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

[단독증언] "우리는 이렇게 남조선을 드나들었다"

김정우 기자 2014. 2. 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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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한철민(가명)씨는 여름 휴가철 강릉 앞바다에 가면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 딱 들어오기 좋은 날씨네.’

그는 북한 대남(對南)공작기관인 정찰국에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20년간 근무한 지도교관 출신이다. 정찰국 산하 3○○, 4○○부대 등에 소속돼 대남공작원을 남한 지역에 침투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세월이 꽤 흘렀지만 ‘직업병’이 남은 한씨는 바닷가에만 가면 해상침투를 위한 파도와 날씨 조건부터 살핀다.

최근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그는 “1970~80년대엔 하룻밤에 침투작전을 끝내고 복귀하는 이른바 ‘당야(當夜) 공작’을 펼칠 정도로 자주 드나들었다”며 “옆집에 술 한잔 마시러 가듯 남한 해역을 쉽게 오가다 보니 ‘작전이 이렇게 쉬웠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한씨는 남한 침투공작뿐 아니라 ▲휴전선 전방 대남감청 ▲군사 첩보 수집 ▲후방 교란 작전 등 임무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증언했다. 한씨가 활동했던 정찰국은 2009년 2월 노동당 작전부(대남공작·테러 담당), 35호실(해외공작 담당)과 통합돼 정찰총국으로 개편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3년 3월 공개한 김정은의 정찰총국 직할 제1501군부대 시찰 모습. 김영철 정찰총국장(왼쪽)과 함께 대남 침투용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한씨의 증언 내용은 자유민주연구학회(회장 권혁철 박사)가 지난 1월 25일 주최한 긴급안보간담회에서 공개됐다. 유동열(柳東烈)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는 한씨를 비롯해 북한 무장공작원 출신 김동식(가명)씨, 함흥컴퓨터기술대 학과장 출신인 김흥광(金興光) NK지식인연대 대표, 학회 고문인 이동복(李東馥) 전(前) 의원, 송대성(宋大晟) 세종연구소 소장 등이 참석했다.

한철민, 김동식, 김흥광 등 북한 대남기관 출신 전문가들의 이날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분단 후 끊임없이 대남 침투·정찰·공작을 수행해 왔으며, 현재도 중·소형 잠수정 침투와 통신 감청 등을 통해 광범위한 대남공작을 펼치고 있다. 다음은 증언 내용을 토대로 분석·정리한 북한의 대남공작 행태다.

[단독증언] 北 對南기관 출신 인사들의 북한도발 행태 전망
김정은 3大 전력 - "核, 특수전, 사이버 배합 도발할 것"


⊙ 1만명 규모 지하갱도 감청부대, 부부가 24시간 교대하며 ‘앉은뱅이 정찰’
⊙ 1988~92년에만 30~40회 이상 對南 해상침투… 1990년대 후반까지 매년 2~3명 ‘영웅칭호’
⊙ 김정은, 31년 만에 ‘초병대회’ 열고 특수부대 잇달아 방문… 정찰총국의 ‘도발 충성경쟁’ 예상

‘앉은뱅이 정찰’

북한은 크게 ▲파견 공작원의 대북(對北)보고 또는 감청 ▲정찰조 현지 침투 ▲주민·요인 납치 등 세 가지 방법으로 대남정찰을 추진해 왔다. 정찰 책임자는 3개 라인으로 수집된 해당 정보가 모두 일치하고 그 내용이 중대할 경우, 김일성(金日成) 또는 김정일(金正日)에게 이른바 ‘1급 자료’로 제출했다.

공작원과 정찰조 침투는 주로 북한군 5○○부대를 통해 수행됐다. 외부에선 ‘자료연구소’로 불리지만, 실상은 약 100명 규모의 특수공작원을 양성해 남한에 직접 파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른바 ‘정찰대대’는 900~1200명 규모의 별도 조직을 운영한다. 내부 조직은 크게 남한을 담당하는 대대와 일본 담당 대대로 나뉜다. 인원은 ‘조’로 운영되는데, 3~4명이 한 조를 이루고, 한 대대는 약 160개 조로 편성된다.

북한군 258부대는 이른바 ‘앉은뱅이 정찰’을 수행한다. 1만명이 넘는 인원이 지하갱도와 같은 비밀공간에서 근무하는 이 부대의 규모와 구체적인 임무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개성, 평안남도 양덕, 함경남도 안변 등 전파를 잡기 좋은 지역에 배치돼 남한은 물론 북한 내 각지의 전파 정보를 수집·분석한다.



정찰국 산하 군사첩보요원 양성소인 ‘압록강대학’(6년제)을 졸업한 군관들이 ‘수신수(受信手)’ 임무를 수행하며, 대부분 갱도 안에 들어가 24시간 교대로 근무한다. 부대는 701~706소(所)로 이뤄져 있으며, 한 개 소의 인원은 약 2000명이다.

이 부대의 특징은 하전사(우리의 부사관급 이하)일 때부터 남녀관계를 권장한다는 점이다. 북한군은 남녀관계를 철저히 금지하지만, 이 부대는 입대할 때부터 남녀비율을 맞춘다. 대다수 인원이 군내(軍內)에서 결혼하고, 부부가 서로 교대하며 수신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258부대는 휴전선 인근 지하 땅굴을 통해 남한군 ‘까벨선’(케이블의 북한어)에 몰래 연결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른바 ‘전연지대(前緣地帶·접경지)’에 근무하는 남한군 대대장이 전화로 부부싸움하는 내용까지 감청 대상이었다. 이렇게 수집한 첩보는 정보 분석 단계를 거쳐 적군와해공작국(적공국)에까지 전달된다. 적공국은 여러 정보로 추려낸 남한군 주요 인사를 직접 접촉해 포섭하는 활동을 한다.

정찰조와 공작원을 직접 침투시키는 정찰대대와 전파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258부대의 구성원들은 이른바 ‘현행작전(current operations)’을 수행한다는 자부심이 높았다.

한씨는 “북한이 대남침투와 정찰 등을 목적으로 휴전선 인근에 건설한 지하 땅굴이 몇 개 정도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적어도 수십 개”라고 답했다.

최근 북한 대남공작기관은 유선전화 대신 휴대전화 감청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해외에서 수입한 감청장비를 통해 작전이 수행되며, 감청첩보 내용은 현지공작원의 직접 정찰을 통해 ‘쌍선(2중)’으로 확인한다.

《월간조선》은 2014년 2월호에서 국내 북한 연구단체가 작성한 ‘북한 휴대전화 사용실태 보고서’를 단독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2011년 특정 번호에 대해 도청하거나 특정단어를 선택해 자동으로 녹음하는 장비를 미국에서 들여왔으며, ‘나쁜 말 도청기’로 불리는 이 장비는 특정 키워드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북한 내부 및 접경지의 통신을 집중 감청한다.

2001년 12월 동중국해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교전 끝에 격침한 북한 공작선의 침몰 전 항해 모습.


北 해상침투 방식

감청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직접 침투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남침투 임무를 수행한 한철민씨는 “1970년대엔 주로 모선(母船)과 자선(子船)으로 구성된 공작선이 활용됐으며, 1980년대 고무보트와 반잠수정을 거쳐 1990년대엔 중·소형 잠수함까지 대남침투에 동원됐다”고 증언했다.

‘모선’은 보통 80t급 쾌속선을 어선으로 위장해 일본 공해상에서 접근하는 작전을 취한다. 1800마력 기관 4대를 탑재한 선체는 최고 47노트(kn) 속도를 낼 수 있지만, 공해상에선 어선으로 위장해야 하기 때문에 저속으로 운행한다.

모선은 일본 인근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동해안으로 접근한다. 약 1km 근해까지 다다르면 자선을 침투시킨다. 주로 목선(木船)을 이용하는데, 공작원을 싣고 50~57노트 속도로 연안까지 접근한다. 1980년대엔 날씨나 암초 조건에 따라 고무보트를 활용하기도 했다.

한씨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는 대남작전에 18회 이상 성공해야 이른바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작전성공률이 높아 ‘영웅’ 수가 많아지는 바람에 1980년대엔 22회 이상으로 기준을 조정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남한 탐지기술의 발달로 침투횟수가 줄었고, 현재는 단 한 차례라도 남파에 성공하면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는다.

북한은 지금도 해상침투를 자행할까. 한씨는 “침투가 어렵다던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직접 본 침투인원만 8명이 넘고, 해마다 2~3명씩 영웅칭호를 받았다”며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은 재수가 없어 암초에 좌초됐을 뿐, 한국군이 제대로 잡아낸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에 대해 “연이은 작전 성공에 기고만장한 정찰국 해상처장 김동원 대좌가 함경남도 신포의 잠수함 생산기지인 ‘봉대보일러공장’에서 개발한 상어급 잠수함을 직접 타고 (남한에) 내려와 무리하게 접근했다가 좌초된 사건”이라고 증언했다.

남한 혁명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두 차례 남파됐다가 1995년 충남 부여에서 우리 군경(軍警)과 총격전 끝에 체포된 북한 노동당 사회문화부(현재 225국) 소속 대남공작원 출신 김동식씨는 “1990년대 원거리를 돌아 침투할 땐 어선으로 위장한 모선에 반잠수정을 싣고 제주도 남단 공해상으로 침투하기도 했다”며 “현재는 남한의 탐지기술이 발전해 고무보트를 쓰지 않고 반잠수정과 스킨스쿠버 장비를 이용해 침투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자신이 아는 침투 성공 공작조만 총 10개 조라고 증언했다. 대남침투는 공작조가 바로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침투 또는 복귀 전 사전 정찰을 하게 돼 있다. 한 개 조가 침투하려면 적어도 3~4회 침투가 필요한 셈이다. 김씨의 증언대로라면 4~5년 동안 남한 해상이 30~40회 뚫린 셈이다. 당시 김일성은 노동당 사회문화부의 공작 활동을 두고 “3~4년 동안 거둔 성과가 지난 40여 년간 거둔 것보다 크다”며 치하했다고 한다.

1996년 대남침투 작전 중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한 북한 정찰국의 상어급 잠수함.


31년 만에 對南요원 대회 개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2월 28일 김정은이 북한군 초병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군인 격술훈련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국내 다수 언론이 “북한이 초병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번 학회에 참석한 다수 전문가에 따르면, 초병대회는 곧 ‘정찰병대회’를 뜻하는 것으로, 1982년 2월 ‘정찰병대회’에 이어 31년여 만에 열린 ‘2차 대회’다.

정찰국 교관 출신 한철민씨는 “1982년 1차 정찰병대회 이후 1983년 아웅산 테러, 1986년 김포공항 테러, 1987년 KAL858기 폭파 등 굵직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며 “지난해 말 김정은이 직접 초병대회 참가자를 치하한 이상, 해당 인사들은 그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과도한 ‘충성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씨는 “북한의 기습도발은 그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기와 유형이 중요하다”며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직접 타격보다는 범인을 알 수 없거나 수사 기간이 오래 걸리는 비합법적 주요시설 테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씨는 “과거 정찰국 근무 당시 미군 어네스트 존(Honest John) 로켓 기지와 같은 구체적 타격목표에 대한 사판(沙板)은 물론, 실제 크기의 모형까지 만들어 습격 훈련을 했었다”며 “현재 원자력발전소나 유류·가스저장고 등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기습테러 훈련을 내부적으로 실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대남공작원 출신 김동식씨는 “김정은이 이번에 격술 시범을 참관한 제695군부대는 이른바 130연락소로 불리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 내 격술연구소 인원들로 분석된다”며 “‘대남요원 대회’인 초병대회를 비롯해 남한의 공수특전단에 해당하는 ‘항공육전대’와 공중침투부대인 ‘항공저격여단’ 등 특수전 부대를 김정은이 연이어 참관한 것은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1985년에 졸업한 김씨는 “전공이 특공대였는데, 4학년 때 ‘핵공학’을 배웠다”며 “싸움꾼에게 핵공학을 가르친 이유는 다름 아니라 남한 원전을 가장 효율적으로 타격·파괴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전기공학과 화학공학 등을 함께 배운 김씨와 동기들은 평양발전소 견학 때도 생산 과정보다는 폭탄 설치 위치를 토론하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김씨는 “원전, 변전소, 고압 철탑 등에 대한 타격훈련은 이미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라며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공격은 일도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12월 28일 김정은이 북한군 초병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군인 격술훈련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1982년 2월 ‘정찰병대회’에 이어 31년여 만에 열린 ‘2차 대회’로, 전문가들은 “과도한 ‘충성경쟁’에 의한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모바일로 확대된 사이버 공격

북한의 대남공작 양상은 최근 다각도로 ‘진화’하고 있다. 해상침투로 잠입하던 공작 유형이 탈북자 증가에 따라 ‘위장 간첩’ 형태로 바뀌고 있으며, 비밀통신과 정보수집엔 사이버 테러·보안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탈북 위장 간첩은 크게 직접 양성해 남파하거나 국내 정착 탈북자를 포섭하는 방식으로 투입된다. 2013년 법무부가 경찰청과 국정원의 통계를 기초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공안당국이 간첩 사건으로 구속한 50명 중 20명이 탈북 위장 간첩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대남공작은 크게 사이버 테러와 심리전 영역으로 나뉜다. 북한은 2013년 3월과 6월 두 차례 직접 사이버 테러를 자행했으며, ‘우리민족끼리’와 ‘구국전선’ 등 해외 친북사이트와 각종 SNS를 거점으로 대남심리전 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작년 3·20 사이버 공격 후 이를 주도한 정찰총국에서 다수의 ‘영웅’이 배출됐다”며 “담당부대인 121국은 대대급 500명에서 여단급 2000명 규모로 확대되고, 청사도 초호화 건물로 옮겼다”고 증언했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제4차 적공일꾼 열성자회’에 참석해 무력부 간부들에게 〈인민군대의 적공일꾼들은 우리 당의 믿음직한 전위투사들이다〉란 제목의 비공개 서한을 배포했다. 김흥광 대표가 북한군 내부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서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에) 널리 보급된 인터넷과 이동통신기술을 활용해 반미(反美)·반정부투쟁 등 ‘사이버 대남혁명투쟁’을 적극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에 따르면, 북한은 적공국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이들에 ▲해외공관 인사와 유학생을 ‘적공국 협력자’로 활용 ▲월북자를 사이버 심리전 공작에 투입 ▲사이버 적공 공작 전략 교범 강화 ▲모바일 공간 작전 확대 등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김정은은 최근 핵 전력 및 특수전 전력과 함께 사이버 전력을 이른바 ‘3대 전력’으로 승격시켰다”며 “특히 사이버 테러와 특수전 전력을 배합한 기간시설 파괴 공작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대남기관 출신 인사들의 증언에 대해 이동복 전 의원은 “가공(可恐)할 만한 현실”이라며 “여러 형태의 도발 대비를 강화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안보의식이 마비돼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지상책(上之上策)은 피아구별에 대한 인식장애의 치유”라고 강조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은 “북한이 실제 어떤 속성을 갖고 대남공작을 시도하고 얼마나 실천해 내는지 제대로 모르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북한의 실체와 행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정보기관의 능력이 중요한데, 대한민국 국정원의 활동이 ‘개혁’이란 미명하에 지난 1년간 정치권에서 여야 흥정의 대상이 된 상황”이라고 했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일심회’나 ‘왕재산’ 사건에서 보듯, 최근 북한 대남기관의 공작이 나날이 다양화・공세화하는 현재, 안보수사와 정보활동 영역엔 성역(聖域)이 없어야 한다”며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은 물론 잘못된 행위이지만, 이를 개혁한다는 빌미로 정치권을 ‘성역화’하고,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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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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