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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총장은 왜 교수들을 고소했나

사회

by 김정우 기자 2012. 4. 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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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가면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학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그동안 어떤 대안이라도 언급한 적 있었나. 그들이 내놓은 유일한 대안은 내 사퇴다. 그냥 서남표 하나 잡자고, 사람만 바꾸면 학교를 망가뜨려도 된다는 식의 태도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 교수협의회, 이사장, 교과부, 정치권의 ‘전방위 공격’… 서남표 “명분 없이 사퇴하진 않겠다”
⊙ 테뉴어 심사 강화, 100% 영어강의 등 개혁 정책이 갈등의 씨앗… 교수들은 퇴진 요구, 학생들은 “글쎄”
⊙ 고소당한 경종민 교협 회장 “총장 개인 사건에 학교의 공적 인사와 자원을 동원하는 것은 직권남용”
⊙ 서남표 총장 “(교수들을) 처벌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어…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고소 불가피”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서남표 카이스트서남표 KAIST 총장이 학교 본관 로비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3월 8일,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서남표(徐南杓·75) 총장과 대학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교수협의회장 등 교수협의회(교협) 소속 교수 4명을 고소했다. “교협 운영위원회가 특허 관련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KAIST와 총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현재 학교 측은 “부정확한 정보로 학교와 기관장의 명예가 지속적으로 훼손되는 상황에서 공정하고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협 측은 “사실을 왜곡해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반박한 상태다. 양측 모두 학교가 교수를 고소한 것은 KAIST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밝혔다.
 
  KAIST는 지난해 봄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자살하면서 큰 홍역을 치렀다. 이후 사건이 일단락되면서 잠잠해진 줄 알았던 ‘한국 과학교육의 메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대학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서남표 총장은 현재 일부 교수(교협), 정치권(박영아 의원), 이사회(오명 이사장), 정부(교육과학기술부) 등 4개 세력 또는 개인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대의 구체적 주장은 각각 다르지만, 의중(意中)은 비슷하다. “서 총장은 당장 물러나라”는 것.
 
 
 
러플린과 서남표
 

2006년 7월 13일 KAIST 총장 이·취임식에서 러플린 전 총장(오른쪽)이 서남표 신임총장에게 교기를 전달하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서 총장 취임(2006년)보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7월, 학생과 교직원 등 환영 인파가 모인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Laughlin)이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학교는 축제 분위기였다. 히딩크 감독과 비견됐던 그는 ‘세계 대학 월드컵’이 있다면 KAIST를 4강은 물론 우승까지 끌어올릴 기세였다.
 
  기대와 희망이 컸던 만큼 실망도 빨랐다. KAIST를 사립화, 종합대학화, 탈(脫)이공계화, 학부중심화하겠다던 그의 ‘기이한’ 포부는 교수들의 반발에 막혔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총장은 교수들의 만류에도 KAIST를 ‘당신들의 대학(your university)’이라 칭하는 등 돌발 행동을 이어 나갔다. KAIST 이사회와 정부는 결국 러플린이 KAIST 총장보다는 스탠퍼드대 교수가 어울린다고 판단해 2년 총장 임기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았다. 러플린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정재승(鄭在勝)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당시 《한겨레21》 칼럼을 통해 “KAIST는 외국인 총장을 영입할 만큼 개혁을 원하고 있었으며, 아마 러플린 총장이 연임되지 않더라도 차기 총장을 다시 외부 인사에서 찾을 만큼 개혁 의지가 강하다”라며 “풍부한 행정 경험을 갖추고, 내가 일하는 터전을 ‘우리 대학’이라 부르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개혁을 향해 교수들을 설득하는 외국인 총장이라면,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교수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외국인 총장 제도’에 대한 실패 규정보다는 외국인 총장 개인에 대한 비판이 더 큰 힘을 얻었다. 외국인과 노벨상에 대한 ‘환상’이 깨진 교직원과 학생들은 ‘제대로 된 외부 인사’의 ‘진짜 개혁’을 원했다.
 
  학교는 후임 총장으로 또 외국인을 선택했다. 하지만 전임 총장과는 많은 것이 달랐다. 경북 경주 출신으로 고교시절 도미(渡美)해 매사추세츠공대(MIT) 학과장과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공학담당 부총재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立志傳的) 재미(在美) 과학자 서남표는 “미국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고국에 모두 공헌하겠다”며 KAIST에 입성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수차례 KAIST 총장직 제의를 거절해 왔으나, “이젠 KAIST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면서 수락했다. 이런 내용을 모국어나 다름없는 영어 대신 서툰 한국어로 소통하는 그를 반대할 이는 많지 않았다.
 
 
  테뉴어 심사 강화가 갈등의 씨앗
 
  서 총장은 2006년 7월 14일 취임 후, 전임 총장보다 강력한 개혁을 추진해 파란을 일으켰다. 업적이 부진한 교수를 퇴출하는 정년보장제(테뉴어·tenure)를 강화했고, 전(全)학생 학비면제 제도에 손을 댔다. 수업은 100% 영어로 전환됐다. 이외에도 학과장 중심제 도입, 디자인 합성교육 등 서 총장이 제시한 정책 대부분은 2007년부터 실행에 옮겨졌다.
 
  다시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2008년 7월 첫 테뉴어 심사에서 38명 중 15명을 탈락시킨 게 결정적이었다. 전례 없는 ‘테뉴어 대거 탈락’ 소식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많은 교수가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 됐음을 실감하게 됐다. ‘교수는 철밥통’이란 한국사회의 인식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일부 인사들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총장과 교협 간 갈등의 씨앗은 사실상 테뉴어 심사 때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반발의 파장은 일었지만,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대다수 여론이 ‘서남표의 개혁’에 힘을 실어 줬기 때문이다. ‘대학 개혁의 아이콘’이 된 서 총장은 더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사(私)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도 KAIST에 입학할 수 있는 파격적인 입시안을 내놨고, 입시용으로 변질한 수학·과학 경시대회 성적도 반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교수들의 테뉴어 심사 탈락도 계속 이어져 4년간 총 35명이 탈락했다.
 
  ‘혁명적 변화’를 시도한 결과, ‘계량적 평가’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영국 더타임스 세계대학평가에서 2006년 198위이던 KAIST는 2007년 132위, 2008년 95위, 2009년 69위로 뛰어올랐다. 기부금은 2005년 51억원에서 2007년 147억원, 2008년 675억원, 2009년 378억원을 기록해 증가세였다.
 
  “KAIST를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대학으로 발전시킨다”는 목적 아래 독특한 연구개발이 추진됐다. 기존의 선박과 항만의 관계를 뒤바꾼 역발상 항구 시스템인 ‘모바일 하버(mobile harbor)’와 도로에 매설된 전선 위를 달리는 ‘온라인 전기자동차’가 주요 역점 사업이다. 서 총장이 21세기 인류 당면 과제로 내세운 ‘EEWS’, 즉 에너지(Energy), 환경(Environment), 물(Water),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4가지 요소를 결합해 창안한 개념이다.
 
  서 총장은 2008년 9월 신성장동력 보고회에 신성장동력기획단장으로 참가해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에게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 이때 서 총장은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등을 포함한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촉구했다. 2009년 2월 학위수여식 땐 이 대통령이 직접 온라인 전기자동차를 타고 식장에 입장했다.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서남표 총장의 주력 사업인 모바일 하버 시연 모습.
  학교 측에 따르면, 당시 이 대통령은 두 사업을 비롯한 서 총장의 아이디어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관련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주무부처에선 큰 의미를 두지 않았거나 반대의사를 내보인 것으로 보인다. 2009년 3월 서 총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지원에 대해 “지금 그걸(정부지원을) 받으려는 중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밀어 주는 사람도 있고, 죽어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왜 반대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지원 안 하는 이유를) 저는 이해 못합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하라고 하는데 밑의 과장들이 ‘노’ 하면 그만이냐는 거죠. 왜 그 사람들이 ‘노’라고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학기술자도 아니고요. 기존의 전기자동차는 큰 배터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KAIST에서 개발한 전기자동차는 조그마한 배터리만으로도 가능하거든요. 기존의 전기자동차를 개발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지 않겠죠. 하지만 저는 ‘언제든 좋지 않은 것은 진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당장은 이길지 모르지만 말이죠. 긴 안목으로 보면 언제든 효율이 더 높은 기술이 결국 이깁니다.”
 
  한 달 후 KAIST는 두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 500억원을 지원받는 이례적 성과를 거뒀다. 이때도 교수진, 지역매체, 국회, 정부부처 등을 통해 서 총장의 ‘불도저식(式) 경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지만, 여론의 흐름은 서 총장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었다.
 
  1년 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 총장의 4년 임기 막바지였던 2010년 7월, 누적된 불만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의 연임을 둘러싸고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과 비난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임기 초 자신 있게 내건 ‘개혁의 무기’가 그를 공격하는 모양새가 됐다.
 
  교수 테뉴어 심사, 수업료 차등 징수, 100% 영어강의 등 교내 정책부터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등 주력 프로젝트까지 모든 사안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비판의 주체도 일부 교수와 학생, 국회의원, 정부부처, 지역매체 등으로 확산됐다. 모두 “서 총장의 연임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에선 박영아(朴英娥)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선봉대에 섰다. 박 의원은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사업은 모순투성이”라면서 “객관적 평가기준이나 체계적인 검증과정 없이 타당성 없는 사업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낭비했다”며 공세를 이어 나갔다.
 
 
  탁월함 對 독선
 
  학내에선 교수진이 ▲개혁 사안의 비현실성 ▲목표 지상주의 ▲소통의 부재 ▲직선적 사고(思考) 등을 두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 교수는 2010년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교수나 학생이 ‘어느 날 불도저가 갑자기 나타나 구획정리를 해 버린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서 총장은) KAIST의 장기적인 발전 역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눈에 보이는 단기적 실적에 치중했다는 견해가 적지 않아요. 정년심사를 해 교수 몇 명을 탈락시키고 무조건 영어강의를 지시하는 등 팽창에만 성급하게 치중하지 않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그 결과, KAIST 교육의 질적 측면에서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곰곰이 살펴봐야 합니다. 100% 영어강의 외에도 서 총장이 부임하고 07학번 학생에게 적용된 ‘재수강 제한 정책’이나 ‘성적에 따른 수업료 차등 징수’ 등도 결과적으로 어떤 교육적 성과를 냈는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지요.”
 
  총장의 자질 논란에 여론도 엇갈렸다. “개혁의 탁월함에 대한 질투”로 보는 이도 있었고, “성공 이데올로기 독선에 대한 저항”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 총장은 우여곡절 끝에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월간조선》은 그의 재도전을 이렇게 전망했다.
 
  “서 총장이 변할 경우, KAIST는 과거의 ‘영화(榮華)’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이번 논란의 핵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즉, 반(反) 서남표파의 문제 제기가 서 총장의 독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개혁에 대한 피로 때문인지가 명확해져야 할 것이다. 현재로선 감정의 골만 남아 있지 사실관계가 규명된 상태가 아니다. 이 때문에 KAIST의 진통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외부와 학내에서 모두 찬사를 받는 개혁은 불가능한 것일까.”
 
  예측은 현실이 됐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2011년 초,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학교 역사상 처음 벌어진 일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다. 경찰 수사 결과 자살 학생 대다수가 서 총장의 ‘등록금 부과 정책’과 무관함이 밝혀졌지만, 매일 여론은 ‘서남표 개혁의 좌초’를 도마 위에 올렸다.
 
 
  자살 사건에 돌아선 여론
 
  자살 사건과 관련해 “획일성과 일방통행은 창의성의 적”, “지금 KAIST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온 교협은 2011년 4월 11일 서 총장에게 ‘KAIST혁신비상위원회(혁신위)’ 구성을 공개 요청했다. 서 총장이 이를 받아들이자, 혁신위는 4월 19일부터 자살 사건을 비롯한 학교 전반의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외부의 목소리도 커졌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서 총장의 개혁은 경쟁 만능의 교육정책”이라며 비판했다. 전교조는 논평을 내고 “KAIST뿐 아니라 온 나라를 죽음의 교육으로 뒤덮어 온 경쟁 만능 이명박 교육정책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면서 “일차적으로 KAIST 총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모든 사태의 배후에 이런 교육을 조장해 온 언론과 교육 당국에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고 주장했다.
 
  러플린, 서남표 두 사람과 총장 자리를 두고 세 차례 경쟁했던 KAIST 교협 출신의 신성철(申成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은 “한때 경쟁했던 관계라 얘기하기 곤란하다”며 서 총장의 정책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교수’는 학문의 스승이자 인생의 스승인데, 학생들의 아픔과 번민을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도하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회창 (李會昌) 당시 자유선진당 대표는 “서 총장이 공정한 경쟁이라는 정의는 지켰지만 따뜻한 배려라는 또 다른 정의는 지키지 못했다”며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曺國)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 총장의 퇴진을 주장하며 KAIST를 두고 ‘살인자들의 멍청한 기술연구원(Killers’ Adva nced Institute of Stupid Technology)’이란 글을 올렸다가 거센 항의를 받고 삭제했다.
 
  서 총장의 개혁을 ‘대학 개혁의 모범 사례’로 수차례 소개해 왔던 이주호(李周浩) 교과부 장관은 국회 상임위에서 서 총장에 대해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박영아 의원이 “KAIST 교수 임용 과정에서 학과장이나 교수 심의위를 거치지 않은 등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묻자 동석한 서 총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지만, 이 장관은 곧바로 “교원 신규 채용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서 총장을 공격했다.
 
 
  善순환에서 惡순환으로
 
2009년 2월 학위수여식 참석차 학교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온라인 전기자동차를 타고 식장에 입장했다.
  이 장관을 비롯한 교육 관료들이 서 총장을 껄끄러운 ‘눈엣가시’로 본다는 의혹도 다시 제기됐다. 교육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국 대학이 변해야 한다”며 교육정책 비판을 서슴지 않은 서 총장을 관료들이 좋아할 수 없다는 이유다. 교육 당국 여기저기서 “서 총장은 행정절차를 무시하는 사람”이란 불만이 나왔다.
 
  과거 개혁에 대한 서남표 개혁▶언론 보도▶기부금▶서남표 개혁▶기부금… 식(式)의 선순환(善循環) 구조도 공개 비난▶언론 보도▶보도 내용 반박▶언론 보도… 식의 악순환(惡循環) 구조로 바뀌었다. 학교 본부 측과 교협 양측은 서로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맞섰다. 기존 개혁의 주체였던 이른바 ‘친서(親徐·친 서남표)’와 개혁의 대상이었던 ‘반서(反徐·반 서남표)’가 서로 역할을 바꿔 가며 뒤엉켰다.
 
  이수영(李壽永)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는 《교수협의회보》를 통해 “스티브 잡스와 같은 미래지향적 과학기술 인력은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양성되지 않는다”며 “규율보다는 자유로움을,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독단보다는 조화를, 경쟁보다는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득(金鍾得)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나는 이런 글을 쓰기 싫다>란 글을 통해 “KAIST 총장이 외부의 힘으로 영입되고 외부의 압력으로 사퇴하는 것을 반대한다”면서도, “그러나 내부적 모순과 실책에 책임이 있다면 지도자로서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승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교협 내부 게시판을 통해 “‘학생들이 죽긴 했지만 이번 사태가 KAIST의 등록금제도나 영어수업과 크게 관련 없으며, 이른바 서남표식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는 주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면서 “그들에게 KAIST 교수들은 서남표 총장의 개혁을 반대하는 ‘보수꼴통 철밥통들’이며, 편하게 살자고 개혁을 반대하는 ‘개혁의 대상’으로만 비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정 교수의 글 중 일부다.
 
  “내가 아는 교수님 중에 ‘더 나은 학교,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한 개혁’에 반대하는 교수는 한 분도 없다. 문제는 세계적인 학교를 향해 전력 질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질주의 방향’이다. ‘어디로 어떻게 전력 질주할 것인가’, ‘어떤 철학과 방법, 과정으로 KAIST의 교육과 연구를 개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학생들의 지지에 사퇴 계획 철회
 
2011년 초 학생·교수 자살사건은 KAIST는 물론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사진은 학생들이 합동 분향소에서 애도하는 모습.
  서 총장과 교협은 언론보도는 물론, 혁신위의 세부 사안에도 마찰을 빚었다. “영어강의 전면 도입, 교수정년보장 심사 등 개혁을 원점으로 돌릴 계획이 없다”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내용을 두고 교협은 “조선일보 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왜곡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서 총장이 (혁신위) 합의문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로 비칠 수 있다”면서 해명을 요구했다.
 
  혁신위의 활동을 두고 서 총장이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 이사회에 보고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빨리 개선 사항을 도출해 달라”고 요청하자, 교협 측은 “개별 문장의 아전인수적 해석을 통해 자신의 책임회피는 물론, 독선적 리더십으로 회귀하는 모습”이라는 내용의 메일을 교수들에게 발송했다.
 
  경종민 교협 회장은 서 총장과 대립하면서 자주 ‘새로운 리더십’이란 단어를 등장시켰다. 기존 리더십인 서남표 총장이 물러나거나, 또는 서 총장의 개혁정책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경 회장은 2006년 총장 자리를 두고 이미 한 차례 서 총장과 경쟁한 경험이 있다. 서 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할 경우, 내부 인사 중 유력한 총장 후보로 지목되는 이유다.
 
  자살 사건 직후 코너에 몰린 서 총장을 구원한 이는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서남표 개혁은 실패가 아니다”라며 서 총장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4월 13일 학부 총학생회가 개최한 비상총회에서 “(서 총장의) 경쟁 위주의 제도 개혁 실패 인정을 요구한다”는 안건에 대해 48%인 416명이 찬성했지만, 과반수에 못 미쳐 부결됐다. 37.2%인 317명이 반대했고, 14%인 119명은 기권했다. “학생들이 개혁 제도에 비판적이면서도, 그것을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데는 반대한 듯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서 총장은 학생들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 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로 배운 게 있다면 우리 학생들이 성숙하다는 점”이라며 “처음엔 다 때려 부술 것 같았던 학생들이 투표에서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고 한 것에 대해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겠느냐”는 질문에 “내가 남아 있기가 그랬겠지”라며 ‘사실상 사퇴’란 뉘앙스를 내비쳤다. 그는 당시 서울대 교수들의 사퇴 주장에 대해 “주위에서 무책임하게 떠나면 안 된다는 이들이 많았다”며 “일단은 사태 수습을 해야 했다”고 밝혔다.
 
 
  교협의 특허 의혹 제기
 
  자살 사건 이후에도 교협과 총장의 갈등은 지속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그러들기보단 더 증폭됐다. 대학평의회 발족, 혁신위 합의서 등 사안을 두고 교협은 계속 총장에게 항의하자, 서 총장은 “혁신위가 최초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은 사항들을 활동에 결부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된 관련 답변 메일을 전 교수에게 보냈다.
 
  특허에 대한 이슈가 부각된 것도 그즈음이다. 2011년 9월 9일, 교협은 공개질의서를 통해 “학교의 최고 경영진이 핵심특허의 발명자로서 결국 본인들이 잠재적 수익자가 되는 연구과제에 경영상의 큰 결정권을 사용해 국가와 학교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큰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주장했다. 같은 달 22일엔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 사업과 관련해 서 총장이 발명자로 출원한 특허가 47건이며, 이 중 4건은 단독 발명자로 출원·등록했다”면서 “발명자가 특허기술 수입의 50%를 받는 내부 규정상, 총장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일을 위해 총장 권한을 남용했다면 기관장의 이권개입 금지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5일 후 학교 측은 특허 의혹에 대해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는 총 481건의 국내특허를 출원해 KAIST 교수·연구원·학생 등 150여 명의 연구자가 발명자로 속해 있으며, 서 총장은 그중 약 10%인 43건의 공동특허에 대한 여러 발명자 중 1명일 뿐”이라면서 “현재 상용화에 대한 수익이 전혀 없는 데다, 두 사업 모두 종합 시스템으로 기술이전 또한 패키지로 이뤄진다”며 이권에 대한 의혹을 일축했다.
 
  교협은 학교 측 답변과 관련해 다음 날 “총장 특허를 방어하기 위해 홍보팀이 해명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윤리관에 대한 문제로 총장이 직접 답변해야 한다”면서 “팔리지도 않을 기술을 왜 거액의 국고를 써 가며 해야 했는지 궁금하다”며 다시 의혹을 제기했다.
 
  9월 29일, 교협은 임시총회를 열고 표결을 통해 총장 퇴진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주요 이유는 ▲혁신위 합의서 내용 불이행 ▲대학평의회 구성 거부 ▲특허를 통한 사익 추구 ▲학교 전반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 책임 ▲독단적 운영 고수 등이다. 이 내용은 교협 회원 중 약 71%가 표결에 참여해 63%의 지지를 얻어 냈다. KAIST 전 교수의 약 45%가 총장 퇴진을 직접 요구한 셈이다.
 
 
  ‘뒷거래’
 
  서 총장은 10월 7일 공개 서신을 통해 ▲대학평의회 구성 ▲KAIST 대화합을 위한 회의 개최 ▲개혁의 안정적 완성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교협은 계속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임시이사회가 열리기 1주일 전인 10월 19일 KAIST 이사진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총장이 공권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다”며 특허 의혹을 다시 제기하는 등 비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임시이사회에서 총장 거취에 대한 안건 대신 “KAIST 개혁이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얻는 만큼 총장의 지속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서 총장을 재신임했다.
 
  교협은 교수 메일을 통해 “서 총장이 이사들에 대한 신속한 자료 제공을 등한시해 이사들에게 이사회 안건과 자료가 너무 촉박하게 제공됐으며, 그만큼 이사들이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서 “‘서남표식 개혁이 곧 KAIST 개혁’이란 막연한 생각은 옳지 않으며, 서 총장은 새 시대를 열어 갈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8일 교협은 9개 현안에 대한 질문을 모아 서 총장에게 보내며 “11월 22일까지 구체적으로 답변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 총장은 23일 답신을 통해 “11월 1일부터 교수 의견 수렴 및 중론을 모으기 위한 평의회가 운영되고 있으니, 정책적 의견이 있을 경우 절차에 따라 평의회를 통해 제안해 달라”고 했다.
 
  교협은 “총장의 답변에 크게 실망했다”며 “구체적인 사퇴 일정을 2011년 12월 31일까지 모든 구성원에게 밝혀 달라”는 내용의 글을 정기이사회가 열리기 5일 전인 12월 15일 서 총장에게 보냈다. ‘새로운 리더십’이란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12월 20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서 총장은 “뒷거래나 비정상적인 절차로 총장이 물러나는 것은 학교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사회에서 해임하려면 법과 절차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천명했다.
 
  KAIST 핵심 관계자와 최근 한 인터넷매체 보도 내용에 따르면, ‘뒷거래’란 “2010년 연임 결정 당시 일부 교수들이 서 총장 측에게 4년 임기 중 2년만 채우고 그만둘 것을 약속받으려 한 정황”을 말한다. 서 총장의 임기 2년이란 올해 6월까지다. 일부 교수들은 연임 당시 서 총장의 연임을 도와주는 대신 2년 뒤 중도 사퇴 약속을 제안했다고 한다. 새로운 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모 교수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서 총장은 이를 거절했다.
 
 
  오명 對 서남표
 
오명 KAIST 이사장(왼쪽)은 최근 여러 차례 서남표 총장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서 총장은 “명분 없이 사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정상적 절차’는 12월 초 오명(吳明) 이사장이 교과부 인사를 통해 서 총장 본인과 측근들에게 자진 사퇴를 종용하는 등 일련의 사건을 뜻한다. KAIST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서 총장은 오랜 학내 다툼에 지쳐 자진 사퇴를 두고 2주간 심각히 고민했으나, 결국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사회에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교협이 공개한, 서 총장이 이사회 당일 이사진에게 보낸 서한 내용 중 일부다.
 
  “이사장님께서는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다양한 방법으로 사임을 요구했습니다. 2주 전에는 ○○○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했으며, 저에겐 12월 정기이사회에서 사임 의사를 밝혀 달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제가 오늘 자진 사퇴를 하게 되면, 곧바로 차기 총장 선임절차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교과부에 차기 총장 선임계획을 준비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 총장은 “명확한 사유 없이 사임을 한다면, KAIST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며 “오명 이사장의 자진 사퇴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사회 당시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의 입장 표명에 크게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 이후 교협은 소속 교수를 대상으로 총장 해임 촉구 결의문 채택을 위한 전자투표를 실시해 76%의 찬성을 얻어 냈다. 교협의 공세와 관련, 언론 보도가 계속 쏟아지는 가운데, 서 총장은 2012년 1월 12일 현안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정리해 발표했다.
 
  서 총장은 “그동안 근거 없는 음해와 비방을 받으면서도 총장이 직접 나서는 게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으로 개인적 견해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제는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아야 할 때”라면서 “총장을 흔들려거든 사실관계를 잘 따져 사유와 대안을 얘기하는 게 학자로서, 지성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인데, 교협은 도를 넘어선 것 같다”며 교협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의 주요 발언 중 일부다.
 
  “지금 교협은 무서운 것이 없다. 무소불위 권력이다. 일부 교수들의 성에 안 차면 소통을 안 하는 것인가. 자신이 학교 주인이라면서 왜 손님인 양 집에 침 뱉고 뒤에서 품평만 하며, 음해와 비방을 일삼는가. … 제가 나가면 교협은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학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그동안 어떤 대안이라도 언급한 적 있었나. 교협이 내놓은 유일한 대안은 내 사퇴다. 그냥 서남표 하나 잡자고, 사람만 바꾸면 학교를 망가뜨려도 된다는 식의 태도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특허 가로채기’ 의혹까지
 
  총장의 강력한 의지 표명에 교협도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교협은 “총장의 중대한 거짓말이 계속 드러나고, 계속되는 독선, 책임 회피, 특허에 의한 과도한 사익 추구, 내외적인 관계와 구성원의 신뢰 상실 등 KAIST 총장으로서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총장은 혼자 자신을 위해 뛰었지, 구성원이 스스로 뛰게 하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대학평의회(교수평의회) 측은 강성호(姜成鎬) 의장 명의로 서 총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강 의장은 “총장의 무분별한 독재적 전횡에 대해 합리적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기구인 평의회의 결정을 총장이 묵살하고, 자신이 스스로 만든 평의회 무력화 안을 자의적으로 이사회에 가져가 통과시켰다”며 “이는 도덕적 비난의 차원을 벗어난 범죄행위이며, 탄핵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서 총장과 교수단체들 간의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오명 이사장은 2월 7일 임시이사회를 열었고, 이사회는 3명의 이사를 새롭게 선임했다. 이날 새로 선임된 이사는 곽재원(郭在源)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김춘호(金春鎬)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정길생(鄭吉生)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이다. 이때 3명 중 2명이 오명 이사장이 2006년부터 4년간 총장을 역임한 건국대 관련 인사라는 사실이 공개돼 물의를 빚었다.
 
  김 총장은 오명 총장 시절 건국대 대외부총장을 역임했으며, 정 원장은 오명 이사장보다 바로 앞서 건국대 총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른바 ‘친(親)총장’ 성향 이사들의 공백을 ‘친 이사장’ 성향 이사들로 채웠다”는 의혹이 학내 곳곳에서 제기됐다. 《월간조선》은 오명 이사장 측에 관련 사안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KAIST 문제에 대해선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방침”이란 답이 돌아왔다.
 
  서 총장-이사장-교협 간의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이번엔 ‘특허 가로채기’ 의혹이 제기됐다. 교협은 지난 2월 23일 <‘해상부유물의 동요방지장치’ 특허 진행과정에 대한 의혹>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원래 박모 교수가 발명한 것으로 신고한 해당 특허의 발명자가 ‘서남표’로 바뀌게 된 경위를 조사해 달라”며 “만약 이 사건의 행위와 관련해 누구든 의도한 부분이 있다면, 심각한 범죄행위인 지적재산권 절도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다음 날 곧바로 반박자료를 내고 “22일 오후 모 일간지로부터 관련 제보에 대한 확인 요청을 받았으며, 총장 비서실장이 해당 기자 및 제보자인 교협 회장과 이미 통화한 바 있다”며 “해당 특허는 박모 교수가 특허사무소에 직접 전화해 원래 곽모 교수 외 4명의 공동발명자를 서남표 총장 단독발명으로 요청했다가, 올해 1월 다시 박 교수로 정정됐다”고 반박하는 한편, 특허 의혹에 대해 “총장에 대한 인신공격을 목적으로 박 교수와 교협 수뇌부가 치밀하게 준비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처벌이 아니라 사실관계 밝히기 위해 고소”
 

2011년 4월 13일 경종민 KAIST 교수협의회장이 ‘KAIST혁신비상위원회’ 구성을 서남표 총장에게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특허 사건의 당사자인 박 교수는 “단순한 사건이 왜 이렇게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지 당혹스럽다”며 “교협 측의 발표자료가 정확한 사실이고, 이 문제는 학교가 교협을 고발하기 전에 자연인 서남표가 자연인 박○○을 외부에 고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교협은 “2년4개월 동안 진짜 발명자 대신 서 총장이 특허의 발명인 역할을 한 것과, 상황 설명 없이 발명자를 박 교수로 바꿔 놓은 행위 등은 도덕적·법적으로 모두 문제”라며 다시 사퇴를 촉구했다.
 
  학교 측은 사건을 학내 기관인 ‘연구진실성위원회’를 통해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교협 측은 성명을 내고 “총장에 의해 임명된 보직자 다수로 구성된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사건을 맡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비상식적”이라며 외부인 중심의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3월 5일, 서 총장은 “진실규명을 위해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서 총장은 “누군가를 처벌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으며,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교협이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조사를 불신하는 상황에서 ‘완전한 제3기관’인 수사기관에 조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3월 7일, 서 총장과 KAIST는 교협 교수 4명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고소장을 대전 둔산경찰서에 제출했다.
 
  고소당한 경종민 교협 회장은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경찰이 수사 중인 만큼 구체적인 부분까지 설명하긴 곤란하지만, 기본적으론 고소 이전 교협 공식 성명을 통해 밝혔던 입장과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경 회장은 서 총장에 대해 “지도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정직, 성실, 신뢰인데, 총장이 거짓말을 여러 번 하고, 약속을 어겼으며, 성실하게 책임지지 않았다”면서 “학교 구성원이 원하는 연구를 지원하기보단, 총장 본인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연구에 학교의 자원을 쓰는 것은 큰 문제이며, 교수들이 질의를 하거나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이나 답변 대신 ‘언론플레이’만 해서 신뢰가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개혁 성공 여부는 10년 후 판가름”
 
  경 회장은 또 “교협은 처음에 발명자가 바뀌게 된 경위에 대해 학교 측의 조사를 요구했을 뿐이며, ‘서 총장이 특허를 가로챘다’는 주장 자체를 한 적이 없는데, 학교 측은 교협의 입장을 왜곡해 언론에 퍼뜨렸다”며 “총장 개인에 대한 사건을 위해 홍보실, 비서실, 부총장단 등 학교의 공적 인사와 자원을 동원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덧붙였다.
 
  서남표 총장, 교협, 이사장, 정부, 정치권을 둘러싼 갈등과 마찰은 수년째 이어졌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서로가 ‘개혁의 방향’을 두고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어떤 조직이든 개혁은 반드시 ‘개혁의 대상’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는다. 정치권에선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 모두 ‘개혁’을 내세웠고, 크고 작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결국 선거 결과가 말해 준다.
 
  ‘서남표 개혁’의 성공 여부는 선거로 평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 KAIST 관계자는 “총장과 반대 세력 중 누가 옳은지, 서 총장의 개혁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지금부터 10년이 지나면 모두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서남표 KAIST 총장
 
  “적절한 시점에 스스로 떠나겠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특허 의혹과 사퇴 논란 등 최근 KAIST 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서남표 총장의 입장을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니, “인터뷰를 하는 자체가 또 다른 비판을 가져올 정도로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미 여러 매체의 인터뷰를 거절한 상태였다.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입장을 꼭 밝혀 달라”고 수차례 요청한 결과, 전화와 서면을 통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서 총장은 인터뷰 기사가 나가는 것에 대해 마지막까지 우려를 표했다.
 
  ―왜 고소했나.
 
  “깊은 고민을 했다. 부총장단 등 학교 주요 경영진은 물론, 교수, 학생, 직원, 심지어 외부 인사 등 많은 분으로부터 의견을 들었다. 많은 분이 ‘학교와 학내 구성원 모두를 위해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적인 갈등은 조속히 해소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고,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진실규명이라 결론 내렸다. KAIST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계승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총장을 특허 절도범으로 내몬 교협의 이번 주장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 KAIST의 가치와 구성원의 명예를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다. 그동안 훼손된 가치와 명예를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더 이상 결정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비통한 마음이 들었지만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정상적인 학교운영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해 달라.”
 
 
  “경쟁 대학에선 있을 수 없는 현상”
 

서남표 총장(왼쪽)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독대를 하거나 사석에서 만난 적이 없는데 그런 오해를 받아 대통령께 죄송스런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가운데) 등 교육 관료들은 대통령과 바로 얘기하는 서 총장을 껄끄럽게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허 사건에 대한 총장 본인의 입장은.
 
  “교협은 총장을 사실상 특허 절도범으로 몰았다. 모 일간지에 특종 형식으로 제보해 세상에 알리려고도 했다. 정말 그런 사건이 있었다면, 먼저 학교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여의치 않을 때 의혹을 제기해도 된다. 그런데 학교엔 묻지도 않고 특정 언론사에 제보했고, 보도가 안되자 폭로성 자료를 뿌리는 행위는 대학 발전을 해치는 불건전한 문화다.
 
  KAIST는 국제적 경쟁 모델을 오래전에 갖춘 대학이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세계의 일류 연구대학들이다. 지금 KAIST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건과 문화는 선진 대학에선 결코 찾아볼 수도, 있을 수도 없는 현상이다. 총장의 정책, 철학, 경영시스템을 비판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언제든 환영이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뿌리는 비윤리적 행동은 지성인들이 할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 보는 시선이 어떤가.
 
  “지금 전 세계 주요 교육 미디어들이 KAIST에 관심이 많다. 이미 러플린 전 총장을 내보낸 학교로 유명한데, 이젠 서남표도 쫓겨날까가 큰 관심사다. 제대로 된 과정과 절차를 준수해 쫓아낸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사건을 이상한 방향으로 내몰고 총장에 대한 공격 수위를 점점 높이면서 도가 지나치게 행동한다.”
 
  ―교수들이 왜 반발한다고 생각하나.
 
  “핵심이 교수사회 변화를 위한 개혁적 조치들이다. 테뉴어 강화, 영어강의 도입, 차등적 인센티브 지급, 학과장 중심제도 및 특훈 교수제도 도입 등인데, 제도와 시스템의 도입 없이 세계와 경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이 일부 교수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근 교수 한 분이 내게 메일을 보내 ‘이러한 모든 것을 없애면 학교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란 조언을 하더라. 이를 받아들인다면 당분간 평화는 찾아오겠지만, 학교의 미래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비록 수모를 당할지언정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독선적 리더십’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많이 들어 왔다. 내게도 큰 고민거리이다. 며칠씩 잠을 설치며 많은 생각을 해 봤지만, 나를 ‘무소통, 불통’이라고 공격하는 분들 역시 소통에 대한 충분한 능력과 방법을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해 왔다고 생각한다. 학내 구성원들과 서신을 주고받았고, 전화 통화도 했고, 직접 만났다. 어떻게 해도 나를 반대하는 일부 교수들은 여전히 불통 리더십이라고 주장한다.”
 
 
  “특허 수입 나면 모두 기부”
 
  ―최근 새로 뽑힌 이사 3명 중 2명이 건국대 총장, 부총장 출신이다. “건대 출신의 오명 이사장이 사실상 자신의 인물을 데려왔다”는 말이 나오는데, 총장으로서 어떻게 보나.
 
  “총장이 직접 답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교과부 등 정부 관료 입장에선 대통령과 바로 얘기하는 총장이 눈엣가시로 보일 수 있다.
 
  “사실 대통령과 직접 얘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일부 관료들의 주장처럼 행정체계와 절차를 무시한 것도 아니다. 학교 경영을 오직 법과 절차에 따라 했다. 교육 당국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법에 따르면, KAIST에 대한 교과부의 권한과 역할은 ‘지원, 육성, 조정, 감독’이다. 그런데 지원, 육성, 조정은 없고, 감독만 하려고 한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겼으면 대학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오랜 경험상 교육 관료들의 결정 모두를 따르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실제로 친한가.
 
  “독대한 적도 없고, 사석에서 만난 적도 없다. 공식 행사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인사드리고 만난 것이 전부다. 개인적 인연은 전혀 없다. 오히려 2007년 경선 후보 시절, 이 대통령께서 대전에 오셨을 때 기조강연을 부탁하신 적이 있다.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사양했다. 이런 관계와 상황에서 친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대통령께 죄송스런 마음이다.”
 
  ―재임 후 절반이 되는 시점이 올해 7월이다. 교협, 이사회, 정부 모두 그 전에 사퇴하라고 요구한다는 얘기가 있다. ‘7월 전 사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이미 여러 차례 공언한 대로, 자진 사퇴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쉽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자진 사퇴는 KAIST의 개혁 완성과 한국 대학 개혁의 큰 틀로 봤을 때 절대 유익하지 않다. 현재 임기는 2014년 7월까지 합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타의에 의해 사퇴한다면 KAIST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 물론 임기 동안 정당한 해임 사유가 있어 이사회에서 해임을 결정한다면 그 결정에 따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KAIST 발전을 위해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될 때 스스로 떠날 생각이다.”
 
  ―나중에 특허 수익이 생길 경우 기부하겠다는 선언을 하면 해결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이미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그런 식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부는 본인의 의사로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직접 하긴 뭐하지만, 한국에 온 후 이미 3억원가량을 기부했다. 관련 특허는 수익이 날 경우 학교에 기부하겠다.”
 
 
  “후임 총장 위해 버티겠다”
 
  ―KAIST의 당면 과제가 뭐라고 보는가.
 
  “KAIST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가가 만든 특별법에 따라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기관이며, 서울대 등 다른 국립대와는 설립 배경 및 성장 환경이 다르다. 연구시설과 환경, 등록금, 기숙사, 병역혜택 등은 국민의 귀중한 땀방울과 각별한 사랑의 산물이다. 그래서 최근 일련의 학내사태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엄중히 다가옴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KAIST의 당면 과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이 돼 한국의 발전과 인류에 공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뜻과 지혜, 힘을 모아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교수들이 총장 퇴진이란 목적으로 구성원들을 정작 힘써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한국 국민께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시선을 옳지 않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학교가 이런 이슈가 아니라 연구와 교육이란 이슈로 국민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앞으로의 각오는.
 
  “개혁은 모두에게 부담 된다. 그 사실을 알기에 그 부담을 줄이려고 많은 고민을 했다. KAIST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떠난 후 후임 총장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바닥을 다지려고 하는 것뿐이다. 어떤 분이 올지 모르지만, 내가 이대로 물러난다면 상당히 힘들 수밖에 없다. 다시 개혁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KAIST가 실패하면, 다른 대학들도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사 全文 보기: 월간조선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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