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꽤 번 의사다. 국내 최초로 ‘미용 피부과’란 개념을 도입해 매달 수천만 원을 벌었다. 반듯한 외모에 달변(達辯)까지 갖춘 그의 원래 꿈은 정치가였다. 그것도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란다. “의사가 돈 벌겠다는 게 뭐가 나쁜가”라고 반문(反問)하고, 1년에 200번 산에 오르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인물이다. 80대 장모와 서른 시간 함께 지내는 예능방송에 출연하더니 ‘국민 사위’란 호칭과 함께 SBS 연예대상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한 삶을 사는 그의 ‘실체’가 궁금했다.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咸翼炳·53)씨에겐 묻고 싶은 것이 꽤 많았다. 그도 하고픈 말이 많은 듯했다. 만나자마자 이른바 ‘의료 영리화’ 질문부터 했다. ‘원칙주의자’라더니, 역시나 그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한국 병원 중 영리병원이 아닌 곳이 어디 있나요? 이미 모든 병원이 영리화, 민영화했는데, 새삼스레 반대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의료 민영화’란 개념은 일부 의식화한 집단 또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네이밍(naming)’에 불과하죠. 괴벨스(Goebbels) 비슷한 기자들이 ‘나쁜 이름 붙이기’를 통해 궤변을 늘어놓은 셈입니다. 저도 지금 자선사업 하는 게 아닌데, 마치 지금까지는 비영리 활동을 해온 것처럼 말을 하죠.”
'국민사위' 함익병. ⓒ서경리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동조세력을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 건강보험 수가(酬價)가 턱없이 낮습니다. 추가 이익을 남기려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보수(報酬)를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병원을 운영하며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인데, 만약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진료만 했다면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어요. 적절치 않은 수가를 내고 진료는 높은 수준을 요구하니 문제입니다. 모든 의사에게 슈바이처처럼 살라고 하면 안 되죠. 의사도 일종의 직업입니다.”
―지난주 《주간조선》(2291호)을 읽어 보니, 이언주(李彦周) 민주당 의원이 “의료계 인재들이 흉부외과같이 생명을 살리는 분야가 아니라 피부과 등 수익이 많이 나는 쪽으로 몰리는 문제가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 후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던데, 피부과 전문의로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미 일어난 현상이고, 더 심해질 것도 없다고 봅니다. 사실 흉부외과 의사도 피부과 진료를 할 수 있습니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는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다만 소비자가 결정할 사안이죠.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과 정부가 의료 수가 인상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세브란스, 삼성서울, 서울아산, 서울성모 정도를 제외한 대다수 병원은 수지타산이 안 맞습니다. 제도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의사들은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이런 말이 나오니 발끈하는 것이죠.”
함씨는 복잡한 문제를 굳이 더 꼬아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사물과 현상을 이야기했고, 대화는 직설적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좋게 보면 원칙주의자, 나쁘게 보면 극단주의자”라고 평했더니 “맞는 소리”라고 맞장구를 쳤다.
[임재민·김정우의 ‘유쾌한 직설’ ⑥ ‘완벽’과 ‘극단’의 사이, 국민사위 함익병]
시쳇말로 ‘돌직구’가 대세다. 촌철살인(寸鐵殺人)도 고담준론(高談峻論)이 되면 그 가치가 무색(無色)해지는 시대다. 이유 없는 막말과 목적 없는 독설의 난무(亂舞)는 ‘핫(hot)’한 시류만 좇다 생긴 부작용이다. 이른바 ‘B급 정서’에 ‘격(格)’을 살짝 덧칠한 인터뷰로 ‘유쾌한 직설’을 시도해 봤다.
⊙ “80대 장모와 방송한 후 어머니에 대한 효심 커져”
⊙ “세금 내기 전엔 투표권 줘선 안 돼… 자녀에겐 지금도 국민교육헌장 가르쳐”
⊙ “원래 꿈은 대통령, 지금 꿈은 국내 모든 山 정복”
“安哲秀는 과대망상”
대구에서 태어나 경남 진해에서 자란 함씨는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의대를 나왔다.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신문을 읽었던 그는 어린 시절 나라의 원수(怨讐)가 박정희(朴正熙)라고 생각했다. 고교 3학년 때 10·26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에 큰 번영이 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3김(金)이 하는 꼴을 보니 실망스러웠다.
80학번 1학년 시절, 데모 현장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해답을 구했지만, 답은 명쾌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스무 살을 보낸 그는 급격히 보수화됐다.
―비슷한 시기 대학 시절을 보낸 안철수(安哲秀) 의원도 386 운동권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요.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저는 그러한 부채의식을 지금 이 자리에서 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의사’는 안철수 의원과 함 원장 딱 두 명이군요.
“안철수 의원은 의사라기보단 의사면허소지자입니다. 이름에 맞게 행동해야죠.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가 과연 기자일까요. 안철수 의원은 이제 정치인이죠.”
―정치인 안철수를 평가한다면?
“좋게 말하면 과대망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쟁이입니다. ‘가족에게 말도 안 하고 군대 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방송에서 하는 걸 보면 ‘뻥’이 좀 심한 것 같아요.”
함씨는 의사가 되기 전 정치인을 꿈꿨다. 대통령이란 큰 꿈을 의대에 진학하면서 접었다. 정치인이 되려는 그를 ‘막은’ 이는 그의 선친(先親)이었다. 6·25전쟁 때 ‘정치인과 법관은 죽여도 의사는 살려둔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달은 아버지는 똑똑한 아들이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길 바랐다.
―‘의사 정치인’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의사 면허증을 가진 인물이 대통령까지 도전하는 시대입니다.
“그걸 비판하고 싶진 않습니다. 물론 저는 의사 면허를 갖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의사가 된 후 정치인의 꿈은 완전히 버린 겁니까.
“딱 한 번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마흔 즈음이었어요. 계산을 해보니 제대로 입법활동을 하려면 1년에 15억원은 써야 좋은 법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박사급 연구원 15명 정도를 고용할 능력은 돼야 한다고 본 거죠. 저는 정치는 자기 돈으로 해야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내에게 15억원 얘길 했더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해요. 그래서 또다시 접었어요.”
‘실업가 의사’
―만약 지금 공천 제안이 들어오면 어떡할 겁니까.
“사양할 겁니다. 정치는 제게 지나간 꿈입니다. 들어선 길이 다르면 다르게 가야죠. 김종필(金鍾泌) 전(前) 총리가 한 얘기 중에 ‘정치는 허업(虛業)’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얘길 듣고 그분을 존경하게 됐어요. ‘허업’의 반대가 바로 ‘실업(實業)’ 아닙니까. 저는 허업보다는 실업가가 되고 싶어요. 정치가 진정한 ‘실업’이 된다면, 그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명세’는 현대 정치의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유명세로 ‘연예대상’ 신인상까지 받은 함씨는 정치에 대해 “들어선 길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詩)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평범한 시각’으로 보면, 함씨가 걸어온 길은 ‘인술(仁術)’이라기보단 ‘실업가’에 가까웠다. 레지던트 시절 해외 연수 중 발견한 레이저 기계를 들여와 일찍이 ‘미용 피부과’란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병원 입지를 선정할 때도 서울시 지하철역의 유동인구를 전수(全數) 조사하는 등 ‘환자’보다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개원(開院)을 준비했다.
“당시 개업한 선배들을 찾아가서 참관해 보니 정말 상황이 열악하더군요. 돈을 벌려면 스테로이드 주사를 계속 놔야 하는데, 장기간 맞으면 부작용이 심합니다. 양심이 없는 의사는 돈 때문에 주사를 계속 놔요. ‘그나마 양심적인 의사’는 주삿바늘만 찔렀다가 뺍니다. 저는 그렇게 돈을 벌고 싶진 않았어요. 차라리 ‘비급여 부문’에 집중하기로 했죠. 그러려면 레이저 기계가 필요했는데, 돈이 없으니 동업으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이유득, 지혜구, 함익병 등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전문의 3명의 성을 따 만든 ‘이지함 피부과’는 1994년 8월 개원과 함께 ‘국내 최초의 에스테틱형 미용 피부과’란 타이틀로 유명세를 떨쳤다. 병원이 자리한 신촌 이화여대 앞엔 진료를 받으려는 여성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분야든 처음 시작하면 돈을 벌 수밖에 없죠. 이지함 병원이 그런 경우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벌었습니까.
“한 달에 5000만원 정도 벌었습니다. 1990년대 기준으로 정말 많이 번 거죠.”
―그렇게 잘 벌었는데 왜 그만뒀습니까.
“하기 싫었어요. 지쳤고요. 돈 욕심도 별로 없었습니다. 먹고살 돈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함씨는 개업 후 잘나갈 땐 일요일에도 쉬어본 적이 없다. 100만원 정도 되는 일요일 하루 수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그렇게 10년을 벌면 일요일에만 5억을 번 셈”이라며 “동료 피부과 의사보다는 딱 그만큼 더 벌었다”고 했다.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씨(오른쪽)와 방송인 임재민씨.
“독재가 왜 나쁜가”
그는 스스로 부자라고 했다. 이유는 소박했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는 상황이 그가 생각하는 ‘부자의 조건’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上京)하기 전까진 고기를 직접 구워먹는 건 상상도 못했던 그였다. 어린 시절 그는 고기는 반드시 국에 넣어 먹어야 하는 줄로 알았다. 고기를 마음껏 구워먹을 수 있는 자신의 세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축복받은 세대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386세대인데, 그들 중 상당수는 아직 ‘독재와 암흑의 시대상’을 얘기합니다.
“독재가 왜 잘못된 건가요? 플라톤도 독재를 주장했습니다. 이름이 좋아 철인정치지, 제대로 배운 철학자가 혼자 지배하는 것, 바로 1인 독재입니다. 오죽하면 플라톤이 중우(衆愚)정치를 비판했겠습니까.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Pericles) 시대도 20년을 넘겼습니다. 독재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하나의 도그마(dogma)입니다. 정치의 목적은 최대 다수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카이사르(Caesar)가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한 후 로마는 더욱 발전했습니다.”
―지금 현재 왕정(王政)으로 되돌아가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 잘살 수 있으면 왕정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민주’란 말만 붙으면 최고라고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른 것보다 나으니까 유지된 것이죠. 민주정치도 오류가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지고지선(至高至善)이 아니듯,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이 1960년대부터 민주화했다면,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박정희의 독재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독재를 선의로 했는지, 악의로 했는지, 혹은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합니다.”
―북한이나 중국 시스템은 어떻게 봅니까.
“북한은 세습 독재이니 잘못된 것이고, 중국의 경우 민주주의라곤 할 수 없지만, 그 시스템은 잘 돌아갑니다. 분명 독재이지만 웬만한 민주주의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을 극복하고 설계한 정치 시스템인데, 국가주석-총리 체제로 검증된 인사가 지도자가 되게 했습니다. 한국처럼 단일화니, <힐링캠프>에 출연하니 하면서 단숨에 대통령 후보가 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 볼 시간이 아까워서란다. 그럴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는 그에게 “삶이 재미없어 보인다”고 하자 “돈 벌고 취미생활 있으면 된 것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여드름 환자들에게 나쁜 얘기와 좋은 얘기 중 무엇부터 들을 건지 물으면 백이면 백 모두 나쁜 것부터 듣는다고 합니다. 한국 교육이 얼마나 획일화됐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답에 다양성이 없어요.”
―그런 것을 개선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제 등과 같은 제도가 생겨난 것 아닌가요?
“다 좋은데, 그걸 왜 국가가 주도하는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다 알아서 교육하라고 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됐으면 좋겠어요. 대학도 국립대학을 제외하곤 다 자율화해야 한다고 봐요.”
함익병씨는 2013년 6월부터 SBS 예능 프로그램 '백년손님 자기야'에 출연해 80대 장모와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여 많은 관심을 모았다.
완벽주의자
―지나치게 편향된 시각 아닌가요?
“편향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일례로 제 자식들은 지금까지 투표권이 없습니다. 나이가 안 찬 게 아니라 제가 못 하게 했어요. 국민의 4대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투표권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더 지나친 것 같습니다.
“의무 없이 권리만 누리려 한다면 도둑놈 심보죠. 세계 주요국 중 병역의 의무가 있는 나라는 한국, 대만, 이스라엘입니다. 이 중 여자를 빼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단, 자식을 2명 낳은 여자는 예외로 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적 논리가 아니라 계산을 철저히 하자는 겁니다.”
투표권에 대한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선거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조정하자는 주장도 단호하게 반대했다. “세금 내기 전에 투표권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원래 투표권이란 게 정부가 세금을 마구 걷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영국에서 처음 생긴 겁니다. 그런데 납세와 국방 등 4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건 말이 안 되죠. 미국에서 공부한 아들이 지난 대선 때 귀국했는데, 문재인(文在寅)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를 물으니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당선되면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디다.”
―그건 무슨 얘깁니까?
“현 체제가 무너져야 자기 길이 생긴다는 겁니다. 핀란드에서도 노키아가 망하니 새로운 벤처가 많이 생겼는데, 자신도 비즈니스를 해서 크게 성장하고 싶다는 거죠. 그런데 현 체제가 계속 유지되면 삼성에 들어가서 얼마나 벌겠냐고 해요. 그 순간 틀렸다고 말을 못 하겠어요. 아들 말이 맞지만, 4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이번 대선은 내 뜻에 따르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수긍하던가요?
“씩씩거렸지만, 결국 수긍했습니다.”
그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다. 주 4회 등산을 하면 1년에 200번 등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현재 그는 결국 196회 등산이란 목표를 달성했다.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 결과였다. 그는 산을 참 좋아한다. 남은 여생(餘生) 꿈이 뭐냐는 질문에 “더 많은 산에 가보고 싶다”고 답했다.
‘함익병’이란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건 방송의 힘이 컸다. 지난해 6월부터 출연한 SBS <백년손님 자기야>에서 그는 80대 장모(권난섭 여사)에게 반찬투정과 잔소리를 하는 등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는 “장모와의 관계가 달라졌다기보다는 부모세대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며 “오히려 오래전 품을 떠나 산 어머니에 대한 효심(孝心)이 생겼다”고 했다.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상당히 높은데, ‘예능인’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예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지금도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서른 시간 동안 장모와 사위가 어떻게 지내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죠.”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함익병씨. (화면캡처)
‘불친절한 의사’
―처음엔 ‘버릇없는 사위’의 이미지가 크게 부각돼 관심을 끌었습니다.
“PD의 감각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첫 방송 나간 후 ‘장모님께 잘한 모습은 다 빠지고, 나쁜 모습만 나왔다’며 PD에게 따졌어요. 그러니 PD가 ‘한 번 나오고 말 것이면 그렇게 하지 않지만, 앞으로 기승전결(起承轉結)을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답을 해요. 4회 분량이 나가기로 한 상태라 믿고 따랐죠.”
―방송은 4회를 넘어 대박이 났고, 스토리는 ‘기승전결’ 대신 ‘기승’만 계속되는 듯합니다.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끈 후 상황을 풀어내는 것이 바로 PD의 감각이 아닌가 합니다.”
―방송을 보니 함 원장보다 장모님이 더 웃깁니다.
“서로 30년을 허물없이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참 재미있고 낙천적인 분이에요. 그만한 사람 잘 없어요. 특히 장모님이 같은 세대 다른 분들과 다르게 참 자기중심적입니다. 많은 노인분이 제 장모를 닮았으면 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그 세대 부모들은 다 자식이 우선입니다. 연세 많은 노인분들은 자신만 잘 챙기면 걱정거리가 크게 없는데, 다 자식만 쳐다봅니다. 그게 고부(姑婦)갈등과 장서(丈壻)갈등의 시작입니다. 차라리 자기중심적인 분들이 훨씬 더 낫죠.”
―SBS 연예대상 신인상 받을 땐 기분이 어땠습니까.
“당황했죠. 솔직히 뭔가 하나 줄 것은 예상했습니다. 특별상 정도로 생각했는데, 신인상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방송 후 환자는 많이 늘었나요?
“원래 많아서 잘 모르겠네요. 다만 사진을 찍자는 사람은 늘었습니다. 오히려 바빠서 병원 안 할 거라 생각해 떨어져 나간 환자도 많습니다.”
―함께 병원을 운영하는 여에스더 박사가 그러길 함 원장 환자 셋 중 하나는 화내면서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 환자가 진짜 많아요. 특히 제가 환자 부모를 무시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맞는 말입니다. 황당한 게 24세 정도 된 남자가 피부과 올 때 혼자 안 오고 엄마와 함께 옵니다. 그리고 증상을 물어보면 본인이 말 안 하고 부모가 답을 해요. 아들 들으라고 일부러 반말로 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묻죠. 아이에게 (듣지 못하는) 장애가 있느냐고. 그제야 부모가 눈치를 챕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친절한 의사’만을 고집하는 환자를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을 고치려면 오히려 강하게 조언하는 의사가 필요해요. 세상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사가 있습니다. 선택은 환자 본인의 몫입니다. 친절한 피부과를 원하면 다른 곳에 가면 돼요. 저는 계속 ‘불친절’하게 진료하렵니다.”
중년 피부 관리법
―교사 부모를 뒀는데 군인정신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을 잘 지키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문맥을 살펴보면 상당히 실학적인 내용입니다. 독립을 위해 일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는 내용인데, 이대로만 한다면 정말 노벨상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은 헌장이라고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란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 아닐까요.
“무조건 비판하는 사람은 공부를 덜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공과(功過)를 총체적으로 얘기해야죠. 직접 피해를 본 분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김근태(金槿泰) 선생과 생전(生前)에 친했습니다. 임종 전에도 뵈었는데, 그분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요즘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의 측면에서 공과를 나눠서 평가했죠.”
―독서량이 꽤 많은 듯한데, 주로 어떤 책을 보나요?
“소설가 김훈(金薰)의 책을 좋아하고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런 문장이 좋아요. 하고 싶은 말만 짧게 써놓은 글. 잡소리가 많은 글은 싫어합니다. 요즘 읽는 책은 《당 태종 평전》입니다. 현대 중국 역사가들이 당 태종을 총체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그는 당 태종 얘길 한참 이어나갔다. ‘거리낌없는’ 직설 인터뷰는 3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는 어떤 질문도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철학적 배경지식을 근거로 자신의 관점을 뚜렷이 설명하려 했다. 주제를 바꿔보았다.
―피부과 전문의로서 ‘중년을 위한 피부관리’ 조언을 부탁합니다.
“밥 잘 먹고 스트레스 안 받는 것이 피부건강엔 최고입니다. 만약 얼굴이 뒤집혔다면, 그건 분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에요.”
―부부싸움은 안 합니까.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싸울 일도 없어요. 아내가 뭐라고 지적을 하면 일단 알았다고 합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해요. 백 번 얘기해 봐야 바뀌지 않는 게 바로 사람입니다. 전 아내에게 뭘 바꾸라고 한 적이 없어요. 싸울 일을 만들지 않는 거죠.”
―산에 오르는 꿈 외에 다른 것은 없나요?
“인도 철학은 남자의 삶을 15년 단위로 사계절에 비유합니다. 열다섯 살까지는 봄, 서른과 마흔다섯을 거쳐 예순에 겨울이 끝나죠. 요즘은 수명이 많이 늘었으니 20년 단위로 해봅시다. 저는 이미 가을의 끝자락, 즉 만추(晩秋)에 해당하죠. 인도 철학은 가을이 끝나면 산으로 들어가 살라고 합니다. 조용히 출가(出家)하란 소리예요. 저도 예순까지만 일하고, 나머지는 제 인생을 즐기려고 합니다.”⊙
[유쾌한 직설] - 강용석 “안철수보단 내가 낫다”
[유쾌한 직설] - 임백천 "강호동은 에너자이저, 유재석은 대가의 풍모, 신동엽은 천재"
[유쾌한 직설] - '그냥 배우' 이순재 "아직도 배울 게 많다"
[유쾌한 직설] -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 류근 "시인에게 좌·우파가 어디 있나… 난 낭만주의자"
[유쾌한 직설] - 장진 감독 "상업영화 하겠다면서 정치 운동하는 건 치사한 전략"
월간조선 2014년 3월호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