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6일 밤 10시50분 서울역 대합실, 막 술판을 벌이려던 노숙자들에게 철도공안요원이 주의를 준다.
『아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안 됩니다. 어서 치워 주세요. 역내는 금주·금연입니다』
술 한 잔만 하겠다던 이들은 공안들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지만, 큰 소란 없이 곧 흩어졌다.
일본 최대 노숙자 집결지였던 도쿄 우에노공원. |
「짤짤이」판
5분 후, 자리에 남아 있던 한 남자가 다시 담뱃불을 붙인다. 조금 전 담배 때문에 주의를 받았던 安모(41)씨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담배를 숨겼지만, 곳곳에 배치된 공안요원의 눈을 피하긴 어려웠다. 安씨는 결국 공안요원과 함께 사무실로 동행해야 했다.
서쪽 출구 옆 물레방아 조형물 뒤에선 일명 「짤짤이」판이 벌어졌다. 삼삼오오 모인 그들은 공안이나 공익근무요원이 올까 망을 보며 100원짜리 동전을 흔들고 있었다.
한 60代 노인은 형형색색의 옷과 머리스타일을 뽐내며 그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의 손엔 흰 쌀 한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얼핏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개성이 넘친다.
5분이 지나자 철도공안 사무실로 갔던 安씨가 다시 돌아왔다. 별일 아니었다는 듯 웃으며 소주 한 잔을 몰래 따라 마신다.
바로 옆 의자에는 52세 崔모씨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노숙을 막으려고 만든 팔걸이를 베개 삼아 누운 그의 모습이 나름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합실 한쪽이 삶의 터전이 된 그들과, 그 옆을 무심하게 지나가는 시민들, 이젠 당연한 일상이 된 서울역의 풍경이다.
매일밤 300여 명 노숙자가 「서울의 관문」을 점령하고 있었다.
『11시 정각에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막차 안내방송이 나오자, 공익근무요원들이 노숙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청소 시간입니다. 나갔다가 들어와 주세요. 어서요』
수백 명이 모두 이동해야 하는데 만만치가 않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기차 곧 탈 거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술에 취해 人事不省(인사불성)이 된 한 남자는 의자 위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안 되겠다, 끌어』
공익근무요원에 끌려가는 노숙자
노숙자들이 점령한 서울역 대합실 전경. |
수차례 큰 소리로 깨우던 직원이 결국 마지막 방법을 택했다. 공익근무요원 두 명이 그의 양팔을 붙잡아 의자에서 들어올린다. 자그마한 체구의 60代 남자는 앉은 자세로 끌려 나갔다.
『저 어른 원래 멀쩡한 사람이었어요. 노숙하기 전엔 완전 엘리트였다는데…』
함께 지켜보던 한 남자가 말을 걸어 왔다. 옷차림은 깨끗한 편이었고, 나이가 꽤 젊어 보였다.
『원래 K대학 법대를 나왔대요. 잘 살다가 사업이 망해서 잠시 노숙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다쳐 버린 겁니다. 그 후론 저렇게 항상 술에 찌들어 잠만 자요』
기자라고 소개한 후 취재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金씨」라고 소개하며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자고 한다.
『저는 이곳에 온 지 4개월쯤 돼 갑니다. 아직 신참이죠』
─왜 노숙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양말장사를 1년 정도 했어요. 오토바이를 몰면서 했는데 돈도 꽤 벌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여름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팔을 다쳤습니다. 그 후로 일을 제대로 못 하고 돌아다니다 이렇게 된 거죠』
그는 원래 집이 부산이었다. 공업高를 졸업한 후 대학에 갔지만 잘 안 맞아서 백화점 근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양말장사를 시작했다.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주민등록상으론 1970년생(38)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몰라요』
─왜 그런가요.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곧바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사고로 다친 팔 때문에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한눈에 봐도 왼팔은 완전 마비였다.
『서른 살 때 작은 사고를 당해 보건소에 갔습니다. DNA 검사 할 일이 있어 했는데,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거예요. 30년 동안 믿었는데 충격이었죠. 생모가 따로 있다는데,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복잡합니다』
金씨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지금은 정년퇴임했고,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운 사정은 아니다.
『그런데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좀 생겨 몇 해 전부터 별거 중이에요. 저하고도 안 좋은 일이 있고 해서 부산엔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노숙할 생각입니까.
『곧 들어가야죠. 작년부터 2급장애인으로 등록돼 돈이 좀 나옵니다. 새벽에 일할 사람 구하러 오니까 내일 부지런히 일어나서 가봐야죠. 오늘 오전에도 이삿짐센터 가서 일하고 왔어요』
술판에 고성 오가
홈리스들이 나간 자리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한다. |
그는 숙식 제공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노숙자와 일반인, 이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 구분하잖아요. 저는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다시 성공해 잘살 수 있습니다』
다음날 밤, 서울역을 다시 찾았다. 분위기는 여전했다.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고성이 여기저기 오갔다. 날씨가 좀 풀려서인지 서울역 광장 주변에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광장 한 곳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술에 취한 노숙자끼리 한 물건을 놓고 서로 시비가 붙은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말리기도 하고, 몇몇은 계속 술을 마신다. 한쪽에선 무심하게 자기의 일을 보고, 추운 바닥에 누워 자는 이들도 있다.
한 아랍계 외국인이 이 장면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사이드」라 소개한 그는 『세계 어느 나라든 「홈리스」는 존재한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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