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앙통계국은 『평양 580mm를 비롯해, 북한 중남부지역에 최고 700mm 이상의 비가 내렸다』고 발표했다. 폭우로 인해 600여 명이 사망·실종됐고, 9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4만여 가구의 주택이 파괴 또는 침수 됐고, 20만여 정보(1정보=약 1ha)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다. 도로 약 600km가 파괴됐다.
「100년 만의 홍수」라는 1995년 수해가 12년 만에 再演(재연)된 것이다. 지난 12년간 북한에서는, 매년 여름 내린 집중호우로 수백 명이 사망·실종되고 시설과 농경지가 침수됐다.
북한은 결코 먼 나라가 아니다. 서울과 평양의 직선거리는 194km이다. 불과 1주일의 집중호우에 북한은 全국토가 물바다가 됐다. 이에 비해 7~8월 두 달 내내 비가 내린 남한지역은 일부 지역에서만 침수 피해가 일어났을 뿐이다. 결과는 왜 이렇게 다를까?
국가 인프라와 관련
국립기상연구소 權琬台(권원태) 기후연구팀장은 『북한에 비가 많이 내리기는 했다』고 분석했다.
―경기도 포천지역에 600mm 이상의 비가 내렸는데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강수량이 수해의 큰 요인 중 하나지만, 비가 내린 지역과 시간을 고려해야 합니다. 경기 북부지역은 워낙 수해를 많이 겪어 대비가 잘 돼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피해가 커집니까.
『국지성 폭우의 피해가 분명 크지만, 이번 수해처럼 넓은 지역에 걸쳐 내린 호우가 많은 피해를 불러옵니다』
―한국과 북한의 비 피해 규모 차이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피해 결과는 국가 인프라와 관련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인프라가 취약해 많이 고생했지요.
1990년 9월13일경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 300~400mm의 비가 내렸어요. 강수량이 많긴 했지만, 한강둑이 터져서 피해가 더 커졌습니다』
權팀장은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1990년 중앙재해대책본부와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사망 93명, 실종 44명 등 137명의 인명피해가 났고, 4만5000가구 16만4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유실된 제방은 흙과 모래를 쌓아 만든 원시형태의 둑이었다고 한다.
―남한에서 비가 800mm 이상 온 적이 있습니까.
『2002년 태풍 「루사」 때 많이 왔습니다. 8월31일 하루 동안 강원도 강릉에 870.5mm의 폭우가 내렸어요. 1일 강수량으로 역대 최고입니다. 특히 영동지방의 피해가 컸습니다』
權팀장을 만난 지난 8월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마침 「기후변화 전문가 워크숍」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 열린 워크숍은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주관한 학술대회로, 국내 전문가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워크숍에서 북한 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발표는 없었다. 정확한 데이터 수집이 어렵기 때문이다. 權팀장의 설명이다.
『기후연구는 현지 데이터가 필수입니다. 위성이 모두 볼 수 있는 시대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2차원일 뿐이에요. 북한 기상 자료는 대부분 북한이 발표한 자료를 그대로 받은 것입니다』
이번 수해로 북한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좀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탈북자들 가운데, 최근 북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을 만났다. 탈북자동지회 李海永(이해영) 사무국장은 『이번 수해 때 춤춘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수해의 가장 큰 수혜자는 金正日』
李海永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600명이 죽었는데 누가 춤을 추겠습니까.
『매년 수천, 수만 명이 굶어 죽어 나가는데 600명 더 죽는다고 다를 게 있겠습니까? 金正日과 남한 일부 세력들은 몰래 춤을 췄을 거예요. 하늘이 돕는구나 하면서요. 남북頂上회담을 연기했지 않습니까? 세계 각국으로부터 구호물자를 지원받았죠. 일석이조죠. 이번 水害(수해)의 가장 큰 受惠者(수혜자)는 金正日이에요』
―이번 水害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요즘 날씨가 참 예측하기 어렵죠. 비가 많이 오긴 했습니다. 그럴수록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시설을 보완해야 하는데, 북한은 지금 그럴 형편이 못 됩니다』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벌건 북한의 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북한에 나무 없어진 지는 꽤 오래됐죠. 金日成이 예전에 「알곡 1000만t 고지」를 목표로 내세우면서, 산을 중턱까지 다 파헤쳐 「다락밭」을 만들었어요. 거기에 땔감 쓴다고 나무를 다 뽑아 버리니 산이 모두 민둥산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토사가 쉽게 씻겨 내려간다. 그 흙이 논밭을 망가뜨리고 강까지 흘러 강바닥을 높인다. 제방시설이 빈약한 북한의 강은 쉽게 범람하고, 이로 인해 침수피해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제가 남한에 왔을 때 숲이 우거진 산이 제일 놀라웠어요. 숲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한반도가 원래 이렇게 나무가 많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하늘에서 내린 비가 아니라 金正日이 내린 비입니다. 人災(인재)가 확실하죠』
탈북자 車모씨는 평양에 살던 당시 겪었던 「큰물(홍수)」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원물자나 배급은 꿈도 못 꿔
북한 다락밭의 모습. |
『큰 홍수를 세 번 겪었습니다. 2000년, 1997년, 그리고 1967년이었지요. 대동강이 넘쳐 하수도가 역류하고, 도로가 물에 잠기고… 그런데 대책이 전혀 없었습니다. 도로와 철도는 군인들과 인민을 동원해서 복구하는데, 民家(민가)는 완전 속수무책이에요』
―주민들끼리 자발적으로 하면 안 됩니까.
『그럴 생각들을 전혀 못 합니다. 북한엔 자발적으로 뭘 하는 게 없어요. 그저 물 빠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일단 水害가 나면 배급이 끊긴다. 지원물자는 『꿈도 못 꾼다』고 한다. 약품과 식량이 없어 인명피해가 늘어나고, 그만큼 대책이 늦어지게 된다.
평양의 산은 그나마 나무가 꽤 있는 편이다. 당이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車씨는 『「북조선의 천당」이라 불리는 평양이 이 모양인데 다른 지역은 오죽하겠냐』며 『매년 홍수와 가뭄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땔감과 뙈기밭
金聖珉 자유북한방송 대표. |
2003년 함경북도에서 탈북한 金모씨의 말이다.
『나무는 정말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도 탈북하기 직전까지 고생했지요. 특히 겨울엔 땔감이 큰 걱정이었습니다』
金씨는 북한에 있을 때, 매일 새벽 2시에 집을 나와 90리 길을 걸었다. 가까운 곳에 생나무 몇 그루가 있었지만, 단속 때문에 하루 종일 리어카를 끌고 가 죽은 나무들을 모아 왔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金日成은 「한 그루 찍으면 100그루 심으라」고 했습니다. 요즘 북한에선 한 그루 심고 100그루 찍는다고 볼 수 있죠』
그는 땔감과 함께 「뙈기밭」을 산림황폐화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뙈기밭이란, 개인이 산간이나 공터를 개간해 경작하는 밭으로서 일명 「소토지」라고 한다. 처음에는 단속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식량난 심화로 인해 공공연히 묵인되고 있다.
『다락밭보다 더 심각한 것이 뙈기밭입니다. 산꼭대기까지 밭으로 만들어 버리니 남아날 나무가 없어요』
金聖珉(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의 증언이다.
『군단사령부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황해북도 신계에서는 매년 홍수가 왔습니다. 비가 오면 장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압니까? 자신의 짐 꾸러미를 높은 곳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병력을 동원해서 대책을 세우지 않습니까.
『그럴 단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중장비를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삽 몇 자루 들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군단장부터 소위까지 다 똑같습니다. 짐부터 옮겨요』
― 신계지역도 나무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나무가 너무 많아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어요. 당시 거주 인구가 단 세 가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10년 사이에 그 울창하던 숲이 사라진 거죠』
―다른 지방은 어떻습니까.
『금강산 발전소 댐 공사현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남한에선 1년이 안 걸릴 공사를 12년 동안 끌더군요』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요.
『장비가 없기 때문에 맨손으로 합니다. 沙石(사석: 모래와 자갈)들을 쏟아 부었는데 문제는 비가 조금만 오면 계곡물이 불어나 다 쓸어가 버린다는 거죠』
함경남도 함흥 주민들이 폭우로 파괴된 강변도로를 보수하고 있다(AFP=연합뉴스). |
『피해상황 공개는 金正日이 결정』
―물이 빠진 후엔 어떻게 합니까.
『계속 반복합니다. 쌓고 무너지고, 쌓고 무너지고…. 무너질 때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줄 압니까? 모두 대성통곡하며 웁니다. 장령(장성), 군관(장교), 사병(병사) 가릴 것 없이 모두 땅을 치며 울어요. 그리고는 물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이번 북한의 水害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요.
『비가 많이 온 건 확실합니다. 제가 평양 옥류교 부근에서 자랐습니다. 1967년 대홍수 때 물이 옥류교까지 닿을 정도였죠. 이번에 사진을 보니 거의 비슷하게 닿았더군요』
내린 비는 비슷하지만 북한의 대처가 이번에는 달랐다. 방대한 양의 수해피해 사진과 보도자료를 외부세계에 공개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사회주의에 反한다는 이유로 사건·사고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5년 대홍수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기 위해 피해상황을 일부 공개해 왔다.
『북한에선 「이때다!」 한 거죠. 이렇게 많은 자료가 나온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작업하는 현장까지 찍어 조직적인 국제홍보를 했어요. 아마 金正日의 지시가 있었을 겁니다』
金대표는 이러한 북한의 변화가 남북頂上회담 연기와 무관하지 않다며, 수해를 악용하는 북한의 행태를 비판했다.
고려大 북한학과 柳浩烈(유호열) 교수는 「이번 수해로 인해 모든 상황이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됐다」고 분석했다.
『頂上회담 연기의 1차적인 이유는 수해가 맞다고 봅니다. 비가 많이 왔고, 피해가 컸어요. 북한은 이 모든 것을 정치적·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동정여론을 불러일으켜 체제유지와 경제지원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죠』
柳교수는 『8월보다는 10월에 열릴 頂上회담이 大選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며 『이번 수해로 인해 北核문제 논의가 희석되고 북한은 이미지 개선 효과를 얻었다』고 했다.
2조원 피해 막기 위해 3조원 투입
북한 농업출판사에서 발행한「기상과 수문」. |
우리나라의 수해방지대책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국립방재연구소의 沈在鉉(심재현) 풍수해정책팀장은 『우리의 수방대책이 미국·일본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재난은 기후·지형·국가대책 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풍수해 피해는 주로 여름철에 강우량이 집중되는 「기상학적 원인」과 全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구성된 「지형학적 원인」으로 구분됩니다. 예전엔 수해 피해가 컸는데 지금은 꽤 나아진 편입니다』
―북한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도시는 주로 하천 하류에 형성됩니다. 수자원 공급이 용이하기 때문이죠. 평양과 서울 모두 비슷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沈팀장은 『서울과 평양 모두 하류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수해가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몇십 년 전까지는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우리도 수해를 자주 겪었죠. 그런데 꾸준히 대책을 세운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그럴 형편이 안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방법으로 개선하고 있습니까.
『풍수해로 인한 우리나라 연간 피해액 규모가 약 2조원입니다. 풍해보다는 거의 수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2조원의 피해를 막기 위해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요. 선진국의 방식입니다』
沈在鉉 국립방재연구소 풍수해정책팀장. |
―다른 국가들도 그렇게 합니까.
『일본정부와 민간에서 수해방지를 위해 매년 4조 엔을 씁니다. 내진설계·건설비용까지 포함된 비용입니다. 섬이라는 위치적 요건과 지진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도 피해는 우리나라보다 더 큽니다』
―북한 수해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재난방지대책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1960~1970년대 수준으로 알고 있어요. 지형과 기후도 남한보다 절대 유리하지 않고요』
―산림훼손이 수해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입니까.
『상당히 큰 원인을 차지합니다. 녹지 1ha를 아스팔트로 개발한 경우, 30년에 한 번 내릴 정도의 큰비(대략 시간당 30~40mm)가 내리면 110~130t의 물이 더 불어납니다. 즉, 11~13mm의 비가 더 내린 것과 마찬가지죠』
―북한은 어느 정도 예산이면 완전 복구되겠습니까.
『재난대책은 지형과 기후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대책이 모두 다르죠. 별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기후가 좋아 피해가 없는 지역이 있는 반면 매년 피해가 속출하는 곳이 있고요.
나무심기운동에서 양묘장 건설 사업으로
이운식 겨레의숲 사무처장. |
몇 차례 물난리를 겪은 경기도 문산의 경우 1700억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압니다. 그 정도 투자하니 피해가 줄어들었죠.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북한을 완전복구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할 겁니다』
북한 산림복구를 앞당기기 위한 민간단체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4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의숲」 등 20여 개 민간단체가 「겨레의숲」이라는 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양묘장 건설, 남북공동 나무심기, 산림 병해충 방제 등 對北 조림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여 개 양묘장과 연간 5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이들이 계획하는 對北 산림녹화 사업 기간은 10년이며, 2007년 예산은 약 26억원이다. 이운식 겨레의숲 사무처장과 조민성 평화의숲 사무처장을 차례로 만났다.
『북한 전체 산림 750만ha 중 약 20%인 160만ha가 민둥산입니다. 복구하려면 5억 그루 이상의 나무가 필요합니다』
이운식 사무처장은 『일회적인 나무심기 행사보다 양묘장 건설을 통한 장기적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했다.
『10만~20만 그루씩 나무를 심어서 산림황폐화를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희는 양묘장 조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묘목은 운송이 중요합니다. 나무심기행사를 할 때 남한에서 먼 거리를 갈 경우 많은 양의 묘목이 죽게 돼요. 양묘장을 북한지역에 조성하면 바로 옮겨 심을 수 있죠. 10ha의 양묘장 하나가 연간 150만 그루의 묘목을 생산해 냅니다』
―북한의 양묘장 실태는 어떻습니까.
『처음 가서 보니 쓸 만한 양묘장은 거의 없었습니다. 기술력·자재·비료·장비 등 모든 면에서 열악했어요』
―지원사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습니까.
『올해 다섯 개 이상의 양묘장을 조성할 계획이었는데, 여러 정세와 이번 수해 등의 이유로 조금씩 지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측의 복구 의지가 상당히 높습니다. 지난 4월, 평양에 가니 노동신문 1면에 산림녹화 기사가 있더군요. 예년에 비해 노동당의 관심이 높습니다. 그만큼 절실해진 거죠』
―산림황폐화가 수해에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요.
『산림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겠죠.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종합적 개발 복구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기구는 물론 남한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우리나라가 산림녹화의 성공 사례로 꼽히지 않습니까』
조민성 평화의숲 사무처장. |
한국은 세계 4대 造林(조림) 성공국이다. 1960~1970년대 산림녹화사업을 통해 100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朴正熙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대체 연료 보급이 만들어 낸 결과다.
조민성 평화의숲 사무처장은 『남한의 축적된 造林 기술을 북한에 전파해야 한다』고 했다.
『가장 가깝고 비슷한 북한의 산림이 황폐화된 것은 역사적 불행입니다. 장기적 지원 계획을 통해 산림복구사업을 전개해야 합니다』
―심어 봤자 다 자라기도 전에 베어 버린다는 우려가 있는데요.
『베는 것보다 더 많이 심어야죠. 양묘장 조성에 더욱 주력해야 하고요. 생선을 주는 것과 동시에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죠』
『선한 의도의 지원이 악한 결과를 낳는다』
李民馥 前 북한농업과학원 연구원. |
李民馥(이민복) 기독북한인연합 대표는 1995년 탈북난민 1호로 남한에 왔다. 그의 원래 직책은 북한농업과학원 연구원이었다. 그와 전화로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던 중, 다소 엉뚱해 보이는 답변을 했다.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린 비가 아니라 金正日이 내린 비」라고 합니다.
『그래요? 지금 이쪽으로 오면 지금 북한에 필요한 「단비」가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禪問答(선문답) 같은 그의 대답에 곧장 강원도 철원으로 갔다. 백마고지 부근의 노동당사 건물 앞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큰 비닐풍선을 꺼내 수소공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일명 「풍선삐라」다. 약 1만 장의 「삐라(전단)」가 풍선에 실려 북쪽 하늘로 날아간다. 타이머가 설치된 비닐풍선은 3~4시간 후 북한 중부 상공에 도착, 자동으로 삐라를 뿌리게 된다.
『이게 북한 수해의 근본적 해결책입니다. 개방을 통한 체제변화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南에서 하는 방식으론 수십~수백억씩 지원해 봐야 홍수와 가뭄은 계속될 거예요』
―국제단체와 남한의 지원을 통해선 해결이 불가능합니까.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죠. 돕는 분들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방법이 非효율적이라는 거죠. 선한 의도의 지원이 악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수해의 원인이 북한체제 자체에 있다는 것인지요.
『治山治水(치산치수)는 나라의 근본입니다. 英祖(영조) 임금이 청계천을 濬川(준천)한 것과 중국 고대국가인 夏(하)·殷(은)·周(주)의 聖君(성군)들이 治山治水에 온 힘을 쏟은 것은 같은 이유입니다. 산과 물을 다스리는 것이 통치의 근간임을 알았던 것이죠. 이는 수천 년이 지난 현재도 유효합니다』
그는 『北 정권교체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治山治水는 나라의 근본』
『남한 사람들이 북한 수해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다락밭이에요. 북한이 다락밭을 산꼭대기까지 올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북한에도 토양연구소가 있고,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저도 거기 있었고요. 대부분의 산중턱까지 16° 이하 경사를 유지했고, 토사를 오히려 막고 있습니다』
―자료 사진엔 온 산이 다락밭으로 뒤덮여 있던데요.
『강동군 봉화리라는 곳입니다. 거긴 하나의 표본으로 산 전체를 다락밭으로 조성했어요. 그 사진만 보고 非전문가들이 싸잡아 이야기하는 게 잘못된 겁니다. 다락밭보다는 뙈기밭이 더 큰 문제입니다. 개인 소토지들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거기에 땔감과 목재로 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니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겁니다』
―그럼 뙈기밭, 대체연료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그런 활동들이 물론 중요하고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효과가 그렇게 크지 못합니다. 「정치쇼」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고요. 제가 「풍선삐라」를 보내는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개성·평양 하늘에 「자유의 비」를 내리는 거죠. 문을 완전히 열어야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 다락밭
경지면적 확장을 위해 산을 계단식으로 개간한 밭. 북한은 1976년 10월 「자연개조 5대방침」을 채택, 다락밭 개간을 본격화했다.
▣ 북한 농업출판사에서 펴낸 연구자료「기상과 수문」
무더기비의 지역화에 대한 연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이상기후현상의 영향으로 가물다가도 무더기비가 내릴 수 있으므로 큰물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도 미리 세워야 합니다.≫
여름철에 무더기비에 의한 큰물피해를 미리 막자면 일기예보에서 시공간적 범위를 잘 선택하고 그 지역예보를 과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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