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페이는 마이크로네시아연방(FSM·또는 미크로네시아연방)의 수도가 자리 잡은 섬이다. 섬 이름은 “돌로 만든 제단(pehi) 위(pohn)”란 뜻이며, 과거엔 ‘포나페(Ponape)’로 알려졌었다. 345km2의 면적에 약 3만4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이크로네시아의 사실상 유일한 유적인 ‘난마돌(Nanmadol)’이 있어 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태평양에서 보기 드물게 나름 전통을 가진 수도이지만, 한국에서 이 섬까지 오는 길은 만만치 않다. 괌과 축을 경유해 오든, 하와이에서 마셜제도와 코스라이를 거쳐 오든, 적어도 두 차례 이상 환승을 해야 한다. 일반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찾기 어려우며, 그나마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원양어선 선원들이다. 섬을 돌며 만난 현지인들은 기자 일행에게 “피셔맨(fisherman)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답하니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어업과 무관한 외지인을 보기 어려운 곳이다. 한국인 상당수는 폰페이를 이탈리아의 고대도시 ‘폼페이(Pompeii)’와 혼동한다.
⊙ 경제자립에 國運 건 마이크로네시아 섬나라들
⊙ 섬나라까지 전파된 한류 열풍…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와 인지도 역대 최고”
⊙ “스페인은 神을 위해(for God), 독일은 돈을 위해(for Gold), 일본은 그네들의 영광을 위해(for Glory), 미국은 영원히(for good) 머물려고 이 섬에 왔다. 한국은 뭘 위해 올 건가?”
⊙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에 큰 기대…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 필요”(알릭 알릭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부통령)
이런 곳까지 한류(韓流) 열풍이 부는 현상은 문화의 힘이 지리적 한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섬 주민 대부분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물론, 한국 드라마와 배우 이름을 줄줄 꿴다. 현지 여성 버지니아 이지키아스(Ezekias)에게 요즘 어떤 한국 드라마가 폰페이에서 가장 인기 많은지 물으니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에게 어떤 드라마가 가장 인기 많은지 물어보세요. 각자 다른 답변이 돌아오겠죠.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모든 드라마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 취향대로 선택하죠. 굳이 하나 고르라면 제가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다모>입니다.”
이곳에서 참치 어획 쿼터를 정하는 핵심인사가 한국인이란 사실도 의외였다. 해양수산부 국제교섭관을 역임한 소성권(蘇聖卷) 박사는 2004년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 초대 과학위원회 의장을 거쳐 2006년부터 과학관으로 선정돼 7년째 폰페이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함께 만난 교민이 “2년 동안 폰페이 살면서 기자가 온 것은 처음 본다”고 하자 “나는 7년 살면서 처음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많은 이가 ‘태평양시대’라고 호언하지만, 제대로 이곳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태평양은 일주일 둘러보고 안다고 할 수 없는 곳이에요. 최소 3년은 살아봐야 대충 이해가 됩니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은 기획의 수명이 짧아요. 예전에 해양수산부에 근무할 때 장관이 8번 바뀌니 업무보고 하다가 시간이 다 가더군요. 뭐든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는 곳이 태평양입니다.”
소 박사는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는 게 문제냐”는 질문에 “수박 겉핥기마저도 안 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답했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에서 거창하게 와서 자동차 몇 대, 컴퓨터 몇 대 주고 갑니다. 그리고 수익과 효율을 따지더군요. 태평양에 대한 무지가 빚은 결과입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한 번 오면 5년 이상 머무릅니다. 섬을 돌면서 연구지원, 감시·감독, 기술이전 등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공항을 짓고 섬 일주도로도 닦아주죠. 중국은 정부청사를 짓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습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란 개념이 폰페이엔 없다. 산과 바다엔 먹을 게 넘쳐나고 추위가 없어 난방을 위해 돈을 모을 필요도 없다. 소유가 없어도 생존이 가능한 ‘낙원’에선 ‘기획’과 ‘경영’이란 말이 무의미하다. 자동차가 필요하면 몇 년 바짝 일하고 차를 산 후 일을 그만둔다. 소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 정부와 일부 기업이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정책과 사업을 시도합니다. 한국인은 약속은 많이 하는데 정작 이행을 하지 않아요. 섬 주민들도 이제 알 만큼 다 압니다. 긍정적인 계획은 발표되는데 결과물이 안 나와요. 그나마 한국기업이 대체로 잘 해왔는데, 이젠 이곳 사람들이 기업을 넘어 정부 차원의 교섭을 원하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입니다.”
태평양 최고(最古) 해양유적 ‘난마돌’의 ‘난다우와스 무덤’ 모습. ⓒ김정우
티 내는 日, 묵묵한 中, 아무것도 안 하는 韓
중국은 최근 마이크로네시아 섬들에 ‘무한정’ 베풀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지원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단 차이는 일본은 자신들이 어떤 부분을 얼마만큼 지원하고 투자했는지 모두 기록하고 언급한다. 하지만 중국은 자신들의 ‘지원성과’에 대해 일언반구 없다고 한다. 소 박사의 설명이다.
“대국이라 스케일이 다른가 봅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뭘 지원했는지도 잘 모릅니다. 이곳에선 중국 방식이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어요. 원조에 대해 홍보하는 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근무하는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 건물도 알게 모르게 중국이 지었죠. 그런데 한국은 지원도 제대로 안 하면서 티부터 내려고 하니 역효과가 나는 겁니다. 고생하던 시절 원조도 받아본 나라가 왜 당시 입장을 생각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류로 좋게 키운 이미지를 전혀 활용 못 하고 있는 셈이죠.”
소 박사는 태평양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원조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키리바시(Kiribati)나 마셜제도와 같은 환초는 식수가 항상 부족하고, 태평양 대다수 섬은 전기가 절실하다. 비싼 전기료 때문에 폰페이의 경우 도심에 사는 4000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기 보급이 되지 않는다. 소 박사는 “대충 한 번 둘러보고 지피지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지(奧地)같이 보이지만, 한류 열풍이 엄청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어떤 사안이든 전략을 철저히 세우고 책임감, 계획성, 지속성을 갖고 추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소 박사가 일하는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는 UN해양법(UNCLOS) 이행협약에 따라 설립된 수산관리기구로 총 43개국이 220만t의 고도회유 어종을 두고 쿼터를 정한다. 이는 태평양 전체의 80%, 전 세계의 55% 규모로 도매가 기준 총 55억 달러의 가치다. 과거엔 월별 또는 잡은 양만큼 금액을 계산했지만, 지금은 날수로 정한다. 국가별로 보유한 연간 6000일이나 8000일 정도의 배당량을 두고 하루 6500달러부터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과 타이완은 아무리 작은 지원이라도 흔적을 반드시 남긴다. ⓒ김정우
“어업 협상은 정부가 나서야”
폰페이에 진출한 주요 한국기업으로는 동원산업이 있다. 2005년 괌에서 폰페이로 이전한 기지에 현재 한국인 2명과 현지인 1명 등 총 3명이 근무 중이며 선박 수리와 선원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 박태선(朴泰善) 사무소장은 2년째 폰페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과거엔 입어료만 주면 마음껏 잡아서 실어나를 수 있었는데, 요즘은 현지 정부가 여러 조건을 제시한다”며 “최근 부쩍 늘어난 유학파 엘리트를 상대하기 위해선 치밀한 전략과 섬세한 협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정희(兪靜熹) 주임은 “원양협회가 주도하는 한국과, 국가 차원에서 나서는 일본, 중국, 타이완은 경쟁이 되기 어렵다”며 “한국도 협회의 베테랑과 정부의 엘리트가 함께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유 주임은 6월 초 한국에 복귀했다가 한 달 후 아프리카 동부의 세이셸(Seychelles) 기지로 떠날 예정이다.
동원산업 폰페이사무소의 박태선 소장(왼쪽)과 유정희 주임. ⓒ김정우
유 주임은 폰페이에 머무른 1년간 현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복싱을 가르쳤다. 고교시절 대회 준우승까지 획득한 강사 덕분에 실력이 좋아진 아이들은 남태평양 올림픽에 출전할 계획이다. 이 과정이 현지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폰페이 청소년들 사이에 ‘복싱 열풍’이 불기도 했다. 유 주임의 말이다.
“1년 전만 해도 농구와 소프트볼 외엔 다른 스포츠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 끝나면 길거리에 모여 담배 피우고 잡담하는 게 전부였죠. 이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시작했는데,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올림픽위원회 측에서 정식으로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왔고 정부에선 체육관 시설을 지원해 줬습니다. 결국 한국 본사에 연락해 각종 복싱기구를 후원받아 여기까지 오게 됐죠.”
‘신도쿄(新東京)의과대학’은 적도 태평양에서 유일한 의과대학이다. 학교를 지어 운영하는 사람은 엉뚱하게도 일본인이 아니라 크리스천 홍(Hong)이란 이름의 재미교포 출신 한인이었다. 홍 원장은 국내 한 의과대학 재직 시절 폰페이 진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학교 측 사정으로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대학과 계약을 맺었지만, 그마저도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신도쿄’란 대학명을 걸게 된 후라 일본과 관련 없는 일본식 이름의 대학을 세운 것이다.
유정희씨의 복싱 나눔은 폰페이 현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청소년들의 ‘복싱 열풍’을 불러왔다.
태평양 最古 해양문명 유적
홍 원장은 “오랫동안 생선과 과일만 먹던 사람들이 서구화한 식습관을 가지면서 성인병이 많이 증가했다”며 “큰 병에 걸릴 경우 괌이나 하와이까지 가야 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영리 교육기관을 세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폰페이 정도의 인구라면 400명 정도의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식의사는 딱 3명뿐입니다. 폰페이뿐 아니라 대다수 태평양 도서국의 상황이 비슷합니다. 현재 학생 정원 20명에 교직원 5명이 1기생으로 학기가 진행 중입니다. 첫 기수 선발 때 축과 팔라우 등까지 소문이 나서 38명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이들이 졸업할 때쯤이면 이곳 의료 환경도 많이 좋아지겠죠.”
교포들과의 만남을 마친 후 폰페이섬을 한 바퀴 돌았다. 4시간 정도면 일주할 수 있을 만큼 도로 사정은 꽤 좋았다. 일주도로는 일정 간격마다 일본인이 건설했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폰페이의 도심 콜로니아에서 동쪽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가면 태평양 최고(最古)의 해양문명 유적인 난마돌이 등장한다. 사각형 모양의 93개 인공섬이 바닷가에 배치돼 ‘태평양의 베니스’로 불린다. 주강현(朱剛玄) 제주대 초빙교수는 저서 《적도의 침묵》에서 난마돌에 대해 “구전 역사의 판타지와 진실이라는 파트너가 만나는 곳”이라며 “왕들이 바뀌면서 난마돌 전통을 차츰 쌓아갔으며, 축조 자체가 역사가 됐다”고 표현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육각의 돌기둥들, 빈틈없이 채워나간 돌기둥의 숨 가쁜 밀도, 사람의 힘으로 옮기려면 엄청나게 힘들었을 기단의 장중한 거석들, 날렵하게 올라간 성곽의 꼭대기, 빈틈없이 미학적으로 교차시켜 쌓아올린 모퉁이, 그리고 무엇보다 물가에 비친 옛 왕조의 그림자가 복잡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큰 기대를 안고 도착한 유적의 현장은 초라하고 복잡했다. 도로변 단출한 표지를 따라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면 더 이상의 표식이나 간판은 찾을 수 없다. 갈림길에서 운이 안 좋으면 엉뚱한 해변까지 한창 역주행을 해야 한다. 30여 분을 헤매다 작은 민가 앞에 선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적도 태평양에서 유일한 의과대학인 신도쿄의과대학의 크리스천 홍 원장(앞줄 오른쪽)과 교수 및 학생들. ⓒ김정우
난마돌 왕조
자신을 추장의 딸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제대로 길을 찾아왔다며 집 바로 뒤에 유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1인당 4달러의 통행료를 요구하며 유적 출입구에 있는 추장 부인에겐 추가로 3달러씩 더 내야 한다고 했다. 문화재 관람 시스템이 전무한 폰페이에선 유적 입구에 자리한 부족 측에 돈을 지불하는 관행이 있다.
유적 길목엔 작은 집 몇 채가 있었고, 주민 10여 명이 나무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입구에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3명 입장료로 10달러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자, 노파는 악수까지 하며 연방 ‘생큐’를 반복했다. 안내지나 입장권이 없는 곳이라 실제 ‘정가(定價)’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행이 현행법을 앞서는 섬에선 유적의 관할권이 사실상 추장에게 있다.
기념품 상점 하나 없는 입구를 지나 천연의 유적 속에 들어서면, 입장료 몇 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유적은 거대한 돌과 백산호(白珊瑚)의 조합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웅장함을 드러냈다. 울창하게 우거진 맹그로브(mangrove)숲 사이로 펼쳐진 인공 운하를 15분 정도 건너다 보면 유적의 ‘절정’인 난다우와스(Nandauwas)의 무덤에 다다른다.
거대한 석조 건축물 앞엔 때마침 물때를 맞아 바닷물이 들어왔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건너 유적 안으로 들어섰다. 현대적 안내판이나 관람로가 따로 없는 곳이라 모든 것을 상상에 맡겨야 했다. 담 너머 바다를 보기 위해 미로같이 얽힌 통로를 헤매다 결국엔 맨발로 담을 넘었다. 대략 5세기부터 약 1000년 동안 이곳을 다스렸다는 난마돌 왕조의 전사(戰士)가 된 느낌이었다.
난마돌에 대해 과거 현지에서 기록된 문헌은 없다. 난마돌이란 말이 폰페이 말로 ‘사이의 공간’, 즉 운하를 뜻한다는 것 외엔 모든 것이 추측이다. 난마돌의 원래 이름인 ‘소운 난-렝(Soun Nan-leng)’을 두고 연구자에 따라 ‘천국의 암초’란 뜻과 ‘하늘의 지붕’이란 뜻이 엇갈린다. 작게는 1t, 큰 것은 50t에 이르는 정교한 돌들은 섬 반대편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불가사의 같은 건축물 자체가 문자를 넘어선 기록인 셈이다.
난마돌 유적지에서 만난 제이(Jay) 군과 그 가족들. 폰페이의 청소년과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김정우
“정부청사 담 넘으면 다른 나라”
마침 10여 명의 가족이 소풍을 나와 난마돌을 둘러보고 있었다. 기자 일행을 제외한 유일한 관람객이었다. 자신을 제이(Jay)라고 소개한 16세 소년은 유적이 아주 흥미롭다고 했다. 하지만 유적의 배경이나 역사에 대해 따로 배운 기억은 없었다.
‘미지(未知)의 유적’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마저 돌았다. 도심인 콜로니아에 이를 즈음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수도인 팔리키르가 나타났다. 잘 정돈된 숲 속에 미국식 디자인으로 넓게 지어진 연방정부청사 건물들은 섬나라의 여유와 연대를 상징하는 듯했다.
정부에서 처음 기자 일행을 맞이한 로린 로버트(Robert) 외교장관은 능변가였다. 태평양 섬나라들에 대한 어려운 개념들을 비유와 농담으로 잘 표현해 냈다. 마침 인터뷰를 한 날이 북한이 핵실험과 도발 강도를 높여가던 시점이었다. 그는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에 국한된 위협이 아니라, 태평양을 두고 마주한 마이크로네시아연방에도 중요한 이슈”라며 이날 오전 한국 외교부에 보낸 서한을 보여줬다.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연방정부의 특성상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국가 기반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섬마다 추장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8개 언어와 30여 개의 방언이 존재하는 섬들을 국가로 유지하기 위해선 힘을 분배할 수밖에 없다.
“이곳 중앙 정부를 작게 만들고 정치적 힘은 지역에 나눠주는 방식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다르죠. 이를 적절하게 조절해 중앙과 지방의 문화를 모두 보전하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섬나라에선 이런 국가 운영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중앙 정부가 워낙 작으니까, 저희끼리 농담으로 ‘청사 담만 벗어나면 다른 나라’란 농담을 합니다.”
로버트 장관은 현재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가장 큰 외교적 화두로 미국과의 자유연합협정을 꼽았다. 2023년 이후 미국의 원조가 불확실해지면, 10년 동안 연방정부가 어떤 외교·경제 정책을 펼쳐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크다고 했다. 최근 태평양의 새로운 패권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가능성을 물었지만, 아직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정도는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로린 로버트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외교장관. ⓒ김정우
“한국은 쌍둥이 국가”
“미국과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1945년부터 76년까지 이곳을 신탁통치했죠. 86년 독립 후에도 2023년까지 경제적 원조를 하기로 계약해 지금까지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이를 한번에 버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로버트 장관은 서구 문명의 도입 이후 마이크로네시아 섬들을 점령했던 강대국들을 두고 그 성격을 ‘4G’로 설명했다.
“처음 이곳에 온 스페인은 신(神)을 위해(for God) 왔고, 그다음 독일은 돈을 위해(for Gold) 왔죠. 일본은 그네들의 영광을 위해(for Glory) 왔고, 미국은 그냥 영원히(for good) 머물려고 왔습니다. 그만큼 역사상 미국이 가장 큰 역할을 이곳에 했죠.”
현재 미국이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중국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적도 북쪽 태평양 도서국 중 중국과 수교한 유일한 국가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로버트 장관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과 최근의 정치적 변화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앞으로 이곳에 가능한 원조 규모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것은 이곳에서도 잘 압니다. 하지만 외교 방향이 크게 틀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중국의 급변하는 정치·경제적 환경은 대중(對中) 외교를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미국은 국방을 담당할 정도로 가장 특별한 존재죠. 한국도 상당히 특별한 관계가 됐으면 합니다.”
로버트 장관은 대뜸 “한국과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쌍둥이 국가”라고 했다. 같은 해에 UN에 가입했다는 이유였다. 양국은 1991년 수교 이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특히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그는 2011년 ‘제1차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는데, 비슷한 점을 많이 봤다고 했다.
“원조를 받던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원조를 주는 경제 대국이 된 것은 여러 태평양 도서국들에 큰 귀감이 됐습니다. 우리와 한국은 비슷한 시기에 일제의 통치를 받고, 전쟁터가 된 경험이 있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도움이 큰 의미가 있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 알릭 알릭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부통령
“2023년 美 원조 종료… 韓 주도 외교장관회의에 큰 기대”
알릭 알릭(Alik)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부통령. ⓒ김정우
알릭 알릭(Alik) 부통령에게 성과 이름이 같은 이유를 묻자 섬나라에선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전날 점심을 먹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기 때문에 초면은 아니었다. 11만 인구의 나라에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알릭 부통령은 여느 태평양 도서국과는 달리,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국가로 엮인 연방국임을 강조했다. 그는 4개 주 중 가장 작은 섬인 코스라이 출신이다. 608개의 섬을 함께 묶어 소통하는 게 어렵지만,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경제수역을 보유한 나라로서 자부심도 있다고 했다. 잘 정돈된 연방정부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3년에 미국의 원조가 끝나는데, 그 후 국가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마침 지난주 정부 고위인사들로 특별자문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2023년 이후를 논하기 위해서였죠. 물론 미국에서 오는 모든 지원자금이 끊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종료되는 것이죠. 이제 막 시작한 협의 단계이긴 하지만, 자문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구상하고 구체적 계획을 세울 예정입니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미국 의회가 결정하는 여러 방식의 원조를 세분화하고 다양화하는 것이죠. 국내 지출도 줄이고, 미국 이외 나라들의 투자도 적극 유치할 계획입니다. 특히 한국 투자자들에게 이곳을 고려해 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제 고향인 코스라이 공항도 한국 기업이 지은 것으로 압니다(1983년 공영토건이 건설).”
—한국은 2011년부터 외교장관회의 개최 등을 통해 태평양 도서국과의 관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양국관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습니까.
“과거 8년간 주(駐)피지 대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어 국제사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당시 한국 대사와도 친분이 두터웠죠. 지구온난화와 수산업은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외교장관회의는 아주 새로운 시도라고 봅니다. 한국에 특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비전을 설명해 주십시오.
“경제 발전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신흥국가이기 때문에 정치 수준도 초기단계이지만, 그보다 우선이 경제입니다. 2023년에 끝나는 기금 해결도 큰 화두입니다.”
월간조선 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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