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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북한

秘話 / “28년 전 백령도 海上에서 對北 보복作戰계획 있었다”

김정우 기자 2010.05.26 16:17
⊙ 1981년 8월 北 미그機 백령도 상공 침공 등 도발에 대응해 작전계획 수립
⊙ 작전명 ‘망치’, “백령도 인근 북한 3개 섬 기습·초토화 목적”
⊙ 1982년부터 2년10개월간 해병대 정예요원 선발해 백령도 현장에서 특수훈련·작전 실시
⊙ 작전 참가 장교 “NLL 근방에서 기만작전 펼쳐 北 도발행위 억제했다”

해군특수전부대(UDT/SEAL) 대원들이 해상침투훈련을 하는 모습.

1980년대 초 북한군의 잦은 도발에 대응, 백령도 인근 해상(海上)에서 구체적인 북한 침투 작전 계획이 수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망치작전’으로 불리는 이 계획은 1982년 1월부터 2년10개월 동안 해병대 요원들을 선발해 백령도 인근 NLL(북방한계선) 해상에서 기만(欺瞞)작전을 펼치며 북한의 월례도(島) 등 3개 목표지역에 침투해 ▲군사시설 파괴 ▲요인 암살 ▲납치·교란 등 2시간 만에 작전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 작전계획은 1980년 11월 전남 횡간도 무장간첩 침투, 1981년 8월 북한 미그기(機) 백령도 상공 침공 및 미(美)정찰기 SR-71(블랙버드) 격추 시도 등 고조된 남북(南北) 대치 상황에서 수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1981년 10월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국군의날 행사에서 “단순히 적의 도발을 물리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도발에 대한 철저한 응징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도발의 대가가 더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증명할 막강한 군사력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망치작전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무장공비 및 간첩선(船) 침투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해병대 정예요원을 선발해 포항에서 집중 훈련을 한 후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해 인근 NLL 해상에서 훈련 및 기만작전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해병대 각 부대에서 1차로 선발된 요원들은 1982년 4월까지 포항에서 훈련을 받은 후, 백령도로 이동해 소대 규모로 훈련 및 작전을 펼쳤습니다. 주로 공수교육 또는 특수수색교육 이수자와 무술유단자 등이 신원조회를 거쳐 선발됐습니다.”
 
 
 철저한 신원조회 거쳐 요원선발
  
1981년 9월 UDT, 공수교육 등 이미 특수 교육을 이수한 인원 중 최정예 대원을 뽑는 것으로 1차 요원 선발이 시작됐다. 이들은 기본 교육 후 이듬해 1월부터 ‘망치교육’이라 불리는 ‘특수침투훈련’을 받고 백령도로 파견됐다.
 
  같은 해 8월엔 백령도에 이어 연평도에도 소대 규모 병력이 추가됐다. 작전에 참여했던 한 장교는 “공황장애 또는 내부혼란을 막기 위해 사단계획 수립 당시 ‘단순 전지훈련’이란 용어를 불가피하게 사용했지만, 지휘관들은 정확하게 작전의 목적을 알고 있었고 장병들도 대부분 눈치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소대규모로 편성된 ‘망치부대’는 3개월 단위로 교체돼 훈련 및 작전을 수행했고, 1983년 10월 말까지 총 300여 명의 요원이 6차례에 걸쳐 투입됐다. 작전 관계자는 “장기간 배치될 경우 고도의 특수훈련과 심리적 압박 등의 이유로 작전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3개월마다 현장 인원을 교체하는 한편 포항에선 다음 기수를 위한 훈련이 진행됐다”고 했다.
 
  신원조회 결과 문제가 있는 요원은 곧바로 복귀 조치했다. 당시 작전을 담당했던 고위급 장교는 “신체검사나 경력에서 결격사유가 없는 대원인데, 상급부대의 지시로 훈련 중 제외된 인원이 다수 있었다”며 “친인척 관계까지 정밀하게 신원조회를 실시한 듯하다”고 했다.
 
  특히 백령도에 배치된 이들이 훈련 및 작전을 펼친 곳은 지난 3월 26일 침몰한 해군 초계함(哨戒艦) 천안함의 함수(艦首)가 가라앉은 지점 부근이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해상침투훈련을 반복했던 부대원들은 28년 후 벌어진 사건에 대해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시에도 물이 혼탁하고 조류가 빨라 훈련 강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훈련은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이번 천안함 사고가 나는 순간 구조 및 인양 과정이 분명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고(故) 한주호 준위의 희생도 참 안타까웠고요. 망치부대가 지금까지 존재했더라면, 좀 더 익숙한 바다에서 구조작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대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망치작전은 일명 ‘812 계획’에 의해 탄생했다고 한다. 1981년 8월 12일 북한의 미그21기 편대가 백령도 상공에 침공해 저공비행을 실시한 사건으로 인해 서해 5도의 안보 위험이 증폭되자, 북한의 대남무력 도발 의지를 사전에 봉쇄하고 도발 시 보복작전을 통한 전술적인 대응 차원에서 시작된 계획이라는 것이다.
 
  작전에 참여했던 한 장교는 “육군에서 실시한 ‘벌초계획’도 같은 시기에 계획된 것”이라며 “최종 하달된 비밀 임무 지시에 망치와 함께 ‘벌초’란 작전명이 적힌 것을 분명히 봤다”고 말했다.
 
 
 
“보이는 것은 다 죽여라”
  “체포되면 자살하라”

 
1981년 8월 미그21기 2대가 백령도 상공을 침공하고, 미군 정찰기 SR-71(블랙버드)가 공격을 받는 등 북한의 도발이 잇따라 발생했다. 망치부대원은 이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망치작전계획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12일 <주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육사 12기 출신 군(軍)지휘관들이 주도한 벌초계획은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특수부대를 평양으로 파견, 주석궁(宮)을 폭파하고 김일성(金日成)을 사살한 뒤 육로(陸路) 또는 해로(海路)를 통해 돌아오는 비밀계획이다. 이 계획은 전두환 대통령이 “북한과 똑같은 짓을 할 수는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명해 1983년 12월경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망치부대원들은 “‘벌초’가 훈련 단계에서 마무리된 것과 달리 ‘망치’는 실제 작전 현장인 NLL 인근 해상까지 접근해 기만작전을 벌였다”며 “북한 특수요원과 반(半)잠수정이 수시로 출몰하는 곳에서 ‘교육훈련’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이 받은 훈련은 사실상 실전에 가까웠다. 북한군 장비인 AK47소총과 TT권총 등을 지원받아 사용 및 분해 교육을 실시했고, 적의 레이더 탐지를 피하기 위해 반(反)레이더 고무커버를 지급받아 무장했다. 목표지역의 항공사진 등 정밀한 해안정보는 상급부대를 통해 수시로 전해졌고, 상륙 기습부대를 중심으로 상세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낮에는 정신교육을 통해 적개심 고취, 영웅심, 복종심, 담력배양, 북한 사투리 훈련 등으로 실제 침투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비했고, 주(主)훈련이 이뤄지는 야간엔 IBS(고무보트) 기습 작전을 중심으로 전략적 훈련을 반복했다.
 
  북한의 내륙지휘소가 위치한 일부 지역과 유사한 지형을 가진 경북 영일군 일대에서 가(假)시설을 설치해 기동사격, 시설습격, 도피·탈출, 폭파, 요인암살 등 다양한 훈련을 실시했다. 백령도 해상에선 실탄이 지급된 상태에서 반복 침투 훈련이 이어졌다. 한 관계자는 “백령도를 비롯한 NLL 지역은 당시 사실상 전시 지역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실탄을 지급했다”면서 “훈련 및 작전 중 파도에 휩쓸려 북한 지역으로 넘어갈 경우 탈출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부대원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보이는 것은 다 죽여라” “체포되면 자폭하라” 등 실전에 대비한 구호를 매일 반복해서 외쳤고, 돌격·정찰·엄호 3개 팀으로 구성돼 상부의 명령을 기다렸다. 단순 대기가 아니라 전투태세를 유지, 기만·교란 작전을 펼쳐 북한의 도발에 대한 남한의 억제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망치작전 계획은 군 내에서도 일부 인사를 제외하곤 정보가 철저하게 통제된 기밀이었다. 해병대가 소속된 해군 내부에서도 정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부대 이동 과정을 ‘전지훈련’ 등으로 위장했고, 대원들은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참모급 장교였던 한 인사는 “이제 수십 년이 지나 역사적으로 기록될 필요성이 있어 부대원들이 공개에 나선 것 같다”면서 “작전의 핵심 내용을 알고 있는 당시 군 고위급 인사들이 이미 노령이 돼 기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北派작전인가 단순 전지훈련인가
 
1960년대 북파 공작원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

  또 그는 “이번 천안함 사태를 지켜보면서, 28년 전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계획된 망치작전이 다시 떠올랐다”면서 “군사적이든 비(非)군사적이든 확실한 대응조치를 통해 북한의 도발 의지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전에 참가한 다른 인사는 “당시 주된 작전인 실제 침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계속된 전투태세 가운데 NLL 해상에서 기만작전을 펼친 것으로 보아 망치작전 외에 다른 비밀작전이 계획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정전협정(停戰協定)은 서해 NLL 침범과 같은 비무장지대에서의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통과하기 위해선 반드시 군사정전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망치부대원들은 사실상 아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NLL 인근해상까지 접근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훈련을 받았다. NLL을 넘어가진 않았지만, 사실상 기만작전을 펼치며 북한의 도발에 대응한 것이다.
 
  망치작전에 대해 군 고위급 관계자 중 일부는 “일반적 작전일 가능성이 큰데, 그게 크게 와전(訛傳)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병대 관계자도 망치부대에 대해 “해병대가 공식 보관 중인 자료상으론 북파 작전에 대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북 보복작전 훈련을 했다’는 부대원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28년 전 대한민국은 백령도 인근에서 빈번히 발생한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 단호한 응징대책을 마련했다. 작전의 최종 목적에 대한 부분은 공식 확인되지 않더라도, 이들의 훈련이 북한의 도발 계획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음은 분명하다.
 
  지난 4월 15일, 천안함이 침몰 20일 만에 인양됨에 따라 대응 수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8년 전 ‘북파작전’은 이런 점에서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기만작전(欺瞞作戰·Deception Operation)
 
  아군의 작전의도, 능력, 배치 등을 적이 오판(誤判)하도록 유도해 적을 아군의 의도대로 유인하거나 적의 기도를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계획적인 작전활동을 말하며, 그 방법에는 양공(陽攻), 양동(陽動), 계략(計略), 허식(虛飾) 등이 있다. 망치부대원들은 “부대의 주 작전 목표는 북파 후 요인암살 및 시설폭파 등이었지만, 명령대기 중 NLL 부근에서 전투태세로 벌인 작전은 기만작전을 수행한 것”이라고 말한다.

 월간조선 2010년 5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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