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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희가 가능성만 제시하자고 다짐을 했거든요. 나갈 때 그 순간 조금 흥분을 했는지, 마음속 의도와 다르게 말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증인석에 앉은 鄭明熙(정명희) 서울대 교수가 재판장의 질문에 답하자, 법정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들은 발언 내용을 기록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법원 직원이 방청석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해보지만, 소란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2월 2일 오후 2시, 黃禹錫(황우석) 前(전) 서울대 교수의 32차 공판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죄명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 등’의 이 공판은 2006월 6월에 시작돼 2년9개월째 지루한 공방을 벌여오고 있다. 이제는 ‘흘러간 이슈’가 됐을 법도 한 사건이지만, 황 전 교수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날도 어김없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자리를 가득 채웠다.
“(기자회견 때) 흥분을 해 의도와 다르게 말했다”
2008년 7월 29일 전국 각지의 주지스님들이 황우석 전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승인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불교인 성명서를 발표했다. |
이날 첫 증인은 3년 전 황 전 교수의 연구의혹을 조사했던 서울대 조사위원회(서조위)의 당시 위원장 정명희 교수였다. 법원의 수차례 증인소환에 응하지 않다가 강제구인된 정 교수에게 황 전 교수 측 변호인은 당시 연구조사 과정에서 중대한 허점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정 교수는 그에 반박했다.
이날 가장 큰 이슈는 정 교수의 마지막 발언이었다. 먼저 황 전 교수 측이 KBS에서 정식 방송되지 못했던 <추적 60분> 내용 중 정 교수와의 인터뷰 장면을 방영했다. “섀튼은 특허를 노렸나”란 제목의 이 미공개 동영상에서 정 교수는 이런 발언을 했다.
“사실 여러 전문가가 처녀생식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조사위원회가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말았어야 하는 거야. 사실은 잘 모르겠다… 이 정체를 잘 몰라… 정말 정체를 잘 몰라… 분명히 다르니까 복제된 것 같지는 않고…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 라고… 우린 모르겠다 했으면 제일 나았을지도 몰라… 사실은 몰라, 누구도 몰라….”
황 전 교수의 변호인이 “(처녀생식 부분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는 게 낫다”라고 진술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 교수는 “부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후 재판장이 “단정적으로 확대된 측면이 있다”며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정 교수는 “그 순간 흥분했었다”며 “마음속 의도와 다르게 말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2006년 4월 5일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가 정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명희 위원장이 조사상의 실수를 인정했다”고 보도했지만, 정 교수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사 내용은)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내용을 부인했었다.
정 교수는 지난 3월 6일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처녀생식이라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말했던 것일 뿐”이라며 “표현이 지나쳤던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황 전 교수의 2004년 논문에도 ‘처녀생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데이터는 복제를 했다는 것만 나왔죠. 서조위가 당시 조사를 한 결과 온통 말이 안되는 데이터들만 연결돼 있었습니다. 논문에 진실이 없었어요.”
정 교수는 “과학자는 언론을 통해 이야기하기보단 논문을 발표하고 재현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단편적인 내용들이 자꾸만 보도되는데, 과학자는 과학적 절차로 이야기해야죠. 신문에 발표할 것이 아니라 정식 논문으로 발표해야 합니다. 그 후에 ‘서울대조사위 이 바보 같은 친구들아’라고 얘기하라는 겁니다. 결과 들고 다시 나와서 이기면 챔피언이죠. 하지만 저희 조사가 진행될 당시엔 분명히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2008년 10월 난자 공여자 체세포 확보
황 전 교수의 줄기세포가 “체세포 복제냐, 또는 처녀생식이냐”란 쟁점은 연구 의혹에 대한 평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조위는 2006년 1월 조사결과보고서에서 “처녀생식(parthenogenesis) 과정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서조위의 ‘처녀생식’ 판정은 곧바로 언론을 통해 “줄기세포는 없었다”로 보도됐고, 황 전 교수에 대한 줄기세포 논쟁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만약 황 전 교수의 줄기세포가 ‘처녀생식’이 아닌 ‘체세포 복제’로 판명 난다면, 지난 3년여 간 법정과 장외에서 벌어진 논란이 새 국면을 맞게 된다. 2월 2일 32차 공판에서 정 교수 다음 증인으로 출석한 수암연구원의 朴連春(박연춘) 박사는 서조위나 서울대 연구처, 하버드대 등에서 연구에 참여한 이들이 “당연한 기본원리들을 알면서도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검사결과가 왜곡돼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박 박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초음파, 내시경, 엑스레이 등 현재 의학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검사를 시행한 후 진단을 한다”면서, “당시 세계 최초의 산물이었던 1번 줄기세포(NT-1)를 기본적 검사는 배제한 채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은 안타깝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인검사의 경우, 2005년 당시에도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 기본적인 검사입니다. 조사를 26일 만에 마무리한 것도 말이 안돼요. 미국, 일본 등이었다면 최소 6개월은 했을 겁니다.”
박연춘 박사는 중국 국적의 교포다. 1992년 중국 옌볜(延邊)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일본 규슈(九州)대에서 7년간 분자정보시스템 등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 일본 정부의 청년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정됐다. 이후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를 거쳐 뉴욕대 의과대에서 유전분석학을 연구하던 박 박사는 서조위의 조사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황 전 교수의 이메일로 연락을 취해 서조위 보고서의 ‘비과학적’ 논리를 지적하면서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보고서이니 황 전 교수가 세계줄기세포학회에 반론할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제안했다.
황 전 교수는 관련 자료를 송부했고, 박 박사는 세계줄기세포학회 주요 멤버들에게 보냈다. 서조위 보고서와 서울대 연구처 보충자료도 영문으로 번역, 문제를 지적한 사람도 박 박사였다.
세계줄기세포학회에는 학회 이사인 일본의 니시카와 신이치(西川伸一) 교수를 통해 국제 공동검증을 제안했고 황 전 교수가 이를 수락했지만, 난자 供與者(공여자)의 체세포를 확보하지 못해 무산됐다.
2008년 10월, 황우석 전 교수가 NT-1 난자 공여자의 체세포를 확보했다. 황 전 교수는 뉴욕에 있던 박 박사에게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도와달라”며 “NT-1이 처녀생식이든 체세포 복제이든 과학적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박 박사는 뉴욕대 의과대 연구원직을 사직한 후 입국해 수암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지금까지 연구를 해오고 있다.
박 박사는 “기존 조사의 처녀생식 주장은 모두 근거를 상실했다”면서 “현재 이에 대응하는 논문의 초고를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논문이 나올 경우, 어느 학술지에 투고할 것인지 물었지만, 아직은 답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월말 유력 과학저널에 논문 투고 계획”
2006년 1월 10일 황우석 전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을 조사한 서울대조사위원회의 정명희 위원장이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3년 후 정 교수는 당시 ‘흥분을 해 마음속 의도와 다르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
박연춘 박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 중인 충북대 수의과대의 鄭義培(정의배) 교수는 2008년 12월 22일 공판에서 “통상적으로 줄기세포가 처녀줄기세포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수행하는 실험이 RT-PCR 검사법인데 서울대 연구처 등은 이 검사를 배제했다”고 증언했다. 정 교수는 황 전 교수의 요청으로 현재 처녀생식 여부를 검증 중이며, 곧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는 메틸레이션, RT-PCR, 리얼타임 PCR 등 검사를 통해 “NT-1이 사실상 체세포 핵이식 유래의 줄기세포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함께 연구 중인 박연춘 박사와 정의배 교수는 한목소리로 “논문 투고 시기는 3월 말, 늦어도 4월 초가 될 것”이라며, “현재 막바지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연구 논문이 어떤 학술지에 투고될 것인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필자는 취재 중 수암연구원의 한 관계자로부터 이들의 논문이 한 유력 과학저널에 투고될 것이라는 제보를 입수했다. 관계자는 “현재 수암연구원 측은 논문 작성이 완료되는 대로 ‘○○○’에 투고할 계획”이라며 “저널 이름이 발설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저널명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박연춘 박사는 지금 논문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8명에 가까운 연구진들이 밤새워 실험과 논문작성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2004년 당시 황우석 팀의 연구 방식으로 유행했던 ‘월화수목금금금’이 다시 재연된 것이다. 만약 이들의 연구가 구체적 성과를 보게 될 경우, 현재 계류 중인 호주 특허와 관련, 황 전 교수 측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9월 22일, “황 전 교수가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인간 복제 배아줄기세포가 호주 특허청에 등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국내 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졌다. 수암연구원은 “특허청 지청에 이의신청이 접수되는 전례가 드물어 곧 등록증을 받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고, 다음날엔 “호주 특허청이 23일 호주에 있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이의신청이 없었음을 최종 확인하고 특허 등록을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 24일 호주특허청(IPA)은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낸 특허출원이 심사기준은 충족시켰지만, 특허가 아직 승인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이후 서울대 측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특허 확정’이 하루 만에 ‘심사 중’으로 바뀐 셈이다.
9월 당시 ‘1번 줄기세포(NT-1)’ 소유권은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가지고 있었다. 서울대는 황 전 교수를 논문조작 등의 이유로 파면한 상태였으며, 서조위가 발표했던 ‘처녀생식’ 결론도 호주 특허에 기록된 ‘배아줄기세포’와는 서로 상반된 상황이었다.
2008년 12월 30일, 서울대는 결국 황 전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와 관련된 해외특허출원 추진을 중단키로 결정했고, 올해 1월 12일 미국, 호주, 중국 등 11개국 특허출원 권리를 작업소요비용 1억4000만원에 황 전 교수가 대표이사인 바이오기업 ‘에이치바이온(H Bion)’에 양도했다.
황 전 교수 측은 현재 호주 특허에 큰 기대를 거는 상태다. ‘바이오 强國(강국)’으로 꼽히는 호주의 특허에 통과될 경우, 다른 나라의 특허 결정에까지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황 전 교수 측 한 관계자는 “올 4월 안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호주 특허청이 ‘처녀생식’과 ‘배아줄기세포’를 두고 특허증 발급 여부를 고민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호주 외에도 캐나다, 러시아, 중국 등이 특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변리사회 “‘처녀생식’ 입증할 객관적 자료 미흡”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한국이 황 전 교수에게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한다”면서 “황우석을 버리면 한국으로선 큰 기회를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9일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허용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명령은 “연방정부의 과학적 결정은 정치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며 “정치적인 이유로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가 제한 받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행정명령 서명 전부터 이미 캘리포니아 정부는 연간 3000억원 규모로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해왔고, 미국 전체론 약 1조원 이상 줄기세포 연구에 투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성체줄기세포와 함께 배아줄기세포 연구까지 미국 내에서 임상시험이 승인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현재 ‘인간 다기능 줄기세포(iPS)’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윤리적 논란이 적은 연구 방식으로, 2008년 일본은 이 연구에 약 400억원을 투자했다.
한국은 ‘황우석 사태’ 이후 사실상 배아줄기세포 연구 지원이 멈춰진 상태다. 2007년 350억원이었던 줄기세포 연구비 지원 규모가 지난해 344억원으로 줄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한 李祥羲(이상희)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전 세계가 거대산업인 줄기세포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줄기세포 연구를 ‘산업올림픽’의 선수 후보로도 등록시키지 않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2차 세계대전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었습니다. 3차 세계대전은 인간 대 바이러스의 싸움이 될 거예요. 과거엔 총칼이 무기였지만, 가까운 미래엔 백신이나 줄기세포 등에 대한 특허기술이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 전 교수의 호주 특허 결과는 한국에 있어 정말 중요한 갈림길이 되겠죠.”
이 회장이 속한 대한변리사회는 세계적 전문 변리사들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황 전 교수의 연구에 대한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처녀생식’이라고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회장의 전언이다.
“나는 황 전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황우석에게 전폭적인 지지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기회를 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황우석을 버리면 정말 한국으로선 큰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황우석 전 교수의 지지자들은 공판이 열릴 때마다 여전히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논문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엔 그저 ‘황우석’이란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다가, 2006년부터 지지운동에 뛰어든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구 銀海寺(은해사)의 慧信(혜신) 스님은 “황 전 교수의 연구가 재개될 때까지 지지운동을 지속할 계획”이라며, “호주 특허가 잘 마무리되면 지지자들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애국자’란 닉네임을 쓰는 부산의 金美慶(김미경)씨는 “‘주는 특허’도 못 받아오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忍苦(인고)의 세월 끝에 모든 진실이 밝혀질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농부’라고 밝힌 朴種洙(박종수)씨는 자신이 쓴 <영웅을 삼켜버린 세치 혀>란 책에서 “오바마 정권은 향후 미국이 먹고살 新樹種(신수종) 사업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주목한 반면, 한국은 지난 3년간 줄기세포 연구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면서, 황 전 교수의 연구재개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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