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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美 탐사보도 콘퍼런스 참관기 “무엇을 궁금해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김정우 기자 2012.08.08 16:41
美 탐사보도 콘퍼런스 참관기
“무엇을 궁금해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 잡지 저널리즘의 위기… “독자 기대 넘어선 탐사보도만이 해법”
⊙ 한 주제 위해 10여명을 1~2년 동안 투입하는 美 비영리 탐사보도기관들… 퓰리처상도 수상
⊙ “탐사보도란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은 중요하게 보도하는 것”
⊙ 익명취재와 일문일답은 탐사보도의 毒… 정확성과 신뢰성 기초로 최신 IT기법 활용해야


IRE

2012년 6월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콘퍼런스.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1000명이 넘는 탐사보도 기자가 참가했다.


조금은 건방진 마음이었다. ‘탐사저널리즘’이란 주제로 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이른바 ‘심층·탐사보도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매체’에서 굳이 외부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짧게 써도 200자 원고지 기준 60장, 길면 수백 장’을 채웠던 경험에서 우러난 오만(傲慢)과 자만(自慢)이었다. 탐사보도를 ‘신문기자들의 어설픈 잡지 흉내’로 치부한 것도 사실이다. 이 ‘건방진 도전’은 한 달 반의 코스를 거치며 소속매체와 기자의 숙명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케 했다. 태도는 다듬어졌고, 생각은 정제됐다.
 
  치열한 고민의 절정은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콘퍼런스 마지막 날 주최 측 인사와 짧게 나눈 대화였다. “1000명에 육박하는 전 세계 콘퍼런스 참가자 중 왜 《타임》이나 《뉴스위크》 등 시사잡지 기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름마저 생소한 신생 매체 기자들이 강연에 나서는데, 탐사보도에 가장 걸맞은 잡지 기자가 없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들은 이 콘퍼런스를 무시한다”는 답변을 은근히 기대했던 기자에게 브랜트 휴스턴(Houston) 전(前) IRE 사무총장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 미국에 시사잡지란 게 있나요?”
 
 
 
잡지 저널리즘의 쇠퇴
 
  기자를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의‘2012년 KPF 디플로마-탐사보도 과정’ 참가자들은 지난 5월 2일부터 한 달 반 동안 총 32시간의 국내 강의와 14일의 해외(미국) 일정을 소화했다. 탐사보도 사례연구와 방법론 등 이론을 학습했고, 《USA투데이》 《월스트리트저널》 《ABC》 등 미국 언론사와 NSA(National Security Archive), CPI(The Center for Public Integrity),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등 비영리 탐사보도 관련 기관을 방문해 기자 및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핵심일정인 ‘IRE 콘퍼런스’에선 3일간 19개의 세션에 참가해 이른바 ‘선진 탐사보도’를 체험했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낸 직후 들은 휴스턴 사무총장의 설명은 기자가 한 달 반 동안 예상했던 답과는 전혀 달랐다. 한국의 잡지기자가 가진 ‘오만과 자만’을 《타임》이나 《뉴스위크》의 그네들도 똑같이 느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신문·방송·인터넷 매체들이 ‘탐사보도’란 이름의 ‘외도(外道)’를 자축하며 ‘화려한 파티’를 벌이는 중에도, 시사잡지들은 묵묵히 ‘진짜 탐사’를 할 거라 상상했다. 신문·방송·인터넷 매체들의 ‘어설픈’ 탐사 저널리즘과 차원이 다른 진짜 ‘잡지 저널리즘’을 할 거라 판단했다.
 
  현실은 달랐다. 휴스턴 전 사무총장은 “2~3년 전까지 미국 시사잡지들도 회사별로 5명 정도의 기자를 콘퍼런스에 보내 왔지만, 요즘은 언론사의 경영난으로 기자를 보낼 여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의 잡지기자들은 IRE 콘퍼런스에 ‘안 온 것’이 아니라 ‘못 온 것’이었다.
 
  《월간조선》은 2008년 11월 미국 잡지시장의 침체를 심층분석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이 기고한 기사의 제목은 <美 시사잡지들의 혈투>였다. 경기침체와 가판(街販) 감소로 환경이 악화한 데다 온라인이란 ‘산토끼’와 경쟁지란 ‘집토끼’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하는 《타임》과 《뉴스위크》를 두고 한 말이었다. 휴스턴 사무총장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4년 전 그 ‘혈투’는 그리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한 셈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IRE 시상식의 수상작들을 보면 잡지의 탐사 저널리즘이 힘을 잃어 가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비영리기관을 통한 ‘다차원적 탐사보도’의 발전이 눈부셨다. 가장 높은 평가의 IRE 메달을 수상한 《캘리포니아 워치》(California Watch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기관)의 <흔들리는 땅에서(On Shaky Ground)> 기사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온라인, 태블릿, 모바일 모두 활용하라”
 
미국 유일의 전국종합일간지인 《USA투데이》의 편집회의 모습. 각 분야 담당 부장이 자유롭게 주제를 말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었다.
  총 11명의 기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19개월간 취재를 통해 캘리포니아 공무원들이 4만2000명의 어린이를 지진대 위 학교에서 공부하게 방치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들은 3만 쪽이 넘는 문서를 분석해 화보와 동영상은 물론 온라인 지도와 데이터베이스까지 포함한 다차원적 콘텐츠를 생산했다. 독자와 시청자를 비롯한 모든 ‘이용자’는 PC와 모바일기기를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체계적으로 얻을 수 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켄달 타가트(Tag gart) 기자는 시민의 안전과 관련한 취재에 대해 “공무원들은 항상 그들이 관리하는 시설이 안전하다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안전문제는 기자가 눈으로 확인해선 절대 발견할 수 없다. 서류를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류를 통해 얻은 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했다. 특히 지진대 위에 허가한 학교들을 1970년대부터 시간대별로 보여주는 ‘인터렉티브 지도’와 어린이를 위한 지진 대비 전자가이드북인 ‘레디 투 럼블(Ready to Rumble)’은 과연 언론의 역할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이용자들이 궁금해할 모든 정보를 제공한 그들은 흔히 기자를 지칭하는 리포터(reporter)나 저널리스트(journalist)란 호칭을 거부하고 ‘콘텐트 크리에이터(content creator)’란 말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USA투데이》 탐사보도팀 소속 앨리슨 영(Young) 기자가 14개월간 추적해 보도한 <유령 공장들(Ghost Factories)> 프로젝트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녀는 미국 전역에 흩어진 폐공장에 방치된 토양 표본 1000여 개를 직접 실험·분석해 400여 공장의 납 오염 토양이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와 더불어 인터렉티브 부분에선 ▲보이지 않는 위험(Danger) ▲정부의 실패(Failure) ▲토양 실험(Testing) ▲사례 분석(Case Study) ▲시민의 행동(Take Action) ▲지리적 분석(Explore) 등으로 분류된 각각의 주제를 글, 영상, 사진, 지도 등으로 소개했다. 그들은 ‘독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든 그 이상’을 보여줬다.
 
  기자는 한 명이지만, 한 주제를 위해 40여 명의 스태프가 동원됐다. 그들은 실험, 데이터베이스 분석, 비디오 및 사진 촬영, 그래픽 디자인, 웹사이트 구축, 지리정보 분석 등 각자의 파트에서 협력했다. “펜 하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던 과거 특종기자의 전형은 그들에겐 이미 ‘먼 나라 이야기’였다. 프로젝트를 주관한 앨리슨 영 기자는 한국 기자들과의 면담에서 “보다 나은 탐사보도(Investigative Storytelling)를 위해선 온라인, 태블릿(tablet), 모바일 플랫폼을 가능한 한 모두 활용하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은 중요하게”
 
9·11 테러 잔해와 함께 미국 언론박물관(Newseum·뉴지엄)에 전시된 9·11 당시 세계 각국 신문의 1면들. 한국 신문으론 《조선일보》가 걸렸다.
  IRE가 내세운 탐사보도의 정의는 “개인·기관의 은폐 시도가 있는 사안 중 독자가 충분히 인정할 정도의 중요한 주제를 잡아 기자가 독자적으로 취재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탐사보도팀장 출신인 이규연(李圭淵) JTBC 보도국장은 위 정의 중 “개인·기관의 은폐 시도가 있는 사안을 잡는 것”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정부·단체·기업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쏟아내면서 굳이 은폐 시도가 없는데도 대중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안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은폐 시도가 없더라도 대중의 시야에서 발견되지 않는 내용”까지 탐사보도의 범위에 넣는 추세라고 한다.
 
  탐사보도의 역사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유럽은 정당을 기반으로 한 ‘주창(advocacy) 저널리즘’이 발달한 반면, 미국은 철저히 ‘팩트’ 중심의 ‘객관(objective) 저널리즘’이 발달했다. 이 보도국장에 따르면, 탐사보도 태동기는 추문 추적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일명 ‘Muckraker(똥갈고리)’라고 불린 이들은 특별한 정보원이나 훈련 없이 오직 정의감으로 기업인, 정부관리, 정치인 등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다. 여자, 뇌물, 매관매직 등 추문이 나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폭로하는 방식이다.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등 전쟁 기간 중 침체했던 미국의 탐사보도는 1960~70년대 다시 재점화했다. IRE와 같은 탐사보도 조직이 결성됐고, 데이터 저널리즘이 발달했다. 1980년대부터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탐사보도는 폭로와 조사로 양분됐다. 이 보도국장은 “가장 좋은 탐사보도는 폭로와 조사가 합쳐진 것”이라며 “폭로 저널리즘성 조사보도가 최고의 탐사보도”라고 규정했다.
 
  IRE 등 탐사보도 관련 기관들은 정보공개청구, 사회관계망분석(SNA), 지리정보시스템(GIS), 컴퓨터 리포팅(CAR) 등 이른바 과학적 기법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과학적 분석도 독자와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보도는 의미가 없어진다. ‘기사’는 ‘연구논문’과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적 기법이 뒷받침된 폭로가 정답이다. IRE 콘퍼런스 중 한 연사는 “탐사보도의 핵심은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은 중요하게 보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IRE 콘퍼런스 중 탐사전문기자 러스 프타섹(Ptacek)의 강연은 많은 기자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그는 워싱턴DC 지역방송 ‘WUSA9’에서 클레이 카운티의 감사관인 윌리엄 노리스(Norris)의 신상과 행적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그의 주요 학력과 경력이 모두 허위임을 밝혀냈다.
 
 
  “실명 허락 때까지 설득하라”
 
총 11명의 기자가 19개월간 3만 쪽이 넘는 자료를 분석해 기사, 영상, 사진, 인터렉티브웹, 지도, SNS, 전자책 등 기법으로 보도한 《캘리포니아 워치》의 <흔들리는 땅에서(On Shaky Ground)>.
  프타섹은 노리스가 ‘더티(the Dirty)’란 웹사이트에 자신과 무관한 여성들의 누드사진을 올린 사실과, 그의 학점이 1.825란 것까지 보도했다. 프타섹은 노리스와 관련한 법원 문건과 컴퓨터 사용 기록 등 자료를 치밀하게 수집했으며, 그의 반론을 듣기 위해 집 앞에 중계차까지 대기시켰다. 말 그대로 ‘중요한 내용을 재미있게’ 보도한 셈이다.
 
  프타섹의 보도는 모두 실명이었다. 취재대상인 노리스의 얼굴과 실명은 물론, 누드사진 게재 피해자인 여성까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물론 모자이크는 없었다. 한 프로그램에서 수십 개의 모자이크 얼굴과 음성변조 목소리를 보고 들어야 하는 한국 방송과 달리, 미국은 실명과 맨얼굴을 그대로 보도한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그토록 강요하는 나라에서 아동성범죄 가해자까지 아무 장치 없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고 나니 그 배경이 궁금해졌다. 콘퍼런스 기간 중 사석에서 만난 다수의 미국 기자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미국 언론이 다른 나라보다 쉽게 취재원의 신상을 보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화면과 지면에 싣기 위해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설득하죠. 진짜 ‘딥스로트’(deep throat·익명의 결정적 제보자) 급이 아닌 이상 취재원의 실명과 얼굴을 확보하는 게 기자의 의무입니다. 설득이 어렵다면 어떡하느냐고요? 계속 설득하거나 더 나은 취재원을 찾아야죠.”
 
  미국 탐사보도는 언론사들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신문과 방송의 독점 구도를 유지해 오다 1970년대 ‘케이블방송의 공습’이 시작되면서 신문사 세 곳 중 한 곳이 도산했다고 한다. 기존 언론사는 600~700자(字) 분량 단신보도로는 승부에서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었다. 차별화한 경쟁력을 위해 장문(長文)의 탐사보도가 발전했다. 신문사와 방송사가 서로 인수합병(M&A)하면서 회사 내 매체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조직은 물론 기자 개인도 탐사보도를 통해 자기차별화를 시도하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번 과정에서 국내 강의를 맡은 일부 전문가는 한국 탐사보도의 역사를 10여 년으로 규정했다. 2000년대 초 IRE 콘퍼런스를 다녀온 신문·방송 기자들이 각 언론사에서 탐사보도팀을 조직해 활동한 것이 시초라고 했다. 심층·탐사보도로 역사를 바꾼 시사잡지의 존재를 부정한 덕분에 한국 탐사보도 역사를 스스로 깎은 셈이 됐다. 일간 신문기자의 잣대로만 한국 언론사(史)를 ‘통찰’했기에 얻은 결과다.
 
 
  한국과 일본의 탐사보도史
 
2012년 IRE 콘퍼런스에선 최준호 《중앙일보》 기자가 한국 기자로서 유일하게 강연자로 참석해 이명박 정권의 사회관계망 분석에 대해 발표했다.
  한국 언론은 이미 1980~90년대 ‘잡지 저널리즘’의 시대를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월간조선》과 《신동아》 등 시사월간지를 중심으로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비화(秘話)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고 청탁과 편집을 담당해오던 잡지기자들이 취재 일선에 나섰고,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층의 인맥(人脈)과 금맥(金脈)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3년 10월 《월간조선》에 합류한 조갑제(趙甲濟) 기자는 한국식 탐사보도를 심화·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1984년부터 2년여간 수차례 보도한 시리즈는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일본의 《문예춘추》 등 세계 여러 언론이 주요기사로 다뤘다. 그는 1986년 <한국 내(內) CIA>를 심층취재해 사표를 내야 했고, 안기부의 조사를 받으면서 안기부까지 취재했다.
 
  ‘12·12사건’, ‘1980년 5월의 광주’, ‘전두환의 인맥과 금맥’ 등 5공 비리에 대해 총공세를 펼친 《월간조선》은 1990년대 탐사의 대상을 북한으로 돌렸다.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목탄차로 달리는 공화국> <간첩 이선실 사건> <북한탈출 벌목공들의 러시아 유랑 25시> <김정일의 육성 고백> <황장엽 망명> 등 특종 탐사보도가 쏟아졌다.
 
  일본에서도 주목할 만한 탐사보도가 많았다. 1974년 일본 정계의 거물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를 물러나게 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다나카 연구-그 인맥과 금맥> 기사는 ‘일본판 워터게이트’로 불릴 만한 탐사보도다.
 
  그는 이후 <일본 공산당 연구> <신세기 디지털 강의> <로봇이 거리를 거니는 날> <원숭이학(學)의 현재> 등 정계와 과학계를 오가는 저술을 남겼다. ‘IT전문가’이지만 지금도 만년필로 원고를 쓴다는 그는 2007년 자신이 암에 걸리자 세계를 돌며 암 최고 전문가들을 인터뷰해 암의 본질을 추적했다.
 
  워터게이트를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Woodward)는 이번 IRE 콘퍼런스 현장에서도 지겹도록 언급됐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름을 아는 미국 기자는 거의 없었다. 과거 어떤 식으로든 그의 이름이 IRE 콘퍼런스에 등장했는지 알 순 없지만, IRE 웹사이트에서 그의 영문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고, 주최 측도 생소해했다. ‘언론 종주국’의 자신감이 넘쳐서일까, 미국 기자들은 ‘극동의 작은 나라들’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한국 탐사보도의 시초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보다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탐사보도의 출발점엔 논란이 있지만, 현재가 탐사보도의 ‘쇠퇴기’란 사실엔 국내외 전문가들 모두 이견이 없었다. 언론사의 자금난이 가장 큰 이유다. 몇몇 연사들은 ‘탐사보도의 종말’을 선언하기도 했다.
 
  탐사보도는 기자 개인이나 언론사 조직의 열정만으로 이뤄낼 수 없다. 몇 명의 기자가 몇 달 또는 수년에 걸친 취재를 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 조직과 팀을 먹여 살려야 한다. 이번 과정을 통해 방문한 《USA투데이》 《월스트리트저널》 《ABC》 등 미국 유명 언론사의 탐사보도팀원들은 모두 회사의 자금난이 탐사보도의 가장 큰 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이자 다수(多數)’의 신생 인터넷 매체들이 최근 과도한 제살깎기식(式) 경쟁을 하는 것도 ‘탐사보도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 이들은 출처 불분명의 ‘단독 오보’들을 포털을 통해 무분별하게 공급하면서 언론 전체 수준을 하향평준화하려 한다.
 
  이러한 위기가 곧 탐사보도의 새로운 기회라고 역설하는 이들도 있다. “신문지는 사라져도 기사는 영원하다”는 말처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콘텐츠를 원하는 고급 독자와 시청자는 결국 수준 높은 언론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공은 다시 기자와 언론사에 돌아왔다. 변화와 혁신 없이 과거 잣대를 들이대며 “독자와 시청자들이여 똑똑해져라”라고 외칠 수만은 없다. 타사보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언론이 탐사보도의 최종 승자가 된다.
 
  앞서 설명한 《캘리포니아 워치》와 《USA투데이》의 보도 사례는 앞으로 어떤 방식의 탐사보도가 성공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와 관련한 ‘모든 것’을 탐사해 냈다. 그리고 자신들의 탐사결과를 현재 기술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이용자에게 전달했다.
 
 
  탐사보도의 현재와 미래
 
작은 회의장에서 세션이 열리면 바닥까지 점령해 현장을 SNS로 생중계하는 기자들 덕분에 더욱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미디어 전달 기술의 발달은 탐사보도에 있어 큰 호재다. 특히 모바일 기기의 확산은 탐사보도 전달방식의 한계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기술을 주제로 강연한 《댈러스 모닝뉴스(The Dallas Morning News)》의 다니엘 라스롭(Lathrop) 기자는 1453년 인쇄기부터 시작된 언론의 역사를 소개하며 구글(Google) 페이스북(Facebook)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등의 발명을 주요 사건에 포함시켰다. 누가 어떻게 첨단기기를 적절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언론과 탐사보도의 성패가 갈린다는 의미다.
 
  데스크톱 PC를 중심으로 발전한 ‘월드와이드웹(WWW)’ 방식의 인터넷은 세계 언론 역사에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종이와 TV는 탐사보도 경쟁을 만들어 냈지만, 인터넷은 선정적인 클릭 경쟁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를 목전에 두고 미국 언론은 자성과 혁신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따옴표’에 의존한 ‘선전’과 ‘선동’을 반복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네이버 메인 뉴스캐스트엔 ‘파격’ ‘충격’ ‘경악’ ‘단독’ ‘헉!’ 등 자극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기사들이 클릭을 유도하며 ‘한 줄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포털이 깐 멍석에서 크고 작은 언론사 전체가 놀아나는 셈이다.
 
  ‘카오스(chaos)’라 불릴 정도로 혼돈과 무질서 상태인 현재 언론 생태계에서, 박재영(朴宰永)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의 강연은 언론과 기자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했다. 박 교수는 “결국 모든 뉴스는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란 질문에서 시작한다”며 “이제는 ‘무엇’만큼 ‘어떻게’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경캡(Captain·사회부 경찰팀장) 머릿속엔 기사포맷 10여 개가 들어 있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팩트)만 취재해 오면 이미 짜인 기사 틀 안에 집어넣어 10분 만에 1000자 이상의 기사를 만들어 내던 시절을 빗댄 말이다. 중요한 사실부터 나열하는 방식으로 ‘세계 공통 기사작성법’이 된 ‘역삼각형 기사’는 이런 틀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탐사보도는 ‘역삼각형’보다 ‘서사형(narrative)’을 추구한다. 정형화한 구조에 취재한 내용을 끼워넣기보다 기자가 전체 스토리를 지배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당연히 글쓴이의 수고가 훨씬 요구된다. 《뉴욕타임스》의 2007년 4월 조승희 사건 보도는 서사형 구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게으른 기자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탐사기획보도로 유명한 브라이언 로스 《ABC》 탐사보도팀장(왼쪽)과 함께한 기자.
  <격렬한 분노 이전에는 불안한 침묵으로 지내 왔던 한 인생>이란 제목의 이 긴 기사는 “애초부터 그는 말이 없었다”란 첫 문장부터 “우리 가족은 모두 ‘그는 우리가 알던 조승희가 아니다. 그가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란 끝 문장까지 ‘침묵’이란 개념으로 풀어 냈다.
 
  제대로 된 기사는 따옴표 속 인용도 아낀다. 독자는 결국 기자에 의해 정제된 주관적 표현을 오히려 객관적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표현은 기자의 몫이지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프로퍼블리카》의 셰리 핑크(Fink) 기자는 객관성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친 미국 뉴올리언스주 한 병원에서 일어난 불법 안락사 사건을 2년간 추적해 온라인매체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2년간 취재했으면 의사들의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이 들었을 것 아니냐”며 ‘솔직한 심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지금도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객관성은 기사의 생명”이라며 선을 분명히 그었다.
 
  탐사보도의 운명을 외부환경으로만 탓할 것이 아니다. 아까운 지면을 일문일답으로 활용하고, 불필요한 익명과 인용을 반복해 온 ‘게으른 기자들’에겐 자업자득인 셈이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이 과오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번 탐사보도 연수는 중요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의미 있는 ‘명언’을 접하는 계기가 됐다. “기사의 신뢰도를 낮추는 가장 큰 주범은 익명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 “신속하기보단 정확하라”, “텍스트(문장)가 아니라 컨텍스트(맥락)로 접근하라”, “적어도 기자라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하며 놀 시간에 SNA (사회관계망분석)부터 하라”, “판단은 기자가 아닌 독자의 몫이다”,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마라”, “대선(大選)은 곧 돈이다, 자금을 추적하라”,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은 중요하게 보도하라” 등이다.
 
  위기 극복은 기본기가 얼마나 튼튼하냐에 달렸다. 언론 환경도 결국 기자들의 몫이다. “탐사보도를 탐사한다”는 각오로 시작된 이번 연수의 결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참관기가 아니라 반성문을 쓴 기분이다.⊙

월간조선 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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