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
[장성택 숙청의 전말] 黨 조직지도부 조연준·민병철이 숙청 주도
김정우 기자
2014. 1. 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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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張成澤)이 처형당했다. 2013년 12월 3일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 정보를 공개하자 북한 조선노동당과 《조선중앙TV》는 12월 9일 장성택의 체포 장면을 공개하며 숙청을 공식화했다. 이른바 ‘1호 사진’에서 그의 얼굴이 사라졌고, 북한 전(全) 주민은 반향문(소감문)을 써야 했다. 12월 13일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 후 즉각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金正恩)의 고모와 결혼한 1972년부터 40년 이상 권력 핵심이었던 그의 숙청으로 북한 권력 구도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왜 숙청됐을까. 북한이 내세운 숙청 이유는 ‘반당(反黨)·반혁명적 종파행위’다. 이는 북한의 최고(最高) 강령인 ‘당의 유일(唯一)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유일사상 10대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 가장 무거운 ‘범죄’다. 북한은 장성택의 경제적 부정부패와 문란한 사생활도 적시했다.
하지만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조선중앙통신》이 12월 13일 공개한 ‘처형 발표문’은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됐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유동열(柳東烈)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장성택 숙청·처형을 배후에서 주도한 세력으로 김정은의 친위세력인 당 조직지도부와 호위총국, 그리고 국가안전보위부를 꼽았다. 유 연구관은 “각 기관에 포진된 장성택 세력에게 정보가 새는 걸 막기 위해 극소수가 이를 추진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광인(金光仁)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장성택 숙청은 북한 내 전형적인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며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내 세력 간의 반복된 충돌이 거물급 처형까지 이어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정보 당국의 한 대북(對北) 전문가는 “장성택 제거는 김정은 주도(主導)라기보단 노동당과 군, 그리고 보안기관의 강경파가 주도하고 동조(同調)해 김정은의 허가를 받아 이뤄진 것”이라며 “이들이 여러 기관을 동원해 장성택의 각종 ‘혐의’를 들추어 내 김정은에게 들이밀면 김정은도 장성택을 더 이상 감쌀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왕당파’ 리제강 對 ‘실용파’ 장성택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조직지도부는 북한 노동당의 핵심부서다. 김정은을 제외한 모든 당원의 인사를 결정하며, 정치동향과 사생활까지 보고받는다. 외부에서 북한 권력서열의 잣대로 삼는 의전서열도 그들이 결정한다. 조직지도부원들은 다른 부서의 부장급이나 군 장성급 인사들에게 반말을 쓸 만큼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노동당 간부 출신의 한 탈북 인사는 “조직지도부 부원들은 자신의 직위보다는 ‘장군님의 심부름꾼’, 즉 최고 지도자의 대리인으로서 어명(御命)과 같은 방침을 전하기 때문에 최고위급 인사들도 그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경우가 잦다”며 “김정은을 빼면 북한 내 가장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 북한 인명 자료 등에 따르면 김정일(金正日) 시대부터 조직지도부 부장은 특정 시기를 제외하곤 대부분 공석(空席)이었다. 부장 직책의 권한과 영향력이 지나치게 막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김경옥과 조연준이며, 부부장은 김인걸, 황병서, 민병철로 알려졌다. 조연준과 민병철이 이번 장성택 숙청과 처형을 배후에서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것이 한 대북전문가의 설명이다.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의 권력투쟁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황장엽(黃長燁) 전(前) 노동당 비서가 김정일 유고(有故) 뒤 차기 지도자로 장성택을 지목하자, 북한에서 장성택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조직지도부는 장성택이 2004년 초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을 발각했다. 장성택은 ‘분파 조장’ 혐의로 실각했고, 측근들까지 좌천됐다. 이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조직지도부의 리제강(李濟剛) 제1부부장이다.
한 고위 탈북자는 《월간조선》 2010년 8월호에서 “장성택의 측근 중 한 명이 호화 결혼식을 올린 것이 꼬투리가 돼 ‘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장성택과 측근들이 모조리 숙청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리제강은 30년 넘게 당 기강과 인사를 주물러 온 굉장히 노련한 사람으로, 장성택을 조사하면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김정일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성택은 2006년경 권력에 복귀했다. 리제강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조직지도부 산하에 있던 행정부를 따로 떼어내 부장직(職)을 맡았다고 한다. 리제강의 입장에선 김정일의 후계자로 장성택이 지목될 경우, 대규모 보복과 숙청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그간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정부 당국자들의 증언과 다수 대북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일 정권 말기 세습 문제를 두고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2008년경 리제강을 중심으로 이른바 ‘왕당파’가 형성됐다. 리제강은 김정일에게 3대 세습을 건의해 왔지만, 김정일은 승계에 대한 언급을 마땅치 않아 했다고 한다. 그해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지도자 유고 상황이 발생하자 북한 내·외부의 관심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성택에게 쏠렸다. 오랜 기간 남편 장성택과 사이가 멀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경희(金敬姬)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성택은 이때 자신의 영향력을 크게 넓혀 간 것으로 보인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김정일 통치의 실패를 직접 지켜본 장성택은 북한이 제대로 서기 위해선 선군(先軍)정치보다 당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장성택과 그의 세력을 ‘왕당파’와 대적하는 이른바 ‘실용파’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말 김정일이 회복하자 ‘왕당파’ 세력은 3대 세습을 다시 추진했다. 장성택도 자신의 행보를 계속 넓혀 나갔다.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장성택에게 야심이 있어서라기보단 엉망이 된 북한의 국가시스템을 ‘정상화’하려는 의도였다”며 “장성택 나름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은 개점휴업 상태인 당을 우선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제강 사망에 장성택 개입
2010년이 되자 ‘왕당파’는 본격적으로 김정은 세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정은이 대장 칭호를 받고 후계구도가 공식화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왕당파’의 핵심은 조직지도부의 리제강과 리용철(李勇哲)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2010년 4월과 6월 잇따라 사망하면서 그 배후로 장성택이 지목됐다. 리용철이 먼저 심장마비로, 리제강은 2개월 만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은 2010년 8월 해외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리제강은 장성택 일당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북한은 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발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교통사고는 북한에서 정적을 제거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1976년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승계를 반대했던 남일(南一) 북한 부총리를 대형트럭 교통사고로 위장해 암살했다. 2006년 김용순(金容淳) 전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도 권력투쟁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발생지인 평양~원산 고속도로가 상당히 한산하다는 점은 타살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특히 당시 사고차량이 버스였으며 탑승자 중 사망자가 리제강 단 한 명이었던 사실이 최근 《월간조선》 취재 결과 밝혀졌다. 상당수 대북 전문가는 리제강 사망에 장성택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한다.
다수 언론 보도와 다수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리제강과 리용철 사망 후 조직지도부를 장악한 이는 조연준 제1부부장과 민병철 부부장이다. 북한 내부 정보에 정통한 대북 전문가는 “2011년 겨울 김정일이 사망하자 조연준과 민병철을 중심으로 한 조직지도부가 장성택 뒷조사를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개인비리와 비자금 조성을 중심으로 진행했으며, 북한 매체들이 최근 발표한 ‘죄목’ 상당수를 이때 수집했다. 도박이나 여성문제와 같은 개인비리는 북한 최고위층에게 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장성택이 당 자금 일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이었다. 왕당파는 장성택 제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김정은 세습에 성공한 왕당파들은 힘 빠진 장성택에게 경제회생 문제를 맡겼다. 개혁개방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한 북한 경제구조에서 경제회생 임무는 말 그대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당시 장성택의 격에 맞지도 않은 임무였다.
김정은의 ‘2012년 강성대국’ 약속이 실패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씌울 대상으로 장성택을 선택했다. 2009년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남기 전 노동당 재정계획부장을 처형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이 이번에 발표한 장성택 처형 판결문은 2009년 이래 북한 경제정책 실패 대부분을 장성택에게 돌렸다.
2012년 8월 장성택이 5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訪中)했을 때 중국은 장성택을 국가원수급으로 대우했다. 중국 매체들은 그를 두고 ‘섭정왕’이라고 표현했는데, 김정은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성택, 3대 세습·핵실험 반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모두 면담한 장성택은 황금평·위화도 특구와 나선(나진·선봉) 특구 등 경협에 추가 합의했다. 2011년 김정일 방중을 계기로 본격화한 후 자신이 진두지휘해 온 사업이었다. 하지만 당 조직지도부의 방해로 사업은 계속 지지부진했다. 중국 정보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북 경협 이행을 위해 방북(訪北)한 중국 실무진이 협의 후 후속조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2012년 11월 장성택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라는 특별 기구의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기남(金基南), 최태복(崔泰福), 박도춘(朴道春), 김양건(金養建), 조연준 등 쟁쟁한 인사가 위원으로 포함돼 실세기구로 보이나, 사실은 빈껍데기에 불과한 조직이란 게 다수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실세에 가까운 당 행정부장직(職)을 이때 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장성택의 경제회생 임무는 성과가 없었다. 2013년 7월 방북한 리위안차오(李源潮)는 개혁개방 요구와 핵 문제에 대한 답을 요구하며, 연말까지 성과가 있으면 김정은 방중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같은 해 10월 박길연(朴吉淵)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에 “핵 군축을 협상하자”며 뜬금없는 유엔(UN) 연설을 내놓았다. 중국의 핵 폐기 요구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평양 내부정보에 정통한 한 탈북 인사는 “장성택은 김정은을 인간적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뜻과 달리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을 때 길어야 1~2년밖에 못 버틸 것이라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국제관계를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2년 만에 오히려 힘을 잃은 건 장성택이었다. 준비를 마친 조직지도부 세력은 김정일 사망 2주년 시점에 맞춰 장성택 숙청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리제강 사망에 대한 왕당파의 반격이자 선수(先手)인 셈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매체 보도를 통해 공개된 장성택의 ‘죄목’ 외에도 김정은을 자극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장성택 측근의 김정남(金正男) 접촉설 ▲장성택-리설주 관련설 ▲장성택 측근 해외 망명 및 기밀 유출설 등을 제기했다. 현재까지 진위(眞僞)가 확인된 사항은 없지만,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정보 보고가 김정은을 크게 자극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장성택은 대표적 친중(親中)·친러(親露) 인사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적 보호망이 있어 김정은이 자신만은 못 건드릴 거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당·반혁명’이란 이른바 ‘가장 무거운 죄목’으로 숙청된 후 그의 처형을 막을 유일한 변수는 중국의 개입이었다.
북한은 보란 듯이 장성택을 처형하며 중국에 대한 ‘매국(賣國) 행위’를 적시했다. 판결문은 “장성택이 석탄 등 지하자원을 팔아먹어 빚을 지게 만들고, 그 빚을 갚는다며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은 중국이다.
김정은 비자금 동결
대표적인 친중 인사가 중국에 대한 매국 혐의로 처형을 당했는데 중국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장성택 처형 문제는) 북한의 내부 문제”라며 “중국은 앞으로도 북한과 경제협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내정불간섭’ 원칙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김정은 정권의 극단적 잔인함(extreme brutality)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비난한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신중한 입장’이란 분석이다.
중국의 대북 카드는 김정은의 비자금이었다. 중국과 북한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은 장성택의 측근인 리용하와 장수길의 공개처형 즈음에 김정은의 비자금이 포함된 자국 계좌 일체를 동결했다. 상하이(上海) 등지 은행에 보관된 김정은의 비자금 규모는 수십억 달러로 추산된다. 김정일은 생전에 미국 정부가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 은행의 비밀주의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해당 은행권에 예치된 비자금을 중국 등으로 옮겼다.
김씨 일가의 비자금은 크게 노동당 38·39호실이 관리하는 당 자금과 김정일-김정은의 개인 비자금으로 나뉜다. 당 자금은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통치를 위해 재량껏 쓰는 돈을 말하며, 장성택이 이 해당 자금 중 일부를 장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 비자금은 북한 정권 붕괴 시 김씨 일가의 해외도피 자금 등으로 사용되며, 세계 각국에 분산돼 추적이 상당히 어렵다.
중국은 장성택이 장악한 일부 자금과 함께 김정은 비자금 상당 액수에 대한 동결 조치를 내렸다. 장성택이 별도로 운영한 비자금도 동결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의 동결 조치는 김정은 권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씀씀이는 아버지보다 더하다. 북한은 내부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측근들에게 수입 사치품을 뿌리는데, 김정일 체제 당시 3억 달러 수준이었던 사치품 수입액이 김정은 체제 이후 6억5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김씨 일가가 비밀 보관 중인 금괴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러시아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2013년 12월 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10개월 만에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094호의 이행에 전격 동참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경제제재를 규정한 대통령령에 서명했으며, 각 유관 부문이 이를 철저히 집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과 측근 처형 사실을 알리기 하루 전에 일어난 일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신속하게 북한 내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장성택 숙청에 대한 즉각적 대응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중국의 경우 대북 정보력과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익과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선 쿠데타 불가능한 구조
북한의 대중(對中) 관계는 장성택 처형으로 악화 기로에 들어섰다. 중국의 계좌 동결로 통치 역량에 타격을 받은 김정은은 자신의 자금줄 확보를 위해 군항(軍港) 사용권이나 자원·인프라 개발권과 같은 대형 이권을 중국에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일은 생전에 중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사망 직전 김정은에게 “절대 중국을 믿지 말라”고 유언했을 것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일부 중국 매체와 소식통에 따르면,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대북 원유공급을 차단하자 김정은이 중국에 대해 “미 제국주의의 개”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북한 국방위원회는 UN 안보리 대북 제재에 반발하면서 “세계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큰 나라들까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중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장성택 숙청 직후 다수의 매체가 최룡해를 장성택의 정적(政敵)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평소 두 사람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라이벌을 내쳐 봐야 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최룡해가 잘 알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김정은이 양강도 삼지연 회동에서 장성택 숙청을 결정했으며 이른바 ‘삼지연(三池淵) 그룹’으로 불리는 박태성·황병서·김병호·홍영칠·마원춘 부부장 등이 신(新)실세로 부각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멀 가능성이 크다. ‘삼지연 시찰’은 11월 30일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는데, 장성택 실각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결정됐기 때문이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기고문을 통해 “11월 23일경 쿠바와 말레이시아의 장성택 친인척들이 평양으로 소환됐으며, 측근인 리용하·장수길은 이미 처형된 이후”라며 “오히려 장성택 숙청을 결정하는 정치국확대회의를 앞두고서 김정은을 먼 북방의 삼지연까지 보낸 배후세력이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처형됐고, 그 세력은 분명 힘을 잃었다. 북한 권력 중심 곳곳에 장성택 세력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지만, 이들이 저항을 모의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북한은 쿠데타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군 지휘관이 총 한 발을 쏘려 해도 당이 파견한 정치위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 세력이 반전을 꾀하려면 조직적 쿠데타가 아닌 김정은 저격 작전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희, 1년 못 넘겨”
향후 조연준과 민병철을 중심으로 한 ‘왕당파’의 독주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조직지도부에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장성택 제거에 성공해 김정은 정권의 실세 자리를 굳혔다. 박도춘 당 군수비서도 실세로 거론되지만, 조직지도부와 같이 권력을 장악하기엔 무리라는 분석이다. 최룡해는 라이벌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장성택을 견제하기 위해 힘을 얻었지만, 이제 그 시효가 끝난 셈이다.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당·군·정에 포진된 간부들은 장성택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김정은에 대한 충성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북한의 공포정치가 단기적으론 체제를 안정시키는 모양새를 보이겠지만, 잇따른 망명 시도 등 조직 내부의 불안정 요소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2월 9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조직지도부에 의해 철저히 연출된 장면이었다. 박봉주(朴鳳柱) 내각 총리가 울먹이면서 장성택을 비판하는 모습이나, 양형섭(楊亨燮)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요청하며 손을 드는 행동 모두 미리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간부들 대다수는 당일 예정된 장성택의 체포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의 아내인 김경희는 김씨 일가의 가장 큰 어른임에도 이번 장성택 처형 사건에 크게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최근 김책(金策)의 장남인 김국태(金國泰) 검열위원장의 장의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현재 건강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과 중국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에 따르면, 김경희는 2013년 초 중국에서 안과 진료를 받았으며, 이때 중국 측이 실시한 비밀검진 결과 예상 수명이 1년 남짓한 것으로 예측됐다. 중국 당국과 김경희 측 모두 해당 사실을 알고 있으며, 북한으로 돌아온 김경희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개정을 추진했다고 한다.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김일성(金日成)이 1974년 김정일 후계자 지목을 위해 만든 후,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39년 만인 2013년 6월 전격 개정되면서 이른바 ‘백두혈통’ 김정은 일가의 세습을 명문화했다. 이때 개정된 일부 핵심 내용이 이번에 숙청된 장성택의 ‘죄목’에 적용됐다.
‘운구차의 저주’
정보 당국의 한 대북 전문가는 장성택을 제거한 김정은이 ‘브레이크 없는 하강(下降)질주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에게 직언(直言)할 사람이 사라지고 강경파와 아부꾼만 모인 상황에서 지배층의 내부 동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장성택 사형 판결문에 노출된 북한 정권의 약점과 치부(恥部)는 김정은에게 간언(諫言)할 사람이 현재 없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출신인 하태경(河泰慶) 새누리당 의원은 “장성택 처형은 개인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인권 수준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며 “북한도 정보의 자유로운 취득과 전파 및 의사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가입국으로, 장성택 즉결처형은 명백히 규약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장성택뿐 아니라 그의 측근인 리용하와 장수길, 그리고 은하수관현악단 단원까지 최근 총살당한 데다 전 지역에서 측근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솎아내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구타, 고문, 처형, 감금 등 행위가 1990년대 말 대규모 숙청이 발생한 ‘심화조 사건’ 때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하 의원은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란 말 자체만 봐도 공정재판일 수 없다”며 “국제기준은 물론 북한 내부 기준으로 봐도 공정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평화와 인권의 메시지를 남기고 타계한 넬슨 만델라(Mandela)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 행렬이 전 세계에서 이어지는 동안, 지구 반대편 북한에선 무자비한 총살과 폭정이 재현됐다. 40년간 실세였던 ‘2인자 고모부’를 체포한 지 나흘 만에 처형한 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폭력성이 아버지 김정일 시대보다 결코 약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011년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를 호위했던 8명 중 왼쪽을 맡은 군부 4인방은 이미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승승장구가 예상됐던 리영호(李英浩) 군 총참모장, 김영춘(金永春) 인민무력부장, 김정각(金正閣)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禹東測)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은 모두 숙청 또는 실각했다. 이른바 ‘운구차의 저주’로 불린다. 80대 고령의 당 인사인 김기남과 최태복을 빼면 군사 칭호를 받은 6명 중 5명이 숙청된 셈이다. 군사 칭호를 받은 이 가운데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김정은뿐이다.⊙
월간조선 2014년 1월호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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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은 왜 숙청됐을까. 북한이 내세운 숙청 이유는 ‘반당(反黨)·반혁명적 종파행위’다. 이는 북한의 최고(最高) 강령인 ‘당의 유일(唯一)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유일사상 10대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 가장 무거운 ‘범죄’다. 북한은 장성택의 경제적 부정부패와 문란한 사생활도 적시했다.
하지만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조선중앙통신》이 12월 13일 공개한 ‘처형 발표문’은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됐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유동열(柳東烈)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장성택 숙청·처형을 배후에서 주도한 세력으로 김정은의 친위세력인 당 조직지도부와 호위총국, 그리고 국가안전보위부를 꼽았다. 유 연구관은 “각 기관에 포진된 장성택 세력에게 정보가 새는 걸 막기 위해 극소수가 이를 추진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광인(金光仁)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장성택 숙청은 북한 내 전형적인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며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내 세력 간의 반복된 충돌이 거물급 처형까지 이어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정보 당국의 한 대북(對北) 전문가는 “장성택 제거는 김정은 주도(主導)라기보단 노동당과 군, 그리고 보안기관의 강경파가 주도하고 동조(同調)해 김정은의 허가를 받아 이뤄진 것”이라며 “이들이 여러 기관을 동원해 장성택의 각종 ‘혐의’를 들추어 내 김정은에게 들이밀면 김정은도 장성택을 더 이상 감쌀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3년 12월 9일 북한 조선중앙TV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의 체포 장면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
⊙ 中, 김정은 비자금 계좌 동결했다
⊙ 장성택 숙청은 北 전형적 권력투쟁 결과물… ‘왕당파’ 독주체제 전망
⊙ 국정원의 張 실각정보 공개 직전, 중국은 김정은 비자금 동결, 푸틴은 對北 제재 철저 이행 지시
⊙ 김정은 비자금 수십억 달러 추산, 중국의 계좌 동결로 내부 통치에 상당한 타격 받을 것
⊙ 김경희 예상 수명 1년 남짓, 유일사상 10대 원칙 개정 직접 주도
⊙ 장성택 숙청은 北 전형적 권력투쟁 결과물… ‘왕당파’ 독주체제 전망
⊙ 국정원의 張 실각정보 공개 직전, 중국은 김정은 비자금 동결, 푸틴은 對北 제재 철저 이행 지시
⊙ 김정은 비자금 수십억 달러 추산, 중국의 계좌 동결로 내부 통치에 상당한 타격 받을 것
⊙ 김경희 예상 수명 1년 남짓, 유일사상 10대 원칙 개정 직접 주도
‘왕당파’ 리제강 對 ‘실용파’ 장성택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조직지도부는 북한 노동당의 핵심부서다. 김정은을 제외한 모든 당원의 인사를 결정하며, 정치동향과 사생활까지 보고받는다. 외부에서 북한 권력서열의 잣대로 삼는 의전서열도 그들이 결정한다. 조직지도부원들은 다른 부서의 부장급이나 군 장성급 인사들에게 반말을 쓸 만큼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노동당 간부 출신의 한 탈북 인사는 “조직지도부 부원들은 자신의 직위보다는 ‘장군님의 심부름꾼’, 즉 최고 지도자의 대리인으로서 어명(御命)과 같은 방침을 전하기 때문에 최고위급 인사들도 그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경우가 잦다”며 “김정은을 빼면 북한 내 가장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 북한 인명 자료 등에 따르면 김정일(金正日) 시대부터 조직지도부 부장은 특정 시기를 제외하곤 대부분 공석(空席)이었다. 부장 직책의 권한과 영향력이 지나치게 막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김경옥과 조연준이며, 부부장은 김인걸, 황병서, 민병철로 알려졌다. 조연준과 민병철이 이번 장성택 숙청과 처형을 배후에서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것이 한 대북전문가의 설명이다.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의 권력투쟁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황장엽(黃長燁) 전(前) 노동당 비서가 김정일 유고(有故) 뒤 차기 지도자로 장성택을 지목하자, 북한에서 장성택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조직지도부는 장성택이 2004년 초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을 발각했다. 장성택은 ‘분파 조장’ 혐의로 실각했고, 측근들까지 좌천됐다. 이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조직지도부의 리제강(李濟剛) 제1부부장이다.
한 고위 탈북자는 《월간조선》 2010년 8월호에서 “장성택의 측근 중 한 명이 호화 결혼식을 올린 것이 꼬투리가 돼 ‘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장성택과 측근들이 모조리 숙청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리제강은 30년 넘게 당 기강과 인사를 주물러 온 굉장히 노련한 사람으로, 장성택을 조사하면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김정일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성택은 2006년경 권력에 복귀했다. 리제강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조직지도부 산하에 있던 행정부를 따로 떼어내 부장직(職)을 맡았다고 한다. 리제강의 입장에선 김정일의 후계자로 장성택이 지목될 경우, 대규모 보복과 숙청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그간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정부 당국자들의 증언과 다수 대북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일 정권 말기 세습 문제를 두고 조직지도부와 장성택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2008년경 리제강을 중심으로 이른바 ‘왕당파’가 형성됐다. 리제강은 김정일에게 3대 세습을 건의해 왔지만, 김정일은 승계에 대한 언급을 마땅치 않아 했다고 한다. 그해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지도자 유고 상황이 발생하자 북한 내·외부의 관심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성택에게 쏠렸다. 오랜 기간 남편 장성택과 사이가 멀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경희(金敬姬)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성택은 이때 자신의 영향력을 크게 넓혀 간 것으로 보인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김정일 통치의 실패를 직접 지켜본 장성택은 북한이 제대로 서기 위해선 선군(先軍)정치보다 당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장성택과 그의 세력을 ‘왕당파’와 대적하는 이른바 ‘실용파’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말 김정일이 회복하자 ‘왕당파’ 세력은 3대 세습을 다시 추진했다. 장성택도 자신의 행보를 계속 넓혀 나갔다.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장성택에게 야심이 있어서라기보단 엉망이 된 북한의 국가시스템을 ‘정상화’하려는 의도였다”며 “장성택 나름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은 개점휴업 상태인 당을 우선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제강 사망에 장성택 개입
2010년이 되자 ‘왕당파’는 본격적으로 김정은 세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정은이 대장 칭호를 받고 후계구도가 공식화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왕당파’의 핵심은 조직지도부의 리제강과 리용철(李勇哲)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2010년 4월과 6월 잇따라 사망하면서 그 배후로 장성택이 지목됐다. 리용철이 먼저 심장마비로, 리제강은 2개월 만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은 2010년 8월 해외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리제강은 장성택 일당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북한은 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발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교통사고는 북한에서 정적을 제거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1976년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승계를 반대했던 남일(南一) 북한 부총리를 대형트럭 교통사고로 위장해 암살했다. 2006년 김용순(金容淳) 전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도 권력투쟁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발생지인 평양~원산 고속도로가 상당히 한산하다는 점은 타살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특히 당시 사고차량이 버스였으며 탑승자 중 사망자가 리제강 단 한 명이었던 사실이 최근 《월간조선》 취재 결과 밝혀졌다. 상당수 대북 전문가는 리제강 사망에 장성택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한다.
다수 언론 보도와 다수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리제강과 리용철 사망 후 조직지도부를 장악한 이는 조연준 제1부부장과 민병철 부부장이다. 북한 내부 정보에 정통한 대북 전문가는 “2011년 겨울 김정일이 사망하자 조연준과 민병철을 중심으로 한 조직지도부가 장성택 뒷조사를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개인비리와 비자금 조성을 중심으로 진행했으며, 북한 매체들이 최근 발표한 ‘죄목’ 상당수를 이때 수집했다. 도박이나 여성문제와 같은 개인비리는 북한 최고위층에게 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장성택이 당 자금 일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이었다. 왕당파는 장성택 제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김정은 세습에 성공한 왕당파들은 힘 빠진 장성택에게 경제회생 문제를 맡겼다. 개혁개방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한 북한 경제구조에서 경제회생 임무는 말 그대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당시 장성택의 격에 맞지도 않은 임무였다.
김정은의 ‘2012년 강성대국’ 약속이 실패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씌울 대상으로 장성택을 선택했다. 2009년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남기 전 노동당 재정계획부장을 처형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이 이번에 발표한 장성택 처형 판결문은 2009년 이래 북한 경제정책 실패 대부분을 장성택에게 돌렸다.
2012년 8월 장성택이 5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訪中)했을 때 중국은 장성택을 국가원수급으로 대우했다. 중국 매체들은 그를 두고 ‘섭정왕’이라고 표현했는데, 김정은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공식 등장 이전인 2010년 6월 사망한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생전에 김정은과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 (조선중앙TV)
장성택, 3대 세습·핵실험 반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모두 면담한 장성택은 황금평·위화도 특구와 나선(나진·선봉) 특구 등 경협에 추가 합의했다. 2011년 김정일 방중을 계기로 본격화한 후 자신이 진두지휘해 온 사업이었다. 하지만 당 조직지도부의 방해로 사업은 계속 지지부진했다. 중국 정보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북 경협 이행을 위해 방북(訪北)한 중국 실무진이 협의 후 후속조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2012년 11월 장성택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라는 특별 기구의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기남(金基南), 최태복(崔泰福), 박도춘(朴道春), 김양건(金養建), 조연준 등 쟁쟁한 인사가 위원으로 포함돼 실세기구로 보이나, 사실은 빈껍데기에 불과한 조직이란 게 다수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실세에 가까운 당 행정부장직(職)을 이때 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장성택의 경제회생 임무는 성과가 없었다. 2013년 7월 방북한 리위안차오(李源潮)는 개혁개방 요구와 핵 문제에 대한 답을 요구하며, 연말까지 성과가 있으면 김정은 방중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같은 해 10월 박길연(朴吉淵)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에 “핵 군축을 협상하자”며 뜬금없는 유엔(UN) 연설을 내놓았다. 중국의 핵 폐기 요구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평양 내부정보에 정통한 한 탈북 인사는 “장성택은 김정은을 인간적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뜻과 달리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을 때 길어야 1~2년밖에 못 버틸 것이라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국제관계를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2년 만에 오히려 힘을 잃은 건 장성택이었다. 준비를 마친 조직지도부 세력은 김정일 사망 2주년 시점에 맞춰 장성택 숙청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리제강 사망에 대한 왕당파의 반격이자 선수(先手)인 셈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매체 보도를 통해 공개된 장성택의 ‘죄목’ 외에도 김정은을 자극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장성택 측근의 김정남(金正男) 접촉설 ▲장성택-리설주 관련설 ▲장성택 측근 해외 망명 및 기밀 유출설 등을 제기했다. 현재까지 진위(眞僞)가 확인된 사항은 없지만,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정보 보고가 김정은을 크게 자극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장성택은 대표적 친중(親中)·친러(親露) 인사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적 보호망이 있어 김정은이 자신만은 못 건드릴 거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당·반혁명’이란 이른바 ‘가장 무거운 죄목’으로 숙청된 후 그의 처형을 막을 유일한 변수는 중국의 개입이었다.
북한은 보란 듯이 장성택을 처형하며 중국에 대한 ‘매국(賣國) 행위’를 적시했다. 판결문은 “장성택이 석탄 등 지하자원을 팔아먹어 빚을 지게 만들고, 그 빚을 갚는다며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은 중국이다.
장성택 숙청으로 북한 내 최고 실세로 떠오른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선중앙TV)
김정은 비자금 동결
대표적인 친중 인사가 중국에 대한 매국 혐의로 처형을 당했는데 중국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장성택 처형 문제는) 북한의 내부 문제”라며 “중국은 앞으로도 북한과 경제협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내정불간섭’ 원칙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김정은 정권의 극단적 잔인함(extreme brutality)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비난한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신중한 입장’이란 분석이다.
중국의 대북 카드는 김정은의 비자금이었다. 중국과 북한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은 장성택의 측근인 리용하와 장수길의 공개처형 즈음에 김정은의 비자금이 포함된 자국 계좌 일체를 동결했다. 상하이(上海) 등지 은행에 보관된 김정은의 비자금 규모는 수십억 달러로 추산된다. 김정일은 생전에 미국 정부가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 은행의 비밀주의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해당 은행권에 예치된 비자금을 중국 등으로 옮겼다.
김씨 일가의 비자금은 크게 노동당 38·39호실이 관리하는 당 자금과 김정일-김정은의 개인 비자금으로 나뉜다. 당 자금은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통치를 위해 재량껏 쓰는 돈을 말하며, 장성택이 이 해당 자금 중 일부를 장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 비자금은 북한 정권 붕괴 시 김씨 일가의 해외도피 자금 등으로 사용되며, 세계 각국에 분산돼 추적이 상당히 어렵다.
중국은 장성택이 장악한 일부 자금과 함께 김정은 비자금 상당 액수에 대한 동결 조치를 내렸다. 장성택이 별도로 운영한 비자금도 동결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의 동결 조치는 김정은 권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씀씀이는 아버지보다 더하다. 북한은 내부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측근들에게 수입 사치품을 뿌리는데, 김정일 체제 당시 3억 달러 수준이었던 사치품 수입액이 김정은 체제 이후 6억5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김씨 일가가 비밀 보관 중인 금괴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러시아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2013년 12월 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10개월 만에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094호의 이행에 전격 동참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경제제재를 규정한 대통령령에 서명했으며, 각 유관 부문이 이를 철저히 집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과 측근 처형 사실을 알리기 하루 전에 일어난 일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신속하게 북한 내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장성택 숙청에 대한 즉각적 대응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중국의 경우 대북 정보력과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익과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선 쿠데타 불가능한 구조
북한의 대중(對中) 관계는 장성택 처형으로 악화 기로에 들어섰다. 중국의 계좌 동결로 통치 역량에 타격을 받은 김정은은 자신의 자금줄 확보를 위해 군항(軍港) 사용권이나 자원·인프라 개발권과 같은 대형 이권을 중국에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일은 생전에 중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사망 직전 김정은에게 “절대 중국을 믿지 말라”고 유언했을 것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일부 중국 매체와 소식통에 따르면,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대북 원유공급을 차단하자 김정은이 중국에 대해 “미 제국주의의 개”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북한 국방위원회는 UN 안보리 대북 제재에 반발하면서 “세계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큰 나라들까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중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장성택 숙청 직후 다수의 매체가 최룡해를 장성택의 정적(政敵)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평소 두 사람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라이벌을 내쳐 봐야 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최룡해가 잘 알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김정은이 양강도 삼지연 회동에서 장성택 숙청을 결정했으며 이른바 ‘삼지연(三池淵) 그룹’으로 불리는 박태성·황병서·김병호·홍영칠·마원춘 부부장 등이 신(新)실세로 부각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멀 가능성이 크다. ‘삼지연 시찰’은 11월 30일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는데, 장성택 실각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결정됐기 때문이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기고문을 통해 “11월 23일경 쿠바와 말레이시아의 장성택 친인척들이 평양으로 소환됐으며, 측근인 리용하·장수길은 이미 처형된 이후”라며 “오히려 장성택 숙청을 결정하는 정치국확대회의를 앞두고서 김정은을 먼 북방의 삼지연까지 보낸 배후세력이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처형됐고, 그 세력은 분명 힘을 잃었다. 북한 권력 중심 곳곳에 장성택 세력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지만, 이들이 저항을 모의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북한은 쿠데타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군 지휘관이 총 한 발을 쏘려 해도 당이 파견한 정치위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 세력이 반전을 꾀하려면 조직적 쿠데타가 아닌 김정은 저격 작전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DB)
“김경희, 1년 못 넘겨”
향후 조연준과 민병철을 중심으로 한 ‘왕당파’의 독주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조직지도부에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장성택 제거에 성공해 김정은 정권의 실세 자리를 굳혔다. 박도춘 당 군수비서도 실세로 거론되지만, 조직지도부와 같이 권력을 장악하기엔 무리라는 분석이다. 최룡해는 라이벌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장성택을 견제하기 위해 힘을 얻었지만, 이제 그 시효가 끝난 셈이다.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당·군·정에 포진된 간부들은 장성택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김정은에 대한 충성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북한의 공포정치가 단기적으론 체제를 안정시키는 모양새를 보이겠지만, 잇따른 망명 시도 등 조직 내부의 불안정 요소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2월 9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조직지도부에 의해 철저히 연출된 장면이었다. 박봉주(朴鳳柱) 내각 총리가 울먹이면서 장성택을 비판하는 모습이나, 양형섭(楊亨燮)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요청하며 손을 드는 행동 모두 미리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간부들 대다수는 당일 예정된 장성택의 체포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의 아내인 김경희는 김씨 일가의 가장 큰 어른임에도 이번 장성택 처형 사건에 크게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최근 김책(金策)의 장남인 김국태(金國泰) 검열위원장의 장의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현재 건강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과 중국 정보에 정통한 전문가에 따르면, 김경희는 2013년 초 중국에서 안과 진료를 받았으며, 이때 중국 측이 실시한 비밀검진 결과 예상 수명이 1년 남짓한 것으로 예측됐다. 중국 당국과 김경희 측 모두 해당 사실을 알고 있으며, 북한으로 돌아온 김경희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개정을 추진했다고 한다.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김일성(金日成)이 1974년 김정일 후계자 지목을 위해 만든 후,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39년 만인 2013년 6월 전격 개정되면서 이른바 ‘백두혈통’ 김정은 일가의 세습을 명문화했다. 이때 개정된 일부 핵심 내용이 이번에 숙청된 장성택의 ‘죄목’에 적용됐다.
‘운구차의 저주’
정보 당국의 한 대북 전문가는 장성택을 제거한 김정은이 ‘브레이크 없는 하강(下降)질주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에게 직언(直言)할 사람이 사라지고 강경파와 아부꾼만 모인 상황에서 지배층의 내부 동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장성택 사형 판결문에 노출된 북한 정권의 약점과 치부(恥部)는 김정은에게 간언(諫言)할 사람이 현재 없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출신인 하태경(河泰慶) 새누리당 의원은 “장성택 처형은 개인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인권 수준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며 “북한도 정보의 자유로운 취득과 전파 및 의사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가입국으로, 장성택 즉결처형은 명백히 규약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장성택뿐 아니라 그의 측근인 리용하와 장수길, 그리고 은하수관현악단 단원까지 최근 총살당한 데다 전 지역에서 측근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솎아내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구타, 고문, 처형, 감금 등 행위가 1990년대 말 대규모 숙청이 발생한 ‘심화조 사건’ 때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하 의원은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란 말 자체만 봐도 공정재판일 수 없다”며 “국제기준은 물론 북한 내부 기준으로 봐도 공정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평화와 인권의 메시지를 남기고 타계한 넬슨 만델라(Mandela)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 행렬이 전 세계에서 이어지는 동안, 지구 반대편 북한에선 무자비한 총살과 폭정이 재현됐다. 40년간 실세였던 ‘2인자 고모부’를 체포한 지 나흘 만에 처형한 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폭력성이 아버지 김정일 시대보다 결코 약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011년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를 호위했던 8명 중 왼쪽을 맡은 군부 4인방은 이미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승승장구가 예상됐던 리영호(李英浩) 군 총참모장, 김영춘(金永春) 인민무력부장, 김정각(金正閣)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禹東測)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은 모두 숙청 또는 실각했다. 이른바 ‘운구차의 저주’로 불린다. 80대 고령의 당 인사인 김기남과 최태복을 빼면 군사 칭호를 받은 6명 중 5명이 숙청된 셈이다. 군사 칭호를 받은 이 가운데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김정은뿐이다.⊙
월간조선 2014년 1월호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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