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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를 가짜로 모는 사람들 - ‘김현희의 편지’ 공개 후 ‘남북한 정부 공동조사’ 주장하기 시작

김정우 기자 2011.08.16 10:45
김현희를 가짜로 모는 사람들
‘김현희의 편지’ 공개 후 ‘남북한 정부 공동조사’ 주장하기 시작

학생운동 출신 운동가·천주교 단체들이 “KAL 858기 폭파사건이 조작됐다, 김현희는 가짜다”라며 의혹제기 주도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국정원 과거사위

2006년 8월 1일 국정원 진실위가 KAL 858기 폭파사건 조사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사진 속 김현희의 귀 모양으로 인한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해 진실위는 1972년 11월 당시 김현희가 평양 헬기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앞으로 제가 부정한 국가기관과 공영기관, 시민종교단체들과 맞서 투쟁해야만 할 운명에 처해질 것 같습니다. 親北(친북) 성향의 정부가 물러가고 實用(실용)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저 혼자 그들을 대처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입니다. 인내하면서 살아온 5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KAL기 폭파사건의 주인공 金賢姬(김현희)씨가 2008년 10월 李東馥(이동복) 교수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적힌 내용이다. 편지는 MBC·SBS 등 방송제작진들이 그의 집을 ‘습격’해 그가 사는 곳을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에 노출시켰고, 김현희씨를 보호해야 할 국정원과 경찰은 김씨와 그의 가족을 살던 곳에서 ‘추방’했다고 전한다. 김씨는 국정원과 방송 제작진들이 “방송화면 뒤에서 시청자들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면서 “역사는 이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역사는 여전히 김현희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그녀를 여전히 가짜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辛成國 신부
 
  “全斗煥 정권이 KAL기 사건 일으켰다고 확신”
 
신성국 신부.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를 주도했다.
  辛成國(신성국·47) 신부는 1961년 충북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서울 성신고를 졸업한 후 광주가톨릭신학대에 입학했다. 신학대학 1학년 재학 시절 광주에서 목격한 5·18의 충격이 그를 ‘행동하는 司祭(사제)’로 변화시켰다. 그는 2004년 3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항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실이 평생의 부채로 남았다”고 말했다.
 
  2000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공동대표를 맡은 신성국 신부는 같은 해 3월 충북 청원의 청소년수련관을 ‘안중근 학교’로 바꾼 후 교장으로 취임했다. 이 학교를 2004년 2월까지 운영하며 안중근 추모예술관, 뤼순(旅順) 감옥 체험실을 설치하는 등 안중근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2000년 8월 신 신부는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을 주도했다. 주민을 상대로 사실상의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2005년 8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안 보기 운동을 시작한 옥천은 언론 개혁의 성지가 됐다”고 말했다. 신 신부는 조선일보를 ‘사탄’이라고 부른다. 그는 ‘안티조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조선일보 폐간이 ‘예수의 명령’이라고 주장했다.
 
  신 신부는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KAL기 사건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3년 사건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성서를 통해 본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운동’이란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全斗煥(전두환) 정권이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잔학하게 학살하여 정권을 잡더니, 정권 말기에는 KAL 858기 사건을 일으켜 수많은 노동자 가족과 승무원 가족들을 희생시켰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그는 “盧泰愚(노태우) 정권 당시 안기부가 가족들을 협박, 회유하면서 진상규명 운동에 대해 철저한 방해공작으로 일관했다”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족들에게 안기부의 협박은 강압이었고, 공포 그 자체였다”고 기록했다. 2003년 10월부터는 ‘진상규명 촉구 전국순회강연’을 돌면서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와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신성국 신부가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 그는 조선일보를 ‘사탄’이라고 표현했다.
  KAL기 사건 외에도 그는 2003년 3월에 이라크와 요르단으로 날아가 현지에서 反戰(반전)운동을 벌였다. 그는 직접 戰場(전장)에서 인터넷을 통해 민간인 피해자들의 상황을 전했고,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반전평화운동에 참여했다.
 
  귀국 후 충북대에서 열린 공개강좌에서 그는 “이라크에 다녀 온 후 ‘미국을 다시 보자’는 생각을 가졌다”면서 “미국은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가이자 대량살상무기 지속사용 국가”라고 발언했다고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가 2003년 5월 21일 보도했다.
 
  꽃동네와 吳雄鎭(오웅진) 신부도 신 신부의 비판 대상이었다. <오마이뉴스>(2003년 1월 22일자) 기사에 따르면, 신 신부는 1998년 꽃동네 관련 사항을 수집하다가 일부 신부들에게 “꽃동네가 현대그룹보다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일부 언론과 천주교 단체가 꽃동네에 대한 의혹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 신부는 지난해 9월, 8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신 신부는 2004년 盧武鉉(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탄핵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경향신문>(2004년 3월 28일자)과의 인터뷰에서 “성서에 보면 예수님은 ‘나는 불을 지르러 왔다. 모든 것을 다 태우고 새 하늘 새 땅을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다”며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집회는 구원의 사건, 해방의 사건, 창조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 1월 25일자로 미국교포사목으로 인사발령을 받고 미국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공식적인 활동으로 언론에 노출된 적은 없다. 그가 한 인터넷 카페에 남긴 편지에 따르면 2009년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玄俊熙 前 감사원 공무원
 
  “KAL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건 ‘天動說’”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의 불씨를 지핀 현준희씨. 사진은 1996년 4월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그가 효산콘도부지 감사중단에 대해 폭로하는 모습이다.
  玄俊熙(현준희·55)씨는 ‘1세대 내부고발자’로 불린다. 그는 1995년 감사원 재직 당시 효산그룹이 콘도 건축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정권 실세와 결탁해 로비를 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하지만 상부의 지시에 의해 감사가 중단됐고, 현씨는 감사중단의 부당성과 관련자 징계를 건의했지만 묵살됐다. 그는 총선 직전이었던 1996년 4월 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사실을 폭로했다.
 
  감사원은 현씨를 파면했다. 18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쫓겨난 그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2개월간 구속됐다 풀려났다. 현씨는 1997년 1심, 2000년 2심에서 승소해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2002년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는 다시 무죄를 선고했고, 2008년 11월 14일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씨는 <서울신문>(2007년 12월 5일자)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감사원보다 대법원이 더 밉다. 빈 라덴처럼 비행기로 대법원 건물을 들이받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현씨는 재판기간 동안 건강식품, 학습지 방문판매, 휴대전화 영업사원 등을 전전했다. 집을 전셋집에서 월셋집으로 옮기는 등 생활고를 겪다가 2000년 4월, 외국인을 상대로 한 韓屋(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2001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시아정보문화센터가 발행하는 <월간 내외저널> 창간호(10월호)에 ‘김현희 KAL 858기 사건 조작 의혹’이란 기사가 게재됐다. 현씨는 이 기사에서 ‘감사원 재직 당시부터 14년 동안 이 사건을 추적해 왔다’며 사건과 관련된 12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 기사가 기폭제가 되어 2001년 11월 23일 천주교인권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며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촉구했다.
 
  사흘 후인 26일엔 천주교 신부들과 KAL 858기 폭파 당시 희생된 유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위원장 김병상 신부)가 결성됐다.
 
  이 대책위의 주도하에 정보공개 청구소송과 국회 청원, 천주교 사제들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선언이 이어졌고, KAL기 폭파사건에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소재로 한 소설이 출간됐다. 방송사들은 앞다퉈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현씨는 <인물과 사상> 2002년 2월호 ‘과연 김현희는 KAL 858기를 폭파했는가’란 기사에서 “KAL 858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天動說(천동설)’로 南北(남북)을 이간질한다”며 月刊朝鮮 2001년 11월호, 2002년 1월호 기사를 반박했다.
 
  <동아일보>(2003년 12월 21일자)는 그를 ‘대한항공 추락사건(이 기사는 폭파사건을 ‘추락사건’이라고 표기-편집자 주) 의혹 불씨 지핀 사람’으로 표현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이다.
 
  “안기부 수사발표의 잘못을 100가지나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수사는 졸속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지금도 김현희 관련 증거는 400여 점이나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사고기 잔해는 행방조차 묘연합니다.”
 
  사건 당시 일본 연수 중이던 현씨는 뉴스를 일본에서 접했다.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전날 발생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행기 추락 사고와 비교했을 때 조사의 성과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이유였다. 1992년 다시 일본 유학을 떠난 그는 개인적으로 일본 언론보도 자료들을 수집했다. 관련 내용을 발표할 용기가 나지 않아 보관만 하고 있다가, 2001년에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씨는 2003년 12월 주간지 <한겨레21>에 ‘김현희는 왜 김신조처럼 못 사는가’란 제목의 기고를 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자신을 “주사파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평범한 중생”이라며 “김현희가 떳떳하다면 왜 김신조 등 다른 귀순 전향 간첩처럼 일반인과 어울려 살지 못할까”라고 했다.
 
  몇 해 전부터 그와 관련된 언론 보도에서 KAL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제기했던 의혹들은 2006년 국정원 진실위 진상규명을 통해 대부분 해소됐다.
 
  현씨는 현재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외국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씨는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도 수많은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며 “의혹은 언론이나 국정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공식적으로 해소해 줘야 한다”면서 이렇게 했다.
 
  “당시 사형선고를 받은 김현희를 사면한 가장 큰 이유가 ‘역사의 산증인’으로 활용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 떳떳하게 나타나 직접 해명을 해야죠.”
 
  현씨는 지금도 “정부측의 발표는 ‘천동설’에 불과하다”며 “‘무서운 시대’에 해외 멀리서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유엔이나 정부의 공식 재조사, 남북 공동조사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다시 활동을 할 계획이 없는가”란 질문에 “생업이 바빠서 어렵다”고 답했다.
 
 
  서현필 작가
 
  “사건 공론화 위해 소설 썼다”
 
소설 <배후>의 저자 서현필씨가 기자회견장에서 김현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소설 <배후>의 저자 서현필(필명 서현우·46)씨는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 동의대 정외과를 나왔다.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참가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고, 볼링장을 운영하던 1987년엔 6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서씨는 2003년 12월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AL기 사건에 대해 “16년 만의 대통령직선제 쟁취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실로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 서씨는 사건 직후부터 국내 신문기사와 외신자료를 수집해 ‘초동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2001년 수지 김 사건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그는 KAL기에 대한 소설 구상을 시작했다. 그는 일본 작가 노다 미네오(野田峯雄)의 <파괴공작> 등 서적과 국내·외 신문보도, 대한항공 수색일지, 재판 판결문 등 자료들을 참고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2003년 5월 소설 <배후>가 출간됐다. 소설은 주인공 ‘해모수’가 안기부, CIA 등의 추격을 받으며 사건에 대한 각종 의혹들을 풀어낸다는 내용으로, 해모수의 이야기를 ‘서현우’(저자의 필명)가 전해 듣는다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같은 해 11월 19일 보강판을 낸 그는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대중적으로 공론화시키기 위해 소설을 썼다”며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흥미롭게 이야기를 다룰 수 있어서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강판이 발간된 지 사흘 후 KAL기 폭파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국정원 조사관 5명이 서씨와 창해출판사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담당 조사관들은 저자와 출판사에 각각 2억5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서울지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국정원 측은 “소설이 창작의 자유에 속하나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건과 이름 등을 거명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11월 24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하든지 공개토론에 응하면 될 것이지 왜 소송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내 주장은 폭파사건 자체가 기획사건이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수사발표와 재판 판결문 내용이 실제 사건 내용과 다르니 재조사를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와 함께 소송을 당한 창해출판사 대표 全炯培(전형배)씨도 KAL기 사건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온 인물이다. 그는 2004년 3월 노다 미네오의 <파괴공작>을 직접 번역해 출간했다. 베스트셀러 <오체불만족>의 번역자이기이도 한 그는 2004년 3월 19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배후>가 기록물도 아닌 소설이고, 또 소설 속에서 국정원 당시 직원들의 실명이 거론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명예훼손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배후>, <파괴공작> 외에도 신동진씨의 등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책들이 전씨가 경영하는 창해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김현희 스스로 쓴 편지 아니다”
 
  서현필씨는 2003년 8월 신성국 신부의 요청에 따라 전국 순회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경향신문>(2003년 12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서씨는 전국의 천주교회 본당을 돌아다니면서 미사 중간에 KAL 858기 폭파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이 추적한 내용을 중심으로 강연을 하면서 신자들을 상대로 여론화 작업을 했다. ‘KAL 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아 온 서씨는 진상조사가 마무리된 후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2008년 2월 29일 사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서씨와 전씨를 상대로 제기됐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불구속 기소했고, 2008년 9월 9일 서울중앙지법은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민사소송도 2007년 8월 1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이 났다.
 
  최근 김현희씨의 편지가 공개된 이후, 서현필씨는 2008년 12월 16일 서울 명동 천주교인권위 사무실에서 열린 대책위 기자회견에서 김씨의 서신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2008년 12월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서씨는 “김현희 수사 및 재판기록을 살펴본 결과 수사 자체가 ‘짜 놓은 각본’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례가 방대하기 때문에 조만간 날짜를 잡아 의혹을 빠짐없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들 단체는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남북 정부의 공동조사를 주장했다.
 
  서씨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를 비롯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객관적으로 제시된 의혹은 해소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기부의 수사기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엉터리였다”며 “과거에 입수된 국정원 내부 전문들에만 의존한 조사로 인해 보고서는 온통 ‘추정’이란 단어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서씨는 최근 김현희씨의 편지와 관련, “시기적으로 너무 정치적인 행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정권에선 가만히 숨죽이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니까 갑자기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국정원 내부의 파워게임도 영향을 미쳤겠죠. 그리고 전 편지가 김현희의 손으로 적힌 것은 맞지만, 그의 머리에서 나온 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어요.”
 
  그는 “아무리 정치적으로 위축되고 흔들릴지라도,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吳宗烈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진보연대는 KAL기 사건 외면하지 않을 것”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吳宗烈(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KAL기 사건 진상규명 관련 모임이 있을 때마다 등장해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가 이끌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NL(민족해방) 계열 주사파들이 대거 포진한 단체로, 그동안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 FTA 반대 등을 주장해 왔다.
 
  오씨는 反美(반미) 집회를 주도해 온 인물로, 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기소됐다. 그는 “촛불시위를 주도하지 않았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1938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지역에서 초·중·고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8년 전국교사협의회 대의원대회 의장, 1989년엔 전교조 광주지부장이 됐다. 이후 광주·전남민주연합 상임의장, 광주·전남대책회의 공동의장, 광주시의회 의원 등을 거쳐 현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오씨는 2001년 11월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출범 당시부터 추모제 등 행사에 참석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2007년 20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그는 “高泳耉(고영구) 전 국정원장의 인격은 훌륭하지만 KAL 858 사건에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진보연대는 KAL 858기 사건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투지는 모든 병마와 좌절감을 이겨낸다. 좌절과 울분보다 투지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인터넷 매체인 <통일뉴스>(2007년 11월 29일)가 보도했다.
 
  2004년 7월 29일 열린 ‘올바른 과거청산 촉구 기자회견’에선 “기득권 세력이 야욕을 가질 때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며 KAL기 사건과 인혁당 사건 등을 열거했다. 오씨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 오다 2008년 11월 검찰에 검거, 구속됐다.
 
 
  金德珍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KAL기 사건 남북 공동조사해야”
 
‘KAL 858기 가족회’와 ‘KAL 858기 진상규명 대책위’가 2003년 12월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잠적한 김현희를 29만원에 현상수배한다”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金德珍(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1974년생으로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5년 명지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처음엔 “술 먹고 놀기만 했다”던 그는 등록금 투쟁 등 학생회 활동을 통해 세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뉴스메이커>(2007년 6월 5일) 보도에 따르면, 1999년 명지대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당선됐다. 김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6개월 복역한 후 인권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김씨는 2006년 미군기지 이전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시위 도중 두 차례 연행됐으나 모두 풀려났다.
 
  김씨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약칭 진실위)에서 주최한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2004년 8월부터 10월까지 네 차례 진행된 간담회에 이석태 민변 회장,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등과 함께 참석했다.
 
  그와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금도 KAL기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김현희씨의 편지가 공개된 후인 12월, 김덕진씨는 ‘KAL 858기 가족회’ 등과 함께 인권위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KAL기 사건을 남북이 함께 공동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김현희의 편지는 21년 전 KAL 858기 안에 탑승했던 115명에 대한 모독이고, 긴 세월을 힘겹게 살아오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해왔고, 지금도 활동 중이다.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김병상 신부(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는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대책위의 활동을 주도해 왔다.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대책위는 “잠적한 김현희를 29만원에 현상수배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집회를 갖는가 하면, 수배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언론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가 하면, 남북관계 정상화를 주제로 한 시국선언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3년 MBC 과의 인터뷰에서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라고 한 心載桓(심재환) 변호사(법무법인 정평)는 민변 회원으로, 소설 <배후>로 소송을 당한 저자 서현필씨와 전형배 창해출판사 대표의 변호를 담당했다.⊙

기사 全文 보기 : 월간조선 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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