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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추적] 편법 모금 통로 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 정치권 실세들, 총선 앞두고 수억씩 챙겨

정치·북한

by 김정우 기자 2012. 1. 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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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추적] 편법 모금 통로 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정치권 실세들, 총선 앞두고 수억씩 챙겨

⊙ 2011년 출판기념회 개최 의원 101명 전원에게 참석자수ㆍ축하금 공개요청… 응답은 2명
⊙ 정치자금법 피하는 ‘남는 장사’… 親朴, 多選, ‘알짜 상임위’는 3大 흥행보증수표
⊙ 평균비용 3000만원, 수입은 1억~2억원… ‘적자’ 난다면 “한 번 더 출판”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취재지원 = 장재진 월간조선 인턴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2011년 11월 28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입구부터 도로까지 줄이 길게 이어졌다. 행사장 입구에선 한 국회의원 내외가 방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박(親朴) 성향의 이 중진의원은 자신의 책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모여든 지지자 수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로비도 상황이 비슷했다. ‘돈 봉투’와 ‘책 봉투’를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빼곡히 차려진 모금함과 방명록 앞으로 봉투 든 사람들은 또 줄을 섰다. 명목상 ‘책 판매대금’이지만, 이를 책값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대놓고 “‘축하금’, ‘후원금’은 어디 넣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봉투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지역구 단체에서 온 한 인사는 30만원을 넣었다고 했고,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한 교수는 20만원을 넣었다고 했다. 두툼한 봉투 너덧 개를 가져온 한 남자는 신분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끝까지 피하며 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모두 액수와 상관없이 받아간 책은 단 한 권이었다.
 
  약 550석 규모의 행사장은 당연히 만석(滿席)이었고, 홀 뒤편 공간까지 만원(滿員)이었다. 많은 사람이 인사만 하고 돌아간 것을 감안하면 2000명 이상이 온 것으로 추산된다. 양쪽 벽은 모두 주요 정치인과 기관장들이 보낸 화환으로 가득했다. 급하게 보냈는지 의원 이름이 잘못 적힌 화환도 보였다.
 
  마술쇼와 사물놀이패 공연이 이어졌고, 30분 후 정식 행사가 시작됐다. 사회는 여당 대변인 출신의 동료 국회의원이 맡았다. 내ㆍ외빈 소개와 축사가 30분 넘게 진행됐고, 한 의원은 “이번 출판기념회 제목은”이라며 책 제목을 설명했다. “‘출판을 위한 기념회’가 아니라 ‘기념회를 위한 출판’”이란 말이 나올 만했다.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이 마이크를 잡은 것은 행사가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였다.
 
  행사는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가 등장하자 중단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축사를 하던 한 중진의원은 곧바로 “박근혜 대표께서 도착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며 연단을 비워줬다. 무대 위로 올라간 박 전 대표는 짧은 축사를 마치고 내려왔지만, 취재진과 방문객의 모든 시선은 계속 박 전 대표에게 쏠렸다. ‘책 이야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풍경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2011년에만 129회 개최
 
축하금을 내고 방명록을 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중진의원의 출판기념회 행사장 로비.
  국회의원이 ‘작가’로 변신하는 계절이다. 여당은 해체 위기에 야당은 난투극이 벌어지지만, ‘그들만의 기념회’는 주야장천이다.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의 망을 교묘하게 비켜가기 때문에 ‘비공식 후원’을 마음 놓고 받을 수 있다. 금액 한도, 모금액수, 개최횟수에 제한도 없고, 선관위에 모금내역을 신고할 필요도 없다. “세(勢) 과시와 총알(정치자금) 장전”, 이 일거양득(一擧兩得)을 정치인들이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여는 가장 주된 목적이다.
 
  《월간조선》이 2011년 한 해 동안 현직 국회의원이 개최한 출판기념회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12월 14일까지 총 129회가 열렸으며 이 중 과반인 73회가 11월과 12월에 몰렸다. 선거일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에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막판 ‘수금’이 과열되고 있다.

개최 의원 수는 총 120명이며, 이 중 9명은 2011년에만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당별로 분류하면 한나라당이 58명, 민주당 46명, 자유선진당 6명, 미래희망연대 5명, 민주노동당 3명, 창조한국당 1명, 무소속 1명 순이다. 한나라당 의원 중 34%와 민주당 의원 중 53%가 개최한 셈이다. 비교섭단체의 경우 자유선진당 38%, 미래희망연대 62%, 민주노동당 60%, 창조한국당 50%로 집계돼 의석 수가 적은 당일수록 개최 의원 수가 많았다.
 
  129건 중 89건이 의원회관이나 헌정기념관 등 국회 내부 시설을 이용했으며, 40건은 학교, 호텔, 극장, 강당 등 지역구 시설에서 열렸다. 모든 통계는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된 행사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지역구 행사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늘 것으로 보인다. 18대 국회 회기로 기간을 확대하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은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당대표를 지낸 의원의 한 비서관은 “출판기념회의 핵심은 결국 돈”이라며 “‘판매대금’으로 포장된 축하금의 액수와 구체적 행방은 각 의원실에서도 최소 인원만 아는 극비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친박계 한 의원이 4억원을 모았다”, “장관을 지낸 중진의원은 7억원을 거뒀다”, “한 야당 의원은 지역구 학생까지 동원해 세를 과시했다” 등 정체불명의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확한 모금 총액을 공개한 의원은 극히 드물다.
 
  출판기념회의 대략적 ‘흥행기준’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비밀이다. 초ㆍ재선의 경우 평균 1억~1억5000만원 정도를 거두면 어느 정도 성공한 케이스다. 3선 이상 중진의원은 평균 2억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벌어야 한단다. 다선(多選) 의원 중 주요 부처 장관 출신이거나 국토해양위원회, 지식경제위원회 등 ‘알짜배기’ 상임위원회 소속일 경우 추정 액수가 훨씬 늘어난다. ‘주요 친박계 인사’란 타이틀까지 달리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출판기념회의 수입이 국회 내 권력구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포스터로 도배된 의원회관 벽.
 
  “대놓고 ‘삥 뜯는’ 후원회”
 
  수입은 천차만별이지만, 비용은 큰 차이가 없다. 제작 및 인쇄, 대필작가 섭외, 행사비용 등을 모두 합쳐 3000만원 정도다. 웬만해선 적자가 나지 않아 “잘하면 대박, 못해도 본전”이란 말도 생겨났다. 혹여 적자가 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역구에서 한 번 더 열거나, 다음 해에 새로운 책을 내면 되기 때문이다.
 
  이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올까. 출판기념회의 ‘물주’는 지역구 산하 단체 인사 및 기업가, 상임위 피감기관 및 공기업, 기성 정치인 ‘줄’을 잡으려는 출마희망자 등이다. 일부는 대놓고 후원금을 ‘상납’할 수 있는 로비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대다수 관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 수차례의 출판기념회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A 과장은 두 시간 터울로 개최된 출판기념회 세 군데를 돌고선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대놓고 ‘삥 뜯는’ 후원회”라며 이렇게 호소했다.
  
  “기관장급쯤 되면 나름 여윳돈이 있을 테니 돈 때문에 심각하진 않겠죠. 그런데 저희 같은 직원 입장에선 매일같이 이어지는 출판기념회 때문에 수백만 원이 나갑니다. 따로 지원이 없으니 개인 돈을 쏟아부어야죠. 일단 상임위 의원들 전원은 기본으로 챙겨야 하고,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아야 하는 의원도 ‘보험’ 차원에서 꼭 찾아갑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정부기관 인사나 관계사 임원들까지 포함하면 연간 수십 건은 물론 많으면 100건까지 갑니다.”
 
  A 과장은 축하금 비용에 대해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0만~30만원을 꼬박꼬박 낸다고 했다. 이는 순수하게 직원 개인 차원의 금액이며, 관련 업체나 기관 차원에선 수백만 원 단위의 고액 축하금도 자주 오간다고 했다.
 
  상임위 관련 기관 또는 기업체의 경우 따로 연락을 할 필요도 없다. 포스터 크게 만들어서 의원회관 곳곳에 붙여놓으면 국회를 오가는 피감기관 인사들이 ‘알아서 보고’ 찾아온다고 한다. A 과장은 “임원 비서들이 매일 아침 챙겨야 할 일정에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추가된 것도 이미 오랜 일”이라며 “수십 건의 출판기념회가 한 번에 몰린 2011년 연말은 웬만한 경조사보다 출판기념회 건수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의원 본인도 안 보는 책 허다”
 
  여당 최고위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B씨는 “(책에 쓴) 종이 값이 아깝다”며 “대한민국 정계에서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편법적인 모금 행위가 일어나는 이상, 피감기관이나 기업 입장에선 편법으로 자금을 만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보통 백만 단위로 ‘책값’을 내는데, 그 돈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겠나”고 반문했다. 출판기념회의 기형적 모금행위가 오히려 관련 기관의 비자금 조성을 독촉하는 꼴이 됐다. B씨의 설명이다.
 
  “모양새는 결혼식 축의금 비슷한데, 규모는 조금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분명 책 판매대금인데 영수증 받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완전한 현금 장사니 세금도 의원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법을 바꿔야 이를 단속할 수 있는데, 여야 막론하고 국회의원 대다수가 ‘공범’인데 누가 총대를 메겠습니까. 밖에선 아무리 ‘정당정치의 최대위기’라고 떠들지만, 출판기념회 가보면 그냥 잔치 분위기예요. 대한민국 정치의... (계속)
  
기사 全文 보기: 월간조선 2012년 1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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