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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북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재구성과 민변의 '여론몰이'

김정우 기자 2013.07.05 11:32
"탈북자 1만명 정보 통째로 北에 넘긴 정황"이란 제목의 기사가 지난 1월 21일 한 일간지 1면에 톱뉴스로 실렸다.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현직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은 "1만명이란 숫자는 국내 거주 탈북자의 42%에 이른다"며 정부의 탈북자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 최초로 구속됐다"는 '충격적 소식'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주요 일간지들은 다음 날 큰 비중으로 사건을 다뤘고, 간첩 혐의로 구속된 '탈북자' 유모(33)씨의 행적을 자세히 보도했다. 여러 신문은 '탈북자 간첩'이 시청까지 파고든 행정 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사설을 통해 제기했다.

문제는 유씨의 정확한 신분이었다. 사건을 최초 보도했던 일간지가 1월 22일 "간첩 정체가 '탈북자로 행세한 화교'"라고 보도하면서 그의 신원이 탈북자에서 재북(在北) 중국인으로 '정정'된 것이다. '탈북자 1만명 정보'란 수치도 후에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화교와 탈북자의 차이를 크게 인식하지 않은 언론들은 이 '정정'을 무시하고 '탈북 간첩' 보도에 열을 올렸다.

탈북자 위장 화교 유모씨가 밀입북했던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 구글어스 위성사진. 그는 중국 옌지에서 두만강을 도강하거나 세관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밀입북해 탈북자 관련 정보를 보위부에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 탈북자 아닌 '화교 간첩 사건', 민변이 변호 맡으면서 여동생 이전 증언 전면 否定
⊙ 체포된 유씨, 모친상 위해 밀입북했다 보위부에 포섭… 수차례 北 드나들며 탈북자 정보 전달 혐의
⊙ 민변 "회유, 협박, 폭행에 의한 허위자백… 간첩 조작 사건",
    국정원 "一考의 가치도 없는 거짓 주장… 민변이 진술번복 교사"
⊙ 법정 밖 기자회견과 인터뷰로 '국정원 조작' 주장한 민변, 결국 재판부 경고받아


민변 변호 시작하자 조작 의혹 제기돼

북한 주민이 아닌 화교가 위장 탈북으로 입국해 공무원 신분까지 얻게 된 사실이 밝혀졌고, 정부는 탈북자 신변과 공직 채용 검증을 강화하기로 조치했다. 유씨가 탈북자 정보를 넘긴 혐의로 2월 26일 구속기소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3월 초 재판일정이 시작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회장 장주영)이 변호를 시작하면서 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 사건의 참고인이었던 유씨의 여동생(26)이 기존 증언을 번복했고, 이를 두고 좌(左) 성향 매체들은 '사건 조작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민변은 사건에 대해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국가보안법 사건 최초로 신청했다.

의혹은 《한겨레》가 지난 4월 27일자 1면에 "'탈북 공무원 간첩 사건' 조작 의혹"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같은 날 오전 민변이 "유씨 여동생이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회유·협박·폭행을 당한 끝에 허위 자백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기자회견을 열면서 본격화됐다.

민변은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거의 유일한 증거가 여동생의 진술이었는데, 그는 회유와 협박 등을 통해 합동신문센터에 구금됐고 거짓 진술이 괴로워 자살 시도까지 했다"며 사건을 "국가정보원 탈북 화교 남매 간첩 조작 사건"이라고 명시했다.

국정원은 이날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유씨의 주거지·사무실 압수수색 및 동향 탈북자 50여 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 국가보안법 위법 관련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다"며 "3월 4일 법원에서 진술에 대한 형사소송법상 '증거보전절차'까지 마쳤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은 민변에 사과를 요구하며 "사과하지 않을 경우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 및 민사상 손해배상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수 언론의 보도내용과 양측의 발표자료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유씨 여동생 진술의 신빙성 ▲유씨의 간첩 혐의 ▲국정원의 회유·협박·폭행·감금 여부로 좁혀진다. 민변의 말이 사실이라면 '탈북 위장 화교 공무원의 간첩 행위'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다. 민변은 "밝히면 밝힐수록 무죄임을 확신한다"라며 유씨가 중국에서 촬영한 사진 등을 증거로 내놓기 시작했다. 국정원은 의혹 제기에 구체적으로 반박하며 "민변이 여동생의 감성을 자극해 진술번복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월간조선》은 최근 탈북자 출신의 사건 관계자 등을 통해 관련 수사 문건을 입수했다. 관계자의 증언, 문건자료, 관련 기사 등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회유·협박·폭행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며 제기한 사건 조작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 주장"이라며 "민변이 진술번복을 교사했다"고 반박했다.


中 국적 화교가 탈북자 위장 남한 정착

유씨는 1980년 10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화교인 유모씨와 조모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회령시 오봉인민학교, 청진시 중국인고등중학교, 경성군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차례로 졸업한 후 2001년 6월부터 회령시의 제1인민병원에서 준(準)의사로 근무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준의사'는 의사의 보조 역할을 하는 북한 직업으로, 6년제 정규의대가 아닌 3년제 전문학교를 나온 이들이다. 한 매체는 구속되기 전 유씨와의 인터뷰에서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1년간 외과의사를 했다"는 증언을 보도했지만, 결국 그의 말만 듣고 쓴 오보가 됐다.

유씨는 3년 가까이 준의사로 근무했지만 배급도 제대로 못 받을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중국에 오가며 북한산 도자기, 송이버섯, 냉동노루 등을 몰래 팔았다. 북한 주민보다 이동이 자유로운 화교 신분을 이용해 국내 탈북자들과 북한 가족 간의 통화를 연결하거나 돈을 전해주고 수수료를 챙겼다.

2004년 3월 유씨는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외당숙 국모씨의 권유에 중국 싼허(三合)세관을 통해 '탈북'을 시도했다. 이후 라오스와 태국을 경유한 그는 2004년 4월 25일 남한에 입국해 탈북자로 인정받았다.

유씨는 태생부터 중국인이었고 이름도 중국식이었지만,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자로 인정받기 위해 본명을 숨기고 '유광일'이란 이름을 택했다. 2005년 3월 대구의 한 사립대에 입학한 그는 한 달 만에 휴학하고 보따리상과 건설노무자로 생활했다. 북한에 남은 가족을 통해 국내 탈북자들의 송금 '브로커'로 활동하며 수수료를 챙겼다.

유씨의 인생은 2007년 연세대에 편입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대학 재학 중 탈북 대학생을 중심으로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활동반경을 넓혀나갔다. 여러 단체를 거쳐 운영위원과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2009년 탈북자의 국내 정착을 지원하는 모임을 결성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2005년까지 변변치 못한 정착생활을 했던 그가 2년 사이에 '적극적인 엘리트 탈북청년'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뭘까. 수사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씨는 2006년 모친상(母親喪) 등을 이유로 밀입북(密入北)했다 회령시 보위부에 적발된 후 반탐과장으로부터 공작원 활동을 제안받고 남한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수차례 추가 밀입북을 통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친상 위해 밀입북했다 北 보위부에 포섭

유씨의 최초 입북은 어머니 장례를 계기로 이뤄졌다. 2006년 5월 중국 옌지(延吉)에 살던 외당숙 국씨로부터 어머니의 심장마비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유씨는 외삼촌 조모씨 부부와 브로커를 통해 북한통행증을 발급받았다. 북한에 살던 아버지 유씨는 지방 보위부에 미리 조처를 해뒀다.

유씨 일행이 두만강 다리를 건너 회령세관을 통과하자, 마중 나온 외당숙 국씨는 그들을 집으로 안내했다. 집에 도착한 유씨는 이미 끝난 3일장을 5일장으로 연장하고, 이틀간 조문객을 추가로 맞았다. 5월 27일 삼우제(三虞祭)까지 치른 그는 회령세관을 통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 길로 그가 한국에 돌아왔다면, 지금처럼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으로서 국경을 넘어 밀입북한 사실은 분명한 범죄 행위이지만, 모친상이란 이유와 과정이 충분히 입증된다면 정상참작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사실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첫째는 그가 탈북자가 아닌 화교란 사실이었고, 둘째는 며칠 후 그가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수사 관련 문건과 관계자 증언 등에 따르면, 외당숙 국씨의 집에 머물던 유씨는 가족이 걱정돼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 이전과 달리 두만강을 도강(渡江)했다고 한다. 이틀간 회령 집에 머물던 그는 정보를 입수한 보위부에 의해 체포됐다. 보위부는 그의 가택을 수색하고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그를 조사실로 데려가 집중 신문했다.

그의 탈북 경위와 남한 정착 과정을 모두 알아낸 회령시 보위부 반탐과장 김○○는 그에게 보위부 공작원 활동을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유씨는 7일 동안 조사를 받은 후, 3일간 대남(對南)사업교육과 정신교육을 받았다. 그가 부여받은 공작 임무는 탈북자 신원자료 수집이었다.

3일간의 교육으로 과연 공작원이 될 수 있을까. 10여 년 전이라면 불가능한 사례지만, 최근 적발된 간첩 사례와 북한의 대남공작 방식은 탈북자 루트를 통한 대남공작원 침투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조선DB.


'원포인트 공작'

올해 1월 발간된 《치안전망 2013》에 따르면, 2012년 안보수사 당국은 11명의 간첩을 검거했으며, 이 중 상당수가 탈북자 루트를 역이용한 사례였다. 과거엔 최고 엘리트급 인원을 선정해 혹독한 장기 훈련을 시킨 후 해상루트를 통한 침투가 일반적이었다면, 최근 북한 대남공작부서는 국내 거주 탈북자 또는 중국 체류 탈북자들을 협박·회유해 단기속성 공작 임무를 주고 침투시킨다.

치안정책연구소 유동열(柳東烈) 선임연구관은 이를 두고 "이른바 '원포인트 공작'으로 불리는 단기속성 대남공작을 통해 북한은 고정간첩망 및 종북세력망 등을 활용한 기존 공작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지방 보위부 산하의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엘리트 공작원에 비해 남한 안보 당국에 체포되더라도 유출될 비밀정보가 사실상 없고, 상급선 추적도 어려워 북한으로선 실(失)보다 득(得)이 큰 방법입니다. 대남혁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은 최근 합법·비(非)합법, 폭력·비폭력, 핵심정예·단기속성, 온·오프라인 등 다수 방식을 배합한 공작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 2월 유씨를 구속기소하면서 낸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의 대남공작은 정예 공작원을 양성해 침투시키던 종래의 전형에서 벗어나 최근 다양한 계층에서 공작원을 다수 선발해 침투시킨다"며 "성공적 임무 수행을 위해 가족을 동원하는 반인륜적 공작도 서슴지 않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과 국정원 등 수사기관에 따르면, 중국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다섯 차례 밀입북하다 보위부에 포섭된 유씨는 탈북자 관련 단체활동과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업무 등을 통해 수집한 200여 명의 탈북자 신원정보를 3회에 걸쳐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통해 보위부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7년 연세대에 편입한 유씨는 탈북 대학생 관련 동아리에 가입해 탈북자 회원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유씨는 세 번째 밀입북을 시도한다. 연세대와 베이징(北京)사범대의 교환학생으로 선발된 그는 9월 개강일보다 한 달 앞선 7월 말에 인천항을 떠나 톈진(天津)항에 도착했다. 베이징과 창춘(長春) 지역을 돌아다니다 8월 중순 두만강을 도강해 밀입북에 성공했다.

그는 2008년 탈북자 아카데미의 회원이 돼 리더십 교육, 세미나 진행, 상담 활동을 벌여나갔다. 2009년엔 연세대 탈북 대학생 동아리에서 총 22명의 회원 신원정보를 파악했고,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 지원 모임을 통해 가입 회원들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탈북자 출신 안보강사 18명의 신원정보가 담긴 명단을 입수하는가 하면, 한 시민단체로부터 UN 관련 증언자료를 입수해 26명의 탈북자 정보를 보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메신저 활용해 신원정보 전달

수사 관련 문건과 관계자 증언 등에 따르면, 2011년 초 유씨는 회령시 보위부에 탈북자 자료 전달 계획을 보고했다. 반탐부부장 김○○는 유씨의 여동생에게 "중국에 들어가 오빠가 보낸 자료를 받아오라"고 지시했고, 여동생 유씨는 두만강을 건너가 중국 옌지의 외당숙 집에서 오빠와 통화에 성공했다. 옌볜(延邊)국제무역빌딩 근처 PC방에서 'QQ메신저'를 통해 50여 명의 탈북자 신원정보가 담긴 파일을 전송받은 여동생 유씨는 이를 USB 메모리에 담아 반탐부부장에게 전달했다.

수사당국은 탈북자 신원정보에 대해 "탈북자들의 신변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고 북한의 재북(在北) 가족을 볼모로 한 국내 탈북자 공작활동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는 철저한 관리 대책이 필요한 정보"라고 밝혔다.

사건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2011년 초 탈북자 정보 보고에 성공한 유씨는 탈북자 단체의 회장으로 취임하는 등 활동반경을 넓혀나갔으며, 장학금을 신청한 탈북자의 연락처,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 주소 등이 포함된 신상정보를 수집해 보관했다. 같은 해 5월엔 약 70~90명의 탈북자 정보를 이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여동생을 통해 보위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같은 해 6월 서울시 복지정책과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유씨는 탈북자가 포함된 기초생활수급자와 저소득층의 통계관리와 고충상담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입수한 탈북자 정보는 2012년 7월 여동생을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유씨의 네 번째 밀입북은 2011년 6월 독일 견학 행사 과정에서 이뤄졌다. 종교단체 등의 후원으로 약 25명의 대학생이 독일 베를린 등을 둘러보는 행사에 참여한 유씨는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귀국길에 경유한 베이징에 머물렀다.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는 7월 초 옌지를 통해 두만강을 도강, 반탐부부장을 만나 그동안의 성과를 보고하고 격려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여동생 유씨는 반탐부부장으로부터 "탈북자로 위장해 남한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혼자 회령에 자주 드나들면 위험하니, 여동생이 합법적으로 남한에 들어가 오빠를 도와 중국을 왕래하며 아버지를 통해 자료를 전달하라"는 이유였다. 이후 유씨 가족은 중국 옌지로 이주했고, 유씨는 7월 12일경 베이징공항을 통해 남한으로 귀국했다.

200여 명 탈북자 정보 보위부에 넘겨

다섯 번째 밀입북은 2012년 1월 이뤄졌다. 1월 21일경 창춘공항을 통해 중국에 들어간 유씨는 다음 날 가족이 사는 옌지의 집에서 여동생을 만났다. 동생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그는 택시를 타고 접경으로 이동해 두만강을 넘었다. 다음 날인 23일 유씨는 보위부 사무실을 방문해 표창을 받고 미리 준비한 카메라와 휴대전화 등을 전달했다. 그는 24일 중국에 돌아와 여동생을 만난 후 25일 옌지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2012년 10월 유씨는 여동생을 탈북자로 위장, 남한에 입국시키려 했다. 상하이를 떠나 제주공항에 도착한 동생 유씨는 입국심사대 통과 전 여권과 지갑을 오빠에게 넘긴 뒤 자신을 탈북자 '유광옥'이라고 주장하며 입국했다.

그들의 위장 탈북은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조사과정에서 발각됐다. 오빠 유씨는 지난 1월 국정원 조사 당시 자신을 "항일혁명유자녀로 북한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라고 계속 주장하다가, 여동생이 오빠의 신분을 밝히자 자신의 화교 신분을 인정했다. 동생은 간첩 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지만, 오빠 유씨는 지금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변은 현재 이 과정에 대해 "여동생의 진술이 회유와 협박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며 이 사건 전체가 국정원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핵심 근거는 여동생의 진술번복과 중국 옌지에서 찍은 가족사진 등이다.

《한겨레》 등에 따르면, 여동생 유씨는 "국정원이 '(오빠가 간첩 행위를 했다고 진술하면) 오빠와 한국에서 같이 살 수 있다'고 해서 거짓으로 진술했다"고 조사 당시 진술을 번복했으며, "모친상 외에 오빠는 밀입북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당국은 이에 대해 "여동생 유씨가 조사과정에서 한국 정착 희망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신문관이 약속한 사실은 없다"며 "유씨는 오빠의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을 뿐 아니라 법원 증거보전 증인신문에서도 일관되게 같은 사실을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여동생 유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큰삼촌'이라 불린 국정원 직원이 자신의 거짓증언에 살을 붙여 증언이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직원이 제목이 쓰여 있는 종이를 건네면 (내가) 거짓 증언을 대충 간단하게 쓰고, '큰삼촌'이 구체적으로 살을 붙여 컴퓨터로 쳐서 프린트해 주면, 그걸 보고 다시 (내가) 손으로 썼다"며 "큰삼촌을 만난 지난해 12월 중순까지는 하루 4시간밖에 재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사당국은 "오빠의 간첩 혐의에 대한 진술은 유씨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이고, 하루 4시간밖에 재우지 않았다는 것은 허위 주장"이라며 "수사관은 유씨의 간첩 활동 사실을 밝히기 위해 자발적 진술에 의거해 조사했다"고 반박했다.

증언 전면 번복한 여동생

여동생 유씨는 "(국정원) 직원이 머리를 때리고 몸을 차기도 했다. 협조하지 않으면 추방해 버리겠다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오빠를 간첩으로 만드느니 내가 죽으면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던 시계 유리를 깨뜨려 자살을 시도했지만, CCTV로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들이 달려와 미수에 그쳤다"고 했다.

수사당국은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거짓 주장이며, 조사과정에서 폭행은 전혀 없었다"며 "인권시비 차단을 위해 여(女) 신문관 2명을 참여시키고, 여성 심리상담가와 면담까지 하는 등 인권보호와 심리안정을 적극 배려했다"고 반박했다. 당국은 참고인 조사 당시 영상녹화 자료를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시계 유리 자살 시도'에 대해선 "2012년 12월 9일 유씨가 숙소 탁상시계 앞면 플라스틱 재질의 덮개에 금이 간 것을 신문관에게 보여주며 '고장이 났다'고 언급한 게 전부"라며 "시계 유리를 깨서 자해를 기도했다는 주장은 완전 허구"라고 했다. 담당 심리상담사는 "자신이 자해할 수 있다는 것을 신문관에게 시위하기 위해 탁상시계를 고의 파손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국정원이 조사 보름 만에 여동생 유씨가 화교 출신임을 확인했지만, 6개월간 합신센터에 구금한 채 간첩 사건의 '참고인'으로 조사했다"며 "국정원이 여동생 유씨를 불법 구금했다"고 적시했다.

수사당국은 여동생 유씨를 6개월 동안 조사한 것에 대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7조와 시행령 제12조에 따라 합법적으로 조사했다"며 "신분 확인을 위해 본인 진술 외에 중국인을 특정할 중국 호구부 등 공부(公簿) 입수와 함께 유씨와 같은 고향 출신의 다수 탈북자를 대상으로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유씨에 대한 조사는 "법률 규정에 근거, 합리적 필요성에 의해 소정의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탈북 신원정보 노출돼 北 가족 끌려가

민변은 "국정원이 회유와 협박에 의한 허위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국정원은 "민변이 감성을 자극해 진술번복을 교사했다"고 반박한다. 현재 여동생의 증언은 양쪽 다 녹음된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증거로 진위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다.

여동생 유씨는 국정원 조사 당시 상당히 구체적으로 오빠의 탈북자 정보 전달 상황을 증언했지만, 현재 전체 증언 내용을 조작된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인 조사 당시 유씨가 진술한 증언 내용 중 일부다.

"옌지에 도착한 다음 날 오빠가 전화로 'USB를 하나 사가지고 다시 연락하라'고 해 구입 후 '옌볜국제무역빌딩' 인근 PC방에 들어가 QQ메신저를 통해 탈북자 자료(성명, 난일, 주소) 등이 담긴 50명가량의 신원정보를 받아 USB에 저장했다. PC방 컴퓨터에 남은 파일은 삭제한 후, 아버지에게 손전화(휴대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다. 반탐부부장과 통화한 아버지는 '밤 10시경 ○○초소를 통해 들어오라'고 했고, 국○○ 삼촌이 마련한 택시를 타고 초소 건너편에 갔다.

강 건너 반대편에서 손전지 불이 반짝하는 것을 보고 강을 건넜다. 보위지도원을 만나 사파리 차량을 타고 아지트에 도착해 대기 중이던 반탐부부장을 만나 USB 메모리를 꺼내주니 '처음 준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며 격려를 했다."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탈북자 A씨는 "구속된 유씨를 몇 해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며 "그가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A씨의 말이다.

"201×년경 유씨에게 제 북한 가족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잘 안 하던 얘긴데 서로 친해지다 보니 스스럼없이 말을 하게 됐어요. 몇 달 후 제 ○○와 ○○ 등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을 구해 소식을 들어보니 보위부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다는 거예요. 거기다 탈북자도 아니라면서요. 화교는 북한 내에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데, 남한까지 와서 화교한테 또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A씨는 다른 루트를 통해 자신의 정보가 북한에 넘어갔을 수도 있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씨를 제외하면 5년 넘게 가족 얘길 한 적도 없고 특별히 수상한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며 "가족이 큰 피해를 당한 건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한 내 불찰"이라고 설명했다.

탈북자 B씨는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자신의 북한 가족사항을 별생각 없이 유씨에게 얘기했다가 현재 모두 수용소에 간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B씨는 "북한이 화교까지 이용해 탈북자 사회를 이간질하고 공포심을 조성하고 있다"며 "한 사람의 행동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B씨는 또 "수사당국에 이미 모든 사항을 있는 그대로 알려줬다"며 "가족의 신분이 추가로 확인될 수 있어 자세한 얘기는 적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명절선물 보내준다며 집 주소 알아내

B씨의 딜레마는 탈북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가족의 피해사례를 공개하고 싶어도, 북한의 탈북자 공작만 확인하게 도와주고 가족이 더 큰 화를 당할 우려가 있어 선뜻 나서지 못한다. 탈북자 C씨는 명절날 선물을 보내주겠다며 집요하게 연락해 온 유씨에게 집 주소를 알려줬다.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한 얘기도 물어와 몇 차례 대화를 나눴다. 선물은 오지 않았고, 대신 북한 내 가족이 변을 당했다.

사건 후 사는 곳까지 옮긴 C씨는 "가족을 볼모로 탈북자들의 신변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의 악행에 치가 떨린다"며 "이번 사건 후 탈북자들 사이에 불신의 벽이 높아져 안타깝다"고 했다.

민변은 현재 유씨 사건을 비롯한 최근 탈북자 간첩 사건 전체가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정화, 김미화, 이○○ 사건 등에 관여한 한 변호사는 현재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여간첩' 이모씨를 두고 "정신병 환자를 간첩으로 조작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씨는 1심 재판 중 해당 변호사에 대해 "국보법 폐지 및 철폐를 주장하고 북한의 세습체제를 미화하는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등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분이 나를 변호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선임취소 의사를 국정원에 전달했다. 1심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이씨의 자필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지난날 내가 한 일에 대해선 책임을 지고 2007년 이후 일들에 대해 나의 변호를 잘 해주실 수 있으시면 해주십사 하였습니다. 변호사님은 위조화폐 문제가 세계 통화법에 걸리니 5년형 정도 검사님이 내실 수 있으니 보위부 문제 모두가 거짓이라고 해야 한다는 등…."

2011년 왕재산 사건 때도 민변의 변호에 대해 논란이 크게 일었다.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고 지하당 '왕재산'을 구축해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된 총책 김모(48)씨 등 관련자 5명은 민변의 변호 후 기존의 태도를 바꿔 조사·참관 거부, 인권위(委) 제소, 묵비권 행사 등 조사에 불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 서명하고 확인했던 압수자료도 개봉 참관 요구를 거부했다. 디지털 증거 사본 복제 현장 참관 때도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는 등 불응했다. 조사시간을 지정하거나 조기 퇴실을 요구했고, 조사 중 팔짱을 끼고 잠을 자거나 소설책을 읽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왕재산

2011년 8월 서울중앙지검의 간첩단 '왕재산'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 발표 모습. 사건 관계자들은 민변의 변호 후 조사에 불응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이지 않은 '결정적 증거'

서울시 공무원 유씨 사건과 관련, 지난 4월 민변은 '사건 조작의 결정적 증거'라며 유씨와 가족이 중국 옌지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민변은 공소장에 기록된 1월 22일 밤부터 1월 24일까지 유씨는 북한에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보다 먼저 북한에 들어갔는데, 1월 22일 낮에 찍은 유씨 일가족의 사진이 있다며 공안당국의 기소내용을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변은 1월 22일과 23일에 찍은 2장의 사진이 있다고 밝혔는데, 현재 공개된 사진은 옌지에서 찍었다는 가족사진이다. 사진 우측 아래에 1월 22일이란 날짜가 찍혀 있다.

문제는 이 사진이 유씨 본인의 22일 밀입북 혐의를 뒤집는 증거가 아니란 점이다. 수사 기록은 22일 밤에 유씨가 두만강을 도강했다고 말하기 때문에 여동생과 유씨가 22일 낮에 옌지에 있었다면 증언 내용이 일치한다. 다만, 옌지에 있던 아버지가 먼저 회령으로 넘어갔다면, 정확한 시점에 따라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민변은 현재 23일에 중국 옌지의 노래방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만약 유씨가 아이폰으로 찍었다는 사진에 기록된 위치·시간정보가 1월 23일 옌지 지역으로 확인된다면, 법정에서 새로운 논란이 될 전망이다.

국정원은 5월 6일 재판 이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상 재판 상대인 민변이 여동생 유씨와 함께 법정 밖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에 대해 재판부가 "자제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날 국정원은 유씨 변호인들이 "회유·협박 등 허위 사실을 말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대 재학 시절부터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며 "재판은 여론에 흔들려서는 안 되고 증거·사실 관계를 면밀히 살펴야 하는데, 민변이 공판 시작 전부터 여론몰이로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가 '조작 가능성' 증거라며 공개한 유씨의 가족 사진. 유씨와 아버지가 뒤섞인 설명으로 혼란만 가중된다.


왕재산 對北보고문에 등장한 변호사들

《문화일보》는 사설을 통해 "'민주화의 결실'을 자처해 온 민변의 일부 변호사들이 재판은 사회 제세력, 특히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는 법리마저 경시해 재판부로부터 법정 경고를 받기에 이른 사실 자체만으로도 실망스럽다. 나아가 '법정 재판'이 아니라 '인민 재판'을 지향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성 질문을 받을 수 있을 정황들까지 겹쳐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민변의 입장이 어떻든 북한 대남공작부서가 민변 소속 변호사들을 이용하려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2011년 왕재산 사건 당시 발견된 대북(對北)보고문에 "민변의 S 변호사와 K 변호사의 도움으로 범민련 이적규정 철회를 위한 법률소견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란 내용과 "S 변호사와 J 변호사를 통해 신의주 카지노 호텔 사업을 할 주체를 남한 기업인 중에서 찾아달라고 부탁해 여러 기업인과 접촉하였음"이란 내용이 등장한다.

이들은 1980년대 레저산업의 신화적 인물로 꼽히다 대형 금융 비리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모 전 회장을 접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은 지난 5월 6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모략극"이라며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여론조작으로 선거 판세를 뒤집은 불법무법의 망동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쑥대밭이 된 괴뢰 정보원이 생뚱같이 '탈북자 간첩 사건'이라는 것을 들고나온 그 얄팍한 속타산이야 뻔하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왕재산 사건 때도 북한은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기도 전인 2011년 8월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파쇼 공안당국이 떠드는 터무니없는 모략사기극"이라며 "충격적인 사건으로 대내외 정책의 총파산과 북남관계 파탄으로 인한 대중의 반정부 민심을 흐트러뜨리고 진보세력들의 활동을 용공, 친북으로 몰아 위기를 모면하고 보수세력의 재집권을 실현해 보려는 목적"이라고 비난했다.

한 대북전문가는 "민변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북한이 공작 과정에서 민변을 역이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민변이 진정 '민주사회'를 위한다면 보다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조작 사건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대남공작원들은 최근 재판과 여론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월간조선 2013년 6월호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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