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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VS 삼성서울병원

사회

by 김정우 기자 2009. 5. 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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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의료혁명 불러온 ‘정주영 병원’과 ‘이건희 병원’

⊙ 30대 질환 중 13개 질환 수술 1위의 한국 最大 병원
⊙ 李政愼 서울아산병원장: “삼성서울병원이 있음으로 많은 자극이 돼”
⊙ 종합병원 평가 全부분 A등급 받은 ‘환자 중심’ 병원
⊙ 崔漢龍 삼성서울병원장: “서울아산병원은 좋은 경쟁자이자 동반자”

 

 

두 병원을 비교하는 기사를 쓰겠다고 하자, 처음엔 양측 모두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사이”라며 웃었다. “병원끼리 라이벌이 되는 건 아직 어색하다”란 말도 나왔다. 그런데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龍虎相搏(용호상박), 겉은 웃고 있지만 속은 이미 치열한 경쟁체제였다.
 
  수많은 ‘最高(최고)’와 ‘최초’란 기록들 중 하나라도 놓칠세라 서로 자료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최초로 이룩한 성과를 제시하면 서울아산병원은 다른 면의 기록을 내놓았다. 수술 건수나 성공률에 대한 통계자료를 요구하면 “기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양측 모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금껏 알려진 대로 ‘아산은 수술, 삼성은 서비스’ 아니냐”고 물으면, 삼성서울병원 측은 “절대 아니다. 아산의 ‘의술’ 못지않다”고 하고, 서울아산병원 측은 “삼성의 ‘서비스’와 큰 차이가 없다”고 답한다.
 


  ‘아산 對(대) 삼성’이냐 ‘삼성 대 아산’이냐, 제목 선택부터 쉽지 않았다. 역사와 규모에서 서울아산병원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고 전하니, 삼성서울병원의 한 관계자는 “그냥 가나다순으로 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서울대에서 진단 받고, 아산에서 수술하고, 삼성에서 장례 치른다.”
 
  몇 년 전까진 흔하게 통용되던 말이었고, 각 병원들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서울아산병원은 삼성서울병원 못지않은 요양 및 장례서비스를 갖췄고, 삼성서울병원은 폐암, 대장암, 위암과 같은 주요 암 부문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수술 횟수 및 성공률을 추월했다. 아산은 삼성을 넘어섰고, 삼성은 아산을 따라잡았다.
 


  누가 앞섰느냐를 떠나, 분명한 것은 두 병원 모두 짧은 기간에 세계적 수준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을 모아 의료계의 ‘빅(big) 4’라고 부른다. 1885년 廣惠院(광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120년 역사에 비하면 두 병원의 나이는 너무 어리다. 하지만 이들은 20여 년 동안 한국 의료문화를 송두리째 뒤바꿨고, 한국 의료수준의 상향평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반전] ‘傳說’의 시작
 

이철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

  시작은 서울아산병원이었다. 1980년대 초 어느 날, 鄭周永(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병원 건립을 결정했다. 이미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8곳의 의료취약지역에 종합병원을 세운 상태였지만, “한국 의학발전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기 위한 ‘세계적 수준의 전문병원’을 짓겠다”는 목적이었다.
 
  李文鎬(이문호) 서울대병원 내과과장과 閔丙哲(민병철) 고려대 구로병원장이 풍납동에 ‘깃발을 꽂고’ 실력 있는 의사들을 초빙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의 의지는 확실했다.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지원할 테니 ‘제대로 된 병원’을 지으라는 것. 이문호 교수는 전 세계를 돌며 내과계의 ‘高手(고수)’들을 모았고, 민병철 교수는 일명 ‘칼잡이’라 불리는 외과계 실력자들을 모았다. 李哲(이철) 울산대 의무부총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이런 소문이 돌았어요. ‘정주영 회장이 병원을 크게 짓는다. 그런데 이문호 교수가 초대원장이다’. 이 두 사실에 젊은 교수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정쩡한 병원 하나 생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병원이 서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 회장이 병원을 한다면 쩨쩨하게 하지 않고 뭔가 화끈하게 할 거란 기대가 생겼습니다.”
 
  젊은 의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서울대 졸업성적 1등부터 지방 각 대학 숨은 실력자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母校(모교) 대학병원에 정착하지 못했던 교수들이 ‘정주영 병원’行(행)을 택했다. 이문호 초대원장은 미국 전역을 돌며 현지 병원에서 활동 중이던 23명의 한국인 의사들을 초빙했다.
 
  1989년 6월 23일, 대기업이 세운 최초의 병원 ‘서울중앙병원(現 서울아산병원)’이 탄생했다. 설립 당시부터 1100여 병상의 초대형 병원이었다. 당시 정 회장의 지시는 “이왕 지을 거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병원을 지어라”였다.
 
  의사, 간호사, 직원 모두 열정이 넘쳤다. 저녁 때가 되면 식당은 하얀 가운들로 가득 찼고, 밤늦도록 연구실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철 교수의 말이다.
 
  “선배들이 일요일에 당직 나오니까 후배들은 밤새워 연구하고, 또 후배들이 열심히 하니까 자극 받은 선배들이 더 이를 악물게 되고…. 가끔 방이동 맥줏집에 모이면 병원 걱정, 대학 걱정이나 하고. 오죽하면 한 선배가 이랬겠어요. ‘우리 돈 내고 술 마시면서 왜 병원 걱정만 하냐’고.”
 
  이들을 자극한 원동력은 ‘자율성’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이문호 초대원장에게 병원 경영의 全權(전권)을 넘겼다. 이 원장은 의료진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했다. 서울아산병원 강석규 홍보팀 차장의 말이다.
 
  “솔직히 의대 나올 정도면 전국에서 공부 좀 했다는 분들 아닙니까. 전교 1등이 누가 시킨다고 공부하고 안 시킨다고 공부 안 하나요. 원래 의사 조직이란 게 뭘 강요한다고 될 집단이 아닙니다. 자율적인 경쟁을 펼치니까 더 강해진 거죠.”
 
 
  대홍수때 특전사와 함께 900명 입원환자 하루 만에 후송 완료
 
  1990년 9월 11일, 60년 만의 大(대)홍수가 풍납동을 덮쳤다. 開院(개원) 1년3개월째를 맞은 병원이 2층까지 물에 잠겼다. 지하주차장의 자동차들이 물에 뜨기 시작했고, 병원 업무는 완전 마비됐다. 다음날 새벽엔 전기가 차단됐다. 산소호흡기 사용을 할 수 없게 된 환자들을 위해 직원들이 산소주머니를 갖고 직접 따라다녔다. 金明煥(김명환) 소화기내과 과장의 말이다.
 
  “2층까지 물에 잠기니 기계도 모두 못쓰게 됐죠. 사람들이 ‘저 병원 이제 갔구나’ 했어요. 그 상황을 극복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원환자들은 특전사의 고무보트에 실려 나와 다른 병원으로 후송됐다. 62명이 중환자였고, 그중 13명은 신생아 중환자였다. 병원 전 직원이 달려들어 총 900명의 환자를 옮긴 ‘후송작전’은 단 하루 만에 완료됐다.
 
  병원의 손해액이 180억원을 넘었다. 準(준)종합병원 하나를 지을 수 있는 규모였다. 이 어이없는 天災(천재)에 직원들은 茫然自失(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봤다. 입원했던 환자들의 진료비는 재단과 경영진의 합의 끝에 모두 포기했다. 이철 교수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이다.
 
  “의사들이 원래 조금은 배타적이고 권위적인 면이 있어요. 무거운 물건 한번 안 옮겨본 양반들이 물 퍼내고, 짐 옮기고…,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벌어졌죠. 다음 날 간호사들이 병원에 못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핸드백을 머리에 이고, 치마는 둘둘 말아 걷어붙이고, 흙탕물을 건너 출근하는 겁니다. 정말 가슴이 찡했어요.”
 
  모두가 두 달은 걸려야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때 병원을 방문한 정주영 회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현대그룹에 있는 양수기 펌프는 모두 동원해서 물 빼라.”
 
  ‘현대’의 힘은 이때 발휘됐다. 현대백화점에서 긴급구호물품을 지원했고, 현대건설은 설비전문가들을 파견해 복구를 도왔다. 현대중공업에선 중장비가 지원됐다. 병원 全(전) 직원이 밤을 새우면서 병원을 직접 청소하고 8만장의 진료차트를 복구했다. 결국 2주일 만에 외래진료가 정상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병원은 乘勝長驅(승승장구)했다. ‘超(초) 전문화’란 전략으로 차별화를 해 한 질환에 한 의사가 집중하는 ‘진료의 세분화’를 지향했다. 그 결과 李承奎(이승규), 宋明根(송명근), 朴勝挺(박승정), 金明煥(김명환) 등 일명 ‘스타 名醫(명의)’ 배출을 통해 서울중앙병원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삼성, ‘오만한 실험’의 결과
 

김광원 삼성서울병원 당뇨병센터 센터장.

  <‘돈만 있으면 다할 수 있는 일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시선도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는지 두고 보자’고 벼르는 사람도 있었다. 환자들의 친절에 대한 기대치도 날로 높아져 오히려 친절을 방해하는 경우도 생겼다.>
 
  月刊朝鮮 1995년 3월호 기사 내용 중 한 부분이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을 심층 취재한 本誌(본지) 필자는 개원 4개월을 맞이한 이들의 도전을 ‘삼성의료원의 오만한 실험’이란 기사 제목으로 표현했다.
 
  개원 15주년째가 된 2009년, 삼성서울병원은 ‘오만한 실험’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본업은 병을 고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사회도 한번 고쳐보겠다”던 그들의 각오는 대한민국 의료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삼성’이란 브랜드는 ‘환자’를 ‘고객’으로 바꿨고 기다림, 보호자, 촌지가 없는 ‘3無(무) 병원’의 목표를 한 번에 달성했다.
 
  환자들이 거부감을 느꼈던 白色(백색)의 간호사 복장을 보라색 꽃무늬로 바꿨고, 병원 건물에서 소독약 냄새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 겁 없는 도전을 成英熙(성영희) 성균관대 임상간호대학원장은 “서울아산병원이 ‘最大(최대)’를 상징했다면, 삼성서울병원은 ‘最初(최초)’를 상징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두 처음이었어요. 최초로 시도한 것이 워낙 많아 ‘삼성에서 환자를 다 버려놓는다’, ‘삼성 갔다 오면 환자들이 모두 왕자병, 공주병 걸린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삼성’이란 브랜드를 직접 사용했기 때문에, 얻는 것만큼 위험도도 높았죠.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꾼 셈이에요.”
 
  PACS(의학영상 저장 전송장치)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병원 전체를 전산망으로 연결하는 시스템(OCS)을 구축했다. 진료비 후불제를 시행했고, 진료 및 검사 예약 원스톱 통합서비스를 가동했다. 응급의료 전용헬기는 지금도 삼성서울병원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종합건강진단센터 로비. 최고급 검사 시설에 안락함을 더했다.

  ‘삼성’이란 브랜드는 힘이 막강했다. 병원에 대기업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붙인 사례가 없었기에, 이들의 도전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병원을 지을 때부터 그룹 자원이 총동원됐다. 건물은 삼성물산에서, 조경과 시설은 삼성에버랜드에서 담당했다. 병원전산시스템은 삼성SDS가 맡았다.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삼성전자 제품으로 채워졌고, 환자와 방문자들의 안전과 보안은 삼성에스원의 몫이었다. 그림과 조각품 등 병원 곳곳에 위치한 高價(고가)의 예술품들은 모두 삼성문화재단에서 온 것들이다.
 
  개원 전 운영진들은 병원 명칭을 두고 ‘湖巖(호암·李秉喆 前 삼성회장의 號)’과 ‘삼성’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결국 ‘삼성’을 택했고, 그 결과는 15년 후인 2009년의 성과가 증언하고 있다.
 
  14년 동안 누적 외래환자 1300만명, 입원환자 70만명을 돌파했고, 37만 건의 수술을 실시했다. 세계 最多(최다) 횟수인 3000여 건의 간암 고주파열치료를 시행했고, 소아조혈모세포이식을 국내 최다 시행했다. 무수혈간이식·동종췌장소도이식·소장이식·최연소 간이식 등 장기이식을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국가고객만족도조사(NCSI)에서 1998년부터 총 9회째 병원부문 서비스 1위로 선정됐다. 2002년과 2003년에는 호텔과 백화점 등을 제치고 ‘NCSI 全(전) 부문 중 서비스 1위’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집단 땡땡이’
 

삼성서울병원 입구의 엄지손가락 모양의 조형물. ‘1등’ 병원을 지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성과는 화려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개원 전부터 삼성그룹 출신과 의료계 출신 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룹 측 인사들은 보수적인 관리를 원했고, 병원에서 온 의료진과 간호사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갈등도 문제였다. 모든 병원마다 으레 존재했던 두 그룹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全(전) 병원 시스템 전산화 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부딪쳤다. 성영희 前(전) 간호본부장의 말이다.
 
  “많이 싸웠어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병원을 만들려고 하니 서로 의견조율 하기가 쉽지 않았겠죠. ‘친절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선 간호사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의사들은 그만큼 양보를 해야 했어요. 지금은 그 어느 병원보다 분위기가 좋습니다. 시작할 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일 거예요.”
 
  金光源(김광원) 당뇨병센터 센터장은 “‘갈등’이라기보다는 ‘업무조정’의 과정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병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인턴과 간호사의 업무가 많이 중복됩니다. 서로 할 일이 불분명하면 진료 과정에 큰 사고가 생길 수도 있죠. 이를 해결하느라 2년 정도 걸렸어요. 한 번은 파견 나온 레지던트들이 사고를 친 적도 있었죠.”
 
  개원 이듬해 서울대병원에서 약 40명의 2~3년차 레지던트들이 파견을 나왔다. 너무나 다른 병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김광원 센터장의 말이다.
 
  “당시 서울대병원에선 솔직히 레지던트쯤 되면 대장이었죠. 뭐가 꿀릴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오니 업무가 완전히 다른 겁니다. 조직과 시스템에 적응을 해야 했죠. 하루는 40여 명 전원이 ‘집단 땡땡이’를 쳤습니다. 제가 그때 교육수련부장이었는데, 충남 계룡산까지 찾으러 갔어요. 정말 웃지 못할 추억이었죠.”
 
  개원 초기엔 매일 아침 8시에 영상조회가 열렸다. 李健熙(이건희) 회장이 직접 방송카메라 앞에 서서 ‘對(대) 그룹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했다. 성영희 전 간호본부장은 “당시 병원에서 全(전) 직원 조회를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LA, 도쿄, 프랑크푸르트 등 세계 각지에서 촬영을 해온 것도 놀라웠다”고 했다.
 
  병원 공사 때부터 이건희 회장이 직접 병원에 찾아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2인실이 좁다”며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병원’이 되려면 넓혀야 한다”고 했고, “화장실이 넓은 것은 우주의 낭비”라며 공간 활용을 지시했다. “사람이 많아 북적대면 오히려 병원에서 병 난다”며 “선진화되고 조용한 일류 병원”을 강조했고, 그 결과가 ‘보호자 없는 병원’이란 정책으로 이어졌다.
 
  삼성서울병원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엄지손가락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1층 로비 한쪽에 있는 <얼굴>이란 이름의 작품은 어느 쪽에서도 숫자 ‘1’로 보인다. 병원에 ‘1등’이란 말을 붙이긴 부담스럽겠지만, 삼성서울병원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후반전] ‘별’들의 경쟁
 
  ‘스타 名醫(명의)’의 효과를 선점한 곳은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일명 ‘이문호 사단’은 부득이한 사유로 서울대 또는 모교 교수가 될 수 없었던 ‘우수한 인재들’을 국내외 각지에서 섭외했다. 병원은 이들이 진료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지원은 걱정 말고 그 분야 세계 최고의 의사’로 성장하라는 의미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2007년 30대 질환 중 13개 부문에서 수술 건수가 가장 많았고, 2006년엔 10대 암 중 9대 암(위암·간암·대장암·전립선암·자궁경부암·췌장암·뇌암·갑상선암·유방암) 수술실적 1위를 기록했다.
 
  ‘수술의 아산’을 이끈 이들은 바로 ‘스타 명의’들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특정분야에서 가능성이 검증된 의사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간 이식 분야의 이승규, 심장내과의 박승정, 소화기내과의 김명환, 신경과의 고재영 교수 등 수많은 ‘인기 교수’들을 배출했다.
 
  5년 후발주자인 삼성서울병원은 일명 ‘스타급’ 의사들을 스카우트하기가 쉽지 않았다. ‘잘나간다’는 사람들은 이미 서울아산병원에서 휩쓸어 간 상태였다. 삼성서울병원의 선택은 결국 잠재력 있는 젊은 의사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서비스’에 워낙 주력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의사 개개인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최근 변화는 시작됐다. 폐암의 沈英穆(심영목), 대장암의 全浩景(전호경), 관상동맥우회술의 李英卓(이영탁), 위암의 金聖(김성) 등 굵직한 ‘스타’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6대 주요 암 중 3개 부문(폐암·위암·대장암) 수술횟수에서 서울아산병원을 넘어서 1위를 차지했다.
 
  수술에 있어선 ‘아산의 獨走(독주)’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의료계 전반의 예상이다. 하지만 삼성의 추격이 만만치 않아 독주의 기간이 짧아질 것에도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교수는 “의사들 세계에선 ‘아직까진 아산이 삼성보다 낫다’고 하지만, 10년 뒤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산이 좀 지친 면이 있다”며 ‘역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李承奎 (아산·肝 이식 분야)
 
 

  “아산 하면 이승규, 이승규 하면 아산”이란 말이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수많은 명의 중에서도 그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1992년 처음 간 이식 수술을 시작해 1999년 연간 간 이식 수술 100건을 돌파했다. 2004년 200건을 넘어선 후 2008년엔 326차례 간 이식 수술을 했다. 작년 말까지 누적횟수는 2175회다.
 
  그가 세계 최고의 간 이식 수술 전문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전 세계에 없다. 20년 전 서울중앙병원에 ‘이문호 사단’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승규 사단’이 있다고 한다.
 
  2008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간이식학회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간을 부분 이식하는 ‘생체간이식수술’ 분야에서 1755건을 기록, 그동안 이 분야에서 ‘세계적 메카’로 불려온 일본 교토(京都)대의 실적(1254건)을 제쳤다.
 
  이 교수는 어릴 적에 ‘협착성 심낭염’이란 병을 앓았다. 6살 때 일본 도쿄(東京)대학병원에서 수술에 성공해 살아남은 그는 50년 후 세계적 의사가 됐다. 그는 70세까지 메스를 놓지 않겠다고 했다.
 
  沈英穆 (삼성·폐암 및 식도암)
 
 

  심영목 삼성암센터 센터장은 폐암과 식도암 수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명의로 꼽힌다. 그의 폐암수술 생존율은 미국에 뒤지지 않으며, 식도암은 수술 후 사망률을 3% 이하로 낮춰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 재발률도 31%로 낮춰 국내 평균(45~50%)과 외국(51~54%)보다 월등히 앞섰다.
 
  흉부외과에서 심장과 대동맥을 담당하는 분야와 일반 흉부질환을 다루는 분야가 나눠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심 교수도 전공의로 근무할 때까지만 해도 심장수술 외의 일반 흉부질환수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원자력병원에 흉부외과가 창설되고 과장으로 부임한 후 일반 흉부질환 수술에만 전념,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됐다. 그는 20년 전부터 명의라고 불렸지만, 스스로 ‘세상에 명의는 없다’고 말했다.
 
  “華陀(화타)나 扁鵲(편작) 시대엔 명의가 있었고, 또 필요했죠. 그땐 가르치기가 어려웠잖아요. 책 한 권 보여주려면 다 필사해서 옮겨야 했습니다. ‘명의’를 찾아가야만 의술을 배울 수 있었죠. 지금은 좋은 치료법이 생기면 1초 만에 전 세계에 알려집니다. 어느 한 사람이 치료하는 시대는 갔어요. 명의보다는 팀워크가 중요한 때입니다.”
 
  朴勝挺 (아산·심장)
 
 

  병원 내에서 ‘王朴(왕박)’으로 통하는 朴勝挺(박승정) 교수는 불도저 같은 성격에 ‘독재자’란 말까지 듣는다. 이유는 1초가 급한 심근경색 환자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심근경색증·협심증 등으로 막힌 심장관상동맥을 수술하지 않고 뚫어주는 ‘중재시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지난해 10월 미국 관상동맥중재시술(TCT)학회로부터 ‘2008 TCT 최고 업적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했고, 2005년엔 유럽의 심장혈관중재시술학계 최고 영예상인 ‘에티카 어워드’를 받아 두 상을 모두 수상한 세계 최초의 의사가 됐다.
 
  1997년 미국 심장학회에 참석한 박 교수는 “관상동맥 중 왼쪽 주간부(left main)가 좁아진 환자도 금속 그물망 시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하버드대의 스테판 오스텔리 교수가 “그것은 흉부외과 의사의 영역”이라며 박 교수의 주장을 “정신 나간 일”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5년 후, 오스텔리 교수는 박 교수를 하버드대로 초청해 주간부 시술 특강을 요청하게 된다.
 
  全浩景 (삼성·대장암)
 
 

  전호경 대장암센터 센터장은 2008년 한 해 동안 대장암 절제술 1533건으로 국내 최다를 기록했다. 2007년 788건보다 두 배에 달하는 수치로, 재발수술과 다른 병원에서 의뢰한 환자의 수술건수까지 포함하면 시술건수는 2920건에 이른다. 1994년 개원 후 누적건수는 약 6000건이다.
 
  전호경 교수는 “삼성암센터 협진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됐다”면서 “이젠 수술 건수도 중요하지만 최상의 진료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질적인 면에서도 이미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1533건 중 복강경 수술이 680건으로 43%를 차지했으며, 지난해 12월 21일까지 수술한 1486명의 환자를 분석한 결과 재수술률이 3%로 조사돼 질적 우수성이 입증됐다.
 
  전 교수는 “아산도 삼성도 홀로 있었다면 정말 외로웠을 것”이라면서 “선의의 경쟁자, 즉 바람직한 라이벌 관계”라고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의 현재를 설명했다.
 
  金明煥 (아산·담도 및 췌장)
 
 

  SCI(과학인용색인: Science Citation Index) 논문 104편을 발표한 김명환 교수는 국내 소화기내과 분야의 최고전문가다. 김 교수는 담석을 수술하지 않고 빼내는 ‘역행성 담도 내시경 치료’ 방식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지난해 10월엔 대한의학회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공동주최한 ‘분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임상진료와 연구 양쪽 분야에서 국내 1인자로 꼽히는 그는 “현대 의학에도 명의는 존재한다”고 했다.
 
  “‘醫術(의술)은 藝術(예술)’이라고 합니다. 갈수록 팀워크와 의료장비의 중요성이 올라가는 건 사실이지만, 100년 200년이 지나도 사람 몸은 사람이 고칠 수밖에 없어요. 독주회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바뀐 겁니다. 악기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연주는 사람이 해야죠. 간 이식의 이승규 교수나 저나 수술할 때 목숨 걸고 합니다.”
 
  金聖 (삼성·위암)
 
 

  김성 교수가 센터장인 삼성암센터 위암센터는 2008년 1년 동안 총 1879건의 수술을 진행했다. 국내 병원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고되지 않은 최다 규모의 실적이다. 2007년 968건보다 약 두 배 증가했다. 그중 재수술이 9례(0.5%), 수술 후 1개월 이내 사망이 2례(0.1%)로, 우수한 수술 성적이다.
 
  기록적 성과의 비결은 김성 교수팀의 당일진료 시스템이다. 소화기내과 교수가 진료를 보다 위암 수술이 필요하면 위암센터에서 진료중인 외과 교수에게 바로 넘겨 수술날짜를 바로 잡게 했다. 내과·외과·혈액종양내과·방사선종양학과 간 외래진료를 당일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조직력 중심의 질 높은 치료를 실현해냈다.
 
  연간 600건의 수술을 직접 집도한 김 교수는 “최근 조기위암의 치료성적이 97%에 이른다”며 “가장 중요한 위암 예방법은 조기검사와 조기치료뿐”이라고 말했다.
 
 
  [연장전] “‘수술의 아산, 서비스의 삼성’은 잊어라”
 
  취재 중 한 교수는 “삼성과 아산, 아산과 삼성은 ‘가깝고도 먼 병원’”이라고 했다. 풍납동과 일원동, 실제로 두 병원은 지리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태생도 비슷했다. 각각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워졌고, 양쪽 그룹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개원 초기엔 추구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 보였다. 한쪽은 ‘의료계의 高手(고수)’들을 한 곳에 모아 고난도 수술에 잇따라 성공해 최대 병원으로 자리매김했고, 다른 한쪽은 병원의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시스템 혁명을 통해 차별화에 성공했다.
 

서울아산병원의 신생아중환자실.

  지금 아산은 삼성을 닮아가고, 삼성은 아산을 닮아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개원 초부터 볼 수 있었던 정문에서 차 문 열어주는 장면을 이젠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장례시설도 삼성의 유명세를 꺾을 만큼 변화됐고, 건강검진센터도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서울아산병원에선 치료는 기본이고, 서비스는 덤”이라며 서비스에 있어서도 삼성서울병원에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고객만족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암센터를 오픈, ‘아시아 최고’의 진료수준을 선보이겠다는 비전을 실행해나가고 있다. 초기부터 강세를 보였던 폐암분야는 물론 지난해 위암과 대장암에서 국내 최다수술 건수를 기록해 6대 癌(암) 중 3개 부문에서 서울아산병원을 따라잡았다고 전했다. 개원 초기 주축이 됐던 젊은 교수들이 어느새 ‘선배급’으로 성장해 삼성서울병원의 ‘스타’들로 再(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은 병원 내 조직문화다. 서울아산병원은 지금도 구성원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먼저 ‘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철 교수의 말이다.
 
  “처음부터 ‘알아서 하라’가 이 병원의 모토였습니다. 출퇴근 같은 건 체크하지도 않았죠. 그런데도 모두 야근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공감대와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죠. 의료계는 과마다, 그리고 병원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서울아산병원은 굉장히 자유스러운 분위기였죠. 선배한테 대드는 자유가 아니라, 후배가 쉽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人事(인사)에서만큼은 엄격함이 유지됐다. 1990년, 개원 이듬해 전공의를 뽑을 때였다. 정주영 회장이 이문호 원장에게 知人(지인)의 손녀딸을 인턴으로 채용해달라고 했다. 이철 교수는 당시 인사 실무자였다.
 
  “정 회장이 아마 병원 ‘인턴’ 개념을 현대그룹의 인턴사원과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날 이문호 원장, 추광철 교육수련부장,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이 모여 고민을 했죠. ‘회장님 부탁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요. 생각보다 회의는 금방 끝났어요. 만장일치였습니다. ‘처음부터 원칙대로 안 하면 병원 망한다’고 했죠.”
 
  이 원장은 정 회장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정 회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 교수의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렇게 엄격하게 안 했다면 정말 아찔합니다. 현대에 계열사가 좀 많습니까. 그런데 그룹 회장도 안 됐으니, 그 후론 청탁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사람’으로 승부를 거는 조직에서 인사는 정말 엄격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삼성서울병원의 응급의료 전용헬기.

  삼성서울병원은 철저한 조직관리로 시스템의 선진화를 이뤘다. ‘고객중심의 병원’을 이루기 위해선 직원들이 먼저 틀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진에 대한 인식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이 ‘스타’를 내세워 집중 투자한 반면, 삼성서울병원은 병원 전체의 브랜드 가치를 우선으로 뒀다. 김광원 당뇨병센터장의 설명이다.
 
  “‘스타 명의’에 대한 문화는 확연히 기업과 일치합니다. 삼성은 개인이 뭘 잘하고 못하기보다는 병원이 직접 주도하는 방향이었죠. 일반인의 평가보다는 환자의 만족이 우선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명의의 정의는 ‘열심히 봐 주는 의사’입니다. 100명의 환자를 봤는데 70명은 열심히 하고 30명은 피곤해서 좀 소홀히 했어요. 70명에겐 명의겠지만, 30명에겐 ‘돌팔이’가 되는 겁니다. 다 상대적이라고 봅니다.”
 
  ―혹자는 “병원은 일단 병을 잘 고치는 게 우선”이라고 합니다.
 
  “외과 쪽은 그럴 수 있겠죠. 잘 붙여주고 잘 막아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의학을 전반적으로 볼 땐 기술만으론 부족해요. 환자를 통해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진짜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질병의 양상도 많이 바뀌었어요. 과거 감염이나 영양부족처럼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악성종양과 생활습관병과 같이 복합적 요인으로 바뀌었죠. 현대의학에서 치료의 출발은 ‘신뢰’입니다.”
 
  김 교수는 “친절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도 아니고, 권위와 대립되는 개념도 아니다”라면서 “의료의 본질은 아프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이를 해결해 주는 노력”이라고 했다.
 
 
  ‘서로 벤치마킹하는 사이’
 

성영희 전 삼성서울병원 간호본부장.

  간호부의 경쟁이 흥미롭다. 대다수 사람들이 병원이라 하면 의사부터 떠올리지만, 치료에서 간호사들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먼저 도전장을 내민 쪽은 삼성서울병원이었다. 간호사의 상징인 흰옷과 캡을 없앴다. 성영희 전 삼성서울병원 간호부원장의 말이다.
 
  “개원 전에 우리나라 간호의 문제점을 조사했어요. 환자들이 흰색을 싫어한다는 결과가 나왔죠. 그래서 국내 최초로 간호사 복장을 흰색이 아닌 보라색으로 바꿨습니다. 머리에 쓰던 캡도 없앴고요. 지금은 전국 거의 모든 병원이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말들이 많았습니다.”
 
  소아과에선 어린이용 患衣(환의)와 간호사 복장을 같은 색으로 했다. 동질감을 통해 병원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 것이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위해 말기환자와 産母(산모) 등 특정한 분야를 제외하곤 보호자의 면회를 통제했다. 한 사람이 아프다고 가족 모두가 병원에 있어야 하는 게 사회적 손실이 크다는 판단이었다.
 
  특정한 분야에선 전문간호사 제도를 도입했다. 1994년 종양·뇌신경계·심혈관계에 각각 2명씩 지정된 전문간호사들은 암과 당뇨 등 평생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했다.
 
  보호자의 역할을 간호사가 모두 맡다 보니 문제는 재정이었다. 인건비가 평균에 비해 20억원 이상 추가로 소요됐다. 드디어 개원 5년째, IMF가 터졌고 그동안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병원은 적자였고, 삼성에서 무조건 지원해주기로 한 5년 기한도 끝난 상태였죠. 간호사 30%를 줄이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람은 줄어도 친절하게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죠. 그러다 1999년 11월 간호등급이 생겼습니다. 정부에서 간호사 수에 따라 수가를 다르게 책정해줬죠. 저희가 그때 2등급이었고, 서울아산병원이 3등급, 서울대병원은 4등급이었습니다. 지금은 삼성과 아산이 2등급, 서울대와 세브란스는 3등급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경옥 서울아산병원 간호본부장.

  서울아산병원엔 현재 2400명의 간호사가 있다. 병원에선 이를 ‘공룡조직’, ‘개미군단’이라 부른다. 한국 최대 간호조직으로 시스템이 갖춰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金景玉(김경옥) 서울아산병원 간호본부장의 설명이다.
 
  “출신대학이 100개가 넘었어요. 모두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이라 표준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교육으로 해결해야 했죠. 투약과 수혈같이 긴급한 일엔 집중적으로 QI(의료 질 향상 활동)를 시작했습니다. 국내 최초였죠.”
 
  의사는 인턴부터 스태프까지 단계를 거치지만 간호사는 따로 구분이 없었다. 서울아산병원은 간호사경력개발제도(CLS)를 도입해 간호사의 등급을 4단계로 나눴다. 각 단계마다 차별화된 교육을 받고 임무를 맡는다. 서울아산병원의 전문간호사는 현재 6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간호 인턴십 제도를 도입해 2주 동안 교육한 후 우수한 인재를 채용했고, 서브인턴십 제도를 통해 간호학과 3학년 학생들의 방학기간 중 교육을 실시했다.
 
  김경옥 간호본부장은 서울아산병원의 가장 큰 영향력으로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꼽았다. 워낙 방대한 조직이라 체계적인 부분에서의 부족함은 인정하면서 삼성서울병원과는 ‘서로 벤치마킹을 하는 사이’라고 했다.
 

삼성서울병원(左)과 서울아산병원(右)의 다빈치 로봇 수술 광경.

 
  암센터의 대결구도
 
  현재 두 병원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암센터다. 2008년 1월 건립된 삼성암센터는 국내 최대인 지상 11층, 지하 8층 건물에 652병상 규모로 오픈됐다. 총 20개의 수술장에서 매일 평균 1800여 명의 환자들이 방문을 하고 있으며, 2008년 한해 총 6382건의 암수술을 시행했다.
 
  병원의 핵심은 바로 ‘포괄적 암치료 시스템(Comprehensive Cancer Center)’이다. 의료진들이 서로 원활한 소통을 하며 협진을 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외과나 내과 등 진료과 중심에서 벗어나 위암센터, 간암센터, 대장암센터 등 암별 센터 개념을 도입했다.
 
  내과 교수가 진료를 본 후 수술이 필요한 환자라고 판단되면, 오전 진료 후 협진실에 내외과 교수가 모여 치료방침을 결정한다. 그리고 당일 외과 교수가 진료를 보도록 해 환자가 두 번 외래진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규형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소장.

  지난해 5월부터는 ‘원스톱 서비스’를 도입했다. 암환자들의 가장 큰 불만인 대기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당일진료·당일검사 시스템을 구축했다. 암센터별로 배치된 운영간호사, 설명간호사, 코디네이터 등 세분화된 간호사들이 당일 진료를 돕는다.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기존 초진에서 검사결과까지 3~4주가 걸리던 것을 10일 내외로 앞당겼다.
 
  암센터는 삼성서울병원의 암 치료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가장 두드러진 결과가 지난해 위암, 대장암, 폐암에서 가장 많은 수술건수를 기록한 것이다.
 
  沈英穆(심영목) 삼성암센터 초대 센터장은 “삼성암센터는 현재 아시아 최고 암센터”라며 “치료부문으로만 보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기초연구 쪽은 솔직히 미국에 비해 많이 열악한 편이죠. 그래도 임상연구는 이미 세계 수준급입니다. 암 치료 성과는 물론 최고죠. 일본 국립암센터의 한 흉부외과 의사가 작년에 암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시설을 자세히 둘러보고 수술 데이터도 봤죠. 돌아간 후 이메일이 왔더라고요. ‘너희가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삼성암센터의 추격에 서울아산병원의 공식적인 반응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였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암센터를 리모델링을 마친 서관으로 옮겨 전면적인 재오픈을 준비하고 있으며, 올해 4월 11일 전국 최대인 750병상 규모로 진료가 시작될 예정이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의 핵심은 ‘통합진료시스템’이다. 기존의 과별 진료형태를 소규모 센터화한 후 다수의 의료진이 한 명의 환자를 상대하는 선진국형 의료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李揆亨(이규형)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소장은 “암전문 응급실이 생기는 한편, 병동까지 암별로 분류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암센터에 자신감을 표현했다.
 
  ―의료수가 등을 고려할 때 통합진료시스템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3~4년 전부터 이미 소규모로 시작해왔습니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어요. 수가는 언젠가 정부에서 도와주겠죠. 일단은 손해를 보더라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모든 암 환자에 대해 의사 4~5명이 모여 상대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협진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다른 과 의료진이 모여 토의를 해야 할 환자가 있죠. 환자의 치료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시행할 것입니다.”⊙
 



  ▣ ‘1등’ 약국은?
 


  삼성서울병원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약국은 ‘열린약국’이다. 1994년 병원 개원과 함께 오픈한 이곳은 최대 13명의 약사를 보유한 곳으로, 2005년 건강보험 약제비 수입 年(연) 161억원으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서울아산병원 인근엔 비슷한 규모의 약국들이 경쟁관계에 놓여있다. 병원 신관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은 현재 ‘대학약국’이다. 총 7명의 약사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엔 하루 350~40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간다.
 



  [인터뷰] 李政愼 서울아산병원장
 
  “국내 최초·최다란 말은 머릿속에서 지우겠다”
 
 

  李政愼(이정신) 서울아산병원장은 20년이란 짧은 기간 국내 최대병원으로 성장한 비결을 “설립자의 이념과 병원 멤버들의 열정”으로 정리했다.
 
  “병원史(사) 100년 동안 이런 병원은 처음이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소명이 있었어요. ‘老後(노후)에 어떻게 잘살아보겠다’는 마음이었다면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대한민국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이루겠다는 열정으로 병원을 시작해 성공했죠.”
 
  ―개원 초부터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물난리였죠. 그땐 병원 문 닫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훌륭하게 극복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대의 기백이 그대로 의료진에게 흘러왔습니다. 설립자의 뜻은 간단했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을 지어라’였습니다.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완전 白紙(백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죠.”
 
  ―병원 곳곳에 故(고) 정주영 회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병원 사람들 다 모여서 불고기 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 위스키가 식탁에 올라왔어요. 함께 있던 현대건설 사람들이 모두 놀랐죠. 양주가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정 회장은 의료진들을 정말 존중해줬습니다. 손주뻘 되는 젊은 의사들 부를 때도 꼭 ‘인턴 선생님’, ‘레지던트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서울아산병원은 ‘스타 명의’로 유명합니다. 병원장으로서 생각하는 최고의 명의는 누구라고 봅니까.
 
  “분야마다 모두 다른 데다, 잘못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간이식의 이승규 교수, 심장내과에 박승정 교수, 柳漢旭(유한욱) 교수는 희귀성·난치성 질환으로 유명하고, 이규형 교수 논문 결과도 좋고…, 끝이 없네요.”
 
  이 원장은 “국내 최초와 국내 최다란 말은 머릿속에서 지우겠다”며 “의료의 양적 팽창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질적인 면에서도 승부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최대·아시아 최다도 다 해봤습니다만 이젠 좀 겸손해지기로 했어요. 내실을 좀 다진 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병원이 되겠습니다.”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의사 개개인의 활동으로 서울아산병원의 명성을 세워 왔다면, 앞으로는 질환별 클리닉 체제로 전환, 여러 과가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일명 ‘개인플레이’에서 ‘조직력’을 강조하는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건가요.
 
  “축구에서 박지성 선수가 제대로 뛰려면 10명이 잘 받쳐줘야 합니다. 초창기엔 스타도 필요하지만, 이젠 ‘이승규 교수가 있어서 아산에 온다’가 아니라 ‘아산이라서 온다’란 말이 나오게 해야죠. 그렇다고 스타 명의를 지우는 시스템은 아닙니다. 평상적인 업무로 톱 클래스를 지키겠다는 거죠.”
 
  ―해외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직접 나가서 해외 환자를 유치해오는 것에 대해선 원내 멤버들의 의견이 조금씩 다릅니다. 일단 병원간 글로벌 네트워크에 먼저 집중할 계획이에요. 이미 1년에 약 200명의 외국인 교수들이 저희를 배우러 옵니다. 독일, 이탈리아 등 의료계에서 인정받은 국가들이죠. 동남아, 중동 지방에선 의대 학생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돈을 벌어오는 것보단 연구와 교육 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울아산병원에 있어 삼성서울병원은 어떤 존재입니까.
 
  “같은 병원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마치 사과와 배 같은 존재랄까요. 확실히 다른 이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배울 게 많은 병원입니다. 우리는 20년 동안 급성장을 하다 보니 매끈하게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삼성서울병원이 있음으로 해서 많은 자극이 됐습니다. 기본적으론 동반자이자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崔漢龍 삼성서울병원장
 
  “이미 국내 最高 수준. 세계로 눈을 돌려야”
 
 

  “제 스타일을 굳이 설명하자면 서울아산병원 스타일이에요. 제 성격이 좀 급한 면이 있습니다. 삼성의 조직문화가 치밀하잖아요. 그래서 더 완벽한 것 같아요. 제가 일단 ‘저지르면’, 조직에서 실수를 막아주니까요. 괜찮은 조합이죠.”
 
  崔漢龍(최한용) 삼성서울병원 원장은 자신의 적극적인 업무 스타일이 삼성의 섬세한 조직문화와 잘 조화된다고 했다. 최 원장은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기업문화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정했다.
 
  “우리 병원의 단점부터 솔직히 말씀 드릴게요. 서울아산병원에서 5일이면 결정할 것을 삼성서울병원에선 한 달이 걸려요. 어떨 땐 장점이 되고 어떨 땐 단점이 돼요. 그러나 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후발주자로서 15년 만에 국내 일류급 병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희 병원을 빅(big) 4에 넣어준 것만으로도 일단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따로 비결이 있기보다는 환자 중심의 병원을 추구한 것과 열정을 가지고 임해 준 직원들, 그리고 삼성의 브랜드 효과라고 봅니다.”
 
  ―개원 초창기 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환자’를 ‘고객’이라 했다가 엄청나게 욕 먹었습니다. 특히 다른 병원 의사들이 ‘삼성서울병원 때문에 우리 다 죽겠다’고 했어요. 당시엔 많이 힘들었는데 15년이 지나 이렇게 성장한 병원을 보면 선택은 정확했다고 봅니다.”
 
  ―“급성장 뒤엔 매너리즘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에도 접목될 수 있는 예인가요.
 
  “개원 10주년 때부터 이미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조직이 10년이 지나면 나태해지고 관료화되기 마련이에요. 그때 세운 것이 바로 ‘비전 2010’입니다. 매너리즘이 오기 전에 먼저 막아야죠.”
 
  ―삼성의 기업문화가 병원 곳곳에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따로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아니에요. 개원 초기 때는 삼성그룹에 모든 것을 의존하다 보니 병원보다는 행정을 중심으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지금은 기본적인 질서하에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타 명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젊은 의료진들이 많이 성장한 것도 사실이고요. 다만 억지로 드러내지 않을 뿐입니다. 물론 서울아산병원의 이승규, 박승정 교수는 저도 인정하는 세계적인 명의입니다. 저희도 심영목 교수 같은 분이 계시고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게 삼성서울병원의 기본 입장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병원 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자꾸 언론들이 수술횟수 가지고 순위를 매기니 저희도 따라갈 수밖에 없죠. 저는 서울 시내 모든 주요 병원이 1위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해외활동이 활발한데, 병원이 추구하는 해외전략은 무엇입니까.
 
  “병원 내에 이미 외국인 환자를 위한 TF팀이 만들어졌습니다. 국내 의료보험 혜택을 보는 환자가 대상이 아니라 외화를 통해 국익을 볼 수 있는 환자를 위함입니다. 외국 환자들이 이미 많이 찾고 있어요. 일부 국가에선 극비리에 준국가원수급을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 국민에게 피해를 안 끼치는 선 안에서 외국인 VIP들을 최대한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아산병원을 어떻게 봅니까.
 
  “저희가 개원했을 때 서울아산병원에 있던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야 아산이 피어날 수 있겠구나’라고요. 삼성서울병원이 신선한 문화를 선도하면 자연스럽게 경쟁구도로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 서울아산병원이 있어 정말 든든합니다. 배우는 것도 정말 많고요. 좋은 경쟁자이자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월간조선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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