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기자의 OPED

“민주화보상위는 左派의 범죄경력 세탁소” 본문

사회

“민주화보상위는 左派의 범죄경력 세탁소”

김정우 기자 2010.05.26 15:41
[집중취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의 황당한 결정들
“민주화보상위는 左派의 범죄경력 세탁소”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를 대한민국에 실현하려 했던 자들에게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면서 9년간 총 957억원 퍼줘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확정 판결된 사건을 再審이라는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일개 위원회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뒤집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삼권분립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 (국가정상화추진위)

“민주화보상위의 인정사례 중 反국가단체사건 관련자, 利敵단체 사건 관련자, 각종 불법폭력시위 점거농성사건 관련자, 파업 등 불법 노동운동사건 관련자, 反美운동사건 관련자 등이 망라돼 있다. 이들은 민주화보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화 운동’과는 무관한 反헌법적 반국가적 활동자이거나 범법 활동자일 뿐”


⊙ 南民戰, 社勞盟, 革勞盟 등 反국가 이적단체 관련자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둔갑시켜
⊙ <親日인명사전> 펴낸 연구소장,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됐다 2006년 민주화보상위 통해 명예회복
⊙ 보상심의위 측, “보상금 누구에게 얼마가 돌아갔는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 주장 되풀이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민주화보상위

피고인 73명이 방청석까지 앉은 가운데 열린 1980년 남민전 사건 첫 공판 모습.


지난 11월 8일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과 언론인 韋庵(위암) 張志淵(장지연) 등 4389명을 ‘親日(친일)’로 규정한 <친일인명사전>이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에 의해 공개됐다.
 
 친일 인사에 포함된 사람들의 명단을 두고 左右(좌우) 세력 간의 대립이 극심해진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체성과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任軒永(임헌영·본명 임준열)씨의 親北(친북)적 과거 행적이 도마에 올랐다.
 
 임씨는 1974년 文人(문인)간첩단 사건, 1979년 南民戰(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투옥된 전력이 있다. 1972년 2월 ‘反(반)유신 민주화와 反帝(반제) 민족해방운동’을 목표로 조직된 남민전은 재벌그룹 회장과 고위 공직자 등의 집을 골라 강도 및 절도를 하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탈취하는 등 충격적 범죄를 저질러 1995년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자생적 공산주의 지하조직이다.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당시 발견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수사당국은 ‘간첩 황인욱의 그림’이라고 표기했다.

 남민전의 ‘對(대) 남조선 투쟁’은 1979년 10월 관련자 84명이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관련자들은 대부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 무기징역, 징역 15년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임씨는 남민전 조직원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임씨는 1976년 한 인사로부터 남민전 산하 민투(한국민주투쟁국민위원회) 가입을 권유받고 민투의 강령과 규약을 선서하는 의식을 치러 남민전에 정식 가입했다고 한다. 鄭昌仁(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는 지난 11월 9일 인터넷신문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임준열이라는 사람은 친일을 논할 자격도 없는 從北主義者(종북주의자)이며, 반역자”라며 “그가 주도하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작업은 金日成(김일성) 金正日(김정일)에 충성하기 위한 친일장난에 놀아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남민전 관련자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탈바꿈시킨 것은 金大中(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구성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주화보상위)다. 임헌영씨를 비롯한 남민전 관련자 38명은 2006년 3월 13일부터 6월 19일까지 4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됐다.
 
 
 “총기 취득, 강도행위는 維新 탄압에 대한 항거”
 
 당시 민주화보상위는 결정문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남민전에 대해선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는 민주정부를 세우자는 행위로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확립 및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했다. 다음은 ‘남민전사건 진상규명결과 자료집’에 게재된 민주화보상위의 결정요지 중 일부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카빈 소총을 취득하여 보관한 행위, 자금 마련을 위한 강도행위, 북한으로 보내는 보고문 등과 관련하여 항거수단의 적정성 여부와 관련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적 관점에서 그 배경과 결과를 보건대,
 
 ▲이들이 총기취득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시 8명을 사법 살인한 국가폭력 앞에서 스스로를 보위하기 위한 자구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유신체제의 엄혹한 탄압에 대응하기 위한 상징적 저항 차원으로 보이며…(중략)
 
 ▲중동건설 현장에 투입한 노동자들의 보험을 횡령 착복한 돈으로 사치를 일삼고 여성편력이 심하여 사회적으로 빈축을 받았던 최○○, 고급관료로 직위를 남용하여 비리와 부패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으며 그 집안에 뇌물로 받은 금도끼가 있었다고 소문이 돌았던 구○○, 중앙정보부가 금괴를 밀수하여 비자금으로 쓴다는 ‘보○장’(편집자注: 보관장소) 등 사회적 지탄의 대상을 선별하여 행한 것이었던바, 위 행위들의 궁극적 목적은 유신체제의 타파에 있었다고 판단되기에 유신체제에 항거하였던 항거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
 

 
 신청자 10명 중 7명꼴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지난 11월 8일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맨 왼쪽)

 지난 10월 19일 한나라당 田麗玉(전여옥) 의원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高永宙)는 ‘민주화보상위의 반국가활동 진상규명 발표회’를 열고 민주화보상위의 ‘恣意的(자의적)’ ‘任意的(임의적)’ ‘革命的(혁명적)’ 행태를 분석해 공개했다.
 
 이날 발표회에는 社勞盟(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을 직접 담당했던 검사 출신 咸貴用(함귀용) 변호사를 비롯해 정창인 국가정상위 고문, 諸成鎬(제성호) 중앙대 교수, 姜京根(강경근) 숭실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날 발표자료에 따르면, 민주화보상위는 2000년 11월 제5차 회의에서 처음으로 梁性佑(양성우: 해외출판물에 의한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9호 위반) 詩人(시인)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 결정을 한 이후, 2009년 10월 12일 제284차 회의까지 9263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의 통계를 분석해 보면, 전체 신청 1만2609건 중 인정 8264명, 기각 2339건, 보류 1288건으로 나타났다. 신청자 10명 중 7명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셈이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민주화보상위는 2000년 11월 제5차 회의에서 처음으로 梁性佑(양성우: 해외출판물에 의한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9호 위반) 詩人(시인)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 결정을 한 이후, 2009년 10월 12일 제284차 회의까지 9263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의 통계를 분석해 보면, 전체 신청 1만2609건 중 인정 8264명, 기각 2339건, 보류 1288건으로 나타났다. 신청자 10명 중 7명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셈이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9년간 총 957억원이 집행됐다. 이 중 376억원은 보상금, 581억원은 생활지원금이다. 376억원의 보상금이 총 721명에게 지급돼 1인당 평균 5000만원 이상의 보상금이 책정된 셈이다. 민주화보상위가 매년 예산 중 예비비를 보상금 명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2009년 말까지 보상금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자료를 발표한 국가정상화추진위는 민주화보상위의 인정사례 중 “반국가단체사건 관련자, 利敵(이적)단체 사건 관련자, 각종 불법폭력시위점거농성사건 관련자, 파업 등 불법 노동운동사건 관련자, 反美(반미)운동사건 관련자 등이 망라돼 있다”면서 “이들은 민주화보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화 운동’과는 무관한 반헌법적 반국가적 활동자이거나 범법 활동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임헌영씨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모습(오른쪽 두번째).
  함귀용 변호사는 “민주화보상법 자체가 違法(위법)이고 운영마저도 不法(불법)”이라며 “민주화보상법은 바로 폐지하고 (민주화 인사로) 결정된 사람을 다시 심의해 과연 민주화 운동가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 변호사는 민주화보상위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사노맹 관련자를 민주화 인사로 결정한 것에 대해 “그 사람들이 민주화 인사면 나는 반국가사범이냐”라고 항변했다.
 
  제성호 교수는 “일부에선 민주화보상위가 극단적 좌파세력의 범죄경력을 세탁하는 세탁소 노릇을 해 왔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이렇게 세탁된 이들에게 公職(공직) 진출의 기회가 열리게 되고 대한민국 역사도 거꾸로 쓰는 여러 현상이 좌파정권 10년 동안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강경근 교수는 “심지어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를 대한민국에 실현하려 했던 자들에게 약 1000억원대의 보상을 해 줄 수 있게 한 민주화보상위와 위원들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추진위가 소개한 문제가 될 만한 주요사건은 ▲사노맹 사건 ▲革勞盟(혁노맹·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 사건 ▲남민전 사건, ▲救國前衛(구국전위)사건 ▲救學聯(구학련·구국학생연맹) 사건 ▲社民靑(사민청·사회민주주의 청년연맹) 사건 ▲부산 동의대 방화사망 사건 등이다.
 
 
  국가반역 행위자도 ‘민주화 운동가’
 
1991년 4월 수사당국이 압수한 사노맹 사건 관련 유인물.
  민주화보상위는 2008년 12월 제257차 회의에서 사노맹 사건의 총책인 박노해(본명 박기평)씨와 이정로(본명 白泰雄)씨를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했다. 이에 앞서 제125차 회의에선 사노맹 가입조직원 배정섭씨를 민주화 운동가로 일부 인정했다.
 
  사노맹 사건은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최대의 非合法(비합법) 사회주의 혁명조직이다. 1989년 11월 2일 백태웅, 박기평씨 등이 무장봉기로 現(현)체제를 전복시킨 뒤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다는 목표 아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 서울을 비롯한 마산·창원·울산·부산·포항·대구·구미 등 전국의 노동현장과 학원가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선동하다 적발된 사건이다.
 
  1991년 4월 3일 중앙상임위원 박기평 등 11명이, 1992년 4월 29일 중앙상임위원장 백태웅 등 39명이 구속됐고, 대법원은 관련사건 선고를 통해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한 반국가단체’라고 판결했다. 추진위가 발표회에서 공개한 대법원 판결문 중 일부다.
 
1990년 8월 수사당국이 압수한 혁노맹 사건 관련 유인물과 디스켓 등 증거물.
  <제1단계로 전위활동가들에 의한 비합법적인 선전선동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통일전선을 구축하여 무장봉기로써 대한민국 체제를 타도한 후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소위 민족민주혁명을 이루어 민중공화국을 수립한 뒤,
 
  제2단계로 반동관료, 독점재벌 등을 숙청하고 토지 기타 생산수단을 몰수, 국유화하는 사회주의혁명을 이루어 완전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임을 표방하면서…(중략)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은 구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 단체에 해당된다.>
 
  추진위는 “사노맹 사례는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08년에 국무총리 소속의 민주화보상위가 무장봉기와 폭력혁명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했던 사노맹 관련자를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하는 ‘반역행태’를 당당하게 저질렀다”면서 “현 정부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라고 주장했다.
 
간첩단 구국전위로부터 수사당국이 압수한 증거물. 창립선언문 등 23건의 문건, 무선호출기, 단파 라디오, 컴퓨터 등 모두 12종 342점이었다.
 
  무장투쟁 단체에 “國內 불합리성 극복할 수 없어 나온 苦肉之策”
 
2000년 8월 9일 열린 민주화보상위 현판식. (왼쪽부터) 김상근 제2건국위 기획단장, 최인기 행정자치부 장관, 이우정 보상심의위 위원장, 김경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김정기 방송위원회 위원장.
  민주화보상위는 2004년 제100차 회의에서 혁노맹 사건 관련자인 박대호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2008년 11월 17일 <조갑제닷컴>에 게재된 金成昱(김성욱) 프리랜서 기자의 ‘共産(공산)혁명조직 ‘혁노맹’ 민주화운동 인정’ 기사에 따르면, 1986년 8월 결성된 혁노맹은 대학교 등에 아지트를 구축해 ▲프롤레타리아 지하노동당 결성 ▲武裝蜂起(무장봉기)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군대 창설 ▲민주주의 민중공화국 수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형제적 지원하에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 건설 ▲連共(연공)통일 실현 등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활동한 단체다.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 선전과 레닌의 군사론에 입각한 무장투쟁 지도 등을 목적으로 기관지를 전국에 배포하는 한편, 성균관대와 한국외대 등 전국 12개 대학에 하부조직인 ‘민학투련’을 결성해 學內外(학내외)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하면서 연계투쟁을 선동했다.
 
  또 이들은 민중의 역량만으로는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판단, 조직 내에 군사위원회를 설치해 무장봉기 시 진압군대와 경찰에 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혁명군대’ 창설을 추진했다.
 
  혁명군대는 무장봉기 시 군사행동으로써 ▲군대경찰 등에 대한 물리적 타격을 통하여 현 체제를 붕괴시켜 나갈 것 ▲피검자의 석방, 가능한 방법을 통한 정부화폐의 몰수 ▲자유총연맹, 해병전우회 등 우익단체에 대한 테러 ▲상징적 인물에 대한 테러 및 암살 등을 설정했다.
 
  민주화보상위는 혁노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단체를 주도한 박대호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점을 알면서도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민주화된 사회가 되기를 열망해 학습함으로써 惡法(악법)에 의해 국민을 탄압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것”이라며 “국민기본권 신장을 위한 활동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추진위가 공개한 박대호씨에 대한 민주화보상위의 결정문 중 일부다.
 
  <관련자들의 목적은 박정희,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체제의 타도와 진정한 민주정부의 수립 및 조국통일에 있었고, 그 방법론을 모색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친 완강한 군사독재 조직은 온건한 의회주의적 방식으로는 이를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불합리성을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苦肉之策(고육지책)으로 보이며…>
 
  추진위는 민주화보상위 결정문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확정 판결된 사건을 再審(재심)이라는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일개 위원회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뒤집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삼권분립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간첩활동한 者도 민주화 운동가로 둔갑
 
  2004년 2월 제95차 회의에서는 구국전위사건 관련자 홍중희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구국전위 사건은 안기부, 국군기무사, 경찰청 등 3개 공안기관이 합동으로 조선노동당의 남조선 지하당인 ‘구국전위’ 간첩단 사건 관련자 23명에 대해 형법상 간첩죄, 국가보안법상 반 국가단체 구성, 회합통신, 금품수수죄 등을 적용, 구속한 사건이다.
 
  1991년 5월 일본을 통해 국내 침투한 在日(재일)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된 안재구씨는 ‘통일혁명을 위한 지하당을 건설하라’는 지령을 받고 출소 좌익수, 노동운동가, 학생운동가, 청년활동가 등을 동조자로 규합, 조선노동당의 남조선 지하당 ‘구국전위’를 결성했다.
 
  그는 재야운동단체, 노조, 학원, 청년운동단체 등에 조직을 침투시켜 노사분규에 개입하거나 학생운동 등을 배후 조종하고, 국내 운동권의 동향을 수집, 11차례에 걸쳐 對北(대북) 보고하는 등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받았다.
 
  구국전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조선노동당의 주체위업을 계승해 김일성, 김정일주의의 정수분자들로 구성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을 위한 민중의 전위부대로, 북한공산집단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에 따라 국가를 變亂(변란)할 목적의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다.
 
  민주화보상위의 2006년 12월 제190차 회의에선 1992년 ‘남한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징역 13년 형을 선고받았던 黃仁旭(황인욱)씨가 민주화 운동가로 결정됐다.
 
  황씨가 관련된 주사파 지하조직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은 1986년 3월 29일 서울대에서 결성돼 투쟁의 3대 영역(반미 자주화투쟁, 반파쇼 민주화투쟁, 조국통일촉진투쟁)을 설정하고 반미투쟁의 대중화를 시도한 단체다. 1986년 5월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 산하에 ‘5월특위’를 신설하고, 부산 미문화원 점거 투쟁과 헌법특위 분쇄 투쟁에 참가했다.
 
  대법원은 구학련에 대해 “북괴의 상투적 선전, 선동 및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전략, 전술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구학련이 북괴의 활동에 동조해 이를 이롭게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인정했다”고 판시했다.
 
  김성욱 기자의 ‘민주화보상위 국가정체성 훼손사례 연구’에 따르면, 황인욱씨는 당시 북한정권의 기관지 <민주조선>을 대자보로 알린 ‘서울대 대자보’ 사건으로 구속돼 2년가량 복역했다.
 
 
  일부 위원의 ‘反국가사범’ 반대에도 결국 명예회복
 
  이후 황씨는 건국 이래 최대 간첩사건으로 불리는 ‘남한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중부지역당은 2008년 8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에서도 실체가 확인된 북한조선로동당의 남한 내 지하당이었다.
 
  민주화보상위 제190차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회는 구학련에 대해 “그 타도 대상이 군사독재정권을 지칭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황씨에 대해서는 “불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에 항거함으로써 민주헌정질서 회복에 기여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평가했다.
 
  김 기자가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총 9명의 위원 중 한 명은 황씨에 대해 “신청인의 행위는 친북공산혁명 활동으로 반국가사범”이라고 했고, 다른 위원도 “친북활동에 불과할 뿐이고 이를 민주헌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결국 황씨를 명예회복시켰다.
 
  민주화보상위는 2006년 제174차 회의에서 사민청 사건 관련자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했다. 사민청은 연방제 통일과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결성돼 노조원 등을 상대로 사상학습을 시킨 혐의로 구속된 단체. 대법원은 “사회주의를 기본강령으로 하고, 우리 사회를 대중정치 투쟁과 민중항쟁 등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제거, 타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다.
 
  민주화보상위는 이들의 활동에 대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민주화보상법 2조)”으로 규정했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받았다. 민주화보상위는 2002년 4월 제141차 회의에서 ‘부산 동의대 진입 경찰관 방화치사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 운동가로 결정했다.
 
  동의대 사건은 1989년 5월 3일 부산 동의대에서 입시부정을 이슈로 교내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전경 5명을 납치하자 이들을 구출하려고 동의대 도서관 7층으로 들어갔던 경찰관 7명이 시위대가 복도에 석유와 시너를 뿌리고 던진 화염병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당시 관련 학생 70여 명이 구속됐고, 이 중 31명은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죄 등으로 징역 2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다.
 
 
  동의대에서 방화로 경찰 7명 죽인 31명에게 1인당 2500만원씩 보상금 지급
 
지난 5월 3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동의대 사건 순국 경찰관 20주기 추도식’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과 강희락 경찰청장(왼쪽)이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민주화보상위는 사건과 관련된 46명을 명예회복시키는 한편, 그중 방화치사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31명에 대해 보상금 지급을 결정해 1인당 평균 2500만원을 지급했다. 위원 9명 가운데 3명은 찬반 표결을 전후해 “대법원에서 방화치사죄로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을 민주화 운동가로 결정하는 데 휩쓸려가고 싶지 않다”며 사퇴했다.
 
  민주화보상위 결정에 대해 당시 殉職(순직)한 경찰 유가족들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2005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명의 다수 의견을 통해 “유족들이 심의위(민주화보상위) 결정으로 사회적 명예 등의 기본권을 침해받은 게 없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전여옥 의원은 지난 2월 민주화보상위의 결정을 재심토록 하는 ‘민주화보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다 국회 본청 건물 안에서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소속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전 의원은 다음달인 3월 2일 국회에 鄭夢準(정몽준) 孔星鎭(공성진) 의원 등 12명과 함께 ‘민주화보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제출했고, 이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權炅錫(권경석) 의원과 安炅律(안경률) 의원 등 13명은 “민주화보상위 등 과거사 관련 17개 위원회의 경우 違法(위법)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시정이나 견제할 장치가 全無(전무)하다”며 이들 위원회의 설치 근거가 되는 17개 법률 각각에 대한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같은 사례 외에도 북한 김일성이 죽었을 때 추모 현수막을 걸려다 경찰과 충돌한 행위 등도 민주화 관련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7년 이후 반미, 노사 분규 등을 이유로 한 투신분신 등의 자살, 死因(사인)이 불분명한 의문사에 대해서도 민주화보상위는 민주화 관련성을 광범위하게 인정했다.
 
  추진위의 발표문에 따르면 광주 및 서울 미 문화원 불법 점거 사건 관련자, 쌀수입 개방 및 UR(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폭력시위사건 관련자, 6·3 외대사건(외대 방문 정원식 총리 테러사건) 관련자, 전교조 관련 해직교사, 각종 불법파업 관련자 등 이른바 ‘민주화운동’과는 무관한 불법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민주화보상위

민주화보상위의 생활지원금 지급 주요 사례

  
  쌀수입 개방 반대 시위자, 학생회 활동 중 암 사망자에게 1억원씩 보상
 
  김성욱 기자의 ‘민주화보상위의 국가정체성 훼손사례연구’에 공개된 민주화보상위의 주요 보상 사례는 다음과 같다.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정권 퇴진 요구 투신(이○○ 1억1009만원) ▲반미자주, 조국통일, 군자주화 투신자살(양○○ 1억4684만원) ▲김영삼 권위주의 항거, 경찰과 대치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류○○ 1억870만원) ▲광주대 재학 중 김영삼 권위주의 항거와 관련, 도피 중 1997년 9월 13층 아파트에서 추락사(김○○ 2억7257만원) ▲1987년 6월부터 1989년 7월까지 통일대장 등 기타 학생활동 중 1990년 9월 병원에서 전립선암으로 사망(김○○ 1억712만원).
 
  보상금 외에 총 3682명에게 581억원의 생활지원금이 지급됐다. 민주화보상위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수령당사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추진위가 공개한 생활지원금 지급 사례에 따르면, ‘북한바로알기 관련 서적 발간’ ‘문인간첩단 사건’ ‘삼민투 사건’ ‘서울대 민추위 사건’ ‘북한 관련 유인물 제작’ 등에 적게는 112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생활지원금이 지급됐다.
 
  추진위는 역대 민주화보상위 위원들의 성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욱 기자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위원 중 친북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관련자가 7명에 달한다. 2008년 2월 한국진보연대와 합쳐진 전국연합은 2001년 충북 괴산군에서 가진 ‘군자산의 결의(연방제 실현을 다짐한 9월 22~23일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를 통칭하는 말, ‘9월 테제’로도 불린다)’ 이후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체결’ ‘연방제 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在獨(재독) 고위 북한 공작원 宋斗律(송두율) 교수의 석방과 한총련 합법화 선언에 참여했던 위원도 있다.
 
  추진위는 편향된 성향의 위원과 분과위원들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개념이 잘못 해석·적용됐다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간첩행위, 사회주의 혁명행위, 반국가 이적행위 등에 대한 명예회복은 ‘사이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화보상위는 천문학적인 보상금과 생활지원금을 집행하고선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수령당사자 명단과 회의록 및 결정문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逆賊(역적)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된 떳떳한 한국인인데 무엇이 두려워 수령자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는지 아리송하다”고 했다.
 
  반국가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한 법 집행이며 국가의 自衛權(자위권)에 해당한다. 헌법에 따라 제정된 법률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 추진위는 “지난 정부 시절 親北左派(친북좌파)들이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반국가 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면서 민주화보상법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대한민국사랑국민운동연합은 지난 9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민주화보상위 고발 및 국민감사청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연 후, 같은 달 16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韓美 FTA 반대 시위자도 민주화 운동가냐?”
 
  지난 9월 16일 ‘대한민국사랑국민운동연합(집행위원장 崔仁植)’이 민주화보상위 전현직 위원 8명을 직권남용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남민전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김일성 집단인 공산계열 노선에 따라 활동한 단체에 대한 민주화보상위의 결정은 위원들이 법을 이용해 반국가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 元裕哲(원유철) 의원은 지난 7월 14일 민주화보상위로부터 제출받은 각종 보상 결정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며 “이런 잣대라면 韓美(한미) FTA 반대 시위자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쳐줘야 한다는 말이냐”면서 “퍼주기식 민주화 유공자 양산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폭력을 수단으로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국가적’ 결정이다. 편향된 시각으로 다수의 국민이 공감할 수 없는 ‘민주화 운동가 결정’은 지난 시절 진정한 민주화운동을 했던 ‘진짜 민주화 운동가’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9년에 걸쳐 진행된 ‘그들만의 민주화운동 보상’이 어떻게 정리될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계속...

월간조선 2009년 12월호 (기사 全文 보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