거든. 프로그램 깔아주고 해야 되거든. 다음에 한번 가져와. 저번에 내가 그거 가르쳐준 거야. 만약에 이후에라도 뭐 써라 그러면 트루크립트를 띄워놓고 그러면 가상 드라이브가 생기잖아.”
수사당국과 녹취록에 따르면, 홍씨는 조직원들이 2~3개의 비폰(秘phone·일명 대포폰)을 사용한다며 주의사항을 주지시켰다.
“핸드폰 비폰 쓰는 사람들은 이상한 전화도 오고 그래. 예를 들면 ‘어디 경찰선데 누구 폰 아니냐 당신 맞냐’ … 그 사람 명의로 하면 폰이 조사를 하면 2개 3개 나올 거 아니야? … 10월달 들어가면 쟤네가 수사발표도 한다고 그랬으니까.”
2013년 1월 한 커피전문점에서 회합한 이들은 홍씨의 지시에 따라 암호화 프로그램 설치 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북한 ‘혁명영화’와 ‘회고록’ 등을 USB메모리에 담아 전달하며 소감문을 작성 후 암호화해 2012년 ‘총화서’와 함께 제출하기로 했다.
공중전화 활용 ‘秘폰’ 연락法
이날 모임에선 1월 26일부터 이틀간 소백산에서 RO 모임과 이석기 정세강연이 열린다는 고지와 함께 ‘남부’ 및 ‘중서부’와 같은 권역이 언급됐다. 홍씨는 공중전화를 활용한 ‘비폰’의 연락법도 함께 설명했다. 내용 중 일부다.
“남부만 한 70명 되는 거야. 중서부 30명 되고, 100명이 넘잖아. 100명이 … 일찍 갔다가, 산을 갔다가 내려와서, 정세강연을 한번 듣고, 정세강연을 이석기 대표가 한다니까….”
“혹시 나한테 연락할 일 생기면 비폰이 하나 있거든. … 공중전화 번호를 누르면 ‘삑삑삑삑’ 소리가 나잖아. 그럼 이상한 거지. 그러면 내가 연락을 … 비폰이 하나밖에 없잖아. 이거 받으면 번호를 누른다 말이야. 공중전화 번호를.”
2주 후 열린 모임에선 ‘이석기의 애국가 발언’과 함께 북한 영화 <조선의 별> 3부와 김정일의 노작 ‘당의 사상과 령도에 끝없이 충실한 김책형의 일군이 되자’와 같은 사상학습자료 및 ‘총화서’ 작성 등에 대한 내용이 녹음됐다.
“이석기 의원이 두드려 맞으면서 한마디 한 게 이 사람들한테 꽂혔는데. 애국가 발언 있잖아. 이 사람이 색깔이 있는 사람이구먼. 이게.”
“주제2는 라자구 등판에서 하고 그거하고 별. … 주제3이 … 김책 동지고 … 영화가 41년도 바람. 주제4가 영화를 … 군위병 아들들.”
“그 조직생활 총화나 사실 이 단위에서 제기할 것을 여기서 제기하는데, 우리는 사상무장의 문제, 조직보위의 문제, 규율도 있어야 되고, 이번 주에 분공수행 재정문제 … 이게 사실 재정문제나 이런 거는 상당히 구체적이긴 한 건데.”
이른바 ‘소백산 모임’ 후 1월 30일 열린 세포모임에선 “이석기 의원이 자빠지거나 잘못되면 큰일 나는 구조”라는 등 이석기 의원의 ‘조직 내 위상’과 지방선거에서의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저 사람이 도대체 뭔데 뭐 선배들은 이석기 의원 오면 꼼짝도 못하고 설설 기고 아니면 뭐 오면은 완전히 뭐 뛰어 나와가지고 맞으려고 막 그러냐 이런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니깐.”
“민주당과 연대 연합해서 지방선거를 돌파를 해서 뭔가 그것을 타고 자기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뭘 따내든지? 신념의 돌파라든지 이게 민주당과 연대 연합해서 돼야지 진보당과 합친다고 답이 나오지 않아. 그다음 단계가 민주노동당이야. … 실력을 안 쌓은 상태에서 통합되면 우습게 알잖아 사실. 연대 연합 대상은 민주당인데 민주당이 우리를 인정하고 하면 연대 연합이 돼야지. 지방선거에서 안양 이런 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시장들이. 자리 하나 못 받아.”
“광우병처럼 만들 것”
2013년 3월이 되자 ‘현 정세’에 대한 본격적인 지시와 활동지침이 내려졌다. 수원의 한 식당에서 열린 세포모임에서 홍씨는 “현 정세는 일촉즉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그와 관련해 온 세 가지 지침, ▲‘연대조직’을 빨리 꾸릴 것 ▲대중을 동원해서 광우병처럼 만들 것 ▲만일 전쟁 발발 시 주요시설·미군기지 등 정보를 수집할 것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정세와 관련해서 전쟁이 … 오늘은 좀 누그러졌는데 일촉즉발, 전쟁이 날 수도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거와 관련해서 지침이 한 3가지 왔는데. …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는 대중 동원해서, 옛날 광우병처럼 만들어 보면은 … 근데 요즘에는 주요한 시설이 미군기지도 있는데, 부대가 아니라 그냥 레이더기지나 전기시설 이런 것 있잖아.”
2주 후 열린 모임에선 차주에 개최할 ‘세포결의대회’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과 함께 미리 학습해야 할 북한 노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에서의 ‘김정은 연설문’이 언급됐다.
“우리 결의대회 세포별로 다 결의대회 하라고 해가지고 일정을 잡아야 되는데, … ‘통일뉴스’ 들어가면 검색어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을 치든 아니면 북에서 전국 세포대회를 한 적 있어. … 기사 중에 세포대회를 했다 보도가 나오고, 밑에 박스처리가 되어가지고 전문이 실렸어. … 그거를 학습을 해야 되거든.”
홍씨가 지시한 대로 해당 인터넷 매체를 검색하면 김정은의 연설을 요약한 기사와 함께 연설 전문이 그대로 게재돼 있다. 이들은 이 자료로 각자 학습을 진행했다.
2013년 4월 5일 열린 모임에서 홍씨 등 3명은 북한 혁명영화 <월미도>를 시청한 후 소감을 나눴는데, 김일성을 ‘장군님’으로, 북한을 ‘조국’으로 지칭했다. 이들은 또 수원 지역 미군 비행장과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을 언급했는데, 수사당국은 3월에 하달된 ‘전쟁대비 3대 지침’을 수행할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분석했다.
“근데 장군님이 해방시켜 놓은 조국은 인민이 잘살 수 있는, 가족의 행복을 찾는, … 그래서 장군님을 지키는 것이 조국을 지키는 거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수원은, 여기 기지가 전략적인 기지가 수원비행장인가? 그 미군 비행기가 거기로 내리고 뜨고 그러나? …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있다고 여기.”
20일 후인 4월 25일 모임에서 이들은 김정은의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홍씨는 공자(孔子)의 “학이불사칙망, 사이불학칙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를 인용하며 ‘당(북한 노동당)’의 지침과 사상을 학습하면서 사람사업(혁명사업)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찾으라고 교육했다.
2013년 5월 8일엔 김정일 선집 제9권에 수록된 이른바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란 담화를 기초로 ‘학습’이 이뤄졌다. 수사당국은 참석자들이 “소위 ‘젊은 수령’ 김정은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면서 3대 세습을 합리화하고, 수령으로 수용하여 ‘수관’(수령관)을 확립할 것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여기 핵심은 수관이잖아. 그 수관이 지금의 수는 지금 김정은 장군 이렇게 지금 현황으로 보면 있으니깐. 세웠으니깐 지도자를. … 믿고 간다. 저쪽의 판단을 저쪽 집단의 판단을. 그렇게 해결할 수도 있어. 그지. 저쪽 집단이 옳게 결정했겠지 뭐. … 이런 사상을 전 사회적으로 공부하는 집단인데. 그지. 내놓고 공부하는 데인데 옳게 결정했겠지 뭐. 그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가는 경우도 있지.”
“전화 전달 금지”
이날 모임에선 이석기 의원에 대한 위상도 언급됐다. 수사당국은 홍씨가 “한국혁명에 있어서 ‘수(首)’는 한 명”이라며 북한의 수령을 유일한 수령으로 인정하고, “이석기 대표는 남쪽에서의 역할이 있다”며 ‘남한혁명’을 책임지는 지도자로 묘사했다고 밝혔다.
“한국혁명에 있어서 ‘수’는 한 명이잖아요.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잖아. 일부에서는 또 그런 얘기도 하는 사람도 있어. 그러면 이석기 대표는 뭐냐고? 어떤 사람들은 이석기 대표가 남쪽의 대표자다. 이러고 그러는데. ‘수’는 한 사람이죠. 이석기 대표의 역할이 있는 거지. 남쪽에서의 역할이 있는 거지.”
홍씨는 이날 이른바 ‘5·10 곤지암 비밀회합’에 대한 규모와 보안사항 등을 전달했다. 그는 “5월 10일 밤 10시경 이석기의 정세강연이 포함된 150~200명 참석 모임이 개최된다”며 “전화를 통한 장소 전달이 금지됐다”고 알렸다.
수사당국은 “전화 장소 전달을 금지할 정도로 극도로 보안을 지키는 비밀회합은 해당 모임이 단순한 통진당의 공개 행사가 아닌 RO조직의 비밀회합임을 반증한다”며 “‘도당 간부가 회합장소를 잡는다’는 의미는 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 김홍열을 비롯한 대부분 간부가 RO 지휘성원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씨는 다음날 한 골목에서 만난 제보자에게 곤지암 비밀회합 장소를 전하며 “휴대전화 전원을 차단하고, 차량 이용 시 수련원 500m~1km 인근에 주차한 후 도보로 이동하라”는 등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회합 정보를 전할 때도 동일한 지시를 내렸다.
홍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가택 압수수색을 당할 경우 증거를 없애는 방법도 알려줬다. 수사당국과 녹취록에 따르면, 1998년 민혁당 사건 당시 격침된 북한 잠수정에서 발견된 수첩 전화번호 때문에 하영옥이 검거된 사례와 천안함 폭침 당시 바닷속 증거물 인양 사례 등을 예로 들며 “압수수색 당할 때 수사관이 영장을 읽는 틈을 이용하거나 각종 구실을 붙여 시간을 번 다음, USB 등은 ‘이빨로 잘라버리라’라는 등 증거를 완전히 인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교육했다.
“잠수정이 격침당한 거야. 수심에 가라앉았을 거 아냐. 그거를 얘네들이 꺼낸 거라고. 꺼냈는데 수첩이 나온 거지. 수첩에 전화번호가 이렇게 몇 개 있었대. … 두 번호가 조합을 같이했더니 어디 전화번호가 나온 거야. 저기 하영옥씨 있는 저기 고시원 그쪽에 전화가. … 얘네가 그 정도더라고. 천안함 이런 거 다 건지잖아 바다 속에 있는 거.”
“그런 어떤 틈에 USB가 있으면 그런 것을 전달하거나 아니면 잠깐 화장실 갈 거라고. 이런 거는 뽀개기가 어려워. 뽀개서 버려야 되는 거잖아. 손톱만 한 거는 그냥 이렇게 이빨로 이렇게 해도 반 짤라지는 거거든. 이제 몰래 버릴 수가 있는 거지.”
이석기 의원 측은 ‘세포모임’에 대한 수사당국의 분석에 대해 전면 부정했다. 변호인 측은 “‘전쟁대비 3대 지침’이라는 언급 자체가 없는데다 해당 내용도 왜곡됐다”며 영화 <월미도>를 본 후엔 “전쟁 결의를 다진 것이 아니라 반전평화실천의 결의를 다졌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 측은 5월 10일과 12일에 열린 회합에 대해서도 “한동근은 홍순석에게 사회적기업 워크숍 때문에 5월 10일 강연에 참석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홍순석도 달리 참석을 지시하지 않았다”며 “‘3인 모임’은 ‘RO 세포모임’이 아니라 오직 제보자 이씨만이 ‘RO’ 조직원이 되고자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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