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

[단독]북한군 최대 군함 좌초

김정우 기자 2014. 3. 2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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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최대(最大) 구축함이 좌초(坐礁)했다. 최근 《月刊朝鮮》이 단독입수한 북한군 고위간부용 ‘학습제강’에 따르면, 북한 서해함대사령부 소속 구축함이 좌초했으며, 서해에 단 한 척밖에 없는 구축함 좌초로 제9전대장 전정갑 소장(남한의 준장)이 ‘반당(反黨)·반혁명분자’로 지목돼 처벌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에서 ‘반당·반혁명’은 가장 무거운 ‘죄목’으로, 전정갑은 최고 수준의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군 내부정보가 구체적으로 기록된 ‘학습제강’ 문건의 제목은 <모든 일군들이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혁명적 신념과 량심(양심)으로 받들어 나가는 진짜배기 지휘성원이 될 데 대하여>다. ‘학습제강’이란 우리 군의 정훈교육 자료에 해당한다. 학습 대상은 ‘련대(연대) 이상 단위 군관, 장령용’인데, 남한의 영관급·장성급에 해당하는 고급장교들이다. ‘조선인민군출판사’가 2013년 6월에 배포한 해당 문건엔 북한군 내부의 각종 ‘기강 해이’ 사례가 실렸다.

2013년 북한군 고위장교 대상 학습제강 문건.


징계 대상을 ‘부대일군’으로 통칭한 사례도 있지만, 전정갑을 비롯한 리영호(李英浩), 김철, 정운학 등 주요 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 내용도 포함됐다. 2012년 이후 북한 매체에 발견되지 않아 사라진 것으로 예상됐던 ‘평양 어머님’이란 호칭이 다시 등장했다. 김정은의 생모(生母)인 고영희(高英姬)를 뜻하는 호칭을 적어도 2013년 6월까지는 계속 사용했음을 뜻한다.

문건을 처음 입수한 김성민(金聖珉)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최근 최룡해(崔龍海) 체포설(說)을 확인하기 위해 평양으로부터 입수했는데, 그와 별개로 다수의 북한군 관련 내부정보가 발견돼 《월간조선》을 통해 공개한다”고 입수·공개 경위를 설명했다.

군 고위장교 대상 문건이기 때문에 징계를 받은 인사들의 ‘소행’이 구체적으로 기록됐다. 구축함 좌초와 관련, 문건은 “서해함대사령부 제9전대장을 하던 전정갑놈과 같이 앞에서는 충정에 대해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뒤돌아 앉아서는 당의 신임을 놓고 저울질하고 출세욕에 미쳐 돌아간다”며 “수십 척의 함선을 파손시키다 못해 서해에 단 한 척밖에 없는 구축함까지 좌초시켜 버리는 배신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적시했다.

[단독입수] 2013년 고위장교 교육 문건에서 드러난 북한軍 내부 정보

⊙ 제9전대장 전정갑에 구축함 좌초의 모든 책임 떠넘겨
⊙ 北, 리영호, 김철, 전정갑, 정운학 등 주요인사 ‘반당·반혁명분자’로 규정 확인
⊙ 2012년 이후 사라진 고영희(김정은 母) ‘평양 어머니’ 지칭, 2013년 6월까지 유지
⊙ 작전비밀 19세 대학생에게 넘기고, 현지지도 받은 날 저녁 밤늦게까지 술판 벌이는 장병
⊙ 부대장급 장교, “인민생활 어려운데 인공위성 자꾸 발사해서 뭐하나” 발언했다 처벌
⊙ 김정은, “우리 인민군대(북한군)는 정말 무법천지이고 무풍지대”라며 직접 비난


‘반쪽짜리 最大 구축함’

북한엔 총 3척의 구축함이 있다. 남한에선 이를 두고 배수량 1500t 규모의 ‘나진급’이라고 불러 왔지만, 사실과 다르다. 《월간조선》이 최근 북한 해군 사정에 정통한 고위 탈북자 A씨로부터 추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서해함대사령부 소속 ‘구축함’은 1600t 규모의 프리깃(frigate·소형구축함 또는 호위함)함으로, 1980년대 북한군 ‘8·25선박설계사업소’에서 설계하고 ‘8·25선박공장’에서 생산했다. 동해상에 배치된 나머지 두 척의 구축함(프리깃함)은 1200t 규모다. 크기는 작지만 기능 면에선 서해 구축함보다 양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진급’이란 명칭은 북한엔 존재하지 않는 남한식(式) 표현이다. 한미(韓美) 당국이 북한 지명을 기준으로 지은 미사일 명칭인 ‘노동’이나 ‘대포동’과 비슷한 사례다. 북한에서 ‘노동1호’는 ‘화성7호’로, ‘대포동1호’는 ‘백두산1호’로 불린다.

북한군 학습제강이 기록한 대로 서해에 단 한 척밖에 없는 1600t 구축함은 북한에서 가장 큰 군함이다. 문건은 좌초한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노후한 함선 장비와 기상 사정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구축함의 정의와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나, 주로 대함(對艦)·대잠(對潛)·대공전(對空戰) 수행능력을 가진 3000~8000t 규모의 중대형 군함을 말한다. 대한민국 해군은 1만t급 이지스함 3척을 비롯해 총 12척의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좌초한 북한의 서해 구축함은 대잠·대공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위 탈북자 A씨에 따르면, 100mm 주포(主砲)를 비롯한 함포는 몇 문(門) 장착돼 있지만, 대잠능력을 수행할 소나(sonar), 어뢰, 폭뢰와 방공전을 대비한 대공포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건조 당시에 선체부터 구축함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제작돼 폭이 좁은 편이다. 흘수(吃水)가 5.5m에 달해 같은 규모의 다른 함정보다 기동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이른바 ‘로케트함’에 써야 할 로켓 장치를 주먹구구식으로 달아 함선의 형태가 비정상적이다. 북한 최대 군함이 사실상 ‘반쪽짜리 구축함’에도 못 미쳤던 셈이다.

북한 내 다른 함정에 비해 규모는 압도적으로 크지만, 장착할 무기가 없어 후미 갑판은 헬기 이착륙용으로 비워 뒀다. 일단 건조한 후 장비가 확보되면 추가로 무장한다는 계획이었다. A씨는 “해당 갑판에 헬기가 실제 이착륙한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구축함은 그 규모와 이름이 무색하게 기뢰부설함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김일성(金日成)마저 생전(生前)에 “사열식에서나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다”고 비난했을 정도로 조악(粗惡)한 함정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좌초해 북한군 입장에선 제대로 망신살이 뻗쳤다.

좌초 사고로 ‘반당·반혁명분자’가 된 제9전대장 전정갑은 이른바 ‘귀족학교’로 알려진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의 군부 엘리트다. 인민무력부장을 역임한 김일철(金鎰喆)이 해군사령관이던 시절 해군사령부 장비국장이었던 전정갑은 김일철이 함정 인수를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동행할 만큼 군수장비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 김광인(金光仁) 코리아선진화연대 연구위원은 “북한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경위와 관련해 책임을 묻기보단 ‘사상’을 문제 삼아 징계한다”며 “다른 이유로 좌초된 구축함을 두고 전정갑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대한민국 연평도와 북한의 옹진군 갑도 사이를 떠도는 북한군 소형함정. 최근 좌초된 북한군 최대 구축함과는 무관하다.


리영호 숙청 확인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처형도 문건을 통해 공식 확인됐다. 문건은 김철에 대해 “지난해(2012년) 1월 당에서는 우리 인민군대의 책임일군들 속에서 김철놈을 비롯하여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받드는 데서 앞뒤가 다르게 행동하며 딴 꿈을 꾸는 자들이 나타난 문제를 놓고 심각한 경종을 울렸다”고 기록했다.

‘김철 처형’은 2012년 10월 윤상현(尹相現) 새누리당 의원이 “김정일 장례기간 중 북한이 당·정·군 간부들의 행적을 조사한 뒤 2012년 1월 김철을 ‘음주·유흥’ 죄목으로 총살했다”고 밝히면서 처음 알려졌다. 윤 의원은 “고위간부들의 복종을 다지기 위한 ‘본보기 처형’”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은 김철을 ‘놈’이라고 지칭하며 “반당·반혁명분자로 락인(낙인)돼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일각에선 김철이 ‘박격포’로 처형됐다고 알려졌지만, 이번 문건에서 처형 방식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이 총참모장 리영호(李英浩)를 ‘반당·반혁명분자’로 규정한 사실도 공식 확인됐다. 북한군 ‘최고 전략가’로 꼽히던 그가 2012년 7월 해임된 후, 일각에선 ‘복귀가능설’과 ‘건재설’이 제기된 바 있다. 리영호에 대한 북한 야전군의 ‘존경심’이 높기 때문에 김정은도 함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리영호가 ‘반당·반혁명분자’로 규정된 것이 확인되면서 그의 재기(再起)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북한에서 지금까지 ‘반당·반혁명’으로 숙청된 후 복귀한 사례가 전무(全無)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장성택(張成澤)이 처형당한 죄목도 ‘반당·반혁명 종파주의’였다.

앞서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2012년 11월 리영호의 ‘반당·반혁명분자’ 규정에 대한 소식을 베이징발(北京發) 기사로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이 익명의 북·중(北·中) 무역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한 내용이 이번 북한군 ‘학습제강’ 문건을 통해 공식 확인된 셈이다.

문건은 리영호를 총 3회 언급했다. 전정갑, 김철과 함께 반당·반혁명분자로 규정된 리영호는 “당과 사상과 뜻을 같이하지 않고 동상이몽하면서 견실치 못하게 행동하여 당적으로, 법적으로 처리된 자”로 기록됐다. 문건은 세 사람에 대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김정은을 뜻함)의 믿음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의리 없는 인간들”이라며 “수령으로부터 받아 안은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려는 량심과 의리가 꼬물만큼(아주 조금)도 없는 인간은 반드시 추악한 배신자, 변절자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2012년 숙청된 북한 총참모장 리영호. 이번 학습제강 문건을 통해 ‘반당·반혁명분자’로 규정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주색금’과 ‘안일부화’

리영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숙청당하거나 처벌받은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리영호의 ‘직권에 눌린’ 장병들이 김정은의 의도와 다른 것을 알면서도 처신을 잘 못해 막대한 피해를 줬다고 강조했다. 해당 부분 내용이다.

<어느 한 부대일군들은 반당반혁명분자 리영호놈의 직권에 눌리여(눌려) 그놈이 내리먹이는 요구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사상과 의도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유부단하고 맹종맹동(盲從盲動)하게 처신하여 인민군대의 군의부문에 막대한 피해를 주게 하였다.>

문건은 리영호를 겨냥해 “설사 높은 직위에 있고 지난 시기에는 아무리 일을 잘했다고 해도, ‘민충이 쑥대에 올라가듯’(우쭐대는 모양을 비꼬는 말) 제 잘났다고 우쭐렁거리면서(우쭐거리면서) 당성단련과 혁명화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종당에는 반당반혁명의 길에 굴러 떨어져 자신의 운명을 망치게 된다”고 했다. 문건 내용 중 일부다.

<최근년간에 인민군대 안의 지휘성원들 속에서 리영호, 정운학놈과 같은 반당·반혁명분자들이 나오고 적지 않은 일군들이 직무를 태만하고 주색금(酒色金)에 빠져 안일부화(安逸浮華)하게 생활하면서 부대의 싸움준비와 군인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혁명대오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당성단련과 혁명화를 게을리하여 사상적으로 변질된 데 있다.>

리영호와 함께 언급된 ‘정운학’은 김정일 사망 당시 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다. 그는 “당권을 악용하여 싸움준비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낯내기와 점수따기만 하면서 안일부화한 생활을 했다”는 혐의로 중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수령이 허락한 생명을 마음대로 끊을 수 없다’는 이유로 자살을 금지한다.

문건은 그를 두고 “지난 시기 그 누구보다도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믿음을 받아 안으며 부대책임일군으로까지 성장한 자”라면서 “최고사령관동지의 믿음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고민하던 나머지 목숨을 끊는 것과 같은 배신적인 행동을 하였다”고 설명했다. 정운학에 대한 내용 중 일부다.

<만약 이자에게 당과 수령의 믿음에 보답하려는 한 쪼각(조각)의 량심이 남아있었다면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의리가 있었다면 설사 죽어서도 씻지 못할 대역죄를 짓고 극형을 받는다고 해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에 대한 신념만은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문건은 “정운학의 행각을 뻔히 알고 있는 일군들이 적지 않았지만, 원칙적으로 투쟁한 일군은 한 명도 없다”며 “투쟁이 없는 곳에서는 별의별 도깨비들이 다 나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또 “모든 일군들은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도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자로 하여 재여보고 그와 조금이라도 어긋날 때에는 당적, 혁명적 원칙을 가지고 제때에 투쟁의 불을 걸어 맹아시기에 단호히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좌초된 북한 최대 군함은 김일성이 생전에 “사열식에서나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다”고 비난했을 정도로 조악했다. 사진은 조작 가능성이 제기된 2013년 3월 북한군의 상륙 훈련 사진.


기강해이 실태

학습제강 문건엔 리영호, 김철, 전정갑 등 주요인사들과 함께 ‘부대일군’들의 각종 기강해이 사례가 기록돼 있다. 문건은 이들을 두고 ‘양봉음위하는 자들’, ‘인간쓰레기들’, ‘주색금에 빠져 사상적으로 타락한 자들’, ‘추악한 배신자·변절자’라고 표현하는 등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다음은 북한군 장병들의 기강해이 사례다.

한 ‘부대일군들’은 19세 대학생에게 ‘최대극비대상’인 기관의 구석구석을 다 보여주고 작전비밀까지 넘겨준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그들이 김정은이 직접 비판할 정도의 ‘특대형 사건’을 벌인 이유는 인민군 내 기관으로 배속 변경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다시 사회로 나오려는 ‘딴 꿈’을 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부대일군은 부대개편과 관련한 당의 방침을 놓고 그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처럼 ‘떠벌이면서’ 자신의 견해와 대치하는 행위를 했다가 적발됐다는 것이다.

부대장급 한 인사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두고 ‘적들의 망발’을 그대로 옮겼다가 ‘처리’됐다. 그는 경고를 받은 후에도 책임일군들에게 “인민생활이 어려운데 인공지구위성이나 자꾸 발사해서 뭐하는가, 빨리 인민생활문제나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결국 처벌받았다. 문건은 이 발언을 두고 ‘망탕(되는대로 마구)하다’고 표현했지만, 북한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다. 김정은이 군 고위간부들의 이른바 ‘후론(後論·뒷말)질’에 대해 지적한 문건 내용 중 일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지금 부대, 구분대(區分隊·대대 이하급)들에 나가보면 사관, 병사들은 최고사령관이 하라는 대로만 하겠다고 윽윽 하는데 정세가 이렇다느니, 무엇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말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관, 병사들이 아니라 웃단위(상급단위) 일군들이라고 심각히 말씀하시였다.>

‘허위보고’ 사례도 속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적지 않은 일군들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하지 못할 것도 하겠다고 보고 드리고는 이 구실 저 구실 대면서 건달을 부리고 있다”며 “최고사령관 동지께 하지 않은 것도 한 것처럼 과장해 거짓 보고하는 무엄한 행동을 꺼리낌(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했다.

허위보고와 관련, 한 부대일군은 2012년 콩 농사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군인들에게 공급되는 쌀을 콩으로 접수하게 하고, 이를 콩 생산 실적에 포함해 보고하는 ‘너절한 행동’을 하다 적발됐다.

음주와 관련한 기강해이 실태도 기록됐다. 한 부대의 책임일군들이 김정은 시찰 이후 지적된 과업을 제때 하지 않고 현지지도 받은 날 저녁 밤늦게까지 ‘술판’과 ‘먹자판’을 벌이며 ‘추태’를 벌이다 적발된 것이다. 문건은 사건의 원인을 “신념에 금이 가고 양심이 순결하지 못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인민군은 무법천지”

자본주의 사상·문화의 침투는 북한군 내에서 심각한 ‘골칫거리’다. 문건은 “적지 않은 일군들이 ‘적들’이 들이미는 자본주의 사상문화와 생활풍조에 오염되고 주색금에 물젖어 안일부화하게 생활하고 있다”며 “인민군대의 본태가 흐려지고 부대의 싸움준비와 군인생활에 엄중한 후과(後果)를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내 문제는 이른바 ‘가정혁명화’의 실패로 이어졌다. 문건에 따르면, 한 부대일군은 아내와 자녀들이 집에서 ‘이색적인 불순녹화물’을 본 것을 목격하고도 원칙에 따라 교양·통제하는 대신 자신까지 ‘말려들어’ 온 가족이 ‘법적 처리’를 받았다. 문건이 지목한 ‘불순녹화물’은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일 가능성이 크다.

문건은 이러한 행태에 대해 “조국통일대전이 눈앞에 다가온 시기에 적들이 들이미는 부르주아 사상문화에 물젖어 안일부화하게 생활하는 것은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적에게 흰기(白旗)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북한 노동당 간부 출신의 한 탈북자는 “<겨울연가>와 같은 ‘한류 드라마’의 경우 간부급 인사 중 ‘안 본 사람만 바보’란 말이 돌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며 “CD와 DVD 대신 USB메모리와 같이 전달수단이 간편해진 가운데, 최근 중국에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북한 내부에서 볼 만한 사람은 이미 다 봤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군 내 지휘체계의 허술함도 노출된다. 2013년 1월경 한 부대가 ‘당중앙위원회가 자리 잡은 수도권지역’(평양 인근)에서 보병대대 야간공격전술 연습준비를 하며 82mm 박격포 조명실탄을 비롯한 각종 실탄 사격을 실시했다. 문제는 이 훈련이 김정은의 비준을 받지 않고 2일간 실시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행태를 두고 김정은은 “우리 인민군대가 정말 무법천지이고 무풍지대”라고 한탄했다.

문건은 북한의 현재 상황을 두고 “반당·반혁명분자들과 군벌주의자들의 책동이 가장 우심(尤甚)했던 1950~1960년대와 같아 당 조직규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사상적으로 변질된 사람들’의 당 생활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자기를 특수한 존재로 여기면서 당세포생활에 자각적으로 참가하지 않는 현상 ▲정치학습과 강연회를 비롯한 정규적인 사상생활에 이 구실 저 구실 대면서 요리조리 빠지는 현상 ▲당조직의 결정과 분공(分工)을 전혀 집행하지 않고 당 조직의 지도와 통제 밖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현상.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사례도 있다. 서해 최전방 월내도방어대는 이번 ‘학습제강’ 문건 전체에서 유일하게 김정은이 ‘치하(致賀)’한 부대다. 월내도방어대는 백령도 타격임무부대로, 2013년 3월과 9월 김정은이 두 차례 시찰하며 “명령만 내리면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 넣으라”고 지시한 곳이다.

문건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 부대를 ‘만점짜리 방어대’로 규정하고선 방어대장에겐 “조국의 외진 섬 초소에서 싸움꾼이자 살림꾼으로 20여년간 복무하며 모든 것을 깡그리 바친 한 명의 애국자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며 ‘극찬’했다. 김정은과 북한이 백령도 인근 해상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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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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