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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에겐 너무 먼 유엔의 고위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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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우 기자 2010. 6. 2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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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프랭크 라 뤼(La Rue) 유엔 의사ㆍ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2일간의 방한(訪韓) 조사를 마치고 출국했다. 1995년 6월 아비드 후사인(Hussain) 전(前) 보고관 방한 이후 15년만의 공식방문이었다.
 
  그는 출국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 위축이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고소, 광우병 보도 MBC 제작진 기소 등을 대표적 사례로 지적했고, “방한 중 한 승용차에 탄 사람들이 캠코더로 나를 촬영했다”며 국정원 사찰 의혹까지 제기했다.
 
  또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총리, 관계부처 장관, 검찰총장 등 고위관료들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방한 기간 중 직무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외면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탈북자들이다. NK지식인연대(대표 김흥광) 등 몇몇 탈북자 단체는 북한의 의사ㆍ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를 직접 호소할 소중한 기회라고 판단, 여러 루트를 통해 면담을 추진했다.
 
  하지만 방한 일정이나 면담 신청 절차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그들은 보고관과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관련 시민단체 대다수가 북한보다는 국내 인권 문제에 집중하는 현실인데다 접촉이 성사되더라도 영어에 미숙한 탈북자들이 제대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북한 인권 활동을 해온 ‘북한인권시민연합’ 소속 관계자가 라 뤼 보고관을 수행한 노무라 모모코(Momoko) 유엔 조사관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알려줬다. 경험 많은 전문 동시통역사 한 명도 자원해서 돕겠다고 했다.
 
 
  방한 목적, 바쁜 일정 등 이유로 면담 거절
 
  NK지식인연대의 김흥광(金興光) 대표는 5월 13일 오후 자신의 명의로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유엔의 주제별 특별보고관들과 연계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인권문제를 호소하길 바란다”는 비팃 문타폰(Muntarbhorn)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말을 인용해 2만명 탈북자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또 조사관의 휴대전화로 “일정이 바쁘다면 주말, 늦은 밤, 이른 아침에라도 언제든 연락을 기다리겠다”며 이메일 확인을 요청했다.
 
  다음 날 저녁 도착한 조사관의 답신 내용은 “현재 방한 목적은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권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정이 바쁜 관계로 북한 관련 단체나 개인을 만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조사관은 또 “종교의 자유와 관련한 보고관이 따로 있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도 종교의 자유로 해석해 만날 수 없었다”며 “북한과 관련한 특정 단체 하나만 만날 경우, 다른 단체와 공평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의사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독재권력을 피해 떠나온 망명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과테말라 망명자 출신의 보고관이 외면한다는 것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 만났다”던 병역거부자, 6일 전 이미 면담
 
  NK지식인연대의 서재평 사무국장과 통역사는 그와의 직접 만남을 시도했다. 15일 오전 연세대에서 열린 특강에 참석해 강의 후 “표현의 자유 통제가 가장 극심한 북한의 경우 당사국 방문이 어려우니 한국 탈북자들을 잠깐이라도 만나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라 뤼 보고관은 “일정이 너무 빠듯한데다 지금은 한국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그들(탈북자)과 마주앉아 북한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고 답했다.
 
  1분간의 짧은 대화 후 탈북자들은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보고관 일행이 한국을 떠난 후 인터넷을 통해 발견한 면담 녹취록은 탈북자들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이메일을 통해 만나지 않았다고 답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이미 6일 전 공식 면담장소에서 만나 “개인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까지 언급해 가며 그가 탈북자들을 외면한 이유는 뭘까. 그는 방한 중 현병철(玄炳哲)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자 “담당자가 따로 있어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고, 한국의 대통령, 국무총리 등 고위관료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인권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김흥광 대표는 “천안함 침몰 사건 진상조사로 정신 차릴 틈도 없었던 한국의 고위관료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실망했던 그가 탈북자들을 위해 단 5분의 시간도 할애해 주지 못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며 “유엔의 ‘관료주의’를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월간조선 2010년 7월호 기자수첩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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