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보수 네티즌’의 등장
인터넷은 北進 중
⊙ PC통신으로 힘 키운 전교조 세대가 초기 인터넷 문화 장악… 이념투쟁 도구로 이용해
⊙ 감성적 호소와 ‘떼거리’ 문화 선점해 보수논객 공격
⊙ “마지막까지 싸우는 놈이 이기는” 인터넷 특성상 안정된 직장· 바쁜 일상의 보수파는 자리 잡기 어려워
⊙ ‘햇볕정책의 실패’ 목격한 젊은 ‘新보수 네티즌’의 등장으로 새 질서 형성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
이제는 한여름 대학 도서관을 찾아 땀 흘리며 논문 색인을 검색하지 않아도, 책상에서 마우스 클릭만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과거 출판물로는 금기시됐던 각종 정보가 언제부턴가 인터넷을 통해 판도라 상자처럼 열려 쏟아져 나온다.
지식인과 전문인의 전유물이었던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접하다 보니 고급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미네르바’ 같은 대학교수 뺨치는 인터넷형(型) 지식인이 탄생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려 하며,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을 찾아 헤매고 조직화를 시도한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영역이 무한대로 넓어졌다. 우체국까지 가지 않아도 청와대는 물론 백악관까지 항의서한을 보낼 수 있다. 원고지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대중의 평가 속에 스타 작가 또는 논객의 탄생이 가능하다. 정보와 소통의 새 장(場)이 신기루처럼 열렸다.
선전과 선동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급진 좌파(左派)들에게 인터넷이 그 어찌 매력적인 공간이 아닐 수 있겠는가. 첨단기술의 인터넷 속에 ‘감성’이라는 핵심적인 전략 키워드를 간파한 그들은 미개한 식민지에 입성하듯 이념의 무주공산(無主空山)인 인터넷 세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PC통신이 대한민국에 확산한 시기는 1990년대 초다. 초창기 24Kbps(초당 킬로비트) 모뎀으로 한국경제신문사가 운영한 PC통신망 ‘케텔(KETEL)’에서 토론놀이를 벌이던 이들의 수는 수만 명이었다. 1990년대 중반, 케텔은 ‘하이텔’로 바뀌었다. 케텔의 전(前) 직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나우콤의 ‘나우누리’, 후발주자로 삼성SDS의 ‘유니텔’ 등이 등장하며 몇 년간 한국 사회는 파란 화면을 가진 PC통신의 전성기가 이어졌다.
대학들은 수강신청을 PC통신 기반으로 접수 받았고 ‘채팅(chatting)’은 젊은 층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쳐 가는 놀이문화였다. PC통신은 속성상 이용자들이 대부분 10대나 20대의 젊은 층이었고, 젊은이라면 반드시 누려야 할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인터넷 태동기’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시기의 온라인 세상에선 좌파의 영향력이 미약했다. 사용자 수도 그렇거니와 PC통신 자체가 가지는 한계성 때문이었다.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 만한 정보와 소통의 공간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텍스트가 기반인 PC통신엔 인간의 감성이나 시청각을 자극할 만한 도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요즘의 ‘댓글 문화’는 아예 없었다. 토론 성향의 커뮤니티는 그들만이 향유하는 지엽적 성격으로, 그저 학내 대자보를 올리는 수준이었다. 당시는 전자메일의 개념이 보편화하기 전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1990년대 PC통신을 이용하던 세대가 이른바 ‘전교조 세대’라는 점이다. 민중주의 신화(神話)의 잔재가 아직도 짙게 드리워져 있던 시기에 활동한 이 세대는 일정 부분 ‘친북(親北) DNA’를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립 성향의 네티즌들은 좌파에 대한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고, 이념적인 면역력도 약했다.
PC통신이 정보와 소통의 권좌를 본격적으로 인터넷으로 넘겨주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친북 DNA’를 가진 네티즌들은 일제히 인터넷으로 말을 옮겨 타면서 한국사회의 이념지형을 밑바닥부터 흔들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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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전교조 세대’가 주도한 1990년대 PC통신 문화가 2000년대 인터넷으로 넘어오면서 ‘인터넷 좌경화’를 견인했다. 사진은 PC통신 하이텔 접속 화면. |
‘전교조 세대’가 주역이 되기까지
김대중(金大中) 정권은 출범 때부터 정보화를 성장동력으로 삼고 IMF 탈출을 위해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육성했다. 정보화의 기치 아래 대한민국이 들썩이면서 ADSL(비대칭형 디지털 가입자망)이 방방곡곡 깔리기 시작했다. PC통신 시대가 업그레이드하며 인터넷 시대로 진화한 셈이다.
‘전교조 세대’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주역이 됐다. 1989년 전교조 설립과 대량 해직사건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들이 20대 중반의 패기만만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에 전교조 교사들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그들은 스승이 교단에서 쫓겨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교단에 오른 교사들에 의해 조금씩 의식화했고, 해직된 교사들을 그리며 정부에 대한 막연한 반발심을 키웠다. 형과 누나, 언니와 오빠들이 전교조를 위해 명동성당에서 단식하고 농성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민주화의 거센 풍랑을 직접 경험했다.
‘똘이장군’의 북한을 상상하다 임수경(林琇卿) 씨가 북한을 방문하자 ‘북한도 살 만한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갖게 됐다. 수배 중인 미남 운동권 대학생이 여학생들의 우상이 되고,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의 인기순위에서 영화배우 주윤발(周潤發)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이 20대의 성인으로 성장하고 독자적인 행동력을 갖추기 시작한 즈음 인터넷이 확산됐다.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한총련이 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대학가의 좌파세가 본격적으로 꺾이던 무렵이었지만, 전교조 세대는 인터넷에서 실질적인 여론 주도층으로 자리 잡으며 점차 그 존재감과 ‘좌파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루탄과 화염병의 거리에서 역사가 진동하는 것을 목격하고 전교조 교사들에게서 ‘좌파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10대를 보냈던 그들에게 인터넷은 민중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줄 새로운 투쟁의 도구가 됐다.
거리에 나서지 못해 ‘시대의 부채’를 짊어진 소심한 386들도 화염병과 깨진 보도블록 대신 마우스를 움켜쥐고 함께 나섰다. PC통신 시절부터 온라인 세계의 습성을 간파한 이들은 실증보다는 수사법과 감정호소에 능숙했다.
인터넷 영향력 간과한 ‘보수’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으로 이어지는 적개심과 보복의 대상이 현실정치 저편으로 사라지자, 그들이 남겨 놓은 보수의 유산인 한나라당은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다. ‘민중’ 또는 ‘통일’을 내건 집단과 정당은 그 실체를 자세히 알아보기도 전에 무조건 선(善)과 정의(正義)가 됐다. ‘반(反) 한나라당’은 젊은이가 응당 지녀야 할 교양으로 보는 풍조가 만연했다.
전교조 세대의 인터넷 선점 효과는 놀라웠다. 이 세대가 발 빠르게 감성을 통해 인터넷을 장악해 나가면서 보수우익은 점차 인터넷 어느 공간에서 발붙이기 어려운 구닥다리 사상으로 전락했다.
‘YS 정권의 유일한 치적’이라며 네티즌들이 놀리는 1996년 한총련 탄압 시절, 방송과 신문 등 전통적 매체들은 한총련 탄압의 정당성을 설파했고 여론의 지지도 적극적이었다. PC통신 세상에선 적지 않은 네티즌이 탄압의 부당성에 항의하며 치열한 이념 난투극을 벌였다. 현실에서 체감하는 실제 여론과 온라인 여론은 확실히 많이 달랐다.
좌파성향의 PC통신 사용자들은 당시 일명 ‘게시판 투쟁’을 통해 한총련 활동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점차 조직화됐다. 소수 정예가 게릴라식으로 벌이는 여론투쟁은 ‘넷(net)심(心)’을 흔드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온라인에서 이런 선동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경험한 좌파 성향의 논객들은 인터넷으로 흘러들어와 저마다 자신의 체질에 맞는 사이트를 찾아 안착하거나 직접 개설했다. 이들이 파놓은 참호가 2000년 이후 좌파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인터넷 싸움꾼)의 집단 서식지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일명 ‘보수’는 인터넷이 가진 파괴력과 영향력을 간과했다. 여전히 ‘무찌르자 공산당’ 식의 낙후된 마인드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좌파 논객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갈고 닦은 식견과 세련된 주장을 쏟아 냈다.
젊은이들의 감성을 일깨울 ‘진보’ ‘평화’ ‘희망’ ‘사람’ ‘사랑’ ‘노동’ ‘통일’ 등 개념을 선점해 포퓰리즘이 짙게 밴 용어를 적절하게 구사했다. 주체사상엔 ‘사람 중심의 시대정신’이란 인간미 넘치는 타이틀을 갖다 붙였고, 반미(反美)의식이 내재한 반정부 시위를 문화제라고 포장했다.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 ‘함께 나누자’, ‘같은 민족은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병역면제 자식을 둔 아버지에게 군(軍)통수권을 맡길 수 없다”는 식의 레토릭(修辭)은 네티즌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현실정치계를 흔들었다.
좌파 네티즌의 전략
인터넷에서 부자는 공공의 적, 가진 자는 질시의 대상이 됐다. DJ-노무현(盧武鉉) 정권 10년 동안 대한민국 인터넷은 좌(左)로 45도 기울었다. 올바른 방향성을 상실했지만, 인터넷은 현실세계보다 무한대로 파급력이 강한 공간이다. 누군가 올린 글은 ‘퍼가기’를 통해 사발통문처럼 전달됐다.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루머도 사실인 양 입소문으로 퍼졌다.
좌파 네티즌들은 우파의 주장을 반박할 간단명료한 이념적 논거와 지침을 만들고 공유했다. 2선에 있던 심정적 좌파 네티즌들도 점차 동조됐다. 훈련된 좌파들이 던지는 지식 쪼가리에 대한민국을 지키는 건전한 상식이 송두리째 부정됐다.
“북한을 왜 비난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는 “비난도 비난을 할 자유가 있어야 비난한다. 노동당 문서를 보게 국가보안법을 개정해 다오”라는 식으로 슬그머니 논점을 바꿔 일축했다. ‘대북 쌀 퍼주기’를 지적하면 “지금 북한 주민이 인육까지 먹어 가며 굶어 죽고 있다”고 울부짖는 감성적 호소가 들어 먹혔다.
핵(核) 개발에 대한 비난엔 “우리 민족이 핵을 갖게 돼 오히려 자부심이 생겼다”는 식으로 맞섰다. “지금 전쟁하자는 것이냐?”는 대답은 이곳저곳에서 쓰였다. 직업 운동가인 양 행세하는 네티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평범하고 얌전한 직장인인 경우가 많았다. 소심해서 거리에 나가지도, 구호 하나 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단 키보드만 잡으면 용감해지고 과격한 주장을 일삼는 맹렬한 전사로 바뀌었다.
좌파 네티즌들은 보수를 우롱할 ‘떡밥’(낚시성 글)을 도처에 뿌리며 인터넷 전반의 헤게모니를 야금야금 장악해 나갔다. 과격 종북 세력은 김일성(金日成) 자서전을 인용한 북한 찬양은 물론 김정일(金正日) 찬양까지 해대며 국가보안법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여중생들을 들어 “한국인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다”며 민족적 자존심을 교묘히 건드렸다. 이른바 ‘안티조선 운동’ 등은 보수언론뿐 아니라 소설가 이문열 등 보수인사 때리기를 시도하면서 문화 전반에 타격을 입혔다.
좌파들의 1980년대 민중주의 향수는 디지털 시대에 부활했다. 낮은 수준의 연대를 지속해 가며 전선을 구축해 가던 좌파 네티즌들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위 때 그간 축적된 에너지를 과시했다. 몇 년 후 촛불시위 학습효과를 경험한 이들이 다시 벌인 광우병 촛불시위는 10대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생활 정치’를 표방했지만, 심저(心底)는 MB 정권에 이념적으로 저항한 인터넷판(版) 군중정치 노선의 연장이었다.
‘다구리 모드’와 ‘떼거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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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한 네티즌들이 포털 다음의 토론 게시판 ‘아고라’ 깃발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최근 아고라가 힘이 빠지자 좌파 선동가들은 20대 초반의 젊은 이용자들이 대거 모여 있는 포털 ‘네이트’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
포털 다음(Daum)의 ‘아고라’(Agora)는 비교적 여론 형성의 광장으로 네티즌들에게 잘 알려진 토론 게시판이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마치 치열한 토론의 장인 것처럼 보도되지만, 실제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할 정도로 혼탁하다. 극소수의 ‘개념 게시물’을 제외하면 논리 자체가 무색한 말싸움의 향연이 대부분이다.
아고라의 이념적 좌편향 성격을 꼬집어 네티즌들은 ‘좌(左)고라’ 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 아고라가 촛불시위 이후로 힘이 빠지자 좌파 선동가들은 20대 초반의 젊은 이용자들이 대거 모여 있는 ‘네이트’(Nate)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좌(左)이트’란 말이 나온 것도 그즈음이다.
냉소적 시각 이면엔 건전하고 수준 높은 담론 대신 좌파 네티즌의 ‘떼거리주의’가 숨어 있다. 보수 네티즌의 단결력은 좌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구심체가 없다. 보수 논객의 ‘개념글’이 올라오면 ‘전진무의탁’(사격 준비) 자세로 있던 좌파 네티즌들이 득달같이 물어뜯는다.
‘자체 화력’이 달린다 싶으면 다른 좌파 성향의 사이트로 가서 지원사격을 호소한다. 속칭 ‘다구리 모드’다. 합리적 이성과 논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해당 게시물을 비하하는 수십,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서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침묵하는 다수의 입장이 마치 좌파들의 여론과 동일시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토론 논리에서 밀리면 상대방을 ‘알바’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좌파 성향의 입맛에 맞는 게시물에는 박수치고 추천한다. 불편한 보수 성향의 게시물은 ‘다구리’시켜 ‘넷심’을 왜곡한다. 행동하는 소수 좌파의 선공(先攻)과 지공(遲攻)에 의해 ‘건전보수’는 서서히 궤멸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싸움은 주먹 세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지만 온라인에서는 다르다. 먼저 말 꺼낸 쪽이 유리하고, 많은 글을 쓰는 쪽이 유리하며, 마지막까지 쓰는 쪽이 이긴 것으로 본다. 행여 일부 과격한 우익 네티즌들이 도를 넘어선 게시물이라도 하나 쓰면, 즉시 좌파 네티즌들의 ‘일용할 양식’이 된다. 글 자체가 이리저리 각색되고 퍼 날라져 해당 사이트 수준 전체를 ‘꼴통 집단’으로 딱지 붙이는 데 ‘귀하게’ 쓰인다. 이를 사골처럼 푹 고아 재탕, 삼탕으로 우려먹는다.
정치인들의 발언도 좌파 네티즌의 주요 관심사다. 그들은 본질을 흐리고 의도를 왜곡해 대중을 분노하게 하는 ‘포퓰리즘 수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말 한마디 잘못한 일부 국회의원의 홈페이지는 좌파 네티즌들의 공격으로 서버 다운이 된다. 이런 선동의 공포를 한두 번 겪어 본 이들이라면 이후 다른 소신 발언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선 한가한 놈이 이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한두 번 집단 ‘다구리’를 당하면, 보수논객이 떠나가고 해당 사이트는 좌파 성향이 된다. 좌파 성향의 글에 익숙한 네티즌에게 건전한 보수 성향의 주장은 왠지 친숙하지 않고 구시대적이다. 또 촌스럽고 어딘가 불편하다. 면역력이 약한 상태에서 인터넷 좌파 문화에 장기간 드러나 있던 탓이다.
보수 네티즌들은 보통 연령이 좌파 네티즌보다 높은 편이다. 안정된 직장이나 지위가 있는 이들은 시간이 남아 반(半)직업적으로 활동하는 일부 좌파 네티즌들의 공세를 결코 당해낼 수가 없다. 인터넷 토론에선 ‘끝까지 남는 놈이 이긴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바쁜 직장인은 한가한 백수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초창기 보수층 인터넷 유저는 나이가 많아서 인터넷에 대한 접근이 느렸고, 또 인터넷이 가진 힘을 간과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좌파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시위를 유도하며 거리로 내달을 때 이들은 침만 삼키며 강 건너 불 보듯 구경해야만 했다. “젊은 것들이 도대체 왜 그러나?” 혀를 차며 불구경하는 동안 인터넷에서는 대한민국의 보수가 무너지고 있었다.
좌파들에 맞서 시위를 벌인 이들은 눈치 보기 급급한 젊은 보수 네티즌이 아니라 참다못해 거리로 나온 장년층의 애국단체들이었다. 이들이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은 행동하지 않는 청년 우익 네티즌들을 향한 무언(無言)의 꾸짖음이다.
좌파 네티즌들의 세(勢)는 DJ를 거쳐 노무현 대통령 집권 중 그 절정에 달했다. 이들의 맏형 격인 386세대의 지원사격도 만만치 않았다. 일찌감치 인터넷에 눈을 뜬 일부 ‘운동권’은 아예 인터넷 업체를 설립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0년대 말부터 불어닥친 인터넷 벤처 열풍을 보자. 초창기 인터넷 업체 설립은 주로 의식화 교육을 받은 386세대가 주도했다. 이들은 부장, 차장, 과장 등 조직이 분명한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고, 스스로 사장 직위를 가졌다. 이들은 10여 년간 인터넷 업체를 운영하고, 일부는 직접 언론매체를 설립해 ‘좌편향 인터넷’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新보수 네티즌의 등장
모 대형 포털의 뉴스 담당 이사는 이념적으로 확고히 무장돼 있다. 자신의 뉴스팀원들조차 “이런 기사는 너무 편향적”이라고 지적해도 그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역시 반미주의 성향을 가진 모 커뮤니티 사이트의 운영자는 2008년 촛불시위에 대해서 “아주 순수한 시민운동이기 때문에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글을 게시하면 게시물을 삭제하고 강제 탈퇴시키겠다”는 황당한 공지를 올리고 실제로 이행했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새로 가입한 이용자에게 “우익 사이트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며 강제 탈퇴시킨 일도 있다. 민주화를 부르짖던 이들이 인터넷에서는 민주화에 역행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다.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들은 초기부터 좌파 성향을 띠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젊은 이용자들의 입맛에 부응하기 위해 생계형 좌파가 돼야 했다. 완장 찬 조선사람이 일본순사보다 더 무섭다고, 그들의 좌파적 자세에 조금이라도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대번에 ‘수구꼴통’으로 몰아 삭막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좌파 정부 10년간 적어도 인터넷에서 한나라당은 ‘극악한 범죄집단’으로 추락했다. 반면 북한의 김정일 집단은 함께 가야 할 친숙한 동반자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과거 개혁적 성향을 자처하는 20·30대의 전교조 세대가 인터넷 사용자의 주류를 이뤘기에 공론장에서 좌파가 우세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정주부뿐 아니라 중년층 이상까지 사용 연령이 넓어지면서 생활 필수품이 됐다. 젊은 성향의 여론만을 반영하는 사이버 세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됐다.
초창기 인터넷을 장악했던 전교조 세대는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행동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반대로 1980년대에 대한 기억과 빚이 없는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며 점점 주류로 성장했다.
세상은 늘 변한다. 인터넷 공간에 반동의 움직임이 없을 리 없다. 10년 좌파정권을 거쳐 서서히 신(新)보수 성향의 젊은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전교조 세대를 비웃으며 북한의 김정일·김정은 세습체제를 조롱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김정일 조롱하는 新보수 네티즌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현상이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자란 20대 또는 그 이하 연령대의 네티즌들에 의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달러를 갖다 바치고 쌀 퍼 줬더니 핵과 폭격으로 돌아온 햇볕정책의 허구성을 절실히 깨달은 세대다. ‘신반북(新反北)세대’는 북한 주민의 아사(餓死)를 생생하게 목격했고, 새파랗게 어린 아들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기상천외한 3대 세습에 분노한다.
담대한 신보수 세대는 강력한 반북의식으로 무장해 ‘넷심’의 한 축을 형성했다. 좌파 네티즌에 의해 좌로 기울어진 이념의 축을 반대방향에서 도로 당기고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무엇보다 김정은의 3대 세습에 울분에 찬 네티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전반에서 과거에는 보기 어려웠던 북한에 대한 과격한 비판과 비난이 늘었다.
네티즌의 분노는 급기야 몇 달 전 김정은 생일에 맞춰 북한이 운영하는 대남 사이트를 해킹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신세대답게 기상천외한 ‘세로드립(문장의 앞글자만 세로로 읽음)’으로 김정일에 대한 조롱시(詩)를 올리고, 패러디 동영상과 트위터를 통해 북한 세습정권을 비웃었다. 과거 운동권이 미(美)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지듯 이들은 거꾸로 북한의 대남기구를 공격하며 본격적으로 실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이버 연평해전’으로 명명하며 자발적으로 참전해 북한 사이트를 공격한 사건이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달라진 반북의식을 보여줬다. 인터넷 신보수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상징적인 서막이다.
김정은의 본격 세습체제 구축, 다가올 총선과 대선 등 한반도의 전환국면을 맞아 금단 현상에 몸부림치는 좌파들은 MB 정권을 정조준해 집중화력을 퍼부으며 과거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공세를 펼쳐낼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좌파 네티즌은 비슷한 성향 매체들의 지원을 받으며 여론의 중심을 자신들의 비교 우위 토양인 인터넷으로 옮기려고 노력할 것이다. 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뉴레프트’ 기치로 좀 더 세련된 공격방식을 가다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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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북한의 대남선전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를 해킹한 네티즌들이 김정일과 김정은을 비방하는 그림을 내걸었다. 한국 인터넷의 ‘탈좌파’ 시대를 말하는 것은 성급하지만, 새로운 이념 질서가 형성돼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
넓어진 戰場
촛불시위를 넘어 조직화된 온라인 정치집단을 만들려는 시도도 예상된다. 북한의 한층 더 고도화한 대남 인터넷 여론조작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러나 신보수 네티즌의 등장은 더 이상 인터넷 공간을 좌파들의 선전, 선동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호락호락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대한민국 인터넷계에서 ‘탈(脫) 좌파’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 그러나 진실의 눈을 뜬 애국 네티즌의 움직임에 좌파들이 조금씩 뒤로 밀리면서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생겼다. 느리지만 이념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 가는 듯하다. 이제 보수우익 네티즌도 지난 시기를 반성적으로 사유할 때가 온 것 같다. 가까운 과거만 보더라도 한·미(韓美) FTA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문제를 좌지우지하며 정국을 이끌었던 것은 인터넷 카페와 토론광장이었다.
움직여야 한다. 방심하지 말고 촛불엔 횃불로 대등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약진, 스마트폰의 등장 등 달라진 디지털 환경으로 전장(戰場)은 한층 넓어졌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강한 보수우익 네티즌이라면 다시금 방심과 나태함으로 전환기를 실기(失機)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이는 피땀 흘려 헌법적 기본질서를 수호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앞선 이들에 대한 예의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것 또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시대의 책무다. 인터넷 전장을 젊은 네티즌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연령층을 망라한 모든 네티즌의 역사적 결단으로 시대적 요청에 답해야 한다.⊙
월간조선 201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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