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을 찾아가는 길은 복잡했다. 단출한 표지판을 보고 들어선 비포장도로엔 더 이상 안내표지가 없었다. 갈림길에서 엉뚱한 길로 들어선 덕에 30여 분을 헤맸다.
오두막집처럼 생긴 민가 앞에 선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자신을 추장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집 바로 뒤에 유적이 있다고 했다. 1인당 4달러의 통행료도 요구했다. 유적 출입구에 있는 추장 부인에겐 추가로 3달러씩 더 내야 한단다.
작은 집 몇 채와 나무를 하는 주민을 보며 길목에 들어서니 그녀 말대로 입구에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3명 입장료로 10달러를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자, 노파는 악수까지 하며 연신 '생큐'를 반복했다.
이 섬나라는 유적 인근 부족에 돈을 지불하는 관행이 있단다. 안내책이나 입장권이 따로 없는 곳이라 실제 '정가'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섬나라는 관행이 현행법을 앞서고, 유적 관할권도 추장에게 있었다.
매표소와 기념품점 없는 입구를 지나 천연이 유적 속에 들어갔다. 거대한 돌과 백산호(白珊瑚)의 조합이 웅장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맹그로브(mangrove)숲 사이로 펼쳐진 인공운하를 15분 정도 걸으면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 보인다. 유적의 '절정'이었다.
건축물 앞엔 때마침 물때를 맞아 바닷물이 들어왔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옷을 입은 채로 건너야 유적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생경한 경험이었다.
물을 건너다 신발 끈이 떨어졌다. 높은 돌담 너머 바다를 보기 위해 미로처럼 얽힌 통로를 맨발로 헤맸다. 길을 잃고 선택한 방법은 담넘기였다.
신발도 없이 맨손으로 거석 위에 올랐다. 대략 5세기부터 약 1000년 동안 이곳을 다스렸다는 왕조의 전사(戰士)가 된 느낌이었다.
바닷가 대형 건축물의 이름은 '난다우와스(Nandauwas)의 무덤'이다. 그리고 '사이의 공간' 즉 운하를 뜻한다는 유적의 이름은 '난마돌(Nanmadol)'이다.
태평양 최고(最古)의 해양문명 유적으로, 사각 모양의 93개 인공섬이 바닷가에 자리잡았다. '태평양의 베니스'로도 불리는 이곳을 다녀온지도 벌써 4년이 흘렀다.
긴 가뭄 끝에 북상하는 태풍 이름이 '난마돌'이라고 한다. 문득 맨발과 맨손으로 유적을 탐방한 경험이 떠올랐다. 부디 이번 태풍은 큰 수해 대신 단비만 뿌리고 지나가길 바란다.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난마돌(Nanmadol) ⓒ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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