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AL858기 폭파범 金賢姬가 말하는 나의 삶과 천안함 사건
“천안함 사건이 지금도 北 소행 아니라는 자들,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식이 그렇게 죽었어도 그런 말 하겠나?”
⊙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고 “내가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 갖기도
⊙ 국가안보의식 고취 위해 최근 국정원 신입직원 상대로 12년 만에 공개 강연
⊙ “北은 증거인멸과 발뺌전략, 南은 국제공조와 증거획득… 천안함은 23년 전 KAL기 폭파 사건과 닮았다”
⊙ “23년 전 ‘증거인멸 위해 (KAL기) 폭파 위치를 바다 위로 선택했다’는 말 들었다”
⊙ “北, 나를 가짜라 선전하다 일부 간부들에게 내 사진이 공개된 후 ‘이 여자 안다’는 사람 너무 많이 나오자 당혹해하며 입단속”
김현희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機)가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돼 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한국 정부는 국제공조를 통해 일본인 하치야 마유미(蜂谷?由美)로 가장한 범인 김현희(金賢姬)의 신병을 확보했고, 김정일(金正日)의 지령에 의한 테러임을 확정 지었다. 그 사건 후 지금까지 23년째 북한정권과 남한의 일부 좌파(左派)단체는 “증거가 없다”, “김현희는 가짜”라며 한국 측의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해 장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 한국 정부는 다국적 민군(民軍)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북한산 어뢰 ‘CHT-02D’의 추진체 등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고,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임을 확정 지었다. 북한정권과 남한의 일부 좌파단체는 “북한의 어뢰가 아니다”, “합조단 발표에 의문점이 많다”며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KAL858기 폭파사건의 ‘결정적 증거’이자 ‘살아 있는 증거’인 김현희씨는 지금 천안함 폭침(爆沈)사건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지난 6월 1일, ‘북풍(北風)’과 ‘노풍(盧風)’이 뒤섞인 지방선거 관련 기사에서 ‘KAL858기 폭파사건’이란 단어가 보이자 다시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 순간 기자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02’로 시작하는 발신번호를 본 후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기자, 정○○입니다.”
휴대전화가 없는 김현희씨의 남편 정씨는 항상 공중전화로 연락을 한다. 주소지인 서울로 투표를 하기 위해 올라왔다가 안부인사차 전화를 한 것이었다. 먼저 연락할 길이 없는 기자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가 통했다’는 느낌이 왔다.
8일 후인 6월 9일, 지방의 한 식당에서 김현희씨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 2월과 6월 <월간조선>(月刊朝鮮) 인터뷰, 3월 일본인 납북(拉北)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 씨와의 공개 만남 등 몇 차례 언론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지만, 질문지를 미리 전달하는 등 사전 협의하에 단독으로 정식 인터뷰를 한 것은 국내 언론으로선 잠적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北에선 ‘1호’ 대신 ‘1번’ 훨씬 많이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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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공개한 어뢰 추진체와 모터. KAL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이자 ‘결정적 증거'인 김현희씨는 자신을 '살아있는 프로펠러’라 표현했다. |
“천안함 사건과 KAL858기 폭파사건, 23년의 간극(間隙)을 둔 두 사건은 범인, 피해자, 범행방식, 증거 확보 등 여러 모양에서 너무나 닮았습니다. 둘 모두 사건이 터지자마자 한국 정부가 국제공조를 추진했고,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해 진실이 밝혀졌죠. 북한은 계속 발뺌을 하고 있고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씨는 23년 전 ‘악몽’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안기부 직원이었던 정씨와 결혼한 후 세상과 거리를 둔 채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살려고 했지만, 좌파정권과 방송언론은 그들을 곱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월간조선>의 연이은 특종(特種)보도 후 어느 정도 평온을 찾은 듯했으나,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23년 전 사건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국민의 25~30%가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이 조사결과에 대해 ‘경탄’의 표현까지 쓴 것과 상반되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살아 있는 프로펠러’입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결정적인 증거가 됐죠.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쌍끌이 어선의 그물에 걸려 올라왔는데, 종북(從北)세력은 여전히 조작을 주장합니다. 그들에겐 진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북한이 했다’는 진실이 두렵고 싫은 것이죠. 자기 집 아들이 맞아 죽었는데, 가해자를 규탄하는 대신 집안 형제끼리 싸우고 뒤집어엎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또 가해자는 그렇게 보호하려고 하고요. 그 사람들이 정말 대한민국 국민인지 궁금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돼요. 의식화된 세력이라고 봅니다.”
지난 6월 13일, 참여연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과 이사국에 “한국 정부의 조사에 의혹이 많으니 안보리 대북제재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대상으로 한 한국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조사 브리핑’을 하루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의장국인 멕시코는 지금까지 안보리 논의에서 NGO의 자료를 회람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모호한 입장을 보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게 어뢰 추진축에 적혀 있던 ‘1번’이라는 글씨다. 북한에서는 ‘1번’이라는 용어를 안 쓴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金大中·盧武鉉)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丁世鉉)씨가 그런 주장을 했다. 정씨는 “북한에선 1번, 2번 같은 일본식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1962년에 ...
계속...
월간조선 2010년 7월호 (기사 全文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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